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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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5월 11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선지자의 말을 무시하면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사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니라”(대하 24:19)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문제는 홍수 이전 사람들(히 11:7),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마 23:29~36), 20세기로 접어드는 배틀크리크 요양원의 사람들에게도 나타났다.
    1900년 초에 엘렌 화잇은 “특별한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 켈로그 박사를 돌보셨다.”(원고 6, 1900.)고 진술했다. 그러나 켈로그 체제하에서 배틀크리크 요양원은 본래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1902년 2월 18일, 화재가 요양원을 집어삼켰고 화잇은 이 비극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했다. 이틀 뒤 화잇은 “배틀크리크 요양원을 맡은 이들에게는 엄숙한 책임이 주어졌다. 배틀크리크에 거대한 기관을 지어야 하겠는가? 아니면 여러 곳을 개척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겠는가?”(원고 76, 1903.)라면서 경고했다.
    켈로그 박사와 동료들은 화잇의 말을 무시하고 배틀크리크에 더 큰 요양원을 다시 짓기로 결정했다. 모든 상황이 그들에게 유리한 듯이 보였다. 계획을 지지하는 사람도 많았고 재림교회는 물론 교회 밖의 지역에도 재정적인 이득을 안겨 줄 수 있었다. 켈로그의 책 『살아 있는 성전』의 판매도 기대됐다. 그렇게 1902년 5월 11일, 군중 약 1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새로운 배틀크리크 요양원의 기초가 놓였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재정 위기까지 닥쳐 계획은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살아 있는 성전』의 출판은 시작부터 말이 많았고 켈로그 박사는 교회의 생각과 지도력에서 점점 멀어졌다. 결국 그는 요양원의 운영권을 독차지했고 1907년 11월 10일, 배틀크리크 교회에서 제명됐다.
    노아의 예언에 귀를 기울였다면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목숨을 구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엘렌 화잇의 권면을 따랐다면 배틀크리크 요양원의 갖가지 말썽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언의 말씀이 그다지 합리적이거나 효율적이지 않아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이 최선이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방법임을 잊지 말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오정훈/강유영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섬기는 교회가 새로운 활력을 얻어 지역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도록
    4 min
  • [5월 10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유익한 시련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히 11:34)
    1940년 5월 10일 금요일 오후, 독일군이 네덜란드를 침략했다.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총독은 라디오를 통해 네덜란드 식민지 전역의 16세 이상 독일인 남성을 모두 체포하라고 발표했다. 그곳에 파견된 독일 재림교인 선교사 지크프리트 H. 호른(1908~93)도 언제든 체포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날 저녁 오토바이를 타고 교회에 갔고 예수께서 받은 고통에 대해 설교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경찰이 들이닥쳤고 호른은 체포되어 6년 넘게 아내를 볼 수 없었다.
    2차 세계 대전 동안 호른은 처음에는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에서, 나중에는 영국령 인도에서 전쟁 포로로 지냈다. 옥에서는 책을 볼 수 있었기에 호른은 성경의 언어를 공부하며 동료 수감자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종전 이후에는 미국으로 이주해 학업을 마쳤다. 잠시 동안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윌리엄 A. 올브라이트 교수에게 배웠고 1951년 시카고 주립대학에서 이집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호른 박사는 앤드루스 신학대학원에서 25년간 고고학과 고대사를 가르쳤고 『재림교회 성경 주석』의 창세기, 출애굽기, 에스라, 느헤미야 등에 여러 기사와 주석을 남겼다. 『재림교회 성경 사전』의 주요 저자이기도 했던 그는 박사 과정을 도입하고 학술지 『앤드루스 대학 세미나리 스터디(Andrews University Seminary Studies)』의 초기 편집자로 일했으며 요르단 텔헤스본 지역의 고고학 발굴을 시작하고 지도했다.
    위기가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쇄신과 새로운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 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참혹한 상황의 피해자로 남지만 어떤 사람은 그 상황을 딛고 일어선다. 수년간 수감 생활을 하면서 호른은 자신의 진로를 다잡았다. 살면서 마주하는 위기를 장애물로만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디딤돌이 되고 더 밝은 미래로 이끄는 길라잡이가 될 수도 있다.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 4:13, 쉬운).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고종식/김은아 선교사 부부(아드라 필리핀)
    아드라 필리핀에서 진행 중인 다양한 지원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도록
    4 min
  • [5월 9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두 손의 상처

    “어떤 자가 그에게 말하기를 ‘네 두 손에 이 상처들은 무엇이냐?’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이 상처들은 내 친구들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슥 13:6, 한글킹)
    2013년 5월 9일 자 『애드벤티스트 리뷰』지의 표지에 인상적인 예수님의 그림이 실렸다. 흐린 배경으로 처리된 예수님의 모습 위에는 안경이 놓였고 안경의 렌즈 안쪽만 선명하게 보이는 그림이다. 배경이 된 예수님 그림은 다름 아닌 해리 앤더슨의 작품이다. 예수님의 아름다운 초상을 여러 점 남긴 그는 유능하고 유명한 재림교인 화가였다.
    해리 앤더슨(1906~96)은 1906년 8월 11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사는 스웨덴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1944년에 재림교인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뷰 앤드 헤럴드 출판사를 위해 삽화를 그렸는데 그가 남긴 종교 삽화는 300점이 넘는다. 1945년에 그린 <예수님, 손이 왜 그래요?(What Happened to Your Hand?)>라는 작품이 아마도 가장 유명할 것이다. 현대의 어린이 세 명과 함께 있는 예수님의 그림이다.
    현대를 배경으로 삼은 이 그림은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심지어는 출판사의 디자인 팀 직원조차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그러나 한 직원의 경험으로 그들은 깨우침을 얻었고 편견도 사라졌다. 어느 저녁이었다. 집에서 그 직원의 딸이 『아이들의 시간(The Childrens Hour)』이라는 책을 읽다가 해당 그림을 보고 나서 달려와 말했다. “아빠, 나도 예수님 무릎 위에 앉고 싶어요.” 아이들이 예수님을 이해하는 데 현대적 배경의 그림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그는 곧바로 깨달았다.
    마지막 심판 때 예수님은 악한 무리에게 “십자가에 못 박혔던 자신의 손을 보여 줄 것”이라고 엘렌 화잇은 진술한다. “그 잔혹한 상징은 영원히 그분과 함께할 것이다. 못 자국 하나하나는 인류의 놀라운 구원 이야기와 구원을 위해 치러진 소중한 희생을 보여 준다”(초기, 179). 지금도 “그분은 우리를 위해 아버지 앞에서 십자가의 상처를 보이신다. 예수님은 이 상처를 영원히 간직하실 것이다”(하늘에, 78).
    시온을 향해 주님은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 49:16)라고 말씀하셨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향한 조건 없는 사랑과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이 그분의 손에 남아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지훈/신은주 선교사 부부(미얀마)
    미얀마 재림교회 사상 최초의 약사 과정 3기에 많은 청년이 교육받도록
    4 min
  • [5월 8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왕자와 거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삶은 반대와 모순으로 가득하다.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계획에 발등을 찍힐 때도 있다. 1937년 5월 8일에 개봉한 영화 <왕자와 거지>처럼 말이다. 수많은 리메이크를 낳은 이 영화는 1881년에 마크 트웨인이 발표한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영화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등장한다. “잉글랜드에서 같은 날 두 아이가 완전히 대조적인 환경에서 태어났다. …거지 톰은 악랄한 범죄자 존 캔디의 아들이었다. …반면 에드워드 튜더는 헨리 8세의 아들로 장차 나라를 물려받을 아이였다. …우연히 마주친 그들은 너무나 닮은 서로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장난 삼아 옷을 바꿔 입었다. 그런데 경비병이…왕자를 거지로 오인해 궁 밖으로 쫓아냈다. 하트퍼드 백작 외에는 그 누구도…톰의 정체를 믿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전부 왕자에게 정신 이상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헨리 8세가 죽자 하트퍼드는 톰에게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정체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리고 후환을 없애고자 근위대장을 협박해” 진짜 에드워드 왕자를 찾아 죽이라고 명한다.
    그러나 “기사 마일스 헨든이 에드워드를 지켜 준다. 그는 에드워드를 믿지 않았지만 유쾌한 사람이었다. …헨든의 도움으로 에드워드는 대관식 직전 궁에 들어가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있었다. 에드워드는 국왕 에드워드 6세가 되었고 톰은 그의 보호를 받았다. 하트퍼드는 추방당했고 헨든은 상을 받았다.”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성육신의 개념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바울도 빌립보서 2장 5~11절에서 이 부분을 다루고 있다. 이 놀라운 구절은 하늘에서 죄 많은 세상에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분은 가난하게 살았고 많은 사람이 그분의 구원을 거절했다. 이야기 속의 왕자와 달리 그리스도는 두 강도와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끊임없이 멸시받았다. 그러나 위풍당당하게 죽음에서 일어나 다시 승천하셨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의 자리에 앉으셨다(계 19:16).
    지극히 낮은 곳으로 임하시고 지극히 높아지신 주님을 찬양하자. 우리는 영원토록 그분의 삶을 배울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류재경/김미현 선교사 부부(북키프로스)
    선교지에서 가족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살아가도록
    4 min
  • [5월 7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즐거운 경배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시 95:1)
    1824년 5월 7일에 당신이 오스트리아 빈에 있다고 상상해 보라. 아무런 설명도 없이 친구가 당신을 캐른트네르토르 극장으로 데려간다. 콘서트홀에 들어서자마자 큰 행사를 앞둔 사람들의 들뜬 마음과 부푼 기대가 느껴진다. 오케스트라의 규모도 평소보다 더 웅장하다. 시간이 되자 지휘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9번 교향곡을 시연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이는 다름 아닌 그 위대한 루드비히 판 베토벤이다. 어떤 이들은 교향곡에 합창과 독창을 넣었다고 베토벤을 비판하기도 했다. 마지막 악장이 그렇게 되어 있었다.
    당시 베토벤은 청력을 완전히 잃은 상태여서 자신의 곡이 연주되는 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고 숨은 지휘자 미하엘 움라우프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주자들과 비밀스레 호흡을 맞추며 연주를 진행했다. 연주자들보다 몇 마디 뒤처진 베토벤은 공연이 끝나고도 계속해서 지휘했다. 그 모습을 본 콘트랄토 성악가가 베토벤에게 다가가 주위를 돌아보게 했고 그제야 베토벤은 관객의 열렬한 환호와 박수갈채에 답례했다. 박수 소리는 들을 수 없어도 박수하는 손동작은 볼 수 있었다. 베토벤은 큰 감동에 젖어 눈물을 글썽이며 무대에서 내려갔다.
    9번 교향곡의 가사는 유명한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작품 <환희의 찬가>(1785)를 참고한 것이다. 그의 작품은 모든 사람이 하나로 연합하는 모습을 담았고 장엄하게 마무리된다.
    형제들이여, 하늘의 별들 위에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반드시 계시리.
    만인이여, 엎드려 경배하는가?
    온 세상이여, 창조주를 믿는가?
    하늘에서 그분을 찾아보라.
    별들 위 저편에 그분께서 반드시 계시리.
    ‘기뻐하며 경배하라’라는 가사는 나중에 헨리 반 다이크가 멜로디에 덧붙인 것이다. 오늘날 이 곡은 가장 아름다운 찬송 중 하나로 꼽힌다.
    수많은 활동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우리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서 우러나는 경배의 정신을 쉽사리 잊어버린다. 그러나 시편 95편 1절에서는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라고 초청한다. 찬미 <기뻐하며 경배하라>에서는 창조주께 모든 피조물과 만물이 즐거이 경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찬송을 알고 있다면 지금 불러 보라. 그리고 오늘 하루 이 찬송을 마음에 새기라. 우리를 창조하고 구원하신 그분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대륙선교회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헌신할 선교사들을 보내 주시도록
    5 min
  • [5월 6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신앙이 없다면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것일까? 아니면 사람이 신을 만들어 낸 것일까? 이 질문은 심리학자의 오래된 과제이다. 심리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1856년 5월 6일, 오스트리아 제국 모라비아의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과 논란을 일으킨 사상가였던 그는 신의 개념과 종교의 본질에 이의를 제기했고 모두가 종교 없이 도덕적 삶을 살아가는 성숙한 사회를 꿈꿨다.
    그는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해 사람들의 이러한 필요가 투영된 개념이 다름 아닌 신, 다시 말해 ‘엄청나게 추앙받는 존재’라고 풀이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종교는 ‘환상’이며 ‘아이들에게 있는 신경증’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다른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의 존재와 종교의 의미를 강하게 부정했다면 프로이트는 미숙한 종교를 졸업하고 성숙한 비종교적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매혹적이고 그럴듯한 심리학적 과정을 제시했다.
    그러니 토니 캠폴로가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불신의 사도’라 부른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는 또한 “계몽주의의 맹공격으로 종교가 힘을 잃었다면, 급진적이고 새로운 인간 이해 방식으로 인간의 존재와 이유에 대한 종교적 설명들을 전부 순진한 것으로 치부하게 만든 장본인은 프로이트”라고 덧붙였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을 떠나 성장한다는 개념은 에덴동산에서 뱀이 하와에게 건넨 말과 일맥상통한다. 교활한 뱀은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억압적이고 불합리하다면서 훨씬 자유롭고 그럴듯해 보이는 제안을 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라고 말한 것이다.
    프로이트는 1939년에 죽었지만 여전히 그의 충실한 제자들은 하나님과 종교를 똑같은 방식으로 평가한다. 어쩌면 여러분도 ‘유치한 종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심리적 압박을 느낄지 모른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충성하는 삶을 결코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눅 9:23~26).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손만식/어은숙 선교사 부부(필리핀)
    함께 동역하는 평신도 사역자들의 영성과 그들을 위한 후원을 위해
    4 min
  • [5월 5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핵소 고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행 10:38)
    1945년 5월 5일, 오키나와에서 맞은 안식일은 보통 날과 달랐다. 일본군은 최후의 요새인 오키나와 마에다 고지를 필사적으로 방어했고 미군이 절벽 위로 올라서면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미군 사령부는 즉각 철수를 명했다. 모두가 그 명령에 따랐지만 단 한 명, 데스먼드 도스만은 예외였다. 도스는 부상병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포화 속으로 뛰어들었고 최소한 75명을 살려 냈다.
    며칠 뒤 도스의 발 앞에 일본군의 수류탄이 떨어지고 저격수의 총탄에 맞아 팔을 크게 다쳤다. 고통스러운 출혈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도스는 다른 부상병부터 전장 밖으로 내보냈다. 남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죽음도 불사할 작정이었다. 그 영웅적인 행동의 대가를 그는 평생 치러야 했다. 전쟁에서 걸린 폐결핵 때문에 5년 반 동안 치료받았고 결국 도스는 한쪽 폐와 갈비뼈 5개를 잃었다. 그럼에도 도스의 마음은 평온했다.
    비무장 재림교인 의무병이었던 도스는 총기를 사용하지도 소지하지도 않았다. 그는 죽이는 일 대신 살리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고 안식일에도 그렇게 했다(마 12:12). 1945년 10월 12일, 도스는 미국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에게 명예 훈장을 받았다. 도스는 명예 훈장을 받은 최초의 양심적 비전투 요원이 되었고 여러 포상이 뒤따랐다. 그의 이야기는 부튼 헨던의 책 『뜻밖의 영웅』과 프란시스 M. 도스의 책 『핵소 고지의 기적』에 잘 나와 있다. 그의 놀라운 이야기는 <핵소 고지>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적군을 많이 죽여야만 전쟁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데스먼드 도스처럼 사람을 살리는 일로 영웅이 될 수도 있다. “두루 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행 10:38, 새번역) 주셨던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고 실천한 덕분에 도스는 영웅이 될 수 있었다. 세상에는 이런 영웅이 더 필요하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지성배/김영란 선교사 부부(파키스탄)
    모슬렘에서 개종하여 비밀리에 신앙을 유지는 교인들의 안전을 위해
    4 min
  • [5월 4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나의 밧모섬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계 1:9)
    절망적인 일이 축복으로 탈바꿈했던 경험이 있는가? 먹구름 사이로 밝게 비치는 햇빛을 본 적 있는가? 더 낫고 값진 경험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바라던 것을 좌절시키시곤 한다. 1521년 보름스 회의를 마친 마르틴 루터도 이러한 경험을 했다.
    4월 18일, 루터는 의회에서 자신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있으며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수 없다고 했다. 8일 뒤 루터와 일행이 집으로 돌아갈 때였다. 그의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게 된 색소니의 현자 프리드리히 선제후는 루터를 보호하기 위한 비밀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5월 3일 저녁, 기마병 4~5명이 루터의 마차를 공격해 루터를 납치했다. 이들은 루터의 옷을 기마복으로 갈아입힌 뒤 아이제나흐 인근의 바르트부르크성으로 루터를 호송해 1521년 5월 4일, 그곳에 도착했다. 루터는 죄수처럼 그곳에 갇혀 있는 동안 남들이 못 알아볼 정도로 머리와 수염이 자랐다. 그는 스스로를 기사 외르크라는 가명으로 불렀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성에 10개월간 갇혀 지냈다. 요한이 계시록을 쓴 장소에 빗대어 루터는 그곳을 ‘나의 밧모섬’이라고 표현했다. 바깥세상과 비텐베르크의 바쁜 삶에서 멀어진 루터는 바르트부르크가 아니었다면 결코 해내지 못했을 일을 이루었다. 11주 만에 신약 성경 전체를 그리스어에서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다. 또 도서관도 갈 수 없는 환경에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덕분에 그곳에서 쓴 책은 오로지 성경에만 굳건한 바탕을 두었다.
    진정 하나님은 좌절을 축복으로 바꿀 수 있는 분이시다. 멀리 떨어진 밧모섬에서 요한은 계시록을 썼다. 바르트부르크성에 갇힌 루터는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머나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엘렌 화잇은 『시대의 소망』을 집필했다.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의 이끄심을 절대로 의심하지 말라. 우리가 어디로 가든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효수/김윤주 선교사 부부(튀르키예)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교회가 되도록
    4 min
  • [5월 3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종교적인 조각품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출 25:18)
    십계명의 둘째 계명에서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명한다(출 20:4). 이 진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영국 출신의 앨런 콜린스(1928~2016)는 유명 재림교인 조각가이다. 그의 조각상 여러 점이 영국 길퍼드 대성당과 미국 재림교회 대학교들의 캠퍼스에 전시되어 있다. 그중 하나가 1981년 5월 3일, 로마린다 대학에서 선보인 <선한 사마리아인> 동상이다. 유럽으로 떠나는 1874년의 J. N. 앤드루스와 두 자녀를 묘사한 동상도 앤드루스 대학교 파이오니어 메모리얼 교회당 앞에서 1998년 4월 25일 공개됐다.
    열두 개의 동상으로 구성된 빅터 이사의 작품 <왕이 오신다>는 2000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대총회에서 소개됐다. 이 작품은 각 대륙을 상징하는 10명이 빛나는 얼굴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회의가 끝나고 그 작품은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 대총회 로비에 영구 전시됐다.
    이러한 조각상이 둘째 계명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 금지 계명이 언약궤 안의 돌판 위에 쓰여 있고 언약궤 위에는 금으로 만든 두 그룹 천사의 조각이 놓여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따라서 둘째 계명은 시각적 요소를 모조리 금지하는 게 아니다. 심지어 지성소를 장식하는 데도 그런 요소가 사용되었다. 둘째 계명의 의미는 ‘너를 위한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출 20:4).
    모세에게 ‘놋 뱀’을 만들라고 지시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민 21:9). 그러나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것을 숭배 대상으로 여기자 히스기야왕이 부숴 버렸다(왕하 18:4). 대상 자체보다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더 중요하다. 훌륭한 사람이나 유용한 것도 우상이 될 수 있다. 그 근본이 무엇이었든 우상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시각적 도구는 예수께 집중하는 데 도움과 영감을 주기도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노영/이미진 선교사 부부(대만)
    코로나 이후 소그룹 활성화와 예배 회복으로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도록
    4 min
  • [5월 2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반체제 문화의 도전

    “마지막 때에 어려운 시기가 닥쳐오리라는 것을 알아 두시오”(딤후 3:1, 공동)
    오늘날 문명사회는 도덕적 퇴보와 기술의 진보가 뒤섞인 모순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전혀 놀랄 필요가 없다. 재림 전의 세상은 노아의 때처럼 타락할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마 23:37~39). 마지막 때 인류의 모습, 특히 잘못된 모습은 디모데후서 3장 1~7절과 베드로후서 2장 1~22절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퇴락은 1960~70년대에 더욱 두드러졌는데 소란스러웠던 1968년이 그 절정이었다.
    그 당시 파리 낭트 대학교는 학생들과 마찰을 빚고 있었다. 1968년 5월 2일 목요일, 정부는 학교를 폐쇄했고 곧 대규모 집단 시위가 이어졌다. 유사한 사회 정치적 폭동이 프라하, 베를린, 시카고 등 세계 각지에서 벌어졌고 같은 해 마틴 루서 킹,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하고 공격적인 반전 운동과 함께 인종 차별 반대 운동, 여성 해방 운동이 일어났다.
    역사학자들의 평가에 따르면 1968년은 세상을 뒤흔들고 바꿔 버린 해이다. 그런데 1968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후의 세상은 더 이상 전과 같지 않다.
    위태로운 그 시절의 반체제 바람은 지금도 여전히 불고 있고 그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근본적인 종교적 가치와 도덕적 가치는 땅에 떨어졌고 모든 권위가 도전받는다.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더 크고 강렬한 도전을 받는다. 지금이야말로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일어나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때이다(마 5:13~16).
    “보아라, 흑암이 땅을 덮으며 짙은 어둠이 만민을 덮을 것이나, 여호와께서 네 위에 떠오르시며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날 것이니”(사 60:2, 바른).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는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이것을 우리는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의권/스즈키 에리코 선교사 부부(일본)
    구지카와 교회와 쓰쿠바 학원교회 성도들의 건강과 영적 성장을 위해서
    4 min

About 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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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