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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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1월 21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신자들의 침례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침례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엄숙하고 의미심장한 의식 중 하나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성인이 되어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았고(마 3:13~17) 제자들도 그와 같이 하도록 명령받았다(마 28:18~20). 물에 잠기는 침례식만이 죄에 대한 신자들의 죽음을 온전히 표현한다. 물에 잠겼다가 나오는 예식은 새 생명으로 부활했음을 뜻한다(롬 6:3~6).
    유럽에 고대의 침례탕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볼 때 그리스도인들이 수 세기 동안 성인들에게 물에 잠기는 침례식을 베풀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도 시대 이후부터 대안적인 방식이 등장했다. 2세기 말 북아프리카에서는 유아 세례를 거행했다. 3세기 중반에 로마의 주교 노바티오누스는 병상에 누워서 물을 붓는 방식으로 세례를 받았다. 예외적인 이 방법이 나중에는 기독교 전통의 공식 절차로 자리 잡았다.
    16세기에 재세례파들은 성인 세례를 시작했다. 1525년 1월 21일, 이들은 취리히에 있는 펠릭스 만츠의 집에서 최초의 세례식을 거행했다. 기도 후에 전임 사제였던 게오르그 블라우록이 일어서서 평신도 콘라드 그레벨에게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청했다. 그레벨은 바가지로 양동이의 물을 떠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블라우록에게 부었다. 이어 블라우록이 모여 있는 다른 이들에게 세례식을 거행했다. 나중에 일부 재세례파는 완전히 물에 잠기는 침례식을 다시 시작했다. 침례교와 다른 몇 기독교 종파에서 이 방법을 따르고 있는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도 그중 하나다.
    그리스도처럼 침례를 받고 신실하게 침례 서약에 따라 산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축복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는 것은 성삼위께 도움을 구하면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삼위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다는 보증이다.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학교에서 그분의 온유함과 겸손을 배우는 신실한 제자들의 기도를 주님께서는 듣고 응답하신다”(6증언, 99). 침례 받을 때 했던 헌신의 서약을 오늘 새롭게 되새겨 보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남형우/배현경 선교사 부부(일본)
    일본 재림교회의 영적 회복과 부흥을 위해
    4 min
  • [1월 20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한마음으로 봉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참극은 막을 내렸지만 냉전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컸다. 서구 자본주의 진영과 동구 공산주의 진영 간에 정치적·군사적 긴장이 팽배했다. 불안정한 그 시기에 존 F. 케네디가 미국의 3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961년 1월 20일, 워싱턴 D.C의 미 국회의사당에서 케네디는 취임 연설 도중 미국과 서구 진영 국가들을 향해 함께 연합하여 공통의 목표를 떠받들자고 호소했다.
    “뭉치고 협력하면 못 이룰 모험이 없습니다. 갈라서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반목하고 뿔뿔이 흩어지면 강력한 도전에 어찌 맞설 수 있겠습니까?” 연설 말미에 케네디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로 이타적인 봉사를 강조했다. “그러므로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보십시오. 존경하는 세계 시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 묻지 말고 우리가 인류의 자유를 위해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보십시오.”
    이 인상적인 연설에 담긴 정치적인 어조에 여러분이 동의하는지 안 하는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진행 중인 거대한 선악의 대쟁투에 우리 모두가 직접 연루되어 있으며 여기서 자신의 노선을 확실하게 취해야 한다는 점이다. 성경에 따르면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엡 6:12, 바른).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고전 12:12~31)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고(요 17:21) 이타적인 봉사로 서로를 받들 때만 승리할 수 있다.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러 왔고, 자기 목숨을 많은 이들을 위한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마 20:28, 바른) 오신 예수님의 모본을 우리는 착실하게 따라야 한다. 교회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교회를 위해 그리고 주위에서 죄로 멸망해 가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보라. 우리가 속한 집단의 변화는 모두 사심 없는 봉사에서 비롯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민섭/김순임 선교사 부부(대만)
    신띠엔 교회의 발 마사지를 통한 지역 사회 봉사를 위해
    4 min
  • [1월 19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빛을 전하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마 5:14~15)
    어둠이란 빛이 없는 상태다. 빛이 밝혀지면 어둠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살아 있는 것들은 빛을 받을 때 더 왕성하게 자란다. 사실상 빛이 없다면 생명도 없다.
    1883년 1월 19일 뉴저지주 로셀에서 개최한 행사는 전등이 가정에 들어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수많은 실험 끝에 토머스 에디슨이 전신주를 활용한 전기 조명 서비스를 개시한 것이다. 마을 전체가 중앙 발전소의 전기로 불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은 지구상의 수많은 도시, 시내, 마을, 가정이 전등을 사용하고 있다.
    실생활에 빛이 빠질 수 없듯 우리의 영적 삶에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말미암는 빛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빛들의 아버지”라고(요일 1:5; 약 1:17)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그와 같이 아버지를 드러내려고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소개했고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셨다(요 8:12).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이므로 둘 다 이 세상을 밝힐 빛이라고 할 수 있다. 시편 119편 105절에서도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말한다.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은 우리가 자기 자신의 빛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그분의 빛, 즉 그분의 말씀이라는 빛을 주위 사람들에게 반사할 뿐이다. 그 빛은 절대로 우리를 돋보이게 하지 않는다. 그 빛은 사람들을 이끌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선언하셨다(마 5:16).
    토머스 에디슨이 전등을 발명해 가정집들에 빛을 선사했듯 우리도 세상 어둠 속에서 죽어 가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빛을 전해야 한다. 우리는 함께 이 세상을 밝힐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이기원/이용숙 선교사 부부(대만)
    루조우 지역 주민들이 선교 프로그램과 개인 전도로 성경 공부 및 침례를 결심하도록
    4 min
  • [1월 18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집이란?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시 128:3)
    오늘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날이다. 1983년 1월 18일 화요일에 내가 아내 말리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사랑스런 세 자녀 설런, 윌리엄, 셸리를 얻었다. 나의 결혼기념일을 맞아 어떻게 해야 집다운 집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말할 것도 없이 가족은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단위이다. 그러나 오늘날 가정은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수많은 가족이 한 지붕 아래 살면서 한 식탁에서 밥을 먹지만 진정한 가정을 이루지 못한다. ‘가옥에 사랑을 채워야 가정이 된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나는 여기에다 ‘안정적인 가정이란 하나님의 사랑 위에 세워지고 그분의 가치와 원칙에 충실할 때 유지되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덧붙이고 싶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미국 오페라 알토 가수인 에르네슈티네 슈만하잉크(1861~1936)는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따뜻한 글을 남겼다. 그는 집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비를 막아 주는 지붕, 바람을 막아 주는 사방의 벽, 냉기를 차단해 주는 바닥. 그러나 집이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이의 웃음, 어머니의 노래, 아버지의 기운이 함께해야 한다. 따뜻한 사랑, 행복으로 반짝이는 눈, 다정함, 성실, 우애가 함께해야 한다. 가정은 아이들의 첫 학교이자 첫 교회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친절한 것인지를 배우는 곳이다. 아프고 병들 때 위로받는 곳이다. 기쁨은 두 배가 되고 슬픔은 절반이 되는 곳이다. 아빠와 엄마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는 곳이다. 가장 높은 왕이라도 가장 소박하게 차려진 밥상이면 충분한 곳이다. 도타운 사랑이 돈보다 중요한 곳이다. 찻주전자마저 행복에 겨워 노래하는 곳이다. 집이란 그런 곳이다. 그곳에 하나님의 복이 함께하기를.”
    죄로 물든 이 세상에는 완벽한 가족도, 흠 없는 가족도 없다. 그러나 깨어진 가족을 회복하고 냉랭한 집을 따뜻한 가정으로 변화시키는 것도 마지막 때 우리가 맡은 사역 중 하나이다. 예수의 재림을 준비한다는 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는 것이다(말 4:6). 이 세상의 가정은 하늘 집으로 향하는 여행의 지원 센터가 되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고종식/김인아 선교사 부부(아드라 필리핀)
    2023년 아드라 필리핀의 안정적인 사업을 위해
    4 min
  • [1월 17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자정이 거의 되었다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사 21:11)
    역사는 비극으로 시작해 극적으로 마무리된다. 태초에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결국 종말의 때에 인류는 다시 하나님을 마주할 것이다. 그때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명망 높은 과학 단체들도 지구의 멸망이 가까웠다고 염려한다.
    1945년 9월 26일, “원자력의 등장으로 떠오른 과학적, 기술적, 사회적 문제”에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시카고 핵과학자 모임이 조직됐다.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을 투하한 지 얼마 안 되었던 때이다. 1947년 6월에는 “인간 스스로가 만든 위험한 기술 때문에 지구의 멸망이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대중에게 경고하기 위해” 『핵과학자회보』(3권 6호) 표지에 ‘운명의 시계’ 그림을 싣기 시작했다.
    이후로 70년 동안 운명의 시계 분침은 22번이나 조정되었다. 2017년 1월 17일에는 자정 3분 전에서 2분 30초 전으로 분침이 이동했다. 인간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대부분 믿지 않는 과학자들조차 지구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으며 세계적 대재앙이 코앞에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핵과학자회보』 1949년 10월 호 표지에는 운명의 시계 그림 밑에다가 “지금은 때가 다 되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할 때이다.”라는 로버트 리디의 글을 덧붙였다. 과학계와 환경계는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매우 고심하고 있다.
    우리도 하나님의 창조물을 보살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으로 세상이 끝날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나님이 오셔서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다(계 11:18). 세상 끝은 더 가까워졌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우리가 처음 믿었을 때보다 더 가깝다. 하루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세상에 경고의 기별을 전할 날도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5증언, 88).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교린/이미화 선교사 부부(아랍에미리트)
    아랍 현지인을 위한 디지털 사역이 활성화되도록
    4 min
  • [1월 16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요 19:15)
    성경에 따르면 요셉과 마리아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의 조세 칙령 때문에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가야 했다(눅 2:1~5). 카이사르의 원래 이름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기원전 63~서기 14)이며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물리친 뒤 전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기원전 27년 1월 16일, 로마 원로원은 그의 공식 명칭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라고 부르기로 결의했다. 역사가들은 보통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라고 부른다.
    로마 황제는 신 혹은 신의 아들로 여겨졌다. 그러나 “절대적인 신성, 다시 말해 신의 본성을 지니고 있느냐는 고대 이교도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황제 숭배에서 표현된 것은 상대적인 신성, 즉 신성한 지위 및 숭배자들에게 발휘하는 절대적인 권력이었다.”
    예수님을 재판하던 빌라도는 군중에게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요 19:15)라면서 그들의 충성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거기에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제사장 직분을 예표 하는 것이 매일의 본업인 대제사장들도 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그리스도를 높이고 변호해야 했지만 부끄럽게도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나이다”라고 소리쳤다(15절).
    그리스도는 지조 없는 제사장들에게 거절당했지만 하나님께는 거절당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는 한없이 낮아지심으로 영광을 받으셨다(요 12:23~24). 빌립보서 2장 9~11절에서는 분명하게 말한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카이사르에게 충성을 외친 이들과 반대로 성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딤전 6:15)라고 소개한다. 요한계시록 17장에서는 어린양이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14절)라고 말한다. 우리를 둘러싼 군중이 뭐라고 소리치든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하기 바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10/40 선교 프로젝트 – 키르기스스탄 어학원 설립 및 국제 교회 개척을 위해
    4 min
  • [1월 15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허드슨강의 기적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계 5:12)
    2009년 1월 15일 오후의 뉴욕 라과디아 공항은 여느 때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런데 US항공 1549편이 이륙 후 3분 만에 쇠기러기와 충돌하면서 제트 엔진이 양쪽 모두 멈추고 말았다. 양쪽에서 불이 뿜어 나오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가까운 활주로로 갈 여유조차 없는 상황에서 체슬리 B. 설렌버거 기장은 허드슨강에 불시착하기로 결정했다. 영하 7도나 되는 추운 날씨였다. 비행기 내부로 얼음장 같은 물이 쏟아져 들어왔고 승무원들은 재빨리 승객들을 날개 쪽으로 이동시켰다. 그 뒤에도 설렌버거 기장은 두 번이나 오가며 객실을 살펴보고 나서야 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확인했다.
    탑승자들이 구조된 과정은 설렌버거 기장과 승무원 및 지상 구조 요원들이 일궈 낸 한 편의 팀 프로젝트와도 같았다. 놀랍게도 탑승자 155명 전원이 생존했고 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낸 사람은 2명뿐이었다. 전문가들은 “경이로운 비행 실력”, “항공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불시착”, “영웅적이고 탁월한 항공 업적”이라며 칭송했다.
    이 놀라운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우리 죄를 속하러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떠올랐다. 그리고 하늘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분의 은혜로운 구원을 찬양할 미래의 모습도 그려 보았다. 요한계시록 5장에서는 어린양께 드리는 하늘의 찬양을 엿볼 수 있는데 그 찬양이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분위기이다.
    아담은 하늘에 가서 “주위를 둘러보고 하나님의 낙원에 서 있는 구속받은 자기 가족의 큰 무리를 볼 것”이라고 엘렌 화잇은 진술했다. “그때 그는 그 찬란한 면류관을 벗어 예수님의 발 앞에 던지고, 그분의 가슴에 몸을 던져 구주를 껴안는다. 그는 황금 하프를 연주한다. 그러자 승리의 노래가 하늘 공간에 울려 퍼진다. ‘합당하고 합당하고 합당하다. 죽임을 당하시고 다시 살아난 어린양이시여!’ 아담의 가족은 노래를 부르며 면류관을 구주의 발 앞에 벗어던지고 엎드려 경배한다”(쟁투, 648). 여러분과 내가 그 영광스러운 현장에 함께 있기를 바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의권/스즈키 에리코 선교사 부부(일본)
    소그룹 사역의 활성화를 위해
    4 min
  • [1월 14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섬기는 삶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 8:35)
    헌신적인 봉사에 관한 재치 있는 표현은 많지만 직접 실행에 옮긴 사람은 많지 않다.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는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용기 있는 인물이다. 1875년 1월 14일, 독일 알자스로렌 지방에서 태어난 슈바이처는 저명한 신학자, 음악가, 철학자이자 의사가 되었다. 네덜란드 간호사 마리아 J. 라헨디크는 슈바이처를 두고 “그는 진정 독일 셰퍼드와도 같은 사람이다. 슈바이처는 프랑스인처럼 매력적이면서도 독일인처럼 강직하다.”라고 말했다.
    1904년, 슈바이처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가봉에 의사가 필요하다는 기사를 읽었다. 모두가 말렸지만 그는 전도유망한 슈트라스부르크 의과 대학의 교수직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1913년 4월 아내와 함께 랑바레네로 떠났고 거기에 정글 진료소를 차렸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오랫동안 말로 하는 일을 해 왔고 신학 교사와 설교자의 소명을 기쁘게 따랐다. 새로 시작한 이 활동은 사랑의 종교를 설교가 아니라 행동으로 전하는 일이다.”
    1952년에 슈바이처 박사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1953년 12월 10일에 상을 받았다. 그 뒤에도 그는 아프리카로 돌아가 상금을 랑바레네 나환자 병원에 사용했다. 임종을 앞둔 그의 아내는 아프리카에 얼마나 머물 계획이냐고 슈바이처에게 물었고 슈바이처는 “내가 숨 쉬는 한 이곳에 머무를 거요.”라고 답했다. 그는 “자기를 위해 사는 것보다 타인, 진리, 선을 위해 사는 것이 훨씬 값진 선물”임을 굳게 믿었다.
    헌신적인 봉사에 대해 슈바이처는 이렇게 덧붙였다. “살기 위해서는 누구나 일해야 한다. 그러나 남을 섬기고 불쌍히 여기며 돕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목적이다. 그래야만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다. 모범을 보이는 것은 남에게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방법이 아니라 유일한 방법이다.” 이 말이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오늘 곰곰이 생각해 보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태영/전주은 선교사 부부(서인도네시아 – 천명선교사 훈련원)
    훈련원에 필요한 추가적인 건물의 건축을 위해
    4 min
  • [1월 13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총력전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전쟁의 끔찍함과 무서움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은 ‘전격전’이라는 혁신적인 전술을 사용했다. 독일어로 ‘번개 전쟁(blitzkrieg)’을 뜻하는 이 치명적인 전술의 핵심은 속도와 기습이다. 1943년 1월 13일, 아돌프 히틀러는 총력전을 선언했다.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면 목숨을 비롯한 모든 자원을 쏟아붓겠다.”는 입장이었다. 히틀러는 남성 공장 근로자를 여성으로 대체하고 독일군 50만 명을 추가로 징집했다.
    성경은 우리도 악의 영향에 맞서 총력전을 벌이고 있으며(엡 6:12) 마귀도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계 12:12) 화를 내고 있다고 말한다. 이 전쟁은 매 순간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벌어진다. 만약 우리의 영적인 눈이 뜨인다면 “시험에 빠진 자를 돕기 위해 천사가 신속하게 날아가 마귀의 군대에 둘러싸인 그를 건져 내고 확실한 기초 위에 굳게 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세력 간의 전쟁은 세상의 전쟁만큼이나 실제적이며 이 영적인 투쟁으로 영원한 삶이 결정된다.”(선지, 175)라고 엘렌 화잇은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마귀와 싸워 승리할 수 있을까? 철저하게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그래서 바울은 승리하는 그리스도인 병사의 전신 갑주에 관하여 이야기한 것이다(엡 6:10~20). 이 우주적인 전쟁에서는 “기도하지 않으면 하루는커녕 한 시간도 버틸 사람이 없을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으면 한시도 안전하지 못하다”(쟁투, 530; FE, 537).
    하나님께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삶을 내맡기는 사람에게 그분은 “자기를 신뢰하는 그 누구도 사탄에게 굴복당하지 않도록 하늘의 모든 천사를 신속하게 내려보내어 자기 백성을 보호하실 것”(쟁투, 560)이라고 약속하신다. 이것을 자신의 보증으로 삼으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남경원/조효정 선교사 부부(파키스탄)
    파키스탄 1000명선교사 훈련과정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4 min
  • [1월 12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하나님의 말씀에는 창조와 재창조의 능력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듯 하나님의 명령으로 세상이 창조되었다(히 11:3). 하나님이 “말씀하시매 이루어”졌다(시 33:9). 그런데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도 동일한 힘이 있다. 성경은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책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1월 12일, 에서 ‘세상을 바꾼 101가지’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이 방송은 세상을 바꾸고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첫 번째로 성경을 꼽았다.
    이러한 변화의 가장 고전적인 사례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일 것이다. 히포의 성자라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초기 기독교 신학과 철학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젊은 시절에 그는 “채워지지 않는 정욕에 이끌리는 습관”의 노예로 지냈다. 그러나 로마서 13장 13~14절을 읽은 뒤 완전히 변화되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회심하면 삶에 평화와 안정이 찾아온다. 『고백록』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기도했다. “주께서는 주님 자신을 위해 우리를 지으셨기에 주님 안에서 쉬기 전까지 우리 마음은 쉼을 얻지 못하나이다.” 엘렌 화잇은 “자신의 힘을 하나님께 죄다 내려놓으면 인생의 문제가 아주 간단해진다. 그렇게 하면 타고난 마음의 정욕과 벌이는 수천 가지 싸움이 싱겁게 끝나 버린다.”(청년, 30)라고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는 성경과 동떨어진 신비의 체험 같은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요 1:14)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요 5:39) 이 둘은 완벽하게 일치한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란 순전히 근거 없는 감정이 아니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말씀에 굳게 뿌리박고 있다. 매일 특별한 시간을 정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분의 놀라운 가르침을 배우면서, 변화시키는 성경의 경이로운 능력을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양희원/현아름 선교사 부부(대만 따리교회)
    패스파인더 사역을 통한 어린이와 3040세대의 선교와 양육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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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