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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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1월 11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감사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감사라는 아름다운 옷을 입으면 세상은 더 의미 있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감사는 평범한 날도 추수 감사절로 만들고 일상에 기쁨을 채워 넣으며 흔한 일도 축복으로 바꾼다.”고 윌리엄 아서 워드는 말했다. 밀려드는 경쟁, 요구 사항, 비판의 물결은 세상을 차갑게 만들었다. 그러나 감사와 고마움을 표현하면 세상이 따뜻해진다. 이것은 사람들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줄 수도 있는 말들이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모든 것에 고마움을 느낄 때 피어나는 꽃과 같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1월 11일은 세계 감사의 날이다. 미국을 비롯한 몇 나라에서 기념하는 추수 감사절과는 다른 날이다. 감사의 날은 기원이 불분명하다. 감사 카드 제조사에서 매출을 올리기 위해 만들어 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기원과 상관없이 감사라는 소중한 마음을 품고 표현하기 딱 좋은 날이다.
    감사에는 적어도 세 단계가 있다. 첫째는 겉으로 말만 하는 수사적 단계이다. 별 느낌 없이 그냥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경우다. 둘째는 진솔한 단계이다. 특정한 선물이나 행위에 감사를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가장 뜻깊은 것은 생활 습관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일상에서의 사소한 일에도 감사를 느낀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라고 말한다.
    고마운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날 때까지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오늘은 감사의 날이므로 나의 이 기도력을 읽어 주는 모든 독자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여러분도 자신의 삶을 바꾸어 준 이들, 어쩌면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을 이들에게 감사의 글을 보내기 바란다. 여러분을 사랑하며 보살피는 이들 역시 감사의 메시지에서 큰 힘을 얻을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언제나 감사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PCM(캠퍼스 선교사 운동)
    2023년 새롭게 파송되는 대학생 선교사 2명을 위해
    3 min
  • [1월 10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강 건너기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수 3:5)
    이탈리아 북쪽에 있는 루비콘강은 로마의 갈리아치살피나와 로마의 직할 통치를 받는 이탈리아를 나누는 경계였다. 로마의 어떤 장군도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에 갈 수 없었다. 그것은 사형죄에 해당했다. 그러나 기원전 49년 1월 10일,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의도적으로 루비콘강을 건너 내전을 일으켰다. 폼페이우스와 수많은 원로원 의원이 두려움에 로마를 떠났다. ‘루비콘강을 건넌다.’라는 표현은 여기서 유래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 사용하는 말이다.
    몇 백 년 앞서 이스라엘 백성도 요단강가에 도착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면 그 강을 건너야만 했다. 하지만 때마침 강이 범람하여 “온 둑이 넘치”던 시기였다(수 3:15, 한글킹). 다리나 배도 없었다. 그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가려면 하나님의 틀림없는 말씀을 믿는 길밖에 없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자신을 성결하게 하시오. 주님께서 내일 당신들 가운데서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수 3:5, 새번역). 하나님은 물길을 여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땅을 밟으며건넜다.
    요단강을 건너는 장면은 수많은 설교와 노래에 영감을 제공했다. 이 사건은 우리가 결코 풀 수 없는 문제도 하나님은 능히 해결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집중하고 우리 삶에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믿음이 있어야 그분께서 우리 삶에 효과적으로 활동하실 수 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네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요 11:40, 공동)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입성한 것과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시온산에 이르는 모습에서 유사점을 발견한 이도 있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 7:16~17). 우리 모두 그곳에 가야만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송을섭/이옥진 선교사 부부(일본)
    선교지에서 영적으로 지치지 않도록
    4 min
  • [1월 9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재림교회 학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복음과 교육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우리는 복음으로 다양한 사회 계층에 다가갈 수 있고 교육으로 새로운 세대를 육성할 수 있다. 세계 지도를 펼쳐 보라. 교육과 복음이 모두 전파된 지역에서 재림교회는 성공을 거두었다. 재림교인 자녀에게 가장 적합한 학교는 재림교회 학교이다. 만약 교인들이 교회 학교의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1894년 1월 9일 자 『애드벤트 리뷰 앤드 사바스 헤럴드』에서 엘렌 화잇은 이렇게 진술했다. “젊은이와 성인들이 교회 학교와 세상 학교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일반 학교의 그릇된 규율과 모본을 알면서도 교회 학교를 선호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자세히 따져 봐야 한다. 우리의 교육 기관이 세속화되고 있을 수도 있다. 한 걸음씩 세상을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희망의 끈이 그들을 붙들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 학교들을 바로잡고 깨우칠 것이며 세상과 구별된 자리에 그들을 다시 굳게 세울 것이다. 나는 지대한 관심으로 지켜보면서 우리 학교가 진리의 영과 순결한 신앙으로 가득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1년 뒤인 1895년 1월 9일 화잇은 다시 이런 글을 썼다. “모든 참된 교육의 목적이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타나 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 17:3)”(원고 40, 1895.). 영성을 핑계로 학업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학업을 핑계로 영적 헌신에 소홀해서도 안 된다. 이 둘은 상호 보완적이다. 우리 학교가 영적 정체성을 잃어 간다면 정체성 회복을 우선시하여 학교의 존재 목적을 성취해야 한다.
    교회와 가정이 합심하여 교회 학교의 영적, 지적 수준을 끌어올리고 자녀를 그곳에 보내어 학교를 도와야 한다. 교회의 미래 세대를 위해 비판을 줄이고 대신 봉사하라. 학생들은 이 땅에서의 삶과 영원한 삶을 위해 사려 깊게 준비되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오정훈/강유영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섬기고 있는 교회가 다시 한번 활력을 얻도록
    4 min
  • [1월 8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비성경적인 전통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마 15:6)
    수 세기에 걸쳐 비성경적인 전통이 진리처럼 떠받들어지며 교회의 비호를 받았다. 이러한 행위는 성경의 가르침을 뒤틀어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했고, 신앙과 맹신을 뒤섞어 놓았다. 천동설과 지동설로 논쟁을 벌이던 16~17세기 가톨릭교회의 모습을 보면 이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은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라고 믿었고 이것은 지배적인 의견이 되었다. 그러나 폴란드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이 태양계의 중심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1632년,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이탈리아의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는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라는 책에서 태양이 중심이라는 주장을 지지했다. 그러자 가톨릭교회는 과학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갈릴레오를 이단자로 몰아 처벌했다. 1633년 6월 22일, 70세의 천문학자 갈릴레오는 흰색 참회복을 입고 로마의 종교 재판에 참석했다. 그는 “거룩한 성경에 반하는 이설, 즉 태양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세상의 중심이며 지구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등의 주장을 펼쳤다.”는 혐의를 받았다. 갈릴레오의 책은 불태워졌고 1642년 1월 8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가택 연금을 당했다.
    성경이 천동설을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예를 들어 다윗이 시편 19편 4~6절에서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 솔로몬은 전도서 1장 5절에서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구절들이 과연 지구를 태양계의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이 진술들은 과학적인 표현이 아니라 시적인 표현에 가깝다. ‘해가 뜬다.’, ‘해가 진다.’라는 표현은 오늘날에도 흔히들 사용한다. 왜 성경에만 일상에서 쓰지도 않는 다른 표현들을 구태여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현대의 관념과 이론, 전통을 성경에 갖다 붙이면 안 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류재경/김미현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각 교회(총 4개)의 리더십을 위해
    4 min
  • [1월 7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니콜라 테슬라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눅 14:28~30)
    계획과 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창의력과 이상만 좇다가 좌절되는 프로젝트가 허다하다. ‘누울 자리를 봐 가며 다리를 뻗어라’는 속담이 있다. ‘뒹굴 자리 보고 씨름에 나간다’는 속담도 같은 의미로 쓰인다. 꿈과 야망을 접으라는 말이 아니라 이룰 수 없는 꿈에 빠져 살지 말고 분수에 맞게 살라는 뜻이다.
    니콜라 테슬라(1856~1943)는 타고난 발명가이자 엔지니어, 물리학자, 미래학자였다. 오늘날의 크로아티아에 해당하는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태어났고 1884년, 미국으로 이민해 토머스 에디슨과 함께 일했다. 은행과 금융계의 지원을 받은 테슬라는 곧 자신의 연구소와 회사를 차렸고 다양한 전자 장비를 개발했다. 뛰어난 두뇌로 그는 “발명하고 예측하고 수많은 기술을 개발해 냈다. 리모컨, 네온사인, 형광등, 무선 통신, 컴퓨터, 스마트폰, 레이저 빔, X레이, 로봇 공학과 더불어 그는 오늘날 전력 시스템의 토대인 교류 방식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
    1901년, 여러 투자자의 도움을 받아 테슬라는 전 세계에 전기를 공급할 발전소와 타워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수익성을 우려하던 금융계가 투자를 철회했다. 그리고 1917년 미국 정부마저 독일 스파이가 1차 세계 대전 중에 도청 장치로 사용할 우려가 있다며 끝내 타워를 철거해 버렸다. 이 위대한 발명가는 말년을 쓸쓸하고 가난하게 보냈다. 1943년 1월 7일, 테슬라는 뉴욕시의 평범한 호텔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상을 품고 위대한 꿈을 꾸는 것은 좋다. 실현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소박하더라도 예산의 한도 내에서 이룰 수 있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세담/박유진 선교사 부부(대만)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선교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4 min
  • [1월 6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고아의 눈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7)
    1951년 7월 23일 자 『라이프』지에 마이클 루지어는 ‘웃지 않는 소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한국 서울에서 북쪽으로 25km 떨어진 작은 집에 부모와 형과 함께 살았던 이강용이라는 소년의 눈물겨운 이야기다.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다섯 살 때 그의 마을은 파괴됐고 군인들이 생존자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왔다. 분대원들이 소리를 질러 가며 생존자를 찾았지만 아무 인기척도 없었다. 한 병사가 주변을 더 샅샅이 뒤졌고 발가벗은 채로 벽에 웅크려 말똥말똥하게 눈을 뜨고 있는 강용을 발견했다. 다른 쪽에는 짚으로 된 거적 위에 쓰러져 구더기와 파리로 덮여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강용의 어머니인 듯한 그 여인은 죽은 지 며칠이나 지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형과 아버지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기사에 따르면 “군인들을 따라가는 동안 강용은 계속해서 집이 있는 쪽으로 팔을 뻗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발작하듯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그가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고 미군들은 생각했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강용은 가는 내내 울며 눈물을 흘렸지만 끝내 소리는 내지 않았다.” 그를 본 군종 목사는 연대 지휘소로 돌아와 “아이의 몰골은 수많은 작은 뼈가 간신히 붙어 있는 상태”라고 묘사했다. 고아원에서도 강용은 사람들과 어울릴 정서적 기력이 없었다. “강용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없이 아이들을 피했고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거기 서서 그는 한 손으로 반대편 엄지손가락을 움켜쥔 채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시간이 흘러도 강용은 계속해서 자기를 형한테 데려다 달라고만 말했다.
    강용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수많은 전쟁고아 중 한 명이다. 곤경에 처한 아이들을 위한 프랑스 기구(SOS Enfants En Détresse)에서는 1월 6일을 전쟁고아의 날로 지정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야고보서 1장 27절에 따르면 하나님의 외로운 자녀를 돌보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신성한 의무이다. 죽어 가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이 우리 안에서 발견하도록 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전재송/장혜순 선교사 부부(필리핀 1000명선교사 훈련원)
    1000명선교사 지원자들의 증가를 위해
    4 min
  • [1월 5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재물이 아니라 지혜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너는 구하라 하시니 솔로몬이 하나님께 말하되…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대하 1:7~8, 10)
    과학에 전념하면서도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을까? 흑인 과학자 조지 워싱턴 카버(1864~1943)는 그렇게 했다. 가난하게 자란 카버는 식물학자, 발명가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하나님께 식물의 비밀을 알려 달라는 기도와 함께 카버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한번은 카버가 “창조주 하나님, 대체 우주를 창조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라고 기도드렸다. 하나님은 “너무 많은 것을 궁금해하는구나.”라고 답하셨다. 그러자 카버는 “그럼 땅콩은 왜 있나요?”라고 질문했고 하나님은 “그 정도는 알려 줄 수 있지.”라고 답하셨다.
    카버는 땅콩의 용도를 300가지 이상 발견했다. 음식은 물론 기름, 페인트, 잉크, 비누, 샴푸, 세면 크림, 플라스틱 등을 땅콩에서 얻어 냈고 고구마에서도 가루, 전분, 합성 고무 등을 추출했다. 카버는 식물학과 농업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였다. 마하트마 간디, 이오시프 스탈린을 비롯하여 수많은 이가 그에게 조언을 구했다. 토머스 에디슨과 헨리 포드도 그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카버는 ‘하나님의 공작실’로 부르던 자신의 연구실에 남아 제자들을 돕고 싶어 했다.
    그는 특허로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었지만 가난한 이들도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특허를 내지 않았다. 이타적인 봉사 정신의 모본인 카버는 1943년 1월 5일에 세상을 떠났다. 터스키기 대학 캠퍼스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부와 명성에 연연하지 않고 세상을 돕는 일을 행복과 명예로 여긴 사람”이라고 적혀 있다.
    우리 삶의 동기는 무엇인가? 하나님께 “지혜와 지식”(대하 1:7~10)을 구했던 솔로몬은 “명예는 많은 재산보다 소중하고 존경받는 것은 금은보다 낫다”(잠언 22:1, 공동)고 말했다. 선한 사마리아인(눅 10:25~37)과 도르가(행 9:36~39), 조지 워싱턴 카버의 사례를 단순히 감탄할 만한 과거의 기억으로만 간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본받아 우리도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극복하고 인류를 위해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배진성/정해옥 선교사 부부(인도 1000명선교사 훈련원)
    새롭게 개원한 영어학원의 선교 중심적 운영을 위해
    4 min
  • [1월 4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과학과 종교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욥 26:7)
    제대로 배운 사람이 하나님을 믿기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현대 과학자가 많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기초를 놓은 과학자 중에 창조론을 믿는 이가 수두룩하다.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은 아이작 뉴턴 경이다. 1643년 1월 4일, 영국 링컨셔의 울즈소프 매너에서 태어난 뉴턴은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로 여겨진다. 물리학, 천문학, 자연 과학 등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분야가 없다. 만유인력의 법칙, 운동의 3법칙, 빛의 굴절 연구 등이 뉴턴의 업적이다.
    1676년에 뉴턴은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는 까닭은 거인의 어깨 위에 앉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중에는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몰라도 나는 진리의 망망대해를 앞에 두고 바닷가에서 매끈한 조약돌과 예쁜 조개껍질을 찾는 어린아이처럼 느껴진다.”라는 말을 남겼다.
    우주의 기원과 복잡한 원리의 최종적인 해답을 과학에서 얻을 수 있다고 믿는 현대 과학자와 달리 뉴턴은 “수많은 규칙적인 운동이 단순히 몇 가지 기계적인 원인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또 “중력은 행성을 움직이게 할 수 있어도 하나님의 능력 없이는 태양 주위를 도는 것과 같은 공전 운동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렇기에 나는 이 우주의 틀을 마련한 지적인 존재자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이성과 과학의 한계를 잘 알았던 뉴턴은 언제나 하나님을 창조주이자 “우주의 통치자”로 드높였다. 그는 과학보다 종교적인 글을 더 많이 남겼다. 그가 죽은 뒤인 1733년, 런던에서는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 예언에 관한 고찰』이라는 그의 유작이 출간되었다.
    뉴턴은 “신앙에 대한 반대는 무신론이라고 말하는 우상 숭배”라고 했다. 한마디로 진정한 의미의 무신론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경배의 대상이 바뀔 뿐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섬기거나 누가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다른 신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황자연/Danny Hong 선교사 부부(케냐)
    켄두 병원이 선교센터로 거듭도록
    4 min
  • [1월 3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가을 낙엽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숲은 방법과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가령 위도를 기준으로 열대림, 온대림, 한대림으로 분류한다. 계절 변화에 따른 잎사귀의 반응을 기준으로는 상록수림과 낙엽수림으로 나눈다. 상록수림은 1년 내내 푸른색을 띠지만 낙엽수림은 매년 잎사귀를 떨구는 활엽수가 대부분이다.
    엘렌 화잇은 나무에서 유용한 영적 교훈을 이끌어 낸다. 상록수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나타낸다. “여름에는 상록수와 다른 나무 사이에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겨울바람이 불어닥치면 상록수만 남고 다른 나무는 모두 잎을 떨어뜨린다. 그와 같이 지금은 진짜 그리스도인과 말만 앞세우는 사람을 구분할 수 없지만 신앙의 겨울철이 곧 닥칠 것이며 그때는 차이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쟁투, 602).
    한편 낙엽은 재림 기별이 담긴 책자가 온 세상에 널리 퍼지는 것을 예증하기도 한다. 재림교회에서 미시간주 배틀크리크에 인쇄소를 딱 하나 소유하고 있던 1875년 1월 3일에 엘렌 화잇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여러 언어로 재림 기별을 발행하는 계시를 보았다. 몇 년 뒤 화잇은 스위스 바젤과 노르웨이 오슬로에 방문해 계시에서 보았던 출판사를 발견했다. 1890년대에 호주의 에코 출판사를 방문했을 때도 화잇은 비슷한 경험을 했다. 1878년 엘렌 화잇은 “재림교회 출판물이 늘어나 가을 낙엽처럼 뿌려져야 한다. 이 소리 없는 기별꾼들이 각 나라와 지역에서 수천 명의 마음을 일깨우며 변화시키고 있다.”(문전, 5)라고 진술했다. 가을과 겨울이면 낙엽이 온 땅을 뒤덮듯 우리도 재림교회 출판물로 온 세상을 뒤덮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이면주/김영문 선교사 부부(파키스탄)
    파키스탄연합회 내 지역 교회들의 성장과 부흥을 위해
    3 min
  • [1월 2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어렴풋한 모습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사진은 소중한 추억을 영구히 보존해 준다. 사진은 과거를 현실로 불러오고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 줌과 동시에 우리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린다.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말했다고 알려져 있듯 “인물 사진은 카메라가 아닌 그 맞은편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진정한 사진은 설명이 필요 없고 말로 담아낼 수도 없다.” 이 시대는 거의 모든 사람이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되어 소셜 미디어로 사진을 공유한다. 그러나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1826~27년에 프랑스 발명가 니세포르 니에프스는 최초의 사진을 촬영했다. 1839년 1월 2일, 또 다른 프랑스인 루이 다게르는 처음으로 달 사진을 찍었다. 안타깝게도 두 달 뒤 발생한 화재로 다게르의 연구실과 사진은 모두 불타 버렸다. 초기에는 흐릿한 흑백 사진이 전부였고 인물, 풍경 같은 피사체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그대로 담기 어려웠다. 그러나 꾸준히 기술이 발전했고 금속 플레이트, 유리 플레이트, 플라스틱 필름, 폴라로이드 종이, 다양한 감광 물질이 등장했다.
    그럼에도 우리를 매료시키는 풍경의 웅장한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담기란 여전히 불가능하다. 사진 자체는 감정이 없으며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에 불과하다. 석양을 찍은 사진은 석양의 이미지일 뿐이지 실제 석양이 아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은 하늘 왕국의 희미하고 흐릿한 모습만 겨우 보여 준다. 눈부시고 장엄한 그 광경을 요한계시록의 기록만으로는 절대로 충분히 묘사할 수 없다(고전 13:12).
    이 땅에 살고 있는 한 우리는 지아드 압들누어가 남긴 영감적인 말을 되새겨야 한다. “인생은 카메라와 같다.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라. 적절한 타이밍을 포착하라. 그리고 결과가 맘에 들지 않으면 그냥 다시 찍으라.” 하지만 언젠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서 하늘로, 유한에서 영원으로 이끄실 때가 이르면 이 땅에서 우리가 찍은 최고의 장면도 보잘것없게 느껴질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그분의 얼굴을 볼 것”(계 22:4~5, 킹흠정)이며 그분이 우리의 빛이 되실 것이다. 하나님의 앞에 거할 때 비로소 우리의 존재는 온전하게 표현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하지홍/황고은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선교지의 사회·경제적 안정을 위해
    4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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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