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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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8월 5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받아들이는 의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슥 3:5)
     
    스가랴의 이 성경 구절은 구원의 계획과 관련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사탄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오른편에 서서 여호수아의 죄를 고발할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고 명하신다. 그런 다음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고 여호수아에게 직접 말씀하신다(슥 3:3~4). 이 구절이 상징하는 바는 명확하다.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은 그 자신의 죄와 그 자신의 의를 나타낸다.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했듯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사 64:6)과 같다
    의롭지 못한 자가 하나님 앞에 섰다. 하나님께서는 더러운 옷으로 묘사되어 있는 그의 죄를 제거하신다. 이어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라는 요청이 주어지고 그대로 시행된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슥 3:5).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은 죄인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었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난 뒤에는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하는 깨끗한 옷을 입고 그분 앞에 서게 된다. 또 머리에는 변화된 마음을 상징하는 깨끗한 관을 쓴다. 여기서 궁금한 점은 ‘여호수아가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이다. 정답은 ‘아무것도 안 했다.’이다. 여호수아가 무엇을 안 했는지가 중요하다. 여호수아는 저항하지 않았다. 맞버티지 않았다. “저는 이런 엄청난 복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아주 심각한 죄인입니다.”라고 손사래를 치지도 않았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자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제거하시고 자신의 의로 옷 입혀 주셨다.
    하나님은 죄인 모두가 여호수아처럼 하기를 바라신다. 구원이란 자신을 하나님께 내맡길 때 얻는 것이다. 우리가 멸망하지 않고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원하는 자 누구에게든지 의의 옷을 입혀 주려고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는 그 선물을 받을 자격도 능력도 없지만 받을 수 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 값진 선물을 베푸셨기 때문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교린, 이미화 선교사 부부(아랍 에미리트)
    아랍 에미리트에 아랍어 교회가 2022년 말까지 세워지도록
    4 min
  • [8월 4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성장통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막 4:28)
     
    “목사님.” 한 젊은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저는 천국에 가지 못할 것 같아요. 구원받지 못할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지역 교회에서 봉사도 열심히 하고 성경을 읽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너무 많은 죄를 짓는 것 같아요. 죄를 전부 씻어 내지 못하면 구원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거라고 들었거든요.”
    “여전히 죄를 짓는다고요?” 내가 물었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세상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내가 부드럽게 말했다.
    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우리를 “실족하지 않게”(유 1:24, 한글킹) 하는 능력이 있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엘렌 화잇은 『시대의 소망』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구속의 계획이란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회복시키는 것이다. 언제나 그리스도께서는 회개하는 영혼을 죄에서 분리시키신다. 그분은 마귀의 역사를 멸하러 오셨고, 누구든지 회개하는 영혼에게는 성령을 주셔서 죄를 범하지 않도록 보전할 만반의 대비책을 세우셨다”(311쪽).
    그러나 내가 그 젊은이에게 말했듯 예수를 믿는다고 완전무결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걷거나 신발 끈을 매거나 자전거를 탈 수 없는 이치와도 같다. 그런 것은 ‘자라나면’ 할 수 있다.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인 사람은 예수님의 온전한 의를 옷 입은 것이라고 나는 그에게 설명했다. 그러나 아이가 주황색을 노란색으로, 배를 사과로 착각한다고 해서 부모가 그 아이를 내치지 않는 듯이, 인간이 연약함 가운데 자라난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성장의 필요성을 이해했다고 해서 죄의 파괴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성장의 원리를 깨닫지 못하면 자신의 약점과 싸우다가 무너져 버릴 수 있다.
    식물이 씨앗에서 시작해 싹이 트고 자라나고 성숙하듯 그리스도인의 성장은 진행하는 과정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성장통을 겪으면서도 시선을 예수께 고정하는 사람은 자라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에스라 선교사(기타 지역)
    지하 교회 성도들의 안정을 위해
    4 min
  • [8월 3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새롭게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 5:17, 한글킹)
     
    전도회를 시작한 지 나흘밖에 되지 않았지만 제이슨의 뜻은 확고했다. “지금 당장 침례를 받아야겠어요.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고 기다릴 수도 없어요. 제게 침례를 주시겠어요?” 제이슨은 이미 성경 공부를 하고 있었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였다. 그의 아내가 곁에서 성경 공부를 도와주었고 제이슨은 결단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침례탕에 물을 채웠다. 제이슨은 이틀 뒤면 수감될 몸이었다.
    제이슨은 자신이 과거에 현명하지 못한 일을 저질러 징역 4개월을 선고받았다고 말했다. “사회적인 대가를 치러야 해요. 하지만 그러기 전에 그리스도인이 되어 저의 삶을 예수님께 드리고 싶어요.” 다음 날 저녁 제이슨은 침례를 받았다. 침례식에서 그는 어린 나이에 형을 잃고 나서 자신의 삶이 소용돌이에 휘말렸다고 말해 주었다. 사람들에게 그는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데 조금도 망설이지 말고 결단하라고 호소했다. 12시간 뒤 그는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나는 낯선 젊은이의 사진 한 장을 받았다. 깔끔한 헤어스타일에 안경을 쓰고 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맨 그 모습이 마치 부동산 중개인이나 보험 회사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처럼 보였다. 분명 아는 사람일 거라고 짐작하며 나는 사진을 거듭거듭 들여다보았다. “말도 안 돼! 정말? 진짜라고?” 사진의 주인공은 제이슨이었다. 출소하고 8개월이 지난 그는 지역 교회에서 목회자를 도와 열심히 봉사하고 있었다. 제이슨은 활동적이고 적극적이었으며 교회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최선을 다했다.
    오늘의 성경절은 제이슨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 5:17, 한글킹). 제이슨과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내는 수많은 증인이 있다. 잘못된 선택을 했던 이들에 대해서도 포기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으시다. 마치 제이슨에게 하셨 듯이 말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갑숙 선교사(말라위)
    10/40 선교 프로젝트-말라위 난고고다 교회 건축을 위해
    4 min
  • [8월 2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사랑할 때 생기는 변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여인의 얼굴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치며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나는 결코 잊지 못한다.
    그의 이름은 에블린이었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한번은 아버지가 너무 세게 걷어차는 바람에 평생 회복할 수 없는 부상을 당했다. 아버지가 죽은 뒤에도 에블린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머니도 그를 학대했다. 에블린은 비극적인 사고로 남편을 잃었고 가족에게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계속 살아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그는 삶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고 차근차근 마지막 날을 준비했다.
    바로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젊은 여성 두 명이 지역 사회 설문을 나왔다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에블린은 반갑게 그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예, 저는 하나님을 믿어요.”, “예, 어릴 때 교회에 다녔어요.” 마지막 질문에 에블린은 이렇게 말했다. “예, 성경 공부를 하고 싶어요.” 두 여인은 에블린을 다시 찾아왔고 자신들이 만난 구주를 소개해 주었다. 에블린은 예수님을 믿으면 자기 인생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곧 개최될 전도회에도 참석하기로 했다.
    전도회가 마칠 무렵에 나는 에블린을 만났다. 그는 “침례를 받고 하나님의 남은 교회의 일원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제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아무도 없었고 더 이상 살 의미를 느끼지 못했지요. 그런데 여러분은 저를 사랑해 주셨어요.” 아마도 교인들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 바로 “여러분은 저를 사랑해 주었어요.”라는 말 아닐까? 사랑으로 에블린의 인생이 달라졌다. 만약 교회가 예수님의 사랑을 드러낼 기회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세상에는 얼마나 놀라운 일이 벌어질까?
    마지막으로 만난 에블린은 침례를 받고 물에서 나오며 의기양양하게 두 팔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에블린은 인생을 포기하려 했지만 예수님은 그의 인생을 취하여 자기 것으로 삼아 주셨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동혁, 김아림 선교사 부부(캄보디아)
    고아들을 위한 제2의 사랑의 집 건립을 위해
    4 min
  • [8월 1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휴가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시 145:2)
     
    매년 이맘때가 되면 수많은 사람이 휴가를 떠난다. 가족과 친구를 만나고 자연을 즐기며 학교로 돌아가기 전에 재충전의 시간도 얻는다. 어느 교회는 휴가철에 이런 표지판을 걸어 놓았다. “휴가 때 성경을 챙겨 가시나요? 아니면 성경으로부터 휴가를 떠나시나요?”
    우리는 바쁜 일상에 치여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칠 때가 많다. 다윗은 하루도 기도를 빼먹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삶 자체였기에 그는 영적인 생활에 휴가를 낸 적이 없다.
    6천 년 동안 사탄이 성공적으로 수행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연구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정신을 흩어 놓은 것이다. 사람들은 50년 전에 비해 적게 일하고 더 많은 잠을 자지만 휴대폰, 초고속 인터넷, 영화 스트리밍, 게임 등이 넘쳐 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정신이 산만해졌다. 쉬는 시간도 진짜 쉬는 시간이 아니다.
    삶은 고단하다. 그러나 무언가를 삼가야 할 때도 헌신적인 삶만큼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 매일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무언가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포도나무에 연결된 가지나 줄기는 건강하게 뻗어 난다. 그러나 나무에서 분리되면 곧 시들고 메마를 것이다. 우리 역시 예수님에게서 멀어지면 그렇게 될 것이다.
    몸과 마음의 휴가는 유익하지만 예수님으로부터 휴가를 떠나서는 안 된다. 다윗처럼 마음을 기울여 “날마다” 하나님을 송축하는 사람은 “영원히” 그분의 이름을 송축하게 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위험 지역에서 사역하는 한국 선교사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3 min
  • [7월 31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교만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교만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데다가 확인된 순간은 이미 그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경우가 많다. 잠언 16장 5절에서는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라고 강하게 말한다. 자기중심적인 교만은 자신의 자녀가 무언가를 해냈을 때 얻는 뿌듯함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이런 문제를 설교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으며 관련된 책이나 논문도 별로 없다. 그런데 다름 아닌 이 교만 때문에 세상에 죄가 들어왔다. 오만한 천사가 다음과 같은 마음을 품으면서부터다.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사 14:13~14)
    루시퍼는 교만한 마음을 품었기에 반역을 일으켰고, 그 반역은 궁극적으로 예수의 죽음과 세상의 파멸을 초래했다.
    교만이란 자기의 성취에 흡족해하며 자신의 중요성을 부풀리려는 마음이다. 교만은 자기 본위, 자아, 독단, 자부심과 연결되어 있으며 파괴적이다. 한마디로 교만은 예수님의 복음과 정반대이다. 예수님은 섬김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려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마 20:28). 교만은 이기적이다.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의식하고, 자기를 찬양하는 욕망에 이끌리면 불행한 일을 겪을 수 있다. 교만은 ‘내가 우선이야.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내 생각이 가장 좋아. 내가 옳아. 나는 물러서지 않을 거야.’라는 태도이다.
    엘렌 G. 화잇은 『초기문집』에서 “교만과 이기심을 버리면 문제의 대부분이 5분 안에 해결된다.”고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이 진술에서는 교만과 이기심이 제거될 수 있다는 희망도 엿볼 수 있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 죽음에 관심을 모으면 교만이 치유될 수 있다. 섬김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러 오신 분의 생애를 연구하면 마음이 변화된다. 우리는 바라볼 때 변화한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고 했던 침례 요한의 외침이 메아리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지성배, 김영란 선교사 부부(파키스탄 삼육대학)
    선교사들의 사역과 신변의 안전을 위해
    4 min
  • [7월 30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낚시성 기사?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
    우리가 살아가는 이 매혹적인 시대에는 한 세대 전에 못 보던 문제들이 등장했다. 인터넷 뉴스에서는 조회 수가 중요하므로 과거에 볼 수 없던 기사 제목이 헤드라인을 장식할 때가 많다. 조회 수가 수입과 직결되는 바람에 뉴스 업체마다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한 충격적이고,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을 앞다투어 내걸고 있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탓에 낚시성 제목은 일상이 되었다.
    내용물보다 제목을 중시하는 이런 현상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진리, 절반의 진리, 거짓이 뒤섞인 혼란하고 부정확한 미로를 헤치고 다녀야만 한다. 뉴스의 정보와 엔터테인먼트가 통합된 인포테인먼트는 인간의 머릿속을 지적인 불량 식품으로 가득 채운다.
    냉소주의자들은 뉴스 업체들이 이런 장난질을 교회에서 배웠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수년 동안 교회는 빵보다 사탕에 치중했다. 교인들은 ‘기적적인 일’에 관심을 모았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장식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했다. ‘하나님은 복을 소낙비처럼 부어 주시고 재물도 넘치게 하신다’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사실 예수님은 누구나 부자가 될 거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성경에서는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데도 유명한 부흥 강사들은 전용 제트기를 타고 다니면서 기부를 호소한다. 교회마다 멋진 음악을 선사하기 위해 애쓰지만 안타깝게도 영감적인 성경 공부는 경험하기 어렵다. 굳이 성경적이지 않더라도 귀를 즐겁게 하는 해석이면 높은 인기를 얻는다. 유명한 교회에 가 보면 자리가 꽉 차 있지만 불신자들이 섞여 있어도 누가 그리스도인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 안에 거해야 진리와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하셨다(요 8:31~32). 기독교에서 중요한 것은 낚시성 제목이 아니라 내용이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의 눈길만 끌려고 하지 않으신다. 제자도란 그리스도께 자신을 굴복시키는 것이지 도덕으로 치장한 이기심이 아니다. 겉에 발린 크림을 케이크의 전부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진짜 신앙은 결코 피상적이지 않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진수, 이주연 선교사 부부(대만)
    싸루 국제교회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4 min
  • [7월 29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경고 표지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 24:33)
    남반구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가족들과 함께 해변을 거닐며 휴가를 보낼 때였다. 맑고 따뜻한 날씨였고 푸른 바다가 우리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이 쓰인 커다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 해파리는 위험합니다. 10월에서 4월까지는 수영하지 마십시오.” 따뜻한 호주 해변에서는 박스 해파리를 매우 조심해야 한다. 50만 개나 되는 작은 세포로 덮인 해파리의 수많은 촉수에서는 독이 분출된다. 우리는 경고 표지를 주의 깊게 읽었다. 12월 25일은 분명 10월과 4월 사이에 해당하는 날이었다.
    그때 내 동생의 장인이 제안했다. “오늘 아침 라디오를 들었는데 이 지역에는 아직 박스 해파리가 도착하지 않았다고 하네. 그러니 괜찮을 거야.” 우리는 물을 쳐다봤다. 날씨는 점점 더워졌고 물 위에는 윈드서퍼들과 보트가 돌아다녔다. 우리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우리는 경고를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서핑을 했고 동생과 조카들은 수영을 했다. 갑자기 5살짜리 조카가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질렀다. 얕은 물가에서 첨벙거리며 놀다가 손등에 박스 해파리가 붙은 것이다. 동생은 아이를 데리고 응급 치료소로 달려갔다. 조카가 절박하게 말했다. “아빠, 살려 줘!”
    다행히 심각한 문제를 겪지는 않았지만 조카아이의 손등에는 수년 동안 흉터가 남아 있었고 우리는 절대로 경고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은 재림의 징조를 알려 주시면서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33절)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알려 주신 징조를 무시하면 안 된다. 그 경고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사람들에게도 전하라는 초청이다. 그 징조들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한다. 예수님은 곧 오신다. 지금은 우리 마음을 그분께 내맡기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을 위해 준비해야 할 때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오정훈, 강유영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졸업 후 의료 사역이 잘 진행되도록
    4 min
  • [7월 28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하나님은 듣고 계신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시 18:6)
    다윗은 살면서 여러 번 곤경을 겪었다. 사울왕에게 쫓겨 다녔고, 반역과 반란을 겪었고, 대적과 싸우러 전쟁터에 나가야 했다. 그의 기도를 살펴보라.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내 소리를 들으심이여”(시 18:6). 그는 무엇을 말했고 무엇을 말하지 않았는가? 그는 환난을 당했고, 하나님께 아뢰었고, 하나님은 그의 소리를 들으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셨는지에 대해서 그는 아무 말이 없다. “다윗아, 내가 너의 뒤에 있다.”라는 음성을 그는 듣지 못했다. 그래도 다윗은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들으셨다고 그는 말한다. 다윗에게 필요한 보증은 그게 다였다. 하나님은 그의 소리를 들으셨다.
    우리는 할머니의 건강을 위해서, 자신의 직업을 위해서, 아이들이 집에 무사히 도착하도록 기도한다. 기도한 대로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이 이것은 허락하시고 저것은 허락하시지 않는 이유를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분이 듣고 계신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 우리가 친구와 자녀의 믿음을 위해 기도드릴 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듣고 계셨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심각한 질병에 걸린 누군가를 위해 기도했을 때도 그 기도를 들으셨다고 우리는 확신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탄원과 염려를 그분께 맡기면 된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듣고 계신다.
    다윗이 드린 기도 중에 자신이 바라는 방식대로 응답받지 못한 기도도 있을까? 당연히 있다. 다윗은 분명 압살롬을 위해 기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압살롬은 전쟁터에서 반역자로 죽었다. 병든 아기를 위해 다윗은 일주일 동안 기도했지만 아기는 회복되지 못하고 죽었다. 우리가 할 일은 기도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하실 일은 기도를 듣고 자신의 완벽한 뜻에 맞추어 응답하시는 것이다. 그분은 늘 듣고 계신다.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그분의 생각을 신뢰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든 가장 좋은 길로 이끄실 것임을 알고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남동현 선교사(대만)
    베이툰 교회가 준비하고 있는 대만 대학생 선교센터 건축을 위해
    4 min
  • [7월 27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거듭나셨습니까?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내가 설교단에서 “여러분은 거듭나셨습니까?”라고 물을 때마다 청중의 반응은 썰렁했다. 한 사람이 “아멘!”이라고 답하면 다른 한 사람이 헛기침을 하거나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아멘!”이라고 웅얼거렸고 나머지는 눈부신 헤드라이트에 당황한 고라니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렇게 반응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멘, 저는 거듭났고말고요.”라고 답했다가는 집에 가는 길에 아내나 남편에게 “회심한 사람이 왜 그렇게 무뚝뚝하냐?”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겸손한 표현을 사용해 “글쎄요, 거듭났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리기도 한다. 교인들에게 “구원받으셨나요?”, “영생을 얻으셨나요?”라고 물을 때도 반응은 비슷하다.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교인인데도 ‘구원받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럼요. 저는 영생을 선물받았습니다.”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영생을 받았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자세다. 에베소서 2장 8절에서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라고 더할 나위 없이 분명히 말한다. 구원을 받고 있는 중이 아니라 받은 상태라는 것이다.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 바울은 구원 문제에 대해 얼버무리지 않았다. 예수를 받아들인 사람은 구원이라는 선물로 지니고 있으며 ‘구원받은 것’이라고 똑 부러지게 밝혔다.
    구원의 선물을 얻었다고 믿는 사람은 영적인 문제에 대해 애매모호하지 않다. 오히려 감사와 확신이 넘쳐 난다. 구원에 대해 우물거릴 이유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늘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 여러분이 예수를 받아들였다면 이미 영생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북한 선교
    탈북인 의명선교회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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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