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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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6월 6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그분에게 한 일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6)
    뉴욕시의 경찰관 래리 드프리모는 어느 노숙자의 발바닥에 큰 물집이 생긴 것을 보았다. 추운 밤 타임스퀘어 한복판에서 신발 하나 없는 그의 모습이 드프리모는 마음에 걸렸다. 구경꾼들은 노숙자를 보고 비웃었지만 드프리모는 가까운 신발 가게에서 따뜻한 양말과 방한 부츠 한 켤레를 구입해 그에게 주었다. 노숙자는 놀라워하며 감사히 선물을 받았다. 래리 드프리모는 TV 프로그램에 초대받았고 방송에서 그의 선행이 소개되었다. 드프리모는 동정심이 일었기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생면부지의 사람이 겪는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미심장하고 실제적인 방식으로 누군가를 도울 기회를 주신다. 동료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은 그들 속에 계시는 예수님께 친절을 베푸는 일이다. 또 그것은 하나님을 믿으면 사람의 근본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 준다.
    예수님의 비유 속에서 임금에게 질문했던 이들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를 영접하고 드프리모처럼 입을 것을 주고 병자와 죄수를 찾아간 것이 바로 주님에게 친절을 베푼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다(마 25:40). 예수님은 이 땅에서 넘치는 동정심으로 일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동정심이 샘솟는 사람은 예수님의 일이 실현되게 한다. 모든 사람이 설교를 경청하거나 성경 공부에 감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심 없이 베푼 친절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고마워한다.
    노숙자에게 따뜻한 부츠를 제공하는 일이든 이웃에게 빵 한 덩이를 나눠 주는 일이든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고자 하신다. 사랑의 마음에서 우러난 선행은 예수님 사랑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강력하게 증언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1000명선교사 운동
    ‘가는 선교사’와 ‘보내는 선교사’가 많이 생기도록
    3 min
  • [6월 5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후회하지 않게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계 3:10)
    자신의 이마에 ‘스킨헤드’라고 문신을 새기는 사람은 언젠가 후회하게 될 것이다. 어느 남자가 불량한 무리와 어울려 다니며 그와 비슷한 문신을 새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문신을 새기는 것은 별로 아프지도 않고 가격도 저렴했지만 문신을 제거하는 것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문신을 새기기 전에 ‘너 아마 후회할 걸?’ 하는 조언을 듣는다. 그리고 정말로 후회하는 사람이 많다. 자신의 가슴팍에 여자 친구의 이름을 대문자로 새겨 놓은 한 젊은 남자처럼 말이다. 그 남자는 처음의 여자 친구와 헤어졌고 이름이 다른 여자 친구를 새로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수많은 사람처럼 문신 새긴 것을 후회했다.
    모두가 똑같이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죄는 항상 사람을 후회하게 만든다. 곧바로든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든 죄는 영향을 미친다. 한순간 좋아 보였던 것도 시간이 흐르면 본색을 드러낸다. 죄는 결코 무해하지 않다. 그리고 당시에는 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언젠가는 반드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죄에 맞서는 일은 의지력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의지에 관한 문제다. 죄에 엮이지 않겠다는 선택인 것이다.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겠다는 선택은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내맡기겠다는 것이며, 예수님이 죽기 전날 밤에 기도하셨듯이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겠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3장 10절에서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모든 이에게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유다서 1장 24절에서 “능히 너희를 지켜 넘어지지 않게”(바른)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누구든지 회개하는 죄인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더하신다는 말씀은 분명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대로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능력 안에 거한다면 애당초 후회할 일은 훨씬 적어질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병섭, 이세주 선교사 부부(대만)
    타이동 교회가 예배소에서 교회로 승격하도록
    4 min
  • [6월 4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다시 새롭게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계 21:5)
    수십 년 전 모잠비크의 해변 도시 베이라에 화려한 호텔이 세워졌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재정 문제로 문을 닫았다. 모잠비크 내전이 일자 호텔은 군사 기지와 정치범 수용소로 쓰였다. 오늘날 그 호텔은 부랑자 3,500명이 머무는 볼품없는 구조물이 되었다. 앞으로 다시는 예전의 영광을 되찾지 못할 그 호텔은 찬란했던 지난날의 조용한 증거물로 남아 있다.
    문 닫은 호텔과 이 세상에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 창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은 깊은 문제에 빠져들었고 지금은 껍데기만 남았다. 여전히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대함, 창조의 능력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많지만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지난날의 그림자들일 뿐이다. 죄는 완벽했던 지구에 큰 혼란을 가져왔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21장 5절에 반가운 소식이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것을 새롭게 창조하실 것이다. 이 낡은 세상이 다시 한번 완벽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빛날 것이다. 인류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세상을 더럽히고 말았다. 바다와 강이 끔찍하게 오염되었고 발전소는 공기 중에 치명적인 가스를 내뿜는다. 광물을 얻고자 땅에 큰 구덩이를 파는 것도 대부분 환경 문제를 야기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다시 오시면 온실가스도, 일산화 탄소 중독도, 쓰레기 매립지도, 건조한 사막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찌는 듯한 더위도 없을 것이다. 죄는 세상에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자기 자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언젠가 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실 것이다. 그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우리는 다만 짐작해 볼 따름이다. “그 거주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며(사 33:24) “다시는 사망이” 없을 것이다(계 21:4).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은 완벽한 세상이 될 것이다. 그분은 그 세상에 우리와 함께하기를 바라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해성, 백관희 선교사 부부(네팔)
    네팔 재림교회의 영적 부흥을 위하여
    4 min
  • [6월 3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음악의 힘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고 그의 모든 기사를 전할지어다”(대상 16:9)
    여러분의 머릿속에서 어떤 음악이 계속 떠오른 적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귓가에 맴도는 곡조나 원치 않게 떠오르는 가락은 아무리 애써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수십 년간 듣지 않던 노래의 가사와 음정과 화음에 대한 기억이 홍수처럼 몰려올 때도 있다.
    하나님은 음악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 반복해서 찬양하라고 말한다. 시편에는 이런 구절들이 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내가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시 95:1; 96:1; 101:1; 104:33).
    음악은 강력하다. 음악은 강렬한 정서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때로는 긍정적인 반응을 유도하지만 부정적인 반응을 유도하기도 한다. 브람스의 협주곡이나 모차르트의 교향곡은 장송곡, 파워 발라드, 록 음악, 컨트리 음악처럼 강렬한 감정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음악이 하나님 보시기에 유익한 감정을 이끌어 내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이야기하고 헌신을 장려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는 음악을 즐겨야 한다. 찬미를 부르거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성경 구절로 노래를 부르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깊숙이 뿌리내릴 것이다. 신성한 노래는 한번 배우면 잊어버리지 않는다. 세속적인 음악이 머릿속에 가득하다면 하나님의 노래로 마음을 다시 재편성하여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음악이 여러분에게 유익한 힘이 되게 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권순범, 강지희 선교사 부부(대만)
    베이툰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도록
    3 min
  • [6월 2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성실한 재무 관리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눅 16:9)
    어느 부자가 불성실한 재무 담당자에게 재정 보고를 요청했고 그 재무는 그동안의 부정으로 자신이 곧 일자리를 잃게 될 거라고 직감했다.
    그래서 주인과 거래했던 고객들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한테 기름 100말을 빚지셨다고요? 절반만 내세요. 밀을 꾸어갔다고요? 80%만 지불하세요.” 성경에 따르면 “주인은 그 정직하지 못한 경리의 약삭빠른 짓을 보고 감탄하였다”(눅 16:8, 현대어).
    경영주가 재무의 부정직함을 두둔하거나 비윤리적인 수완을 좋게 본 것은 아니다. 곧 해고될 그 직원이 현재의 지위를 이용해 미래를 대비할 만큼 지혜로웠다는 점을 인정했을 뿐이다. 그 직원은 정직하지는 않았지만 영리했다. 그 부정한 청지기는 자신의 대사기극에 남들을 끌어들였다. 그에게 도움을 받은 이들은 부정직한 일에 한데 엮여 나중에 그를 도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결코 횡령과 사기를 용납하지 않으셨다. 이 이야기에서 청지기의 이중성을 호의적으로 평한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고용주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부정직한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과 지위를 이용해 한발 앞서듯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의 재산과 지위를 활용해 하늘에 보화를 쌓아야 한다는 점을 짚어 주신 것이다.
    부정한 청지기와 반대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데 재물을 사용해야 한다. 이기심을 좇는 사람은 창고를 더 크게 지어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데 몰두한다. 하나님께 굴복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남의 돈을 이용해 부정 축재한 청지기와 달리 그리스도의 제자는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성실히 바쳐야 한다. 하나님을 첫째로 삼는다면 그분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분의 나라가 곧 임할 것이다. 그리고 정직한 청지기는 이 세상과 다음 세상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동혁, 김아림 선교사 부부(캄보디아)
    학부모 선교를 위하여
    4 min
  • [6월 1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1)
    재산이 많으면 어려운 질문들이 떠오른다. 이 재산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내가 죽고 나면 이 재산은 어떻게 될까? 어떤 이들은 교육 기관에 거금을 기증한다. 거물 사업가 T. 분 피컨스는 자신의 모교인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에 6억 5,0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고 그중 3분의 2는 학교의 스포츠 프로그램에 후원했다. 이탈리아의 어느 여성은 자신이 구한 길고양이에게 1,300만 달러를 남겼고, 독일의 어느 남성은 자신의 개에게 3억 7,200만 달러를 남겼다고 한다.
    예수님은 어느 부자에 관해 이야기하신 적이 있다. 그의 농작물은 너무나 잘 자라 수확물을 전부 보관하려면 기존의 헛간을 허물고 새 헛간을 지어야 할 정도였다. 그는 이제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기로 했다. 문제는 만약 그가 갑자기 죽어 버린다면 “쌓아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는 것이다(20절, 공동번역). 예수께서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말씀하셨다(21절). 우리의 소유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단순히 더 많이 쌓기 위해 버는 게 아니라 나누어 주기 위해 벌어야 한다.
    하나님은 재물을 탓하시는 게 아니다. 열심히 일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 부를 쌓은 사람이 많다. 그런데 결국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다(신 8:18).
    획득과 소유를 강조하는 세상에서 우리의 재산은 이기적인 이유로 주어진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사람은 받은 것으로 생계를 꾸리고, 주는 것으로 인생을 꾸민다.’라는 말이 있다. 계좌에 남은 돈이 얼마든 상관없이 이 격언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최고의 투자는 하늘 은행에 하는 것이다. 재산을 모으면 차를 사고 집을 사고 통장 잔고를 늘릴 수 있다. 하나님께 재산을 드리면 영혼을 구하고 그분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사람이 될수록 하나님과 더 깊은 경험을 나눌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대총회(6. 6~11.)를 통해 세계선교가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4 min
  • [5월 31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아홉은 어디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 17:17)
    남다른 은혜를 받으면 감사의 마음도 남다를 것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학비를 대 주고, 차를 수리해 주고, 집세를 내주거나, 목적지까지 태워다 준다면 고마운 게 당연하다. 하물며 누군가가 여러분의 목숨을 구해 준다면? 평생 감사하며 살 것이다.
    위대한 의사이신 예수님이 어느 날 나환자 10명을 고쳐 주셨다. 나환자 1명을 고치는 것도 대단한 기적이다(예수님은 전에 그런 적이 있었다.). 그런데 10명을 고쳐 주셨다면 그것은 어마어마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10명 중 예수님에게 돌아와 감사를 표현한 사람은 단 1명뿐이었다. 게다가 그는 유대 출신인 예수에게 적대감을 품기가 훨씬 더 쉬운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 사마리아 사람이 민족적 편견을 벗어던지고 예수님에게 찾아와 그분의 치유에 의도적으로 감사를 드렸다.
    나머지 9명은 그날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죽을병이 나았다며 기뻐했다. 그들은 선물을 받아 즐거워했지만 정작 선물을 주신 분은 잊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만한 어떤 일을 하셨는지 한 번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 감사드리면 그분의 은혜가 마음에 새겨지고 그분의 선하심을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대승을 거뒀을 때 사무엘은 ‘에벤에셀’이라는 기념석을 세워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알리고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새겼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을 밟았을 때 여호수아는 “주님의 언약궤 앞에서 요단 강물이 끊기었다는 것과, 언약궤가 요단강을 지날 때 요단 강물이 끊기”었던 일을 기념하고자 돌기둥을 세웠다(수 4:7, 새번역). 하나님의 은혜는 되새기고 되새겨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수많은 선물에 자주 감사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그분께 감사할 일이 넘쳐 난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은 건강한 그리스도인 삶을 유지하는 필수 요소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고종식, 김은아 선교사 부부(필리핀)
    코로나로 인한 여러 문제가 선교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4 min
  • [5월 30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믿으니 병이 나았다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눅 17:14)
    나환자 10명이 예수님에게 찾아와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눅 17:13)라고 부르짖었다. 그리스도 당시에 나병은 무시무시한 불치병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심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14절)라고 간단하게 말씀하셨다. 못에 가서 눈을 씻으라고 하신 것도 아니고 처방을 알려 주신 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오랜 시간을 쓰지 않으셨다. 가서 제사장을 만나 보라고만 말씀하셨다. 제사장은 나병의 완치를 공식적으로 확인해 주는 사람이었다.
    한번은 나환자 하나가 예수님을 찾아와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마 8:2)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 나환자 한 명에게 예수님이 보인 반응은 나환자 10명을 대할 때와는 조금 달랐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마 8:3). 말씀과 함께 손으로 만지신 것이 고통받는 자를 치유하기 위해 예수님이 하신 전부였다.
    그런데 성경에 따르면 나환자 10명은 “가다가” 병이 나았다. 예수님은 그들을 고친 뒤에 보내신 게 아니다. 그들을 그냥 보내셨고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믿고 가는 도중에 나은 것이다. 이것은 진짜 믿음의 역사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본보기이다. 나환자 10명처럼 말씀에 따라 행동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는 것이 바로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
    여러분도 똑같은 믿음을 지닐 수 있고 똑같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약속을 앞세우면서 그 약속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대로 실현되리라고 기대한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활동하시리라고 믿어 주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진수, 이주연 선교사 부부(대만)
    제자 훈련과 패스파인더 활성화를 위해
    3 min
  • [5월 29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오직 선하게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렘 9:24)
    정의가 실현되어야 어떤 사회든 원만하게 굴러간다. 미국 국기에 대한 맹세에서는 “하나님 아래 하나의 나라이며…모든 이를 위한 자유와 정의의 나라”를 선언하고 있다. 스가랴 7장 9절에서 하나님은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라고 명하셨다. 미가 6장 8절에서는 “정의를 행”하라고 권고하신다.
    14살짜리 여자아이가 간음죄로 처형당했다는 뉴스를 들은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정의를 실현하시는 방식이 일부 집단의 방식과 다르다는 점에 감사할 것이다. 하나님은 정의를 앞세우는 분으로 묘사될 때가 많다. 하나님이 정의로우신 것은 맞지만 그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자비하시기도 하다. 우주의 왕께서는 완전히 공의로우시기에 각 인간을 엄정하게 다루시지만 두려움보다는 사랑으로 인간과 가까워지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기를 기뻐하는 분이시다(렘 9:24).
    그렇다고 하나님이 정의의 하나님이 아니란 말은 아니다. 하늘의 정의에는 자비와 선의가 깃들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부드럽게 대하신다. 그분은 죄인에 대해 오래 참으시고 불쌍히 여기신다. 죄인을 없애기보다는 타락한 자를 구하기 위해 온 힘을 쏟으며 호의를 베푸신다.
    정의의 표준인 십계명은 광야 성막의 지성소 안에 있었고(출 25:21) 지금은 하늘 성소의 지성소 안에 있다(히 8:5; 9:5). 그런데 그 언약궤 위에는 순금으로 된 시은좌가 있다. 하나님 안에서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시 85:10).
    하나님은 정의를 행하기 앞서 자비를 베풀고자 하신다. 인간은 정의의 칼을 휘두르는 데 빠르지만 하나님의 성품은 자비를 베푸는 데 빠르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찬민, 백수경 선교사 부부(레바논)
    경제 위기와 정세 불안에 고통받는 레바논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
    4 min
  • [5월 28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어떤 영인가?

    “그분께서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어떤 영에 속해 있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눅 9:55, 킹흠정)
    일반적으로 교회는 평화로운 공간이다. 그런데 미국의 어느 교회에서 싸움이 벌어져 여자 한 명이 칼에 찔렸고 음악 사역자는 목사에게 테이저건을 쏘았다. 인간은 충격적인 행동도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지시로 사마리아에 들어간 심부름꾼들이 마을 주민에게 배척당했다. 야고보와 요한은 이러한 모욕에 분통을 터뜨렸고 예수님에게 하늘에서 불을 내려오게 해 이 고약한 주민들을 태워 버리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우레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나중에 복음서 하나와 요한계시록을 포함해 신약 성경을 5권이나 기록하게 될 사람의 입에서 그런 요청이 나온 것이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 9:54). 야고보와 요한은 모두 평화의 왕이신 분의 제자였다. 요한은 요한복음 13장 34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했다. 그런 요한이 야고보와 함께 사람들이 가득한 마을을 불태워 멸망시키면 어떻겠냐고 물은 것이다.
    예수님에게 굴복하지 않은 사람은 단연코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다. 존경받기에 손색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가장 끔찍한 범죄나 충격적인 행동을 저지를 때가 종종 있다. 기독교인이라거나 교회에 다닌다거나 헌금을 낸다는 것은 그리 믿을 만한 잣대가 되지 못한다. 화가 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는가? “품성은 위기의 때에 드러난다”(실물, 412). 누군가 내 발등을 밟았을 때 혹은 바라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자신이 어떤 영에 속해 있는지”(눅 9:55, 킹흠정) 알고 있는가? 만약 여러분이 나쁜 영에게 지배받고 있는 모습을 하나님이 보여 주신다면 그것을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자리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여기라.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삶에 활동하실 때만 진정으로 변화될 수 있다. 유명한 속담의 말마따나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라면 나도 똑같은 사람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서세광, 최우정 선교사 부부(홍콩)
    홍콩의 보안법 강화로 종교 자유가 침해당하지 않도록
    4 min

About 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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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