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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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pisodes

  • [3월 18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너희의 모든 일을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 16:14)
    성경에서는 ‘모든’이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라는 바울의 권면은 말 그대로 ‘무슨 일이든지 빠짐없이’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신자들에게 이 말은 일종의 도전이다. 바울이 말한 ‘모든 일’에는 자녀 교육, 동료 관계는 물론 신경질적인 직원이나 성질부리는 운전자를 상대하는 일까지 다 포함된 게 분명하다. 그 모든 일을 늘, 언제나 ‘사랑으로’ 하라는 것이다.
    바울의 권면을 무시하고 반대로 행동했던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사랑으로 행동하고 싶지 않을 때 혹은 상대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한 ‘모든’의 범위가 얼마나 방대한지는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순간이나 상황이 아니라 ‘모든’ 상황인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하기란 불가능하다. 현실적으로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바울의 권면은 고무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시는 게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자신이 하시도록 용납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서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말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진술했다. 우리는 동의하고, 굴복하고,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그분에게 활동의 기회를 내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분은 자신의 완전한 뜻을 이루시며 우리가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우리를 위해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이 ‘모든 일’이라고 말씀하셨다면 문자 그대로 ‘모든 일’에 대해 그렇다. 다시 말해 그분이 그렇게 하시도록 우리가 허용하기만 한다면 그분께서는 우리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능히 이루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병섭, 이세주 선교사 부부(대만)
    타이동 교회 성도들과 교회가 추진하는 사업들을 위해
    4 min
  • [3월 17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상하게 하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사탄을 속히 너희의 발아래서 부수실 것이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롬 16:20, 한글킹제임스)
    1956년, 소련의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가 모스크바 폴란드 대사관에 모인 서방 외교관들 앞에서 연설한 적이 있다. 통역사가 전한 바에 따르면 그는 “여러분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역사는 우리 편이며 우리는 여러분을 묻어 버릴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후에 흐루쇼프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 앞에서 결국 붕괴된다는 자신의 신념을 그렇게 표현했을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당시에는 훨씬 불길한 메시지로 들렸다. 그의 발언은 냉전 시대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흐루쇼프의 예측은 빗나갔다. 소련은 미국을 넘어서지 못했고 노동 계급이 자본주의를 묻어 버리지도 못했다. 오히려 소련이 해체되고 공산주의가 붕괴됐다.
    미래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과거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표류하는 인류에게 큰 위로가 될 예언을 해 주셨다. 당시 전체 인구는 고작 두 명뿐이었고 그마저도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됐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의 상황을 보시고 사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일부 성경 번역가는 ‘상하게 할 것’이라는 말 대신 ‘부술 것’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사탄은 ‘부서질’ 것이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평강의 하나님께서 사탄을 속히 너희의 발아래서 부수실 것이니라”(롬 16:20, 한글킹)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상기시켰다. 삶에는 시련이 끊이지 않고 사탄이 세상을 장악한 듯싶다. 그러나 그의 때는 얼마 남지 않았다. 모든 죄의 장본인이며 모든 분쟁과 고난의 원인이자 모든 시련과 실망의 근원인 사탄은 잠시 후면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사탄은 반드시 패한다. 오늘 예수를 붙잡으라. 그러면 승기를 잡은 것이나 다름없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함영식, 김지은 선교사 부부(오만)
    오만 선교사 비자가 빠른 시일 내에 발급되도록
    4 min
  • [3월 16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지금 행복한가?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1)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행복한 지역은 하와이이다. 설문 응답자 중에서 하와이 사람들이 ‘나는 잘 살고 있다’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고, 가장 많이 웃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말할 확률은 가장 낮았다. 세상에 완벽한 곳은 없겠지만 따뜻한 날씨와 열대 바다는 많은 사람의 로망이다. 갤럽과 헬스웨이가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하와이 다음으로 행복한 곳은 순서대로 와이오밍주, 알래스카주, 몬태나주, 유타주였고 가장 불행한 곳은 웨스트버지니아주, 아칸소주, 켄터키주, 미시시피주, 테네시주였다.
    그런데 인간을 ‘진짜로’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디에서 살고 있든 우리는 매일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모두 걷는다. 변함없는 행복을 인간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확실히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에서는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야자수와 따뜻한 날씨도 좋지만 하나님과 연결되었을 때의 평안함은 더욱 훌륭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하신다. 그 삶이란 예수님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뿐 아니라 그 사랑에 감동하여 즐겨 순종하는 삶이다. 이런 것이 결여된 삶은 하늘의 평화, 확신, 분명하고 희망적인 미래가 없는 삶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라신다(요 15:11). 그분은 우리가 단순히 행복한 게 아니라 완전히 행복하기를 바라신다. 삶의 상황은 변할 수 있다. 인생에는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이 모두 존재한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사는 삶에서만 얻을 수 있다.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그만큼 더 행복해진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삼육대학교 세계선교센터
    삼육대학교가 세계 선교 비전을 잘 감당하도록
    4 min
  • [3월 15일 화요일 장년 기도력] 거의 홈런?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행 26:28)
    야구 경기에서 홈런성 타구도 외야수에게 잡히는 경우가 있다. 축구 선수의 슛이 간발의 차로 골대를 비껴갈 때도 있다. 골프 선수가 퍼팅한 공이 홀 바로 앞에서 멈추기도 하고 수영 선수가 1초도 안 되는 차이로 세계 신기록을 놓치기도 한다. 아쉬운 일이다.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운동선수가 아쉽게 놓치는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누군가 아쉽게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그립바왕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자신이 인정한 진리에 마음을 바치라고 그에게 강권했다. 아그립바가 성경을 믿는다는 것을 바울은 알았다. 그러나 사도행전 26장 28절에서 아그립바는 “네가 나를 설득하여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도다”(킹흠정)라고 대답했다. 아마 이 대답은 성경에서 가장 안타까운 진술일 것이다. 아그립바는 ‘거의’ 구원을 얻을 뻔했다가 완전히 잃어버렸다. 성령이 그의 양심을 부추겼고 그는 예수께로 강하게 이끌렸다. 이제는 결심할 차례였다.
    성령의 부르심에 굴복하지 않고 버티기가 훨씬 더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자만, 이기심, 주위의 시선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호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그립바는 거의 하나님의 자녀가 될 뻔했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 않았다. 언젠가 그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서 자신의 고집에 대해 가슴을 치며 후회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일꾼을 그에게 보내셨지만 아그립바는 하나님의 앞에서 고집을 꺾지 않았다. 거의 설득되어 구원이 코앞에 있었지만 충분히 가깝게 이르지는 못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성경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면 아그립바의 이야기를 참고하라. 유다의 왕에게 호소한 이는 바울이 아닌 하나님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그립바가 영생을 얻기를 바라셨고 여러분도 영생을 얻기를 바라신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이야기하실 때는 성령께 순종하는 데 아무것도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 아그립바에게 호소하셨던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에게도 호소하고 계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남동현 선교사(대만 PCM)
    국립타이중과학기술대학교 캠퍼스 선교를 위해(한국어 동아리, 점심 기도반)
    4 min
  • [3월 14일 월요일 장년 기도력] 깜짝 놀랄 이야기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행 17:21)
    성경에서 특별한 반전이나 남달리 독특한 견해에만 흥미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다. 초기 교회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바울이 아테네로 갔을 때 “모든 아테네 사람들과 그곳에 체류하는 외국인들”(행 17:21, 바른)은 가장 새롭고 인상적인 사상에 대해 논하고 싶어 했다.
    목사들이 모여 어느 성경 예언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법을 두고 토론을 벌였다. 그때 저명한 목사 한 사람이 “나는 그 해석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해석이 흥미진진하지 않거든요.”
    그러나 성경은 아주 흥미로운 책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특수 효과는 찾아볼 수 없지만 성경에는 하늘이 두루마기처럼 떠나가고 태양이 거꾸로 움직이며 천천만만의 천사가 하나님의 심판대를 둘러싸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나님 말씀이라는 위대한 진리는 죄인을 전능자와 결합하며 마음을 단련하고 영적인 힘을 길러 준다. 성경 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유별난 성경 해석에 열광하는 사람은 믿음을 기를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다름 아닌 오래된 옛이야기를 전하도록 자녀들을 부르셨다. 예수께서는 죄인을 구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성경에 소개된 역사적인 사건, 예언, 시, 일대기는 모두 위대한 구원의 계획을 밝히기 위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다.
    분명히 사람마다 성경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성경은 죄로 물든 세상을 위해 하나님이 그 아들을 내주신 이야기이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분하게 여겨 새로운 것을 찾다가 길을 잃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가장 위대한 이야기이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이야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다른 것을 찾을 필요가 없다. 예수께서 머지않아 하늘의 구름을 타고 돌아오실 것이며 그보다 더 놀라운 이야기는 없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류재경, 김미현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각 교회(총 4개)의 리더십을 위해
    4 min
  • [3월 13일 일요일 장년 기도력] 무엇을 먹는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 6:54)
    평균적으로 남성은 하루에 약 2,500칼로리, 여성은 2,000칼로리를 섭취해야 한다고 영양학자들은 조언한다. 그런데 라스베이거스에서는 8,000칼로리나 되는 햄버거를 판매한 적이 있다. 문제의 햄버거를 판매한 식당에서는 이를 두고 ‘충격적일 만큼 나쁜 음식’이라고 소개했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무엇을 먹는지는 정말 중요하며 수많은 환자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그렇다면 영혼을 위해서는 무엇을 섭취하는가? 믿음으로 예수를 삶에 받아들이는 것은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것이다. 음식물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올바른 영적 양식을 가려내는 일은 훨씬 더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의 식단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게 차려져야 한다. 성경은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빵에 비유한다. 그러나 모든 빵이 동일하게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농담처럼 어떤 경우에는 빵보다 그 빵이 들어 있던 봉지를 먹는 게 더 몸에 좋을지도 모른다. 어떤 빵은 영양가가 거의 없다. 빵을 만들 때 강화 밀가루를 많이 쓴다. 가공 과정에서 영양소 대부분이 빠져나간 밀가루에 영양 성분을 어느 정도 첨가한 것이 강화 밀가루이다. 어떤 빵은 섬유질을 거의 포함하지 않고 설탕만 잔뜩 함유해 전문가들이 빵으로 분류하기를 거부할 정도이다.
    하나님의 말씀까지 그런 방식으로 찾는 사람이 있다. 달콤하지만 섬유질 하나 없이 개량된 말씀을 좋아하는 것이다. 성경을 읽을 때는 조금은 거친 섬유질이 포함되어야 더 유익하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스스로를 다그치고 영적 지평을 넓히라.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파고 폭넓게 읽어 그대의 성품을 단련하라.
    스스로를 살펴서 자신의 영적 식단이 바람직한지를 확인해 보라. 건강하고 영원한 삶을 살려면 건강하고 균형 잡힌 영적 식단이 필수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종철, 강지희 선교사 부부(몽골)
    아이들의 건강과 학업을 위해
    4 min
  • [3월 12일 안식일 장년 기도력] 황금처럼 좋은 것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 6:53)
    같은 영어라도 나라별로 다른 표현들이 있다. 영국 사람이 ‘커파(cuppa) 하시겠어요?’라고 묻는 말은 홍차 한잔 하겠느냐는 뜻이다. 호주 사람이 ‘굿 아보(Good arvo)’라고 말하면 ‘좋은 오후(Good afternoon)’라고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친숙한 표현이 타 문화 사람에게는 생소할 때가 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는 어땠을까? 피를 마신다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말도 안 되고 무엇보다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이 랍비의 말씀은 대체 무슨 뜻일까?
    예수님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그분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삶의 근간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식인 풍습을 제안하신 게 아니며 청중은 이해할 마음만 있으면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수님은 ‘너희가 복된 삶을 살고 싶다면 나를 메시아로 영접하고 내 가르침을 너희 자신의 일부가 될 정도로 습득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나누고 싶은 친밀함에 대해 종종 강조하셨다. 요한복음 15장에서 그분은 우리 안에 그 자신이 거하시고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는 일에 대해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6장에서는 그분이 우리 존재의 일부가 되실 정도로 아주 친밀한 결합에 대해 묘사하셨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개념이 초신자에게는 충격적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 자신의 일부가 되시고 그분이 온전히 나의 주님과 구주가 되실 정도로 그분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삶이다. 우리가 그분의 살을 먹고 그분을 피를 마신다면, 영국인이 흔히 표현하듯 만사가 ‘황금처럼 좋을 것(good as gold)’이다. 어떤 말로 표현하든지 간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이야말로 하나님이 오늘 그대에게 바라시는 뜻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권순범, 강지희 선교사 부부(대만)
    국립 타이중 과기대 캠퍼스 선교 졸업 후 청년들의 신앙과 미래를 위해
    4 min
  • [3월 11일 금요일 장년 기도력] 고통스런 순간에도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심각한 어려움이 닥치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미리 막을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것은 불공평하거나 부당한 처사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인간의 제한된 이해력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다.
    욥은 하루 만에 가축과 열 자녀를 모두 잃었다. 아내는 살아 있었지만 마귀의 유혹에 굴복하도록 욥을 부추겼다(욥 2:9). 그러나 욥은 여호와를 찬양했다. 가진 것을 거의 다 잃어버린 그의 태도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양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 때문에 누명을 쓰고 27년 동안 투옥된 남자가 마침내 석방됐다. 마음이 괴롭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괴롭지 않아요. 자유를 얻어 기쁘기만 해요.” 인생의 3분의 1을 철창 속에서 보냈어도 그는 분노하지 않았다. 자신이 겪은 부당함에 대해 곱씹으며 지낼 시간이 거의 30년이나 되었는 데도 말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상실을 겪거나 상처를 당할 때 종종 마음속에서 매우 실제적인 싸움이 일어난다. 경험 많은 믿음의 사람도 고통이나 실망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예수님 역시 자신에게 닥친 문제로 씨름하셨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십자가에서 그분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아버지께 부르짖었다. 예수님도 “어찌하여?”라고 물으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셨지만 예수님은 엄청난 고난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했다.
    욥은 진짜 믿음을 보여 준다.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심지어 혹독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는 하나님을 믿었다. 혼란과 절망에도 그는 하나님 신뢰하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해력을 뛰어넘는 어느 지점에 믿을 만한 하나님이 계시다고 그는 생각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신영천, 김혜림 선교사 부부(캄보디아)
    팬데믹 시대에 바탐방 감화력 센터의 정상화를 위해
    4 min
  • [3월 10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불변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말 3:6)
    요즘에는 카메라에 필름이 필요하지 않다. 전화기가 벽에 걸려 있지도 않다. 고기 없는 햄버거와 무인 자동차가 등장했고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공중전화는 찾아보기 어렵고 레코드 가게는 없다시피 하며 운전할 때 지도를 들춰 보는 사람은 극소수다. CD 역시 카세트테이프처럼 사라질 운명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9·11 테러를 기억하지 못하고 공항 보안이 삼엄하지 않던 시절을 모른다. 사람들은 더 이상 친구나 가족의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한다. 이제 전화기는 그냥 전화기가 아니다. 전화기인 동시에 내비게이션, MP3 플레이어, 손전등, 카메라, 캠코더이며, 식료품은 물론 차에 기름을 넣고 계산할 때도 휴대폰을 이용한다. 식당에 가기 전에는 온라인 평점부터 확인한다. TV 채널도 수백 개나 된다. 한때 미국에 비디오 대여점이 2만 7,000곳이나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1990년보다 2050년이 더 가까운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식당이나 버스, 기차, 비행기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세상은 극적으로 변했다. 의심할 나위 없이 좋은 변화도 있고 긍정적이지 않은 변화도 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한 가지, 변하지 않는 한 존재가 있다. 그 존재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셨고 지금도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선하셨고 늘 그러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인자하고 자비로우시며 결코 변함이 없으시다. 수천 년 동안 인류에게 용서를 베푸셨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그러셨듯 오늘날도 여전히 우리와 관계 있으며 자신을 믿고 따르라고 수천 년간 애원하신 대로 지금도 마음과 생각에 호소하시며 구원의 선물을 베푸신다. 변화무쌍한 세상, 아무것도 지속적이지 않은 듯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언제나 그리고 영원토록 우리는 그분을 사랑의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으로 의지할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지수 선교사(대만 PCM)
    선교사 연장에 필요한 적절한 비자가 허락되기를
    4 min
  • [3월 9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확증 편향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눅 23:21)
    한 남성이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가 끔찍하게 공격당한 것을 발견했다. 그는 범인으로 몰렸다. 그는 그날 밤에 자신이 패스트푸드 식당에 있었다고 주장했고 식당 직원은 그를 식당에서 봤다고 증언했다. 경찰이 집에 들이닥쳤을 때도 그는 식지 않은 음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목격자가 없었는데도 그는 범인으로 지목됐고 DNA 검사로 무죄가 입증될 때까지 16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나중에 다른 남성이 범행을 자백했다.
    우리 모두는 확증 편향에 영향을 받는다. 선입견에 빠진 사람은 증거조차도 자신들의 생각을 더 굳히는 방향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현상은 신념에 관한 문제에서도 나타난다. 인류가 진화했다고 믿고 싶은 사람은 아무리 성경이 옳다는 증거를 보여 줘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창조론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들은 사이비 과학으로 내몰린다. 무신론자는 일몰, 펭귄, 자궁에서 아이가 생기는 과정을 보고 우연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컴퓨터가 저절로 생겨났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이성적인 사람 중에도 인간의 세포와 인간은 스스로 생겨났다고 믿는 이가 수두룩하다.
    비판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사용하여 증거를 저울질하신다. 예수께서 심문받으실 때도 그분이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일으키시는 모습을 본 이들이 무리 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다. 그들 중에는 예수께서 물로 만드신 포도주를 마시고 그분이 축복하셨던 소년의 점심 도시락에서 빵과 물고기를 먹은 이들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피를 흘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때 그들은 믿고 싶은 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을 때는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진지하게 묵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대의 삶을 위해 계획하신 길로 그대를 이끄시도록 허용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종훈, 조혜정 선교사 부부(네팔)
    네팔 삼육학교 설립을 위해
    4 min

About 장년 기도력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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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매일 전하는 「장년 기도력」입니다. 하루 한 편, 성경 말씀과 영감의 글을 따라 묵상하고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믿음 안에서 자라가기 원하는 모든 분께, 매일 아침의 영적 양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