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상처가 얼어붙은 자리를 만든다고 하셨다. 자신의 몸에서 불편한 부분으로 그것은 드러난다.
평상시에는 겉치레로 만나는 사람앞에서는 얼어붙은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편한 사람에게는 얼어붙은 모습이 나온다. 버림받음의 생각의 틀을 지니고 있다면 그러한 감정을 상대에게 내뱉는다.
그럴 때 쾌감을 느끼는데 버림받음의 에고가 느끼는 쾌감이다. 버림받음의 덫은 버림받는다는 생각의 틀로 상대에게 자꾸 요구하고 매달리기 때문에 지쳐서 상대가 떠나가게 만들고 자신의 그러한 틀을 유지시킨다.
자신의 상처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냥 놓는 것, 끊는 것이다. 먹이를 주지 않는 것이다.
담배를 끊고 싶다면 그냥 끊는 것이다. 방법은 없다.
버림받음의 생각이 올라왔을 때 알아차리고 끌려가지 않는 것 밖에 없다.
에고는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에고를 건드리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느낌이든다.
나라는 것은 모래성과 같아서 하나가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지는 것과 같다.
가령 가족을 구성해서 내 아이라고 규정해놓은 사람이 있다면 아이가 죽었을 때 마치 모든 세상이 무너지는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내것이라는 소유관념 나와 동일시 되었던 것이 무너져버리면 나자체가 흔들거리기 때문에 존재의 의미가 없어지는것과 같다. 직장에 동일시되어있으면 직장에서 나갔을 때 나가없어지는것과 같고 연인이 떠나가면 마치 나가 없어진것과 같은 느낌이든다. 나라는 것은 그만큼 약하고 흔들리기 쉬운 것이다.
본질에서는 상처라는 것이 없다. 버림받음이라는 것이 없다.
붙드는 것이 없기 때문에 걸릴것이 없다.
연인관계란 주고받음과 같다.
많이 받고싶으면 많이 주어야 한다.
주지도 않으면서 받으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그런 균형의 어긋남을 상처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