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에 집중되어있는가
자신이 집중하고 관심있는 곳이 바로 자신이 머물고 있는 세계이다.
명상의 세계는 밖을 바꾸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밖(사람,상황,대상들)은 온전하고 완전하다. 당신이 세상이나 사람들 안에는 오래된 업식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상황과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열릴 것이냐 이다.
어떻게 수용하고 세상과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이고 반응할 것이가 뿐이다. 즉 열리는 것이 중요한데 열릴려면 자신이 어떤 세계를 가지고 있고 갇혀있는지 인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가끔씩 우리가 가진 질문에 스승이 준답이 어떤 상황에서는 이렇게, 또 어떤 상황에서는 다르게 답을 해서 헷갈릴 때가 있는 데 이는 자기가 어떤 세계에 갇혀있는 냐에 따라 스승이 그 갇혀있는 시야를 깨주기 위해서 답을 달리하는 것이다. 하나에 집착되어있는 상태에서 다른 상태를 알려주어서 전체보는 시야를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업식의 패턴을 보면 두 가지로 추스릴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이 예민하다고 주장하는 패턴과 다른 하나는 반대로 본인들은 무감각하다고 주장하는 패턴이다. 겉으로는 달라보이나 이 두 가지 부류는 같은 것이다.
첫 번째 유행은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민감하고 예민하다는 것은 저항이 많고 분별이 많다는 뜻이다.
여기서 예민하다는 것은 명상을 통해서 느껴지는 내면으로 들어가서 감수성의 열림과는 다르다. 자신이 예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예민함은 열림이 아니라 어떤 사람과 상황이 자신의 뜻과 달랐을 때 그것과 맞대응을 잘한다. 겉으로 맞대응을 하던지 티를 안내고 속으로 하던지 맞대응을 하고 이런 특성의 사람들은 본인 안에 화가 많다. 본인 안의 맞대응 즉 저항감을 민감하다. 예민하다 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고 싶은 저항감이 많다는 것이다. 내 뜻대로가 아니기 때문에 확 일어나는 반응을 민감하다 라고 말한다. 이들은 사실 안에 화와 짜증이 많고 지키는 힘이 강하다.
예민하다. 진짜 예민하다라는 것은 감수성의 열림을 뜻한다. 진짜 열림. 어떤 상황에서 맞대응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깨어있고 받아들이고 열림입니다. 깨어서 보고 느끼는 사람, 그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림이 진짜 살아있는 예민함이라고 한다.
두 번째 유형은 상당히 둔감한사람
제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감정이 뭔지 모르겠어요.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잘 모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의 뜻과 식에서 안 맞는 이 현재를 회피하고 현실을 부정하는 것을 뜻한다.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현실을 안 보려하고 하고 닫혀있는 사람이다. 그저 자기 세계 속에서 살고 싶은 것이다. 자기가 만든 세계. 이미지 자기만의 안전 속에서 현실을 안 보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주로 무기력하고 우울한데 이러한 감정은 현실 부정하기 위한 방어하는 마음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비추고 나아가야할 방향은 무엇인가
자신의 성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지금 현재 일어나는 상황도 정황하게 인식하고 인정해서 열리느냐 지키고 닫느냐 뿐이다.
지난 명절 동안 그 속에서 어떤 마음 자세로 임하였는 가 돌이켜보라.
그리고 생각해보라- 상황이 바뀌겠는 가 사람이 바뀌겠는 가 우리는 오직 그러한 상황들 속에서 나 자신만을 볼 수 있고 나 자신을 바꿀 수 있다.
자신을 비추어라. 우리의 몸,생각,감정,관계성 그 모든 일어나는 것들 속에서 자신을 비추어라. 그래야 지혜로움이 깨어난다. 우리의 고통은 무지다. 자기가 어떤 감정을 쓰고 맞대응하고 회피하며 현실을 회피한다면 우리는 익숙한 업식의 패턴대로 놀아난다.
그리고 관계성 속에서 나와 상대를 두고 보았을 때 자신이 관심있는 세계는 다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관심사에 속해있기 때문에 자신의 세계를 고집한다면 상대와 교류되지 않는다.어떤 사람을 알려고 하고 자신의 세계를 놓고 상대의 세계에 접속해야한다.
예민한 사람은 자기것만 보고 자기식만 추구하며 그것에 어긋났을 때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자존심 지키고 반응하고 보호하고 벽을 쌓으려고 합니다. 반대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상황은 일어났는데 안보고 자기가 만든 세계에 빠져서 현실과 일어나는 것을 회피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무기력하게 된다.
우리는 일어나는 모든 것에 직면해서 지금 사실과 여기서 해야 할 것을 하나하나 해나가고 만나는 사람에게 열려야한다. 긴장하고 방어하는 마음을 놓아야한다.
자신의 세계에서 어떤 것이 일어나는 지 관심을 가져서 의식을 집중해서 알아차리고 자신은 그 관심을 만들어내는 혹은 관심이 일어나는 배경이라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배경이 있기 때문에 ‘관심’이 있다. 자신이 추구했던 정체성,동일시되었던 많은 관심은 사실 배경이 있었기에 존재한다. 그래서 그것에 계속해서 빠지고 갇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알아차림으로 돌아와야한다.
알아차림은 ‘나’라는 실체, ‘나’라는 정체성. 진짜 나는 신념,감정,이미지가 아니다.
이것을 만들어내는 무언가가 있다. 명상하면서 고요 속에서 생각 감정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쑥 올라오고 쑥 내려가고 알아차리면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다 보면 우리의 의식의 초점이 어디에 가있느냐 따라서 동일시되는 대상이 다르며 알아차리는 순간에 자신으로 돌아오고 비어있는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비어있는 자리를 한번이라도 느끼고 그것을 신뢰할 때 진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만들어진 형상에 놀아난다. 익숙한 업식에 놀아나게 된다.
우리는 몸이 아니고 만들어진 이미지가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Im 무엇이다.
우리는 그 I’m 이라는 배경이다. 우리는 I’m 그 자체이다.
명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놓는 것이다. 힘빼는 것이다.
잡으려고 하기 때문에 내 뜻대로 하려고 하고 내식대로 하려하고 계속해서 힘들이 들어가는 것 이다.
명상을 하면서 내쉬는 숨과 함께 최대한 힘을 빼면 계속 깊은 곳에 들어가게 된다.
힘 빼지 못하는 사람은 표면에서 놀게 된다. 눈감으면 에너지 체에 붙어있는 것들이 돌아간다.
이 생각났다가 저 마음이 들었다가 표면의식에 놀아나게 된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자기의 존재로 돌아오라.
그럴 때 우리는 태어난 적이없다.
그렇기 때문에 죽는 것도 없다.
제일 안 놓으려하는 것이 죽음이다.
죽고 살고 죽고 살고 순리에 맞게 돌아간다.
감정도 변하고 죽음도 변한다. 변화만 있을 뿐이지 죽음은 없다.
생명은 있다. 죽음도 삶도 없고 생명 자체로써 변화될 뿐이다.
변화된 모습을 보고 개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일 뿐이다.
실제로는 그냥 생명이며 생명의 변화한 과정이 탄생,죽음 여러 가지로 보여지는 것이다.
부처의 표현으로는 연기이다.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다.
일어나고 사라지고 붙들려고 해도 붙들 수 있는 것이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내가 가진 것을 감사히 여기고 잘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충만해진다.
우리는 부족하지 않고 충만하다.
계속 만들어내는 부족감..그런 착각의 병에서 벗어나는 것이 명상이다.
심리가 에고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을 까
성취할 수 있을 까로 간다면 명상은 깨어나면 없다 그 모든 것은 꿈과 같은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 마음을 자꾸 신뢰하면서 고요 속으로 들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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