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킹 목사는 청소 노동자들의 존엄을 그들이 공동선에 기여하는 점에 결부시켜 이야기했다. "언젠가 우리 사회는 청소 노동자들을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회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죠. 따져 보면 우리가 버린 쓰레기를 줍는 사람은 의사만큼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질병이 창궐할테니까요. 모든 노동은 존엄합니다."
능력주의는 지성과 교육을 고등교육의 상아탑에 온통 몰아넣어 두고서, 누구에게나 그 상아탑에 들어올 공평한 경쟁이 보장되리라고만 약속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접근권 배분은 노동의 존엄을 떨어뜨리며 공동선을 오염시킨다. 시민교육은 담쟁이가 넝쿨진 캠퍼스 못지않게 지역사회 대학, 직업훈련소, 노조에서 잘될 수 있다. 향상심 있는 간호사와 배관공들이 야심적인 경영 컨설턴트보다 민주적 논쟁에서 뒤떨어질 까닭은 없다.
성공은 미덕의 증표다. 나의 부유함은 나의 몫이다. 이런 식의 사고는 힘을 내게 해준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두운 면도 있다. 우리 자신을 자수성가하고 자기충족적인 존재로 여길 수록, 우리보다 운이 덜 좋았던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힘들어진다. 내 성공이 순전히 내 덕이라면 그들의 실패도 순전히 그들 탓이 아니겠는가. 이 논리는 능력주의가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는 논리로 기능한다. 우리 운명이 개인 책임이라는 생각이 강할 수록 우리가 다른 사람까지 챙길 필요를 느끼기 힘들다.
아래쪽에서 올려다 볼 때, 엘리트의 오만은 짜증나지 않을 수 없다. 그 누구도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서고 싶지 않다. 그러나 능력주의 신앙은 그들이 입은 상처에 굴욕까지 보탠다... 승자에게 갈채하며 동시에 패자에게 조롱한다. 패자 스스로마저도 말이다... 나의 실패는 자업자득이다. 재능이 없고 노력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헤어나기 힘든 좌절감을 준다.
'피터팬'을 쓴 제임스 매슈 배리는 "행복의 비밀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을 '좋아하는 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내가 제안하는 방법은 할 일에 대해 끊임없이 슬로싱킹을 하는 것이다.
브이노믹스(V-nomics)- "바이러스가 바꿔놓은 그리고 바꾸게 될 경제"라는 의미다. 나아가 우리가 경제 소비와 관련해서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들이기도 하다. 그 질문이란 다음 네 가지다. 1)경기의 반등, 즉 'V자 회복'은 가능할 것인가? 2)코로나19로 가속화된 '언택트' 트렌드는 어떻게 변화(variation)할 것인가? 3)코로나 사태로 소비자들의 가치(value)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4) 브이노믹스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우리에게 어떤 비전(vision)이 필요한가?
"코로나 사태로 바뀌는 것은 트렌드의 방향이 아니라 속도다." 변화하는 트렌드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가장 큰 교훈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코로나19로 인한 트렌드의 변화를 냉철하게 인식하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신속하게 실행하면서도, 언젠가 펼쳐질 정상 경제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인류의 미래는 더 나아질 것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2015년 11월 '멍크 디베이트'에 이어, 2020년 12월 '부산 디베이트'가 펼쳐졌습니다.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의 편에 선 긍정 의견의 지미, 그리고 알랭 드 보통과 말콤 글래드웰의 뒤를 이어 부정적 의견을 표출한 잭. 당신의 생각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