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어야 비로소 볼 수 있다.”
-방송 중에서
위키피디아에 ‘아테네’는,
‘서구 문명의 요람이자, 민주주의의 고장’으로 묘사돼 있습니다.
‘그리스’하면 ‘아테네’가 떠오를 정도로,
아테네는 그리스 문명의 최고봉 자리에 있는데요.
이 일반적 상식이 사실은 근대의 제국주의가 날조한
허위라고 메뚝씨는 주장하죠.
이른바,
“아테네는 그리스의 최고봉이 아니라, 최후의 자취”라고 말이죠.
왜일까요?
기원전 5세기의 페르시아 전쟁 전까지 아테네는,
주거 문화가 발달되지 못하고,
공중도덕의식도 약해 도시 곳곳에 오물이 쌓이는 낙후된 도시였습니다.
시민은 고작 40%이고,
나머지는 노예와 도망자로,
계급 차이가 컸지요.
이거 민주주의 맞나요?
시민의 1/3만이 중심부에 살고,
나머지는 외곽에 살 수밖에 없을 정도로,
크게 발달한 도시도 아니었죠.
주변의 경쟁국 스파르타와 테베에 비하면
좋은 환경이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테네가 현재의 관점에서 그리스 문명의 대표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메뚝씨는 말합니다.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에 의한 ‘역사학’의 시작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기록을 통해 ‘표준의 정립’한 것이 가장 주된 원인이라고요.
‘기록’의 마술이라는 것이죠.
‘기록’이 역사를 지배하다는 사실을 아테네는 알고 있었던 것이죠.
두철수도 오늘부터 꼼꼼히 기록해야겠어요. ㅋㅋ
수공품 생산 외엔 풍요로운 농경문화도,
인구도 많지 않았던 아테네는,
우연들이 겹친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이겨낸 뒤,
점차 ‘그리스의 영광’을 독점하게 됩니다.
보통, 전쟁을 거치면서 강한 군주에 의한 전제정치가 펼쳐지는데,
아테네의 상황은 달랐어요.
시민들이 권력을 얻고 점차 기득권 세력을 해체하면서,
다수가 통치하는 민주주의가 발달했던 것이지요.
에피알테스의 아레이오파고스의 해체를 위한 사법 개혁은
기득권의 독점을 적극적으로 봉쇄하며
민주주의로의 개혁을 도왔던 것입니다.
기득권이 발붙일 수 없는 세계가 곧 민주주의죠.
사실, 에피알테스의 개혁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었고,
이로 인해 암살당하기까지 하지요.
하지만, 아테네가 위대했던 이유는,
제 아무리 ‘영웅’이라도 기득권 유지에 기여한다면 과감히 ‘제거’해야 한다는,
성스러운 폭력성을 장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델포이 신전에 있는, ‘너 자신을 알라’는 글귀대로,
느끼는 대로, 보이는 대로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빛에 의한 윤곽을 명확히 하려는 ‘거리두기’를 통해,
역사 속에 남을 현명함을 찾으려는 삶의 태도가,
일반적인 ‘아테네’의 위상을 재고하며
색다른 시각으로 다시 공부해야 할 이유겠죠.
아테네는 인간들의 살아 있는 실질의 역사였으니까요,
주어진 상식을 기반으로
즉각적인 육감에 의해 판단하지 말고,
‘넓은 관점’으로, ‘우회해서’, ‘재고’함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출현시킬 수 있겠죠.
‘일상에서 매력 있는 언어를 창출하고 지속하는 매력남’이라는,
똥팔씨의 별칭처럼 말이지요.
아테네를 주제로 한 ‘철학수다’가,
오늘의 현실에 미동이라도 일으키기를 바라며,
철학의 언어를 매만지며 생동하는 일상을 만들어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