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인 것에 대한 기능을 잃은 존재는
현실적인 것에 대한 기능을 잃은 존재와 마찬가지로 신경증 환자다.”
-가스통 바슐라르
메뚝씨가 정의한 ‘경탄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를 만나봅니다.
대략 기원전 492년,
시칠리아 변방 명문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430년에 에트나 화산의 분화구에 자신의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는데요,
그는 왜 화산에 뛰어들어야만 했을까요?
그리스가 절정에서 쇠퇴기로 몰락하던 당시를,
엠페도클레스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미쳐 날뛰는 불화와 맹목의 풀밭에 판을 치는 살육, 원한, 죽음 등으로 가득 찬 시대다.”
부조리와 위협 속에서 존재를 세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앞서 엘레아 학파와 ‘파르메니데스’가 설파했었죠.
하지만 ‘파르메니데스’의 방법은 소수만이 알아들을 수 있고 쓸 수 있는 방법이었어요.
‘그리스를 너무나 사랑’했던 엠페도클레스는,
다수를 설득하기 위해 고심했죠.
그는 민주주의 선봉장이었거든요.
‘죽은 여자도 살리고, 전염병도 막는’,
‘실용적인 과학 지식을 겸비하여,
지식이 현실성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 설득하자’는
그의 노력으로 대중의 대단한 관심과 존경을 받습니다.
특권층을 싫어하고 민주주의를 신봉하던 공화주의자 엠페도클레스는
정치적으로 밀려 죄인이 됩니다.
이때부터 그는 예언가로서 시인처럼 행동하며
여론을 형성하는 결단을 내리죠.
비겁한 도망을 선택하지 않고,
청동 신발과 망토를 걸치고,
예언자, 성인으로 남아서라도,
그리스인들에게 철학적 해방을 설득하고 싶어 하죠.
실용적인 지식 전수에서,
시인 같은 예언자가 되기는 엠페도클레스의 행위엔
바슐라르가 표현한 ‘인식론적 단절’이 있습니다.
‘과학’에서 ‘시학’으로의 단절은
경탄이 사라지고, 더 이상 추상이 감각되지 않는 속된 시대에,
‘몸 앞에 드러난 정신’을 매개하는 ‘실천지’였기에,
그는 자연철학자들과 결이 달라 주류세력들에게 비아냥을 들었지만
시인으로, 예언가로 변신해 그리스의 여론을 바꾸고 싶어했습니다.
“새로움, 활력 속에서 시적 이미지는 자신에 맞는 존재를 자신에 맞는 동력을 갖는다.
그것은 존재론에 속한다.”
-바슐라르
‘몸 앞에 드러난 정신’인 ‘시적 상상력’은 활력의 동인이 되고,
그것은 인간의 존재론에 관계됩니다.
자연의 시적 울림의 직접성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이유이지요.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비현실적인 것에 대한 기능을 잃은 존재는
현실적인 것에 대한 기능을 잃은 존재와 마찬가지로 신경증 환자다.”
‘과학’이 ‘시’가 되고,
‘시’가 ‘과학’이 되는 인식론적 단절엔 많은 이들과 공명하고픈
철학자의 고뇌가 있습니다.
엠페도클레스가 그랬고,
바슐라르가 그랬으며,
알튀세르가 그랬죠.
너무나 현세적인 민주주의자로서,
자연 앞에서 ‘경탄’과 ‘서정’을
감각할 수 없는 저 쇠퇴한 그리스인들에게
‘울림’을 주기 위해
엠페도클레스는,
화산에 제 몸을 던지지 않았을까요?
나머지는,
4원소설의 작동 원리와,
존재론에 대한 메뚝씨와 똥팔씨의 신선한 해석과 맛깔난 입담으로,
엠페도클레스와 공명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랄게요.
방송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