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에 대한 용기와 정신의 위력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철학의 첫 번째 조건이다.”
- 헤겔
똥팔씨 : 헤겔을 어떻게 정의하셨나요?
메뚝씨 : 칸트는 ‘철학의 장인’이라고 했는데,
헤겔은 ‘근대적 시간의 건축가’라고 정의했어요.
몸의 지양 이후 정신만 강조했던 헤겔의 모습은,
실제의 노동 없이,
설계도로 근대를 직조하고자 했던 건축가들의 모습과
닮아있거든요.
‘모더니즘’의 특징은 ‘자유’에요.
나폴레옹이 확장시킨 혁명의 불씨는
유럽의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죠.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폴레옹의 ‘절대적 권위’가 ‘자유’의 출발이 되었네요.
현대 민주주의를 배우는 우리에게 권위는,
자유를 위해 최소화하고 눌러야 하는 악덕으로 추락하고 있습니다만,
‘권위야말로 자유의 출발’이라고 헤겔 철학은 주장합니다.
권위와 자유의 관계에 대해,
헤겔의 ‘주인-노예 변증법의 오작동’과 연관시켜,
톺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의 경계는,
‘목숨을 건 모험’을 통해 자연을 극복한 이들에 의해
구분된다고 헤겔은 말합니다.
‘목숨을 건 모험을 한 자’는 역사의 지배자 즉, 주인이 되었고,
나머지는 자연스레 노예가 된 것이죠.
이것이, ‘주인-노예 변증법’ 이론의 시작입니다.
“세계사란 지배와 예속이 상호 작용하는 역사에만 하는 것이며, 역사의 변증법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다.”
“완벽한 예속 상태에 있을 때만, 노예는 자유를 자기 의식화한다.”
- 헤겔
‘주인-노예’ 상태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겠는데,
어떻게 권위가 자유를 준다는 것일까요?
주인의 권위는 노예를 예속하는 것이 아닐까요?
헤겔의 철학을 프랑스에 전도한 코제브는 ‘주인-노예 변증법’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사람들은 타자를 위하여 봉사하고 스스로를 외화시킴으로써 즉, 스스로를 타자에 굳게 결속시킴으로써 죽음의 이념이 주입한 노예적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노동을 통해 노예는 각성합니다.
완벽한 예속 상태가 주인을 능가할 만큼의 육체성을 장착하게 돕고,
주인에게 적대감을 느끼는 자기의식을 갖게 하죠.
반면 주인은 자신이 넘어설 상태를 잃어버립니다.
노예는 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변증법적 지양의 대상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완벽한 예속 상태에 있던 노예에게 현실에 대한 지양 운동이 일어나죠.
‘목숨을 건 모험’의 두 번째 운동을 만들어 내는 것이죠.
헤겔은 나폴레옹을 통해
강력한 예속 상태를 벗어난 자유의 변증법적 운동을 감각합니다.
“자유롭고 싶어!~”
헤겔은 자유의 역사를,
인간의 문제로 삼아
인간이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주조했는지에 대한,
보편 역사 전체의 설계도를 완성하고자 했죠.
자유의 자기의식은,
단순히 감각으로 익혀지는 것이 아니라,
감각-지각-오성-이성-관념의 절대 이성으로 이어지는 단계를
하나씩 밟아 나가는,
‘기초 튼튼’의 발전 과정 뒤에서
만개할 수 있다는 것이 《정신현상학》의 핵심 테제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시고,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이 아닌 것 같은데...???”라고,
고개를 갸웃하시는 분들에게는,
메뚝씨와 똥팔씨가 전해 드리는 비법이 있으니,
방송으로 꼭! 확인하시면 좋겠네요.
헤겔을 떠나 보내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곧 생기생기로 만날, ‘두철수 부활! 시즌3 – 철학사 탐구 여행’도 기대해 주세요.
대체 불가능한, 유일하고 고유한 ‘나’로 살기 위해,
두철수와 함께 가즈아~!
유일한 ‘내’가 되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