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인물을 알아보는 이 사람은 칸트가 지닌 위대한 성향을 발견했다.
그리고 편들거나 침해하지 않으면서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칸트의 천재성을 세상에 드러냈다.”
-만프레트 가이어. 칸트 평전
칸트가 산책하러 나갈 때면,
시계를 오후 4시에 맞췄다는,
이웃 사람들의 일화는 유명하죠.
(침대에 아파 누워있는 사진)
‘7시간 이상 누워 있는 것은 병의 근원이다.’
라는 말과 함께,
아프거나,
잠자기 전에는,
한 번도 침대에 눕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평생을,
가여울 정도의 고집스러움으로
빈틈없는 생활을
철저하게 살아냈던
칸트의 인생이 우리 현대인에게 주는 의미를,
메뚝씨의 촌철살인의 입담과
다시 돌아온
똥팔씨의 넉넉한 재치로,
톺아보고자 합니다.
1724년, 당시 프로이센 왕국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말안장 수공업을 했던 아버지와
청교도의 경건한 생활을 따랐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철학, 수학, 과학적 학문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고 영특했던,
칸트는,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시자,
자신과 동생들의 생계를 오랫동안 책임져야 하는,
업보의 굴레와 같은 시간을 보냅니다.
귀족의 가정교사,
주 20시간 강의하는 대학의 사강사,
괜히 분주하기만 하게 했던 궁정 도서관의 부사서로 일하면서,
틈틈이 내기 당구에서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했죠.
칸트는 1771년 47세가 되어서야,
안정적 교수 자리를 얻었고,
그 후 10년이 더 지난 뒤에야,
세상에 알려집니다.
1781년 ‘순수이성비판’,
1788년 ‘실천이성비판’,
1790년 ‘판단력 비판’ 등등의 책들로 말이죠.
끊임없이 말년까지 많은 책들을 쓰고 냈죠.
칸트는 고난이 찾아올 때마다
“그것은 다 지나간다”는 태도로,
고통을 극복하기보다
알맞게 순응하는 법을 썼습니다.
죽음에 대해선 철저히 거리두기를 했던 그는
죽음을 대면하는 일을 멀리했죠.
(거의 모든 장례식에는 가지 않았고, 문병도 하지 않았다는...)
반면,
죽기 나흘 전,
의사가 앉기 전까지,
서서 의사를 맞이해야 한다는
자신이 세운 소소한 원칙에 맹목적이었던 칸트는
어쩔 수 없는 것을 제외하곤
최선으로 임했던 진지한 철학자라 볼 수도 있습니다.
(주식거래, 바삐 움직이는 현대인들 사진)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것에 예민한
현대인들과는 분명하게 결이 다른,
생을 향한 자발적 기준과 이를 집요하게 지켜가는
칸트의 근성은 아득한 ‘심연’과,
끝 모를 ‘꼭대기’까지를 결합한
순수의 정신(Geist)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영롱한 깊이의 세부는 방송으로 만나주세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삶에 용기 내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