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는 최초의 길을 묻는 자이다!”
-방송 중에서
20세기 현대철학의 출발점이자
현상학의 기원이 된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의 생애를 소개합니다.
에드문트 후설은 1859년 오스트리아령 메렌 주에서,
양모 상인이었던 유대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1876년, 17세의 후설은
실업계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천문학자의 꿈을 품고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갑니다.
이곳에서 실험 심리학의 창시자인 빌헬름 분트 교수를 만나
처음 철학을 접하게 되죠.
1878년에는 베를린 대학으로 편입하는데요,
훗날 후설이 철학을 계속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바이어슈트라스 교수를 만나 수학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졌고,
파울 센 교수의 철학 강의를 듣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파울 센의 철학에 대한 감명은 깊고도 오래 지속되었다.”
이후, 1883년에는 바이어슈트라스 교수 밑에서
조교 생활을 하며, 연구에 몰입하여
변수 계산에 관한 학위 논문을 완성한 후설은,
빈 대학에서, 브렌타노 교수와 만나고,
그에 대한 깊은 존경을 표현하며,
철학자의 길로 갈 것을 다짐합니다.
“나는 브렌타노 교수의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과 해결하는 방식에 영향을 받았다.”
“내가 일생을 수학자로 남을 것인가,
철학에 인생을 바칠 것인가 갈등할 때 결정한 것은 브렌타노 교수였다.”
자신의 교수 자격 논문을 확장하여 출판한
《산술의 철학-심리학적·논리학적 연구》 책을,
브렌타노 교수에게 바칠 정도였으니,
브렌타노 교수와의 만남은 후설에겐 결정적 계기였던 것이죠.
스승에 대한 존경이 깊다고 하더라도
뛰어난 제자는 스승을 넘어서야겠죠?
대학의 사강사로 지냈던 긴 무명의 시간을 견뎌낸 후설은,
1900년 《논리 연구Ⅰ》에서
스승 브렌타노의 경험적 심리학의 한계를 벗어난
자신만의 철학 체계를 구축해 발표합니다.
그 결과는? ‘대박~’
학계에서 후설은 신진 철학자로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1906년, 47세의 나이에 괴팅겐 대학의 정교수로 부임하여,
이제야, 비.로.소, 진.정.으.로.
철학 연구에 전념하게 되죠.
1929년 칸트적으로 논리 연구를 체계화한 《논리학》 출간 이후로,
후설의 명성은 더욱 높아지며,
57세가 된, 1916년에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정교수로 취임하고,
69세의 나이로 은퇴한 이후에도 여러 곳에서 강의를 하는데,
특히 70세,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 한 강연은,
사르트르를 비롯한 프랑스 실존주의자들을 탄생시키는 배경이 되기도 하죠.
1933년 이후, 나치의 유대인 탄압으로,
누구에게도 손을 벌리지 않고,
근근이 이어가던 생활고 속에서도,
‘한 순간도 한 눈 팔지 않고 오직 학문의 길에만 정진한’
일생을 살았던 후설은,
1938년, 79세의 나이로 그 생을 마감합니다.
어느 날 방문한 벨기에 루뱅 대학에서 후설의
현상학적 환원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던
반 브레다 신부가 아니었다면,
4만 5천여 장의 속기 원고와 1만 페이지의 후설의 수고(手稿)는
영영 빛을 보지 못했을 거예요.
열렬한 노력파 철학자였던,
후설의 나머지 세세한 일생의 에피소드들은
두철수 부활! 22회를 참고해 주세요.~
잡다한 소란으로 어두워진 존재를 다시 찾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