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사이클링 향초 브랜드 느리게가게 홍지원 사장님과 제주살이 10년 차, 손으로 하는 취미, 브랜드의 시작과 끝, 부부 동업, 7번의 셀프 인테리어, 보성에 직접 지을 집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홍지원 사장님은 2015년부터 7년간 '느리게가게'를 운영하면서 맥주병을 활용한 향초를 판매했습니다. 이후 비오는날의숲 파트너로 일하며 비건 디저트를 구웠고, 지금은 10년간의 제주살이를 뒤로하고 보성으로 이주를 준비 중입니다.
제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빠가 말했다. "제주에서 오래 지내려면 친한 언니가 있어야 해. 언니를 좀 사귀어 봐." 아빠는 왜 하필 언니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아빠는 언니가 있었던 적도 없으면서.' 속으로 트집을 잡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2년 후,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아빠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나이 상관없이 누구와도 친구를 먹는 편이지만, 지원 사장님은 언제나 나에게 언니 그 자체였으니까. 가게에 올 때마다 직접 구운 쿠키를 건네주고, 내 마음이 힘들 때 귀신같이 알고 맛 좋은 식당에 데려가 주는 언니. 새벽 1시가 넘도록 함께 수다를 떨어도 집에 가는 길이 아쉽던 날들.
지원 사장님은 우리에게 받는 것이 많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사장님에게 받은 것이 더 많았다고 장담한다. 위로와 용기를 얻었고, 때로는 배움을 얻었고,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눈빛에서 다정함을 느꼈다. 갈팡질팡하는 나에게 다음 행선지를 넌지시 알려주던 언니 덕분에, 내 마음은 뒷배를 얻은 것처럼 든든했다. 아빠는 이렇게 단단하고 사려 깊은 친구가 딸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지금의 내 나이였던 지원 사장님의 옛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둑한 제주도 시골, 방 한켠에서 혼자 베란다 텃밭을 가꾸고 맥주병을 잘라 향초를 만들던 지원 언니를 상상해본다. 직접 만든 제품을 처음 팔고 눈이 동그래졌을 언니의 얼굴을
그려본다. 첫 가게에 페인트칠한 후 다시는 셀프 인테리어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때는 몰랐겠지. 10년 동안 제주에 살면서 7년간 향초를 만들고 7번이나 셀프 인테리어를 하게 될 줄은.
이제 곧 제주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보성으로 떠나는 지원 사장님을 보며, 나의 삶이 딱 그만큼 유연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우연한 기회를 만났을 때 꽉 붙잡고, 어려움은 묵묵히 이겨내고, 큰 변화 앞에서 겁먹지 않을 수 있기를. 그리고 그럴 수 있겠다는 용기 역시 지원 사장님을 보면서 얻는다.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가고 있는 언니가 있으니까. 언제 어디서든 지원 언니만의 행복을 만들어 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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