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큰 프로젝트를 맡아 정신없이 일하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할 때는 분명히 무리를 하고 있는데 아프지도 않습니다. 정신없이 쭉 달리게 될 뿐입니다. 그러다 그 일을 마무리하고 휴가를 떠나면! 그때 꼭 얄궂게 독감 같은 게 덮쳐오곤 하죠. 긴장이 풀어지고 마음이 놓이면서 그때까지 미뤄뒀던, 하지만 그렇게 무리를 했으니 실은 닥치는 게 당연한 심신의 피로가 한꺼번에 올라오는 겁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런 경험을 해보셨을 겁니다.
마음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참 힘들고 괴로운 일을 한가운데에서 겪고 있거나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고 있을 때는 오히려 ‘내가 상처받고 있구나, 아프구나’ 그런 생각을 할 겨를조차도 없습니다. 사람이 정말로 휘청이는 순간은 ‘지긋지긋한 고통에서 벗어났다, 해냈다’ 안도한 직후인 경우를 많이 봅니다. 벗어났기 때문에, 미뤄온 것들이 비로소 밀려오는 것입니다. 독한 농약을 대량으로 뿌려대다 땅을 살리기 위해 중단하면 처음에는 생각의 잡초들이 무성하게 올라온다고 할까요. 아프지만, 결국 진정한 회복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 번은 겪어야 할 과정의 첫 단계에 진입하는 시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냥 참아서 괜찮아지는 건 없구나… ‘억눌렸던 것들은 꼭 돌아온다, 한 번은 튀어오르게 돼 있다’는 그 말이 정말 맞구나, 나한테 일어난 일들을 소화해서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한 거구나. 저도 깊이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 회복의 첫 단계를 걷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저와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솔직한 대화였습니다. ‘이 사람은 이런 게 원망스러웠고, 그런 일을 당했을 때는 정말 슬펐어. 그를 미워하는 게 죄책감이 들었는데, 괜찮은 것 같아. 그가 미운 것과 그를 사랑하는 것, 두 가지가 동시에 내게 있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 혼자서 많이 생각하고, 생각나는 대로 말로 꺼내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마음의 정리가 조금씩 이루어지는 스스로를 발견했습니다. 저를 과거에 힘들게 했던 당사자와 직접 대화할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을 열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다른 사람에게 터놓은 것만으로도 내가 ‘해방되고 있구나’ 저절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이 책을 만났을 때, 여기 실린 그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 남긴 말들, 그들이 이 깊고 깊은 이야기들을 꺼내놓은 심정들을 나도 감히 조금은 알고 있다고 더욱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북적북적 가족 여러분들도 이 책을 펼치셨을 때 저와 같은 마음을 느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서로서로 공감하고 이해하고 있다고, 또는 당신처럼 나도 그러하다고, 저 속 깊은 곳으로부터 끄집어낸 진심의 이야기들을 마주하게 되는 이 책 속에서 문득문득 가슴 저리게 생각하는 순간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북적북적에서 함께 읽는 책은 세상에 나온 지 이제 한 달 조금 넘었습니다. 지난 3월 말에 출간된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입니다. 광고인으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고, 이제 웹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설은아 작가가 만들었습니다. 어떤 책인지, 이 책에 실린 작가의 말을 일부 인용하는 것으로 소개를 대신하겠습니다
혹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꺼내어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었던 말이 있다면. 묻어도 묻어도 잘 묻히지 않는, 해야만 할 것 같은 말이 있다면. 또는 그저 한 번 소리 내서 해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책을 펼쳐 다른 이들이 꺼내놓은 말들을 들어주고, 그리고 내 이야기 역시 용기내어 꺼내보면 어떨까요. 들어줄 것 같은 누군가에게든, 1522-2290에게든, 또는 [북적북적]에게든. 털어놓아 주신다면요.
들어주시는 모든 분들, 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수오서재 출판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진행: 권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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