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을 집어들 때 우리는 막연히 그 안에서 일종의 결론 하나 정도씩은 기대합니다. 이 책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든, 내가 공감하거나 혹은 뚜렷하게 반대할 수 있는 통일된 사유를 접하게 되리라고 예상하는 겁니다. 오늘의 책은 그 예상의 경계선 바깥에 위치합니다. 아 안에는 ‘대답’이라고 할 만한 게 있기도 하고, 어쩌면 전혀 없기도 합니다. 정리된 해답, 예정된 길, 마땅한 결론이라는 건 역시 없을지도 모른다는, 질문에 가까운 대답 비슷한 것만이 이 안에서 찾게 되는 소중한 이야기에 가장 가깝습니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길을 걸을 것이라는 ‘느낌’이 가슴을 가득 채울 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1월 말에 출간된 따끈한 신간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는 올해 33살로 접어드는 술라이커 저우아드라는 여성이 썼습니다. 친구들 사이 애칭은 ‘수수’로 통하는 이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프린스턴 대학을 갓 졸업하고 언론인으로서의 첫 발을 떼기 일보 직전이었던, 똑똑하고 자유롭고 자기 삶에 대해 야심만만한 22살짜리 여성이었습니다. 뉴욕에서 태어나 지적인 부모 밑에서 자랐고,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를 오가면서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관계로 막 발전하기 시작한 멋있는 남자친구도 생겼습니다. 이 22살의 어느 날, 수수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루케미아)라는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아주 공격적인 암으로, 수수 또래의 젊은이가 이 병에 걸려서 생존하는 확률은 현대의학에서도 35%밖에 되지 않습니다.
수수는 살아남게 되는 35% 중의 한 명이 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수수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바로 그 살아남는 게 확실해진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됩니다. 투병기이기도 하지만, 투병 이후의 회복기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다는 게 이 책의 남다른 점입니다. 먼저 떠나보낸 65%의 친구들과 그 가족들의 몫까지 영혼 속에 짊어진 채로 다시 삶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여정이며 무엇을 의미하는가.
번역서는 우리나라에서 출간되는 시점에 현지 출간으로부터 시차가 크게 나는 책들도 많은 편입니다. 하지만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원제: Between Two Kingdoms)]는 미국에서 원서가 처음 나온 것도 지난해 2월입니다. 세상의 빛을 본 지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현지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지난해는 (미국 입장에선) 코로나19 대유행의 회복기 첫 단계였던 만큼, 자기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이 책에 감정이입하게 되는 독자들이 더 많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끔찍한 병, 또는 사건사고, 어떤 충격이 삶에 느닷없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잣대로 보기에 그 시기가 지나갔다고 판단될 때쯤 되면, 사람들은 “그만하면 다행이었어” “지금부터 다시 원래 생활로 잘 돌아가면 돼” 류의 위로를 많이 꺼냅니다. 저 역시 그런 비슷한 말들을 누군가를 향해 주워섬긴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커다란 충격을 겪은 사람들이 정말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
저는 수사물, 범죄물, 법정물 장르의 드라마를 특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런 드라마들을 재밌게 보면서도, 볼 때마다 늘 마음이 불편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수사물에는 거의 모든 에피소드마다 각각 다른 피해자가 등장합니다. 그런 피해자들은 (죽는 사람도 많지만) ‘죽지까지는 않더라도’ 커다란 상처와 충격을 떠안은 채 남겨집니다. 그런데 수사물 드라마들은 대체로 피해자들이 ‘죽지만 않으면’, 일단 그 에피소드는 ‘그나마 다행이다’의 분위기로 전개되는 경향이 좀 있습니다. 죽지 않은 게 확인되는 시점부터, 피해자의 이야기나 고통은 ‘불행 중 다행이다’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남겨진 피해자가 맞닥뜨려야 하는 어마어마한 고통과 후폭풍은 실은 그때부터 비로소 시작입니다. 길을 가다 누가 갑자기 내 뒤통수를 단 한 대 치고 지나간 기억이 있다 해도, 그 불행의 끔찍한 임의성 때문에 평생 악몽을 꿀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행 중 다행”이라는 위로를 너무 쉽게 건네는 것은 아닐까. “지금부터 다시 원래 생활로 돌아가면 돼” 라는 위로는 그 고통의 실재를 마주보기가 너무 괴로운 주변 사람들이 도망가면서 꺼내는 말일 수 있습니다. 정작 당사자, 그리고 그를 사랑하며 계속 지켜보아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다시 삶과 마주서게 될까요. 그들이 실제 겪는 삶은 어떠하며, 들려주고 싶은 진짜 목소리는 어떤 것일까요.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에는 차분하면서도 강력한 그 육성이 담겨 있습니다.
수수의 투병기에는 이른바 “불행 중 다행이다”의 면모들이 조금씩 들어 있습니다. 동생으로부터 골수를 이식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35%의 생존자 관문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었으며, 부모님과 주위의 넘치는 사랑과 걱정을 받습니다. 암 진단 직전에 고작 몇 달 만났을 뿐인 20대 남자친구가 자신의 젊음과 커리어를 유예해 가며 몇 년 동안 헌신적으로 수수를 돌보아 주기도 합니다. 누가 보아도 감히 엄두 내기 힘든 사랑입니다. 그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되는 과정에서 수수가 느끼는 상실감이나 외로움이 결코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결국 남자친구와 이별하게 될 때 ‘남자 놈이 나쁜 놈이라 아픈 애를 버리고 떠났다!’고 대충 말해버릴 수 있는 상황이라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란 위로처럼 수수를 외롭게 하는 말이 없을 것입니다. 이토록 큰 고통이 어떻게 불행 중 다행일 수 있겠습니까. 이 책에서 수수뿐 아니라 수수가 투병과 회복의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커다란 병이 발생하는 순간 ‘나’라는 사람은 사라져 버리기 쉽다’는 겁니다. 나 자신이 그렇게 느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역시 나를 나로 본다기보다 병을 겪은 사람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보거나 아예 고개를 돌려버립니다. 그래서 내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기는 더더욱 요원해집니다. ‘병’이라는 단어의 자리에 ‘사건’이나 ‘사고’, ‘불행’을 집어넣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의 전반부는 수수의 투병기입니다. 이 부분만으로도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수수가 22살에 시작한 투병은 26살 무렵에 어느 정도 마무리됩니다. ‘마무리’라는 말이 무색하게 여전히 정상적이지 않은 몸과 재발에 대한 가능성을 동반한 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 보기에는 고비를 지났다고 하는 그 시점부터, 이 책의 후반기, 수수의 외로운 회복이 시작됩니다. 오늘 낭독에서는 이 후반기에 좀더 중점을 두어 읽었습니다.
수수는 투병 기간에 투병 외에 무엇이라도 스스로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 만한 프로젝트를 찾다가 블로그를 운영했습니다. 그 블로그가 수수 같은 환자들 뿐만 아니라 세상의 관심을 끌면서, 뉴욕타임스로부터 칼럼 연재 제안을 받게 됩니다. '중단된 삶'이라는 제목으로 병을 경험하는 수수의 이야기를 나누자, 다른 아픈 사람들, 또는 가족의 자살처럼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큰 사건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사람들이 수수에게 편지를 보내 고통과 공감을 나눕니다.
하지만 22살에 시작된 투병이 4년을 지나 남들 보기엔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26살이 되자, 오히려 본격 투병이 끝난 이후로 자기 삶을 어떻게 걸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태였던 수수는 (방금 인용한 대목에도 나오듯이) 정작 뉴욕타임스 연재마저 중단한 상태였습니다. ‘이대로 있을 수 없다’는 위기감에 도달한 수수는 자신에게 편지를 보냈던 그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미국 대륙 횡단 자동차여행을 홀로 떠납니다. 물론 아직 몸은 완전하지 않고, 육체적으로는 부담이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이어나가기로 한 것입니다. 이 여정에서 수수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병이 완치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건강한 사람은 짐작하지 못하는 컨디션의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자살을 겪은 어머니도 있습니다. 잘못된 과거 때문에 무기수로 여생을 살게 된 남자도 만납니다. 그들 모두가 각기 다르면서도 같은, 같으면서도 다른 여정을 들려줍니다.
수수는 단언합니다. 병이 나기 전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어떤 일을 겪은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흔히 막연히 떠올리는 ‘정상’이라는 지역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애초 우리 삶에 그런 ‘정상’의 면적이 얼마나 될까. 원래부터 정해진 답이라는 게 누구에게나 있기는 한 걸까. 원래대로. 제자리로. 응당 그래야 하는 어떤 결론으로. 그런 것들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정의 막바지에서 수수는 질문을 하나 받았습니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전부 없던 걸로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어요?” 그럴 수만 있다면, 자신의 삶에 고유하게 일어났던 그 고통을 수수는 이제라도 지워버리고 싶을까. 발병으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난 시점 수수가 이 질문에 내놓은 답을, 이 글의 맨 앞에 인용했습니다. 이 책의 핵심은 수수가 내놓은 그 대답에 이르기까지 수수의 여정입니다. 수수의 삶도,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도, 아직 마지막 목적지를 분명히 알지 못하는 저마다의 여행입니다.
수수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떠나왔던 원점으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이, 어떤 방식으로든, 미리 그려진 예정 경로 같은 것을 따르지 않습니다. 수수와 수수가 만나는 사람들의 대화가 매일매일 각자의 자리에서 새롭게 나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많은 것을 들려줍니다. 이제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를 직접 펼쳐서 함께 대화해 주신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들어주시는 모든 분들, 늘 깊이 감사드립니다.
*윌북 출판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진행: 권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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