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박물관장을 지낸 미술사학자 강우방 교수가 독서량에 대한 본인의 기준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필요해서 읽은 책’은 자신의 독서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수업교재여서 읽게 된 책이라면? 물론, 학점을 따기 위해 읽기 시작했다고 해도 깊은 영향을 받고 ‘인생책’의 반열에 올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그렇게 만난 책은 나 자신의 독서량에 대해 어림해 볼 때는 넣지 않기로 하는 것입니다. 순전히, ‘그냥’ 읽은 책. 의무나 필요나 효용 때문이 아니라 그냥 읽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읽은 책만 ‘독서했다’의 범주에 포함시키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비록 이 기준에 비추어 계산해 보면 제 평생의 독서량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기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이 계산법이 옳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는 제목 그대로의 삶을 살고 있는 이주영 작가의 ‘남편 관찰기’입니다. 이주영 작가님은 고등학교 문학교사인 프랑스인 남편 에두아르 발레리-라도 씨와 파리 근교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우리 [북적북적]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고 들으며 모이는 팟캐스트이지만, ‘프랑스인 책벌레 남편’이라니 뭔가 남다른 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프랑스인들의 생활에서 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일반적인 한국인들보다 훨씬 큰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책벌레라고 딱지를 붙일 수 있는 남자입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책을 펼치게 되지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경지를 엿보시게 될 것입니다.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는 한국인 아내와 프랑스인 남편이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사회문화적인 차이들을 소통해 나가는 이야기이자, 좀더 책에 열광적인 남편과 (실은) 그에 못지 않지만 약간 더 현실감각이 있는 아내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보고이기도 합니다. 이 부부가 갈등과 소통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복을 나날이 새롭게, 은근히 즐겁게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의 대화가 각종 문학작품을 인용하면서 이뤄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 부부의 대화는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삿대질을 하면서 끝나지 않습니다. 대신, 함께 읽었거나 내가 먼저 읽어서 들려주고 싶은 아름다운 구절들, 오싹하거나 강력한 구절들, 곱씹을수록 의미가 우러나는 구절들을 인용함으로써 소통의 폭을 넓힙니다. 이들이 서로에게 제대로 말을 걸고 싶어서 고르고 고른 문학작품의 구절들을 함께 읽는 것만으로도 부부 두 사람이 느꼈던 감정, 생각, 속마음들이 읽는 사람에게까지 깊게 배어듭니다. 맛깔스러운 상황 묘사와 위트가 페이지마다 넘쳐나는 책이라 많이 웃으면서 읽어 내려가다가, 문득, ‘그렇지. 문학에는 이다지도 힘이 있지.’ 훅, 공감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 에세이집은 ‘그냥 책을 읽는 삶, 어때?’ 우리에게도 대화를 걸어오는 책입니다. 프랑스 책벌레 남편 에두아르 씨가 한국인이라면 어떨까.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효용을 추구하는 독서, 수단으로서의 독서가 아니라 ‘그냥 알고 싶어서’ 끊임없는 지적 탐구를 인생의 다른 그 무엇보다도 앞세워서 해나가는 에두아르 씨가 아마 지금 그 모습 그대로 한국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하면 지금보다 훨씬 불편하고 괴로운 일들을 많이 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시 프랑스는 달라’ 따위의 결론으로 달려가고 싶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에두아르 씨가 에두아르 씨로 자라 에두아르 씨로 살아갈 수 있는, 에두아르 씨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 수 있는 프랑스는 프랑스 나름의 역사와 시간과 과정들이 모여서 지금 같은 사회가 된 것입니다. ‘빨리빨리’와 효용성이 다른 많은 가치들보다 인정받는 우리나라엔 우리나라의 역사와 시간과 장점들이 있습니다. 표면적인 인상만 가지고 어느 한쪽을 함부로 재단하는 것은 아마도 양쪽 모두를 결국 오해해버리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이주영 작가님도 이런 부분을 상당히 경계하고 조심하는 게 느껴집니다. ‘유럽에서 살아보니 말이야’ 류의 책으로 받아들여져서 정말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축소되거나 왜곡돼 버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마음을 쓰고 있는 책입니다.
다만, 장인장모에게도 시를 써서 마음을 전하는 정도의 배려와 그 정도 배려를 실현할 수 있기 위한 교양을 내 삶 속에 한 뼘 더 키우는 것. 그냥 알고 싶고 들여다보고 싶고 내 마음의 지평을 넓혀보고 싶어서 읽어나가는 시간을 지금보다 조금은 더 늘려보는 것. 이렇게 살아보려 하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괜찮더라, 는 정도는 프랑스든 한국이든 어디서든 비슷할 수 있지 않을까. 유머라는 유기농 양념을 듬뿍 쳐서 저자가 우리에게 대접하고 싶어한 ‘메인디시’는 바로 이같은 제안입니다.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의 맺음말 2편 중 첫번째는 남편 에두아르 씨가 썼습니다. 이주영 작가님이 남편의 글을 번역해 실었습니다. (라틴어부터 시작해 온갖 유럽언어들을 섭렵한 에두아르 씨는 지금 한국어까지 배우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아내 번역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주영 작가가 책 전체에 걸쳐 남편을 흉보는 척 하면서 애정 깊은 눈으로 관찰하고 있는데, 남편도 지지 않습니다. 사려 깊고 사랑이 묻어나는, 멋진 맺음말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자신의 ‘인생책’들을 꼽는 것으로 아내에 대한 지지와 응원까지 보내고 있는 글인데, 모두 유럽 작가들의 작품들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작품들입니다. 저도 굉장히 좋아하는 소설들을 여러 권 인생책으로 꼽으셔서 호감은 더욱 커졌습니다. 어마어마한 책벌레 남편이 삶 전체를 통틀어 마음 깊이 남아있다고 고백한 ‘인생책’들이 궁금하시면! 이 책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를 꼭 한 번 열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출판사 ‘나비클럽’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진행: 권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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