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북적북적의 선택,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은 지난 2001년 창간호부터 17년 동안 남성 라이프스타일 월간지 'GQ'를 이끌었던 이충걸 편집장의 '에디터 서문'을 모은 에세이집입니다.
저는 이 '남성잡지'를 서점에 서서, 또는 헤어샵 같은 데서 눈에 띌 때마다 종종 훔쳐봤습니다. 이 기회를 빌어 ‘GQ’ 제작진에 사과 드립니다.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한 번도 사보지는 못했습니다. '남성잡지 좀 내가 사면 어때?' 생각했지만, 그걸 들고 계산대까지 갈 용기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이렇게 재미있는 걸 남자들끼리 본다고 만드는구나. 흥!’ 같은 어줍잖은 자존심, 소외감 같은 것도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훔쳐봐야' 볼 수 있는 책이었으니, 사회로 나오고 바빠질 수록 점점 자주 접하지는 못하게 됐죠. 그래서 얼마 전에 우연히 이 책을 서점에서 발견했을 때, 더 반가운 마음이 들어 얼른 집어들었습니다. 'GQ'를 공짜로만 읽어온 그동안의 빚을 아주 조금 갚은 것 같은 느낌도 약간은 있네요.
이충걸 편집장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조금 외로운 글들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GQ’ 한국판이 처음 나오기 전까지 국내에서 남성 잡지라고 하면 지금보다 더 큰 선입견이 있었을 겁니다. 제가 잘 아는 분야는 아니지만, 남성들끼리도 문화와 예술과 소비에 대해서, ‘라이프스타일’에 대해서 월간지로 펴내서 얘기하는 잡지라는 게 그때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비로소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죠. ‘GQ’, ‘에스콰이어’ 같은 잡지들이 선두에 서 있었습니다.
제 기억에 ‘GQ’는 언제나 비닐에 싸여 있지 않았어요. 누구나 서점에 서서 그냥 볼 수 있도록요. 여성잡지들은 인기 있고 비싸고 멋진 사진과 기사가 많이 들어있는 잡지일수록 비닐에 싸여 나와서, 구입을 해야지만 속을 볼 수 있었는데 말이에요. ‘GQ’는 그야말로 ‘양질의 콘텐츠’로 가득한 잡지였지만, 그런 대표 여성지들보다는 판촉이, 그냥 열어보는 사람들이 필요한 잡지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른바 세련되고 문화적인 남성들이 많이 보고 있겠지만, 사실 모든 남성들이 자신을 위한 책이라고 받아들이는 스타일의 잡지는 아니죠. 어쩌면 일종의 질시를 언제나 등에 조금씩 업을 수밖에 없는 간행물일 거라고 짐작합니다.
그런 잡지를 한국에서 처음 개척해 나가기 시작한 ‘편집장의 말’은 늘 뜨겁고 빼곡했습니다. 에디터의 서문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진 글들임과 동시에, 오해 받기 쉬운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 나가는 외로운 일을 떠맡은 사람의 상당히 적나라한 일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쓰기 위해서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될 만큼 농밀하게 꼭꼭 채워 쓰는 문장들, 신랄하지만 수줍은 문장들이었습니다. 그 문장들이 제 20대에 기묘할 만큼 위로가 됐던 순간들이 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저 같은 마음으로 이충걸 편집장의 글을 좋아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역시 분명히 지금 괴롭고, 어딘가 폭발할 것 같으면서도 늘 불완전 연소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이 모든 게 실은 그저, 우스꽝스런 모양으로 꼬인 파티 풍선처럼 바람이 든 내 자의식 과잉일 뿐인 것 아닐까, 어지러울 때. 이충걸 편집장의 일기가 신랄하고도 수줍은 친구가 돼 줬습니다. 여기 그런 사람, 너 혼자가 아니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우리가 특별해서 그런 거야. 때때로, ‘에디터의 말’에서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정도의 자기혐오나 반성까지도 공유하면서, 그의 독자들을 다독이는 글들이었습니다. ‘GQ’를 한 번도 사보지 않은 진짜 속마음을, 이 에세이집에 모인 그때 그 글들을 모아 읽으며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이런 글들이 나 같은 여성독자는 염두에 두지 않은 ‘남성잡지’의 서문이었다는 데서 오는, 친구를 뺏긴 듯 분한 마음이 커서, 매대에 서서 훔쳐보는 걸로 반항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패션문화잡지와 방송뉴스는 종류가 많이 다르긴 하지만, 봐주시고 들어주시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가 닿기 위한 말과 글과 ‘그림’을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는 직업을 갖게 되고 나서 다시 몰아 읽는 ‘편집장의 글’은 좀더 남다르게 다가오는 면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편집장은 언제나 삶과 세상과 스스로에 대한 고민을 미열을 앓듯 반복하는 스스로를 활짝 열어 먼저 보여줌으로써, 언제까지나 삶과 세상과 스스로에 대한 고민을 멈출 수 없는, 그리고 자신이 여전히 그러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부끄러운 많은 어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걸 문득 좀더 깊이 느낍니다. 멋진 편집장과 멋진 독자들은 함께 문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죠. 저도 제 일에 대해서 이상은 높게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부끄럽지만 용기 내서 다시 한 번 해봅니다.
‘GQ’는 대중이 아니라 한 분 한 분을 향해서 만들었다는 이충걸 작가님의 한 마디가 굉장히 깊게 남습니다. ‘북적북적’을 읽을 때의 제 마음도,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ㅎㅎㅎ
들어주시고, 같이 읽어주셔서 늘 깊이 감사드립니다.
*출판사 ‘은행나무’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09:44 낭독 시작
진행: 권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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