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구마라즙 스님)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아뢰오되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다면 응당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겠습니까.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이르오되,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자는 마땅히 이같이 마음을 낼 것이니 내가 응당 모든 중생을 제도하리라. 모든 중생을 제도하였다지만 한 중생도 실제로는 제도된 자가 없나니 왜냐하면 만약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다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이겠는가 수보리여 실제로는 법이 있지 않기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것이다.
수보리야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여래가 연등불의 처소에서 법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더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이 설하신 바 뜻을 알기로는 부처님이 연등불의 처소에서 법이 있지 않기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르시되, 그렇고 그렇다. 수보리야 실제로는 법이 있지 않기에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다. 수보리야 만일 법이 있어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면 연등불께서 곧 나에게 수기를 주시되, 네가 내세에 마땅히 부처가 되어 석가모니라 부르지 않았으리라 실제로는 법이 있지 않기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연등불이 나에게 수기를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되, 네가 내세에 마땅히 부처가 되어 석가모니라 부르리라 하셨다. 왜냐하면 여래라 함은 곧 모든 법이 여여하다는 뜻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르되,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거니와 수보리야 실제로는 법이 있지 않기에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다.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그 가운데에 참도 없고 거짓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여래가 모든 법이 다 불법이라 설한 것이다.
수보리야 말한 바 모든 법이라 함은 곧 모든 법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법이라 한 것이다.
수보리야 비컨대 사람의 몸이 장대하다는 거와 같다.
수보리가 아뢰오되,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사람의 몸이 장대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곧 장대한 몸이 아니기에 이를 장대한 몸이라 이름한 것입니다.
수보리야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만일 이렇게 이르기를 “내가 마땅히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겠다고 한다면 곧 보살이라 이름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실제로는 법이 있지 않기에 이름하여 보살이라 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가 말씀하기를 모든 법이 아상이 없고 인상도 없고 중생상도 없고 수자상도 없다”고 한 것이다.
수보리야 만일 보살이 이렇게 이르기를 내가 마땅히 불국토를 장엄하겠다고 한다면 바로 보살이라 이름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가 말씀하기를, 불국토를 장엄한다 함은 곧 장엄이 아니기에 이를 장엄이라 이름한 것이다.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무아의 법을 통달했다면 여래가 말씀하기를 참으로 보살이라 부를 것이다.
17장 (산스크리트본)
그 때 참으로 존자 수보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어떻게 세존이시여 보살승에 굳게 나아가는 자는 머물러야 하고 어떻게 수행해야 하고 어떻게 마음을 조복 받아야 하겠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여기 (이 세상에서) 수보리여 보살승에 굳게 나아가는 자는 이와 같이 마음을 내어야 한다.
모든 중생들은 나에 의해서 무여 열반계에 완전히 열반에 들게 해야 한다. 이렇게 다시 중생들을 완전히 열반에 들게 하고서 어떤 중생도 완전히 열반에 들게 되지 않았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만일 수보리여 보살에게 중생이라는 산냐가 생긴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라고 말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jiva-산냐나 나아가서 뿌뜨깔라-산냐가 생긴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다라고 말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그 어떤 법도 보살승에 굳게 나아가는 자라 이름 할 것이.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수보리여, 있는가 그 어떤 법이 여래에 의해서 연등 여래의 곁에서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철저히 깨달았다 할?
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 존자 수보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가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의 뜻을 깊이 아는 바로는, 없습니다 그 세존이시여 어떤 법도, 그 여래에 의해서 연등 여래 아라한 정등각의 곁에서 아뇩다라 삼막삼보리를 철저히 깨달았다 할,
이와 같이 말씀드리자 세존께서 존자 수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이것은 수보리여 그러하다 이것은, 수보리여, 여래에 의해서 연등 여래 아라한 정등각의 곁에서 아뇩다라 삼막삼보리를 철저히 깨달았다 할 그 어떤 법도 없다.
만일 다시 수보리여 어떤 법이 여래에 의해서 철저히 깨달아졌다고 한다면, 나를 연등 여래는 인정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될 것이다 그대는 젊은이여, 미래세에 석가모니라 이름하는 여래 아라한 정등각이라고.
참으로 수보리여 여래 아라한 정등각에 의해서 없기 때문에 그 어떤 법도 무상정등각을 철저히 깨달은 (그런),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연등 여래에 의해서 인정이 되었다.
그대는 되리라 젊은이여 미래세에 석가모니라 이름하는 여래 아라한 정등각(이라고).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여래라는 것은 수보리여 참되고 그러함의 이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여래라는 것은 수보리여 생겨남이 없음의 이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여래라는 것은 수보리여 법이 완전히 끊어짐의 이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여래라는 것은 수보리여 완전히 생겨나지 않음의 이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이 수보리여 생겨남이 없음이 그 최상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어떤 자가 수보리여 이렇게 말하기를, 여래 아라한 정등각에 의해서 무상 정등각이 철저히 깨달아졌다라고 한다면, 그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며 비방하는 것이다 나를 그는 수보리여 사실이 아닌 것에 집착함에 의해서.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그 어떤 법이, 여래에 의해서 무상 정등각이 철저히 깨달아졌다 할.
그리고 수보리여 여래에 의해서 법이 철저히 깨달아지거나 설해진, 거기에는 진실도 없고 거짓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설하기를 일체 법이 불법이다라고 한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일체 법이라 한 것은 수보리여 법이 아니라고 여래에 의해서 설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해지기를 일체 법이 불법이라 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예를 들면) 수보리여 사람이 있어 구족한 몸과 큰 몸을 가진 것과 같다.
존자 수보리가 대답했다. 이 세존이시여 여래에 의해서 사람이 설해지기를 구족한 몸과 큰 몸이라 하신 것은, (구족하거나 큰) 몸이 아니다 그것은 이라고 세존이시여 여래에 의해서 설해졌습니다, 그래서 말해지기를 구족한 몸, 큰 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와 같다 그것은 수보리여, 보살이 이와 같이 말하기를, 나는 중생들을 완전히 열반에 들게 하리라고 한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다라고 말해져야 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있겠는가 수보리여 그 어떤 법이 즉 보살이라고 이름 할만한 (그런)?
수보리가 대답했다. 참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 어떤 법도 없습니다, 보살이라고 이름 할만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중생들 중생들이라는 것은 수보리여, 중생들이 아니다 (라고) 그들은 여래에 의해서 설해졌다, 그래서 말해지기를 중생들이라 한다.
그러므로 여래는 설하기를, 자아가 없다 일체 법들은, 중생이 없고 영혼이 없고 개아가 없나니 일체 법들은 이라고.
수보리여 보살이 이와 같이 말하기를, 나는 (불)국토의 장엄들을 이룩하리라 한다면 그도 역시 그와 같이 (보살이 아니라고) 오직 말해져야 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불)국토 장엄들, (불)국토의 장엄들이라는 것들은 수보리여 (불국토) 장엄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이라고, 여래에 의해서 설해졌나니, 그래서 말해지기를 (불)국토의 장엄들이라고 한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이 자아가 없는 법들 자아가 없는 법들이라고 확신하는, 그는 여래 아라한 정등각에 의해서 보살 마하살이라고 불러진다.
17장 (정리본)
그 때 존자 수보리가 참으로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보살승에 굳게 나아가는 자는 어떻게 머물러야 하고 어떻게 수행해야 하고 어떻게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하겠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수보리여 여기 보살승에 굳게 나아가는 자는 이와 같이 마음을 내어야 한다.
모든 중생들은 나에 의해서 무여 열반계에 완전히 열반에 들게 해야 한다. 이렇게 다시 중생들을 완전히 열반에 들게 하고서 어떤 중생도 완전히 열반에 들게 된 게 아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만일 수보리여 보살에게 중생-상(相)이 생겨난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라고 말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인(jiva)-상(相) 나아가서 수자(뿌뜨깔라)-상(相)이 생겨난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다라고 말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수보리여 보살승에 굳게 나아가는 자라 이름 할, 그 어떤 법도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연등 여래의 곁에서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철저히 깨달았다 할 그 어떤 법이 있는가?
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 존자 수보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가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의 뜻을 깊이 아는 바로는, 여래가 연등 여래 아라한 삼막삼붓다의 곁에서 아뇩다라 삼막삼보리를 철저히 깨달았다 할 그 어떤 법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말씀드리자 세존께서 존자 수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이것은 수보리여 그러하다 이것은, 수보리여 여래가 연등 여래 아라한 삼막삼붓다의 곁에서 아뇩다라 삼막삼보리를 철저히 깨달았다 할 그 어떤 법도 없다.
만일 다시 수보리여 어떤 법이 여래에 의해서 철저히 깨달아졌다고 한다면, 나를 연등 여래는 인정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대는 젊은이여, 미래세에 석가모니라 이름 하는 여래 아라한 삼막삼붓다가 될 것이다라고.
참으로 수보리여 여래 아라한 삼막삼붓다에 의해서 아뇩다라 삼막삼보리를 철저히 깨달은 그 어떤 법도 없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연등 여래에 의해서 인정이 되었다.
그대는 젊은이여, 미래세에 석가모니라 이름 하는 여래 아라한 삼막삼붓다가 될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여래라는 것은 수보리여 참되고 그러함 이(것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여래라는 것은 수보리여 법이 생겨나지 않음 이(것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여래라는 것은 수보리여 법이 완전히 소멸함 이(것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여래라는 것은 수보리여 최종적으로 생겨나지 않음 이(것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수보리여 이(것) 생겨나지 않음 그(것이) 최상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어떤 자가 이렇게 말하기를, 여래 아라한 삼막삼붓다에 의해서 아뇩다라 삼막삼보리가 철저히 깨달아졌다라고 한다면, 수보리여 그는 사실이 아닌 것을 집착함으로 인해서, 부주의하게 말하는 것이며 나를 비방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수보리여 여래에 의해서 아뇩다라 삼막삼보리가 철저히 깨달아졌다 할 그 어떤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보리여 여래에 의해서 철저히 깨달아지거나 설해진 법(에는), 거기에는 진리도 없고 거짓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설하기를 일체-법이 불법(Buddha-dharma)이다라고 한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수보리여 일체-법이라 한 것은 비-법(非一體法)이라고 여래에 의해서 설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해지기를 일체-법이 불법이라 한 것이다.
수보리여 그것은 마치 사람이 있어서 구족한 몸과 전체 몸을 가진 것과 같다.
존자 수보리가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 의해서 사람이 설해지기를 이(것) 구족한 몸과 전체 몸이라 하신 것은, 그것은 비-몸(非구족한 몸, 非전체 몸)이라고 세존이시여 여래에 의해서 설해졌습니다, 그래서 말해지기를 구족한 몸, 전체 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그것은 그와 같다, 보살이 이와 같이 말하기를, 나는 중생들을 완전히 열반에 들게 하리라고 한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다라고 말해져야 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수보리여 즉 보살이라고 이름할 만한 그 어떤 법이 있겠는가?
수보리가 대답했다. 참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보살이라고 이름 할만한 그 어떤 법도 없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중생들 중생들이라는 것은 수보리여, 비(非)-중생들이라고 그들은 여래에 의해서 설해졌다, 그래서 말해지기를 중생들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여래는 설하기를, 일체-법들은 무아(niratman)다, 일체 법들은 무중생(nir-sattva)이고 무인(nir-jiva)이고 무수자(nir-pudgala)라고.
수보리여 보살이 이와 같이 말하기를, 나는 (불)국토의 장엄들을 이룩하리라 한다면 그도 역시 그와 같이 (보살이 아니라고) 오직 말해져야 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수보리여 (불)국토 장엄들, (불)국토의 장엄들이라는 것들은 그것들은 비장엄들(국토의 비장엄들)이라고 여래에 의해서 설해졌나니, 그래서 말해지기를 (불)국토의 장엄들이라고 한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이 무아(niratman)인 법들 무아(niratman)인 법들이라고 확신하는, 그는 여래 아라한 삼막삼붓다에 의해서 보살 마하살이라고 불리워진다.
*보살승에 굳게 나아가는 자는 어떻게 머물러야 하고 어떻게 수행해야 하고 어떻게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하겠습니까?
모든 중생들은 나에 의해서 무여 열반계에 완전히 열반에 들게 해야 한다. 이렇게 다시 중생들을 완전히 열반에 들게 하고서 어떤 중생도 완전히 열반에 들게 된게 아니다.
①어떻게 머물러야 하고- 무여 열반계에 완전히 열반에 들게 해야 한다.
②어떻게 수행해야 하고 - 이렇게 다시 중생들을 완전히 열반에 들게 하고서
③어떻게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하겠습니까? - 어떤 중생도 완전히 열반에 들게 된 게 아니다.
*여래가 연등 여래 아라한 삼막삼붓다의 곁에서 아뇩다라 삼막삼보리를 철저히 깨달았다 할 그 어떤 법도 없습니다.
삼막삼보리 - 삼막삼붓다
*여래 아라한 삼막삼붓다에 의해서 아뇩다라 삼막삼보리를 철저히 깨달은 그 어떤 법도 없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연등 여래에 의해서 인정이 되었다.
무법(無法) - 아뇩다라 삼막삼보리 - 삼막삼붓다
*여래에 의해서 아뇩다라 삼막삼보리가 철저히 깨달아졌다 할 그 어떤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보리여 여래에 의해서 철저히 깨달아지거나 설해진 법(에는), 거기에는 진리도 없고 거짓도 없기 때문이다.
철저히 깨달아졌다 할 그 어떤 법이 없기 때문이다 = 철저히 깨달아지거나 설해진 법(에는), 거기에는 진리도 없고 거짓도 없기 때문이다.
무법 = no 진리, no 거짓 (no A, no anA)
*일체-법이라 한 것은 비-법(非一體法)이라고 여래에 의해서 설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해지기를 일체-법이 불법이라 한 것이다.
일체법이 있으려면 비일체법이 있어야만 비로서 현상에서 일체법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도 역시 비일체법이 있으려면 일체법이 있어야만 비로서 현상에서 비일체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둘 다 반쪽짜리이다. 반쪽짜리는 궁극일 수 없다.
그러므로 일체법 = 비일체법
그러므로 일체법 = no 일체법, no 비일체법 = 무법 = 불법
*그것은 마치 사람이 있어서 구족한 몸과 전체 몸을 가진 것과 같다.
존자 수보리가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여래에 의해서 사람이 설해지기를 이(것) 구족한 몸과 전체 몸이라 하신 것은, 그것은 비-몸(非구족한 몸, 非전체 몸)이라고 세존이시여 여래에 의해서 설해졌습니다, 그래서 말해지기를 구족한 몸, 전체 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10장에서 atma bhava = a-bhava(anatma bhava)
그것은 no bhava no abhava = 그래서 atma bhava
여기서는 구족한몸(kaya)과 전체몸(mahakaya) = a-kaya
그러므로 ‘no kaya, no a-kaya' = 구족하고 전체인 kaya
*나는 중생들을 완전히 열반에 들게 하리라고 한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다라고 말해져야 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수보리여 즉 보살이라고 이름할 만한 그 어떤 법이 있겠는가?
수보리가 대답했다. 참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보살이라고 이름 할만한 그 어떤 법도 없습니다,
①중생들을 열반에 들게 하는 보살
②보살에 의해서 열반에 들게 되는 중생들
서로가 ‘나와 너(자타)’가 있는 이분법이다. 그러므로 ①②번 둘 다 중생들이다.
①번은 낮은 중생들
②번은 높은 중생들
*중생들 중생들이라는 것은 수보리여, 비(非)-중생들이라고 그들은 여래에 의해서 설해졌다, 그래서 말해지기를 중생들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여래는 설하기를, 일체-법들은 무아(niratman)다, 일체 법들은 무중생(nir-sattva)이고 무인(nir-jiva)이고 무수자(nir-pudgala)라고.
중생들 = 비-중생들 ====> 그러므로 nir-sattva(중생들)
nir-중생들 = nir 중생들, nir 비-중생들
niratman = nir atman, nir anatman
①no atman-상(相)
②no atman-집착
③no atman-견해
④atman = anatman(지구에서 현재 무아라고 해석하고 있는 단어)
⑤no atman, no anatman = atman
⑥일체 법들은 niratman = niratman, niranatman
no bhava no abhava = 그래서 atma bhava
그러므로 일체법들에서 niratman, niranatman = 일체법(일체법과 비일체법)을 초월한, 법계가 아닌 atman(궁극) 이다.
*수보리여 보살이 이와 같이 말하기를, 나는 (불)국토의 장엄들을 이룩하리라 한다면 그도 역시 그와 같이 (보살이 아니라고) 오직 말해져야 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수보리여 (불)국토 장엄들, (불)국토의 장엄들이라는 것들은 그것들은 비장엄들(국토의 비장엄들)이라고 여래에 의해서 설해졌나니, 그래서 말해지기를 (불)국토의 장엄들이라고 한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이 무아(niratman)인 법들 무아(niratman)인 법들이라고 확신하는, 그는 여래 아라한 삼막삼붓다에 의해서 보살 마하살이라고 불리워진다.
①나와 불국토가 이분법이다.
②불국토와 비불국토가 이분법이다.
진정한 불국토는 = no불국토, no비불국토
무아(niratman)인 법들 = 법들(법계, 요소들)을 모두 불어서 끈 것, 법들에서 존재와 비존재를 모두 불어서 끈 것.
법들에서 오온들(오온들과 비오온들)을 모두 불어서 끈 것.
제법무아
sarva-dharma niratman(금강경) -
sarva-dharma anatman(초기경전)
초기경전:
①제행무상
②일체개고
③제법은 아트만이 아니다(sarva-dharma anatman)
오온들은 아트만이 아니다.
①오온들은 나의 것이 아니고
②오온들은 나가 아니고
③오온들은 나의 atman이 아니다.
※오온들은 나의 atman이 아니다 = 오온들은 anatman이다(오온들은 아트만이 아니다).
즉 오온들은 나의 atman이 아니다 = 오온들은 아트만이 아니다.
atta(atman)를 등불로 삼음 경(S22:43)
비구들이여, atta를 등불로 삼고 atta를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atta가 아닌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비구들이여, atta를 등불로 삼고 atta를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 자들은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은 무엇으로부터 생기고 무엇으로부터 발생하는가?’라고 그 근원을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은 무엇으로부터 생기고 무엇으로부터 발생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몸을 atta라고 관찰하고,
몸을 가진 것이 atta라고 관찰하고,
몸이 atta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몸 안에 atta가 있다고 관찰 한다.
그러나 그런 그의 몸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이 일어난다.
그는 느낌을... 인식을... 의도들을... 알음알이를 atta라고 관찰하고...절망이 일어난다.(‘오온들 = atta’라고 잘못 관찰하였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겨난다. 즉 오온들 = anatta, 오온들은 atta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몸의 무상함과 변화와 빛바램과 소멸을 체득하여 ‘이전의 몸과 지금의 몸, 그 모든 몸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반야로 보는 자들은 근심, 탄식... 절망을 모두 버린다.... 느낌의... 인식의... 의도들의... 알음알이의... 절망을 모두 버린다...(오온들의 무상함과 변화와 빛바램과 소멸을 체득하여... 그 모든 오온들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보는 자들은...괴로움을 모두 버린다
①오온들은 나의 것이 아니고
②오온들은 나가 아니고
③오온들은 나의 atta가 아니다)
도 닦음 경(S22:44)
비구들이여, 싸까야(sakkaya = 오취온, 싸까야 경 S22:105)의 생겨남으로 인도하는 길과 오취온(싸까야)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을 설하리라...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오취온의 생겨남으로 인도하는 길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몸을 atta라고 관찰하고, 몸을 가진 것이 atta라고 관찰하고, 몸이 atta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몸 안에 atta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는 느낌을... 인식을... 의도들을... 알음알이를...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싸까야(오취온)의 생겨남으로 인도하는 길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싸까야의 생겨남으로 인도하는 길이란 괴로움의 생겨남으로 인도하는 관찰이라는 것이 그 뜻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싸까야(오취온)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인가?
비구들이여... 몸을 가진 것이 atta라고 관찰하지 않고...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싸까야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싸까야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관찰이라는 것이 그 뜻이다.
('오취온 = atta'라고 잘못 관찰해서 싸까야가 생기고 괴로움이 생긴다. ‘오취온을 atta라고 관찰하지 않음으로써 싸까야가 소멸하고 괴로움이 소멸한다.)
무아 경(Anatta - sutta, S22:68) - 세상의 해석
비구여, 무아인 것에 대한 그대의 욕구를 버려야 한다....
세존이시여, 몸은 무아이니그것에 대한 저의 욕구를 버려야 합니다. 느낌은... 인식은... 의도들은... 알음알이는 무아이니 그것에 대한 저의 욕구를 버려야 합니다...
장하고 장하구나, 비구여...
atta가 아닌 것 경(Anatta - sutta, S22:68)
비구여, atta가 아닌 것에 대한 그대의 욕구를 버려야 한다....
세존이시여, 몸은 atta가 아니니 그것에 대한 저의 욕구를 버려야 합니다. 느낌은... 인식은... 의도들은... 알음알이는 atta가 아니니 그것에 대한 저의 욕구를 버려야 합니다...
장하고 장하구나, 비구여...
자기 것이 아님 경, 자아에 속하지 않는 것(무아에 속하는 것) 경(Anattaniya-sutta, S22:69) - 세상의 해석
비구여, 자기 것이 아닌 것(무아(無我)에 속하는 것)에 대한 그대의 욕구를 버려야 한다.
세존이시여, 몸은 자기 것이 아니니(무아에 속하는 것이니) 그것에 대한 저의 욕구를 버려야 합니다. 느낌은... 인식은... 알음알이는... 자기 것이 아니니(무아에 속하는 것이니) 그것에 대한 저의 욕구를 버려야 합니다.
장하고 장하구나 비구여, 몸은 자기 것이 아니니(무아에 속하는 것이니) 그것에 대한 그대의 욕구를 버려야 한다. 느낌은...인식은... 알음알이는... atta에 속하지 않는 것이니 그것에 대한 그대의 욕구를 버려야 한다.
atta에 속하지 않는 것 경(Anattaniya-sutta, S22:69) - 순일 해석
비구여, atta에 속하지 않는 것(anattaniya, atta의 소유가 아닌 것, 아따에 속하지 않는 것)에 대한 그대의 욕구를 버려야 한다.”
세존이시여, 몸은 atta에 속하지 않는 것이니 그것에 대한 저의 욕구를 버려야 합니다. 느낌은... 인식은... 알음알이는... atta에 속하지 않는 것이니 그것에 대한 저의 욕구를 버려야 합니다.
장하고 장하구나 비구여, 몸은 atta에 속하지 않는 것이니(아따의 소유가 아니니) 그것에 대한 그대의 욕구를 버려야 한다. 느낌은... 인식은... 알음알이는... atta에 속하지 않는 것이니 그것에 대한 그대의 욕구를 버려야 한다.
안의 무상 경(S35-1) - 세상의 해석
비구들이여, 눈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무아(無我, anatta)다. 무아인 것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나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귀는...코는...혀는...몸은...마노는 무상하다...
*무아(anatta) = 나의 자아(atta)가 아니다
안의 무상 경(S35-1) - 순일 해석
비구들이여, 눈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움인 것은 atta가 아니다(anatta이다). atta가 아닌 것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나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atta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반야로 봐야 한다.
귀는...코는...혀는...몸은...마노는 무상하다...
Cakkhuṃ, bhikkhave, aniccaṃ. Yadaniccaṃ tam dukkhaṃ; yaṃ dukkhaṃ tadanattā. Yadanattā taṃ 'netaṃ mama, nesohamasmi, na meso atta'ti (evametaṃ yathābhutaṃ sammappannāya datthabbaṃ.)
*anatta = 나의 atta가 아니다
*무아(anatta) = 나의 자아(atta)가 아니다(세상의 해석)
anatta(atta가 아니다) = 나의 atta가 아니다(순일 해석)
즉 atta가 아닌 것 = 나의 atta가 아니다
안의 괴로움 경(S35-2) - 세상의 해석
비구들이여, 눈은 괴로움이다. 괴로움인 것은 무아(anatta)요, 무아(anatta)인 것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나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 오온 = 무아(anatta) = 나의 atta가 아니다
안의 괴로움 경(S35-2) - 순일 해석
비구들이여, 눈은 괴로움이다. 괴로움인 것은 atta가 아니요(anatta), atta가 아닌 것(anatta)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나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atta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봐야 한다.
* 오온 = atta가 아니다 = 나의 atta가 아니다.
* 오온 = 무아(anatta) = 나의 atta가 아니다(세상의 해석)
오온 = atta가 아니다 = 나의 atta가 아니다(순일 해석)
즉
① 오온 = anatta
② 오온 is no(not) my atta(오온은 나의 atta가 아니다)
③ anatta = no my atta
열반의 경
태어나지 않고 생겨나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고 형성되지 않은 것이 있다.(열반) 태어나지 않고 생겨나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고 형성되지 않은 것이 없다면 세상에서 태어나고 생겨나고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것의 버림이 알려질 수 없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태어나지 않고 생겨나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고 형성되지 않는 것이 있으므로, 세상에서 태어나고 생겨나고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것으로 부터의 버림이 알려진다.
열반의 경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계가 있는데, 거기에는 땅도 없고 물도 없고, 불도 없고, 바람도 없고, 공무변처 세계도 없고, 식무변처 세계도 없고, 무소유처 세계도 없고, 비상비비상처 세계도 없고,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고, 태양도 없고 달도 없다.
비구들이여, 거기에는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고, 머무는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없고, 생겨나는 것도 없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의지할 처를 여의고, 윤회를 여의고 대상을 여읜다.
이것이야말로 괴로움의 종식이다.
atta에 대한 견해 경(S22:156)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취착하고 무엇을 천착하여 atta에 대한 견해가 생겨나는가?....
비구들이여, 몸이 있을 때, 그리고 몸을 집착하고, 몸을 천착하여 atta에 대한 견해가 생겨난다. 느낌이... 인식이... 의도들이... 알음알이가... atta에 대한 견해가 생겨난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몸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atta에 대한 견해가 생겨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인식은... 의도들은... 알음알이는... 항상한가 무상한가?
...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집착하지 않는데도 atta에 대한 견해가 생겨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반야로 본다.
깟짜야나여, 이 세상은 대부분 두 가지를 의지하고 있나니 그것은 있음과 없음이다.
깟짜야나여, 세상의 생겨남을 있는 그대로 바른 반야로 보는 분에게는 세상에 대해 없음이라는 것(견해)이 존재하지 않는다. 깟짜야나여, 세상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바른 반야로 보는 분에게는 세상에 대해 있음이라는 것(견해)이 존재하지 않는다.
깟짜야나여, 세상은 대부분 집착과 취착과 천착에 묶여 있다. 그러나 마음이 머무는 곳이요, 천착하는 곳이요, 잠재하는 곳인 그러한 집착과 취착을 ‘나의 atta’라고 가까이 하지 않고 취착하지 않고 고수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괴로움이 일어날 뿐이고, 단지 괴로움이 소멸할 뿐이다.’라는 데 대해서 의문을 가지지 않고 의심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한 그의 지혜는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 깟짜야나여, 이렇게 해서 바른 견해가 있게 된다.
깟짜야나여, ‘모든 것은 있다.’는 이것이 하나의 극단이고 ‘모든 것은 없다.’는 이것이 두 번째 극단이다. 깟짜야나여, 이러한 양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중간에 의해서 여래는 법을 설한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님 경(S24:18)
비구들이여, 무엇이 있을 때, 그리고 무엇을 취착하고 무엇을 천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일어나는가?...
비구들이여, 몸(느낌, 인식, 의도, 아뢰야식)이 있을 때, 그리고 몸을 취착하고 몸을 천착하여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라는 견해가 생겨난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몸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라는 견해가 생겨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 안 것, 얻은 것, 탐구한 것, 마음으로 고찰한 것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취착하지 않는데도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견해가 생겨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