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대만에 와서 가장 놀랐던 것은 바로 '밥맛'이었다. 그다지 비싼 쌀을 산 것이 아닌데도, 한입 먹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맛이 났다. 대만은 특히 타이동의 즈샹(池上)현이 쌀로 유명한데, 즈샹미(池上米)라는 단어만 타이핑을 해도 침이 고인다.
언젠가 한국에서 장인어른께서 직접 농사지으신 쌀을 주신 적이 있었는데, 이 밥맛이 정말 굉장했다. 아니 송탄에서 이런 쌀이 나나요? 여쭤봤더니 조합에 갖다주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나누려고 따로 재배한 쌀이라고 하셨다.
한국에서는 쌀을 수확하면, 지역의 미곡종합처리장에 보낸다. 그러면 이 논과 저 논의 쌀이 섞인다. 그렇게 그 동네 타이틀을 달고 쌀이 나오는데, 어차피 섞여버리는 쌀이라 질보다는 양이 중요하게 된다.
쌀은 질소비료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데, 질소비료를 많이 쓸수로 수확량이 늘어나는대신, 질소비료를 많이 써서 수확한 쌀은 단백질 함량이 높아진다. 단백질 함량이 높아지면 밥이 맛이 없어진다. 그러면 쌀을 살때 단백질 함량을 보고 사면 되는데, 한국의 쌀은 등급표시만 하고 단백질 함량은 그냥 수우미 정도로 표기한다. 단백질을 수치로 표시하지 않고 수우미로 표시하는 것은 꼼수라고 생각하는데, 단백질 함량이 6% 이하면 다 '수'고, 7.1% 이상이면 전부 '미'인 것이다. 때문에 '수'를 받으려면 6%만 안넘으면 되지, 4%나 5%가 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시험범위에 없으면 공부하지 않는 이치와 같다.
그러나 대만쌀의 영양표시營養表示는 아주 정교하다. 대만에서 판매되는 모든 쌀은 등급은 물론 열량, 단백질, 포화지방, 트랜스지방, 탄수화합물, 당, 납성분을 정확한 수치로 표기하도록 되어있다. 굳이 어디 쌀인지 보지 않아도 지표들을 보면, 이 쌀은 어떤 맛이 날런지 알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대만의 농사는 시험범위에 나오는 저 지표들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질보다 양이 아니라, 질과 양을 모두 봐야하는 빡쎈 경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대만의 아주 좋은 쌀을 보면 단백질 함량은 3.6%, 4.9%, 5.3% 등등, 정교한 수치가 표시되는 것이다. 6%만 넘지않으면 되는 한국과 차원이 다른 쌀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우리 회사는 아주 작은 광고회사인데, 어쩌다보니 커뮤니티운영을 메인으로 하고 있다. 게임을 하다보면, 잘아시겠지만 빡치는 상황이 많이 생긴다. 유저들은 항상 이 빡치는 상황에서 운영자를 만나게 되는데, 마음은 급하고, 대응은 항상 성에 안차고, 그러다보면 자꾸 화가 나고, 이런 불만과 긴장이 아주 다반사다. 사실 게임의 페이스북 팬페이지 운영이라는 것이, 소식을 전하고 이벤트를 진행하면 끝인데, 이 유저들이 게임의 고충을 자꾸 털어놓는 것이다. 그런데, 유저들의 진정을 나몰라라하면, 이 유저들은 우리 팬페이지에서 맘상하고 떠난다는데에 어려움이 있다. 그렇게 유저들이 뭐 물어보면 답을 찾아보고, 계정 털린 유저가 있으면 위로하고, 뭐 버그가 있으면 한국에 알려드리고, 이런 생활을 하다보니 우리 회사의 링링씨는 아주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한 유저분이 이런 말을 전해주셨는데 두고두고 힘이 된다. "이런 사람을 운영자로 쓰는 것을 보면, 이 게임사가 대만 유저들을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우리는 이런 자부심과 자긍심이 있는데, 단순히 포스팅수나 조회수를 지표로 삼았다면 다다를 수 있는 지점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 고민이 되는 시점이 종종 오는데, 가까운 교회를 찾아가시라 권하고 싶지만, 그게 싫은 분도 많을테고. 😊 그러시면 '지표'를 다시 설정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사실 지표를 다시 정한다고해서, 방향을 바꾼다고 해서, 거기 가는 길을 아는 것은 절대 아니기에, 나 역시 내가 이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일이긴 해요. 노지사장이 노작가되고 나서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잘 보고계시지 않은가? 그래도 좋은 쌀이 뭔진 몰라도 그냥 '특등급'만 향해 가는 것과, 단백질/지방/탄수화합물/당/납성분을 조절하려고 가는 길은 길을 가는 방법이 당연히 다른 것이고, 이건 한국쌀과 대만쌀의 밥맛으로 차이가 나게 되어있는 것이다.
나 얼마 버는 사람인데 하고 마는 것과 나는 어떻게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는지에 따라서 '일의 맛'에도 굉장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