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반의 여성 소설가 마쓰 유메이에게 어느날 날아든 우편. 정부 산하 기관인 것으로 보이는 이 ‘문화문예윤리향상위원회’는 무려 소환장, 뒤이어 사람을 보내 마쓰 유메이를 바닷가 절벽의 미심쩍은 건물로 데려갑니다. 이 알 듯 말 듯한 기관은 왜, 어떻게, 무슨 권리로 소설가를 소환하는 것일까요. 주인공은 이 곳에서 무슨 일을 겪게 될까요.
추리/스릴러/범죄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일본에서 이 장르의 여왕이라고 할 수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이름이 익숙할 것입니다. 미야베 미유키가 일본 추리/스릴러/범죄 장르의 햇살 같은 존재라면, 우리나라에서 그 지명도가 미야베 미유키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오늘의 작가는 아마도 어둠, 그것도 짙은 어둠에 해당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어둠 속에서 실은 햇살 아래 보이는 것들보다 더 많은 것들의 이면이 선명하게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이면들이 단지 드러나 보이는 정도에 그칠 뿐 아니라 그 어둠 속 깊은 곳으로부터 날아와 읽는 이를 강타해서 잊지 못할 묵직한 충격과 감정을 상흔처럼 남기곤 합니다. 이번주 [북적북적]에서 함께 만나보고 싶은 사람은 바로 이 날카롭고 묵직한 어둠의 작가, 기리노 나쓰오입니다. 1951년생으로, 30대 초반의 주부였던 84년에 데뷔해 30년이 넘도록 활발하게 그만의 독보적인 이야기들을 펴내고 있는 사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아첨하지 않고 스스로에게서 우러나는 이야기를 뽑아내는 점에 있어서는 누구도 견줄 수 없는 유일한 작가, 기리노 나쓰오의 신작 [일몰의 저편]을 함께 읽고 싶습니다. ([일몰의 저편]은 우리나라에선 지난 11월말에 출간됐습니다.)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은 금기를 무시하는 소재로 가득한 걸로 유명합니다. 자극적인 소재를 부러 찾아읽는 편은 아닙니다. 오히려 꺼리는 편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리노 나쓰오를 에드거상 후보에 오르게 한 장편 [아웃]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책에도 토막살인, 사체유기, 살인충동 묘사 같은 소재나 상황들이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통속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들이 그토록 자연스럽게 납득되는 작품은 처음이었습니다. 그의 또다른 대표작 [그로테스크] 역시 2천년대 초반 실제 살인사건에 극단적인 상상력을 덧붙여 탄생했습니다. 동시대, 일본의, 여성작가 입장에서 바라본 세상을 거짓 희망이나 환멸이 끼어들 여지 하나 남기지 않고 악마적으로 밀어붙인 통찰력이 섬뜩하게 독자를 사로잡는 걸작입니다. 그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누구의 편이 되거나 적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조금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글은 이토록 강력하고 진실한 것이로구나. 추악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은 통찰은 이다지도 힘이 센 것이로구나. 제가 기리노 나쓰오의 글들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그 기리노 나쓰오가 [아웃]으로부터 20년 지난 시점에 마쓰 유미에의 입을 빌려 “절망한 탓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작품이 신작 [일몰의 저편]입니다. 그가 이 작품에서 통렬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문학과 예술, 사상에 가해지는 일종의 신(新)전체주의적 경향입니다. 일본의 최근 사회적 경향에 대한 비판적 반응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비단 일본인이 아니더라도 강렬하게 공감하며 읽게 되는 대목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넷플릭스에서 선보였던 연상호 감독의 드라마 [지옥]과 그 안의 ‘화살촉’들이 생각났습니다. 과연 이것이 [일몰의 저편]이나 [지옥]의 허구적 과장일 뿐일까. [1984]나 [동물농장]의 세계에나 등장하는 꾸며낸 상황일 뿐일까. 기리노 나쓰오가 던지는 오늘날의 질문과 절규는 오늘의 우리에게 너무나도 생생하게 감겨듭니다. 이 이야기가 가감없이 풀어놓은 강력하고 비관적인 절망의 정서가 결국은 우리가 소설로부터 길어올리는 자성과 용기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일몰의 저편]을 읽습니다.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들은 편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때로 강렬한 스트레스와 함께 그보다 더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껴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제 클래식이 된 [그로테스크]와 [아웃], 그리고 오늘의 신간 [일몰의 저편]을 감히 추천드립니다.
*북스피어 출판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진행: 권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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