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Major)와 마이너(Miner),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대뜸 미국 프로야구의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부터 생각하는 분도 있겠고 저처럼 언론계에 있다면 메이저 언론, 마이너 언론부터 나올 수 있겠죠. 주류와 비주류, 소수자-마이너리티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40대에 이성애자 남성, 4년제 대학을 나왔고 사무직 회사원이면서 정규직에 기혼자, 여기에 서울에서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빼도 박도 못한 주류-메이저에 속하겠죠. 그렇긴 하지만 저는 그래도 제게 약간은 마이너리티의 감성이 있다고 느낍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조금은 그런 면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국에 있을 때 더욱 그러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특성이 달라지진 않았으나 저는 이방인에, 아시아인이기도 했으니 소수자로 이런저런 감상을 갖게 되더라고요. 코로나 시국을 틈타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 아시안 헤이트, 증오범죄를 접하니 더욱 그랬습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살고 있다면 어떨까,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오늘 북적북적에서 함께 읽고 싶은 책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인 캐시 박 홍이 쓴 <마이너 필링스>입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에 붙은 부제는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입니다. 작가의 부모는 한국에서 살다 미국으로 이민을 가 작가를 미국 LA에서 낳았습니다. 이민 2세, 한국계 미국인이죠. 네이티브 미국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어려서는 집에서 한국어만 쓰며 살아서 학교에 갈 때까지 영어를 거의 몰랐다는 이력은 꽤 특이해 보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미국인이 아닌 듯한 묘한 감정, 작가가 그 이유를 인종주의에서 찾습니다.
한국에서 출간된 건 작년 8월이지만, 미국에서는 그보다 1년여 전인 2020년 2월에 나왔습니다. 코로나가 미국에 본격 상륙하기 직전이었죠. 책이 나온 뒤에 코로나가 번지면서 아시안 혐오로 이어지는 그런 상황이 전개되면서 이 책이 더욱 주목받게 됐습니다.
'마이너 필링스'는 뜻 그대로 사소하고 작은 감정들이란 뜻이지만 마이너리티, 소수자가 느끼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미국은 '인종의 용광로'라 불리듯이 백인 외에도 흑인, 아시안, 히스패닉 등 여러 인종이 섞여 살고 있지만 인종주의를 의식한 정책이든 방안들은 주로 흑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느낌을 저조차도 어느 정도 받았습니다. 이는 아시안이 받는 '마이너 필링스'는 더더욱 주목받지 못해 왔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아시안이 당하는 차별이나 범죄를 애써 인종 혐오나 증오 범죄가 아니라고 하는 당국의 입장에서도 드러납니다.
코로나로 여러 모로 달라진 세상이 대개 부정적이지만 그나마 긍정적인 건 가려져 있던 어떤 민낯이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우리 안의 인종주의가 위기상황을 맞아 손쉽게 분출됐다고 할까요. 이 책이 나온 것도 그런 맥락으로 읽힙니다.
뉴욕에 아시안 대상 범죄가 여러 건 발생하면서 가족이나 친지들이 안부를 묻는 연락이 종종 왔습니다. 괜찮다고 했지만 실은 사건 하나가 있었습니다. 집 근처에 '타겟'이라는 대형 마트에서 겪은 일입니다. 생필품 살 게 있어서 둘러보고 있는데 '퉤' 소리가 들렸고 살펴보니 제 신발과 다리에 액체가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누군가 침을 뱉은 것이었죠. 저쪽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는 한 백인 여성이 그런 것으로 보였습니다. 황당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해 잠시 멍하니 있노라니 그 여성은 제 쪽을 슬쩍 쳐다보고는 인상을 쓰면서 급히 가버렸습니다. 제게 침을 뱉은 게 확실해 보였습니다.
저는 어떻게 했을까요? 바로 말씀드리면, 침 닦아내고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렇게 비겁하게 자리 떴던 이유는, 이를 입증하기 위한 과정의 지난함에 비해 제가 받을 수 있는 보상이 기껏해야 사과 정도라는 판단에서였습니다. 그냥 가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해서 그랬지만 반 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그날 그 더러웠던 기분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제가 아시안이라 그랬을까요? 그런 것일까 싶지만 알 수 없습니다. 저라는 사람의 인격이나 특성과 관계없이 그저 존재만으로도 누군가로부터 혐오를 받는 대상이 됐다는, 혹은 될 수 있다는 건 꽤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미국에서 한국계 미국인, 혹은 아시안이 당하는 문제는, 한국이든 미국이든 소수자들이 겪게 되는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조금씩 버전을 달리하면서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 일 같다는 거죠. 다소 장황하게 제가 겪은 사소한 사건을 이렇게 길게 말씀드린 것도 그래서입니다. 저에겐 불쾌하지만 의미 있는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마이너 필링스, 그 감정과 기분은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에 늘 있었던 존재"라는 책 말미의 문장이 마음 깊이 와닿았습니다.
*출판사 마티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진행: 심영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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