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세이집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는 ‘결혼준비 가이드북’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중 5%의 사람들을 위한 결혼 가이드북’입니다. 우리 중 5%에 속하는 작가 김규진 씨가 20대 후반이었던 2년 전 결혼을 결심했을 때, 95%의 ‘남들 하는 정도로만’ 결혼하는 것은 하나부터 열까지 쉽지 않았습니다.
김규진 씨는 -본인의 표현을 그대로 빌려 오자면- '보수적인 유교 레즈비언'입니다. 남달리 파격적인 삶을 살겠다는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학창시절에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이제는 성실하게 커리어를 쌓으면서 인생을 효율적으로 경영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이 책에서도 무엇보다 도드라지는 것은 김규진 씨의 똑부러진 현실감각입니다.
그래서,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지 않음으로 인해서 현실 속 생활인들이 겪어야 하는 문제들을 김규진 씨가 이 책에서 조목조목 짚을 때 자연스러운 공감에 이르게 됩니다. 배우자와 항공 마일리지를 가족 결합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부터, 사랑하는 사람이 응급실에 가야 할 일이 생긴다고 해도 내가 그녀의 보호자라고 나서기 어렵다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김규진 씨가 평범하게 살기란 사사건건 쉽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제도가 이 평범한 부부가 평범한 삶을 누리는 것을 가로막습니다.
김규진 씨 부부는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신고할 수 있는 지역을 찾다가 지난 2019년 맨해튼에서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한국인인 두 사람에게 미국에서의 혼인신고는 상징적인 의미 그 이상의 것은 되지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두 사람은 미국에서 발급받은 혼인증명서로 국내 항공사 마일리지의 가족 결합 신청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변화는 이렇게 조금씩 옵니다. 여기서 언감생심 꿈꿀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일들이 사실은 세계 곳곳에서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을 때, 결국은 이곳의 빗장이 풀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발걸음을 공유한 김규진 씨와 같은 사람들이 자신 뿐 아니라 다른 부부들의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조금씩 더 앞당기고 있습니다.
때로 세상이 규진 씨에게 묻습니다. 이 책에서 규진 씨 부부의 양가 부모님 가운데 이 부부를 가장 지지해 주는 것으로 나오는 아버지마저도 때로 묻습니다.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 라고요. 왜 굳이 이렇게까지 너의 결혼에 대해서 온 세상에 알려야 하느냐. 아니, 결혼하지 않고 그냥 같이 살면 안 되느냐. 그냥 묻어가면 어떻겠느냐.
하지만 김규진 씨는 똑부러진 현실감각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 길을 택할 수 없습니다. 오늘보다 내일의 내 인생을 조금 더 낫게 만들려면 ‘조용히 묻어가는 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규진 씨는 현재 이 시점에서 자신의 삶을 공개해 ‘동성결혼 가이드북’을 제시하는 유부녀가 되기로 합니다. 한국인 부부가 굳이 맨해튼을 찾지 않고 살던 동네 주민센터에서 혼인신고를 할 수 있는 날이 왔을 때, 자신의 삶도 좀더 탄탄하게 편안해져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함께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을 아주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 이 책은 동성결혼의 경험을 공유한 신혼부부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시민의식과 시민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는 이미 동성결혼 법제화를 지지하는 사람들보다는 “그래도 좀.. 그거는… 동성애는 좀… 그렇지 않아요?”라고 주저주저 이야기하는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 규진 씨는 자신의 입장에 서 보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을 헤아릴 줄 아는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규진 씨에게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설득할 줄 아는 ‘역지사지의 센스’,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부분들을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있는 소수자가 갖기 힘든 도량이 있습니다. 모를 수 있다는 것, 낯설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한계를 설정하지 않은 대화를 시도하는 책입니다. 내가 이해 받기 원하는 만큼, 상대방도 입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김규진 씨는 알고 있습니다. 온라인에는 증오의 언어들만 유독 넘쳐나는 것 같지만, 정작 규진 씨를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게 된다면 “어허.. 우리 딸도 저 반만큼만 똑똑하면 걱정이 없겠는데.” 할 어른들이 더 많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는 5%의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는 결혼안내서일 뿐만 아니라, 변화와 대화의 가능성을 믿는 소수자가 95%에게 먼저 건네는 인사이기도 합니다. (아, 100%의 인구에게 보탬이 되는 ‘꿀팁’도 있습니다. 김규진 씨가 지금의 아내에게 프로포즈하기 위해 준비했던 ‘프리젠테이션’은 그야말로 거절당할 수 없는 프로포즈의 정석입니다. 결혼하고 싶은 상대가 생긴 분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시면 좋은 참고가 될 것입니다.) 이런 친구랑은 트고 지내는 게 좋다는 것을 이 책을 집어 들면 아마도 곧바로 공감하시게 될 것입니다.
*’위즈덤하우스’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진행: 권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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