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Cannes) 영화제에 방문했던 사람에게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칸은 어떤 동네예요?” “음… 왜 칸에서 영화제를 하는지 알 것 같아. 원래 가만히 내버려둬도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는 동네들은 축제 같은 걸 굳이 하지 않거든.”
‘칸’이라는 동네에 대해 전혀 다른 인상을 받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축제가 열린다 = 둘러볼 게 적다’는 도식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도 물론 많이 있겠지만, 관광객을 유치해야겠다고 결심한 지역이 제일 먼저 떠올릴 수 있는 방편 중의 하나로 축제를 꼽을 수 있다는 데 크게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매력을 최대한 끄집어내 포장하거나, 마땅한 게 없으면 ‘기획’을 통해서라도 여행자들의 발길을 붙잡으려는 노력. 그런 목적으로 시작하는 축제는 어쩌면 취업준비생의 ‘자기소개서’와도 비슷합니다. ‘나를 뽑아주세요’라는 목적으로 쓰는 글에 물 흐르듯 자연스러움과 세련미까지 흐르게 하는 건 사실 어느 모로 보나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인데, 취업준비생은 그 ‘미션 임파서블’을 달성해야 합니다. 지역축제들에도 비슷한 과제가 요구됩니다. ‘자소서’에서 배어나오는 간절함의 가치는 그 간절함을 이해하는 애정을 가진 눈에라야 비로소 보입니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열리는 지역축제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북적북적]에서 함께 읽는 책 [전국축제자랑]에는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김혼비와 박태하, 부부 작가인 두 사람은 2018년 10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우리나라 12곳의 지역축제를 함께 방문하고 에세이를 하나씩 남겼습니다. 격월 문학지 [릿터]에 연재됐던 이 글들이 올봄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전국축제자랑]을 소개함으로써, [북적북적]에서는 [전국축제자랑]의 공저자 두 명 중 김혼비 작가가 지금까지 낸 세 권의 에세이집을 모두 읽게 되기도 했습니다. 심영구 기자가 소개한 김혼비 작가의 데뷔작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를 재미있게 듣고, 두번째 에세이집 [아무튼, 술]을 낭독하면서 “단언컨대, 올해(2019년) 출간된 모든 에세이집 가운데 가장 확실한 웃음, 요샛말로 ‘현웃’을 보장한다”고 썼던 기억이 납니다.
► 북적북적 172회 : 2019 우아하게, 호쾌하게,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094685&plink=SEARCH&cooper=SBSNEWSSEARCH
► 북적북적 193회 : 몰디브...아니 모히토 한 잔 같은 이 한 권! ‘아무튼, 술’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301224&plink=SEARCH&cooper=SBSNEWSSEARCH
앞서 [북적북적]에서 낭독한 두 권에서도 유난히 돋보였던 현란한 수준의 드리블… 아니 재치가 [전국축제자랑]에도 번득입니다. 그리고 [아무튼, 술]을 소개하면서 말씀드렸던 ‘럼을 꽉꽉 채워서 제대로 만든 모히토 한 잔’ 같은 에너지도 여전합니다. 청량하고 알싸한 한 모금으로 시작하는데 바닥까지 비우고 나면 뜨거운 알코올기운이 묵직하게 가슴을 치고 올라올 수 있도록 제대로 만든 칵테일처럼, 현란한 유머감각을 따라가다 보면 올곧게 선 문제의식과 생각들에 문득 공감과 함께 도착해 있게 하는 글들입니다.
이 책은 아내 김혼비 작가와 남편 박태하 작가가 함께 썼습니다. 한 편씩 나눠 맡은 것도 아니고 공저를 한다는 게 잘 짐작이 가지 않는 과정이긴 하지만, 두 분은 서로가 서로를 퇴고하길 반복하면서 문자 그대로의 ‘공동집필’을 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건 누가 쓴 문장이고 저건 누가 내놓은 생각인지 따로 분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함께 쓰기’가 두 분에게는 가장 효율적인 글쓰기 방식이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3주에 한 번씩 제게 돌아오는 [북적북적] 낭독에서, 어쩌다 보니 부부 작가의 에세이집을 벌써 여러 권 째 선택하게 됐습니다. 딱히 의도했던 것은 아닙니다. [북적북적]에 소개할 책을 나름 열심히 찾아보면서 갖게 된, 이것도 편견이라면 편견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지난 1년간 집어든 부부 작가의 책들은 모두 소개로까지 이어졌습니다. 한 사람이 글을 쓰고 또 한 사람이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아니면 이 책처럼 글을 함께 쓰든… 부부 작가가 낸 책은 ‘믿고 읽을 수 있다’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부부가 함께 책을 낸다는 기획은 애초에 부부가 될 정도로 서로 마음이 맞았던 사람들이 여전히 그 관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으니까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을 같이 꾸려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가능한 수준의 밀도 높은 소통을 하면서 책을 만들어 나갔을 터입니다.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갈등을 빚는 순간이 있더라도, 제대로 잘 싸워서 끝을 보았으니까 결과물이 나왔을 것입니다. 세상에 내놓아 소통하고 교감하기에 앞서, 이미 그 정도 소통과 교감의 과정을 거쳐 나온 결과물엔 읽는 사람의 마음에도 문자 그대로 찰떡처럼 와서 달라붙을 수 있는 매력이 녹아 있게 되는 게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이 책, [전국축제자랑]도 그런 매력이 가득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12개의 축제들에 대해 들어봤거나 다녀오신 분들도 있겠지만, 아마 잘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이 지역축제들의 그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느낌을 박태하, 김혼비 두 작가는 한 마디로 ‘K스러움’이라고 축약했습니다. 뭔가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해도 될 것 같은 축약입니다. 우리 모두 그 느낌이 무엇인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압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작 이 축제들이 모두 중단되거나 온라인으로만 축소 운영되고 있을 상황에서, 이역만리 먼 나라에 와서 부부 작가가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롭게 살펴본 K축제들에 대해 읽고 있자니, 그 ‘K스럽다’는 말 자체의 느낌이 전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우리 모두 그 느낌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K스러움’이란, 마치 눈가의 주름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다른 사람이 함박웃음을 짓는 걸 보면 ‘웃으니까 좋네’ 정도의 인상을 받는 데 그치고 말지만,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나를 문득 거울로 보게 되면 ‘어!? 눈가에 없던 주름이 생겼네?’ 같은 생각까지 단숨에 들어버리곤 합니다. ‘K스러움’이라고 명명하며 날것과 이면까지 신속하게 파악하고 그래서 무엇보다 모종의 민망함이 앞서게 되는 것은 그것이 내 것, 이기 때문이 아닐까. ‘K스러움’에 대해 느끼는 이 민망한 기분은, 그 자체로, 내가 ‘K스러움’의 일원이고 이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을 방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K스러움’ 그 자체인 것 같은 일종의 ‘두유노김치 감성’ 같은 것마저도 실은 한국인만의 전유물은아닙니다. “정념과 관성이 교차하는” ‘두유노김치 감성’은 세상 어디를 가나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사회, 어느 공동체에나 ‘도대체 우리는 왜 이럴까’ 한탄과 찬탄이 동시에 뒤섞인 묘한 분위기가 있고, 오로지 세련되기만 하거나 오로지 혼돈 뿐인 곳은 사실은 별로 없습니다.
남의 것을 볼 때는, 나의 필요에 따라서, 긍정적인 점, 또는 부정적인 점을 확대해서 추려내게 됩니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골격을 더듬어서 굵직한 결론 또는 일방적인 재단을 내려버리기가 좀더 쉬워집니다. 그런데 ‘내 것’은 골격 뿐만 아니라 살갗, 뾰루지, 여드름 같은 것까지 한꺼번에 바로 보이곤 합니다. 그에 대한 일말의 이해를 사실은 이미 갖고 있기 때문에 일방적인 사랑이나 증오를 느끼기가 어렵고, 다른 그 어떤 감정보다도, ‘어휴, 징글징글해, 민망해’ 같은 마음이 먼저 압도하는 것 같습니다.
박태하, 김혼비 두 작가는 ‘우리들의 K스러움’을 함께 뒤집어보기에 안성맞춤인 듀오입니다. 일단 뛰어들어 축제의 흥과 재미를 함께 누리는 걸 망설이지 않기 때문에, 축제가 끝난 후 쌓이는 쓰레기더미처럼 남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게 포착해 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시점들은 주로 2019년입니다. 마지막 축제 방문이 2020년 1월이었습니다. 여기 실린 축제들 대부분이 작년에는 제대로 열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올해 역시 그 모습으로 다시 열릴 수 있을지 여전히 장담하기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더욱 애틋한 마음으로 읽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두 작가도 “축제장 안팎에서 마주치고 스쳐 갔던 모든 이들의 안녕이 궁금하고, 그들의 삶의 공간으로서 도시의 안부가 궁금하다.”고 쓰고 있습니다. 두 작가의 맛깔스러운 문장들에 올라타 앉은 자리에서 한반도 반 바퀴를 돌며 코로나 이전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들에 젖을 수 있었던 저를 포함해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이들과 비슷한 심정으로 덮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까지 가서, 누구들을 서로서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민음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진행: 권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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