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람]은 홍은전 님이 썼습니다. 평소와 달리 ‘홍은전 작가님’이라고 시작하지 않는 이유는 ‘작가’보다는 ‘기록자’라는 호칭을 더 좋아할 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제 짐작일 뿐이긴 합니다. 직접 묻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작가’가 어딘가 ‘기록자’보다 ‘있어보이는’ 호칭이죠? 적어도 저는 그런 ‘느낌적 느낌’을 갖고 있었다는 걸 문득 깨달았습니다. (편을 가르고, 재단하고, 순위를 매기는 버릇을 참 떨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작가’를 글을 쓰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단어로 생각한다면, ‘기록자’는 그들 중에서도 얼마나 어렵고 또 무섭도록 중요한 위치에 있는가. 얼마나 서릿발처럼 외롭고 날카로운 자리인가. 기자인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기록자에게는 지레 치고 앞서 나갈 수 있는 곳도, 물러설 곳도 없습니다. 때로 어떤 작가들에게 허용되는 것처럼, 상징과 비유의 조금은 비겁하게 넉넉한 품 안에 숨을 수도 없습니다.
홍은전은 인권활동가입니다. 노들장애인야학에 교사로 참여한 이래, 인권 뿐 아니라 동물권이 유린되는 영역까지 활동의 범위를 다양하게 넓혀왔습니다. 이 책은 그가 지난 5년 동안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묶은 것입니다. 그가 다양한 현장에서 만나고, 배우고, 가르치고, 삶을 나눈 사람들이 두루 등장합니다. 이 사람들을 책 한 권으로 간접적으로나마 한꺼번에 모두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죄스럽게 여겨질 만큼 벅찬 선물이었습니다.
중증 장애인, 중화상 생존자, 세월호부터 고속도로 교통사고에 이르기까지 이 사회 속 각종 사고의 희생자들과 그들과 이별한 사람들, 에이즈 감염인, 지금 있는 공원을 없애고 축구장을 짓겠다는 구청에 항의하는 동네 주민들, 용접공, 선감학원이나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던 사람들…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고도 ‘알 것 같다’고 지레짐작하기 쉬운 그 명칭들 뒤에서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사람들이 걸어 나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책에 대해서 약속드릴 수 있는 게 있습니다. 홍은전 님의 기록을 한 자 한 자 천천히 흡수하다 보면, 당신이 누구이고 어떤 삶과 환경에서 살아왔는지와 관계없이 갑자기 이들 사이로 당신 자신과 당신이 사랑하고 기억하는 누군가가 문득 떠오를 것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SBS 기자로 입사한 이래 경제부에 가장 오래 있었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은 경제 관련 취재와 방송을 계속 해왔습니다. 가장 재미있다, 빠져든다고 느꼈던 때가 돈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니 전에 보이지 않던 커다란 그림들이 갑자기 잘 보일 때였어요. 돈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서 배워가는 신선한 충족감 같은 게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관점을 배제하고 어떤 일을 바라보는 경우에 실은 그 코끼리의 다리나 발톱 밖에 보지 못하고 지나가게 되는 경우가 분명히 많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선배 한 분과 나누던 중에 그 사람이 그러는 거예요. “돈의 관점에서 본 세상이 정확할 때는 많은데, 그것에 너무 빠져버리면 사람이 안 보여.”라고요.
그때 정말 흔한 말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 말이 내게서 희미해지고 있지 않나, 과장 조금 섞자면 지금도 매일 되새기고 있습니다.
돈의 시선에서(‘돈’의 자리에 다른 것이 들어갈 수도 있겠죠.) 세상을 봐야 보이는 것들을 무시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 눈에 사람이 덜 보이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기자로서, 둘 중 어느 한 쪽도 존재하지 않는 척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결과물을 내는 게 아마 제가 도달해야 할 가장 어려운 레벨이리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점검하면서 살고 일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제가 얼마나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말해주겠지요. 그리고 그 점검이 꼭 필요한 제게는 이 책이 맑고 깊은 샘물처럼 다가왔습니다.
‘인권활동가가 쓴 책’이라고 권했을 때 ‘읽으면 좋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마음이 무거워지고 싶은 기분이 아닌데…’ 비슷한 생각이 먼저 들 수도 있습니다. ‘이건 이 문제의 단면이지 전부는 아닌데.’ 의견의 차이를 발견하는 대목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참여하고 주장해 온 활동들에 동의하는 사람이든, 부분적 견해차를 가진 사람이든, 아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든 이 책을 모두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홍은전의 운동들에 제.대.로. 동의하지 않거나 따라서 협의하기 위해서라도 그가 책 한 권으로 소개해주는 이 사람들을 모두 만나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도쿄에 20년 전 처음 가보았을 때, ‘아 여기는 분명히 우리보다 선진국이구나’ 하루 만에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나라들보다는 그 도시의 풍경이 우리 서울과 비슷하게 생긴 건 사실이었지만, 그 하루 동안에도 복잡한 도심 속에서, 고급 호텔에서, 여러 장애인과 휠체어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아픈 아이가 있는 제 친구가 서울에서도 인기있는 지역의 초등학교에 아이의 입학을 신청했습니다. “처음이라 저희도 모르는 게 많지만, 같이 해나가보자.”는 선선한 대답이 돌아왔다는 말을 전해 듣고, 문득 20년 전 첫 도쿄 방문이 생각났습니다. 여전히 도심에서 장애인이 인구비율 대비 비슷하게라도 보이는 사회는 아니지만, 그래도 20년의 시간은 그냥 흐르지 않았고 이 변화는 거저 다가온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아이들에게 문을 열어준 꽃님들과 홍은전들, ‘그냥, 사람’들을 만나는 영광이 이 책 속에 있습니다. 이번주에도 [북적북적] 함께 해주셔서 기쁩니다.
*‘봄날의 책’ 출판사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진행: 권애리 기자
ART19 개인정보 정책 및 캘리포니아주의 개인정보 통지는 https://art19.com/privacy & https://art19.com/privacy#do-not-sell-my-info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