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집콕'이 일상이 된 게 이제 좀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만나서 함께 하는 것보다는 온라인으로 도모하고 작업은 홀로 하는 그런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기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 게임, 홈트까지 이것저것 건드려 보게 됩니다. 코로나 상황이 아니면 이렇게 했을까 싶은 것들도 제법 있고... 이런 게 인연일까요.
모든 이에겐 사연이 있고 그로 인해 맺게 된 인연과 쌓아버린 업보가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그것도 자신에게 해법이 있다죠. 저도 잘은 모르지만 불가의 도리와도 맞닿아있는 듯한 이런 내용을 장대한 강호의 군협담으로 풀어낸 고 김용 선생의 역작 [천룡팔부]가 이번 주 북적북적의 선택입니다.
飛雪連天射白鹿(비설련천사백록) 하늘 가득히 눈이 휘몰아쳐 흰 사슴을 쏘아가고,
笑書神俠倚碧鴛(소서신협의벽원) 글을 조롱하는 신비한 협객이 푸른 원앙새에 기댄다.
김용 선생의 오랜 팬이라면 한 번 이상 들어봤음직한 이 열네 자의 대련은 그의 작품 14편의 제목 첫자를 따서 지은 건데, 오늘 읽는 작품은 '천'에 해당하는 [천룡팔부]입니다. [소오강호], [녹정기]와 함께 김용 선생의 후반기 삼대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에요. 더 대중적인 작품으로 국내에 영웅문 3부작으로 소개된 바 있는 사조영웅문, 신조협려, 의천도룡기가 있습니다. 소오강호는 끊임없이 권력을 추구하는 이와 그를 비웃어버리는 이들, 그리고 그를 은유하는 무공을 극명한 대비로 보여줬다면 천룡팔부는 불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연과 업모를,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을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알겠지만 설명해야 할 것들이 적지 않은데요, 먼저 제목 '천룡팔부'는 불교의 호법신 8명을 가리킵니다. 천인, 용, 야차, 건달파, 아수라, 가루다, 긴나라, 마후라가.. 호법신이긴 하지만 진리를 깨닫지는 못한 이들이라 팔부중 혹은 팔부신중이라고도 한다죠. 천룡팔부에도 숱한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분명치는 않지만 천인도 있고 용도 있고 야차도 있겠죠.
주인공은 크게 3명, 단예-소봉-허죽 이들 3명이 겪는 우여곡절과 모험담이 큰 줄기를 이루고, 이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다른 이들과 사건에 휘말리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고난을 겪고 얽히고설켜 죽고 죽이는 이야기들이 복잡하고 다단하게 펼쳐집니다.
세 주인공 모두 출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게 처음부터 폭로되거나 소설의 마지막에 비로소 확인되면서 극적인 반전을 가져오는 대목도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단예의 모험, 소봉의 모험, 허죽의 모험... 그리고 사이사이 등장하는 군웅들의 이야기가 피고 지고 합니다. 10권짜리 소설로 꽤 깁니다만 이 코로나 시국, 저녁에 조금씩 읽어가시기 좋을 것 같습니다.
무협소설의 큰 재미 중 하나인 무공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요소죠. 마치 손가락에서 레이저가 발사되는 듯한 무공 일양지의 최고 사양 업그레이드 버전인 육맥신검이나, 소림사의 72절기, 신선이 노니는 듯 우아하며 강위력한 소요파 무공들, 개방의 진방 절기인 강룡 이십팔 장, 물결 위를 사뿐히 걸어가는 능파미보... 상상력이 빚어낸 다채로운 무공의 향연은 저를 비롯한 뭇 소년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김용 선생은 가셨지만 천룡팔부를 비롯한 무협의 고전들은 앞으로도 오래 그 생명을 이어갔으면 팬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중국 교과서에도 실렸단 소식이 전해집니다. 후반기 걸작 3부작 중 남은 하나 [녹정기]의 새로운 번역판도 속히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출판사 김영사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진행: 심영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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