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VS 원균 그리고 이순신 VS 선조
상사에게 맞짱뜨는 조선의 까바남 이순신
이순신이 성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백의종군이다!?
그리고 난중일기를 읽는 특별한 방법은?
출판평론가 표정훈과 함께한 시시콜콜 낭독 한국사!
[낭독 1] 이순신, <난중일기> 1597년 7월 7일
맑음. 오늘은 칠석. 슬프고 그리움을 어찌 하랴. 꿈에 원공과 한 자리에서 만났는데,
내가 원공 위에 앉아 음식상을 받자 원공이 즐거운 기색을 보이는 것 같았다.
무슨 징조인지 알 수 없다. 박영남이 한산도로부터 와서 말하기를
주장(主將)의 잘못으로 대신 벌을 받기 위해 원수에게 붙들려 왔다는 것이었다.
의령 원 김전이 고령으로부터 와서 병사의 처사가 뒤죽박죽인 것을 많이 이야기하였다.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삼으며 선조가 내린 교서]
“군사들은 경을 장성같이 굳게 믿었건만 얼마 전 경의 직책을 갈고 죄를 씌워
백의종군토록 하였으니, 사람의 지모가 부족함에서 나온 것이라.
그로 말미암아 패전의 치욕을 가져왔으니 무슨 할 말이 있으랴, 무슨 할 말이 있으랴.”
[낭독 2] 이순신, <난중일기> 1597년 9월 15일
맑음. 장수들을 거느리고 진을 우수영 앞바다로 옮겼다. 벽파정 뒤에 명량이 있는데,
소수의 수군으로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다짐하였다. “병법에 이르기를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하였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1000명이라도
능히 두려움에 떨게 한다는 말도 있다. 모두 오늘의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단,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긴다면 군율대로 시행해서
작은 일일망정 용서치 않겠다.” 이날 밤 신인(神人)이 꿈에 나타나 가르쳐 주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저렇게 하면 진다고 하였다.
[낭독 3]이순신, <난중일기> 1597년 9월 16일 (표정훈 낭독)
이른 아침에 정찰부대가 보고하기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적선이 명량으로 해서
곧장 우리가 진 치고 있는 곳을 향해 들어온다”고 하므로 곧 여러 배에 명하여
바다로 나가니, 적선 130여 척이 우리 배들을 에워쌌다. 여러 장수들은 적은 군사로
많은 적을 상대하는 것이라, 스스로 낙심하고 모두 회피할 꾀만 내는데,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벌써 두 마장 밖에 나가 있었다.
내가 노를 바삐 저어 앞으로 돌진하며 지자총통, 현자총통 등을 마구 쏘니
포탄이 폭풍우같이 쏟아졌고, 군관들이 배위에 총총히 들어서서 화살을 빗발처럼 쏘니
적의 무리가 감히 대들지 못하고 나왔다 물러갔다 하였다.
그러나 여러 겹으로 둘러싸여서 형세가 어찌 될지 알 수 없으므로
온 배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이 질렸다.
나는 “적선이 비록 많다 해도 우리를 바로 침범치 못할 것이니, 조금도 동요하지 말고
다시 힘을 다해서 적을 쏘아라” 하고 타일렀다. 여러 장수의 배들은 먼 바다에 물러가 있는데,
내 배를 돌려 군령을 내리려 해도 적들이 더 대들 것이기에 나가지도 돌아서지도 못할 형편이었다.
호각을 불어 중군에게 군령기를 세우라 하고 또 대장선에 초요기를 세웠더니,
중군장 김응함의 배가 차츰 내 배 가까이 왔으며 거제현령 안위의 배가 그보다 먼저 왔다.
나는 배 위에 서서 친히 안위를 불렀다.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 하니,
안위가 황급히 적선 속으로 돌입했다. 이어서 김응함을 꾸짖었다.
“너는 중군으로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하지 않으니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당장 처형할 것이로되 지금은 전세가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한다” 하였다.
두 배가 적진을 향해 앞서 나가자 적장이 탄 배가 그 휘하의 배 두 척에 지령하여
안위의 배를 표적삼아 개미 붙듯 오르게 하였다. 안위와 그 배에 탄 사람들이
혹은 긴 창으로, 혹은 모난 몽둥이로, 또 혹은 반질반질한 돌덩어리로
죽을힘을 다해서 치고 막다가 모두 기진맥진하므로, 나는 뱃머리를 돌려 바로 쫓아 들어가서
빗발치듯 마구 쏘아댔다. 적선 세 척이 거의 다 엎어지고 자빠졌을 때
녹도만호 송여종과 평산포대장 정응두의 배가 뒤쫓아 와서 공격에 가세했다.
적은 한 놈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왜인 준사는 안골의 적진에서 투항해온 자인데, 내 배 위에 있다가 바다에 빠진 적을 굽어보더니
그림 무늬 수놓은 붉은 비단옷을 입은 자가 바로 안골포 적장 마다시라고 말했다.
내가 물 긷는 군사 김돌손을 시켜 그 놈을 갈고리로 낚아 올리자, 준사가 기뻐 날뛰면서
“그래 마다시다” 하므로, 곧 명령하여 토막토막 자르게 하니 적의 기운이 크게 꺾였다.
우리 배들은 적이 다시 범하지 못할 것을 알자 일제히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며 쫓아 들어갔다.
지자, 현자 대포 소리가 산천을 뒤흔들고, 화살이 빗발처럼 날아가니 적선 서른한 척이 깨졌다.
나머지 적선도 퇴각하여 다시는 우리 수군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였다.
싸움하던 바다에 정박하고 싶었으나 물결도 험하고 바람도 역풍인데다 형세 또한 위태로워
당사도에서 밤을 지냈다.
이번 일은 참으로 천행(天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