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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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episodes

  • [2012/09/18 화]대나무 숲에서 정의를 외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 그런 왕이 실제로 존재했을까?
    신라 제 48대 왕 경문왕의 이야기이다. 1,150년 전 경문왕은 헌안왕의 맏사위로 왕실에 들어갔다가 왕이 아들을 두지 못하고 세상을 뜨자 젊은 나이에 왕이 되었다. 쇠락해가는 신라 왕권의 강화와 개혁을 꾀했으나 기득권층인 진골 귀족의 모반, 지방토호의 반란에 시달리다 갑작스런 죽음으로 왕위를 끝냈다. 조선 조 정조대왕과 비슷한 행로를 가졌다고 해야 할까? 그 딸이 진성여왕이고 황룡사 9층탑을 지은 왕이다.
    내 귀가 당나귀 귀라고, 억울하오
    삼국유사의 설화로는 “왕이 즉위하자 그의 귀가 갑자기 당나귀 귀처럼 길어졌다. 그 사실을 유일하게 알고 있던 두건장이는 혼자만 끙끙대며 고민하다가 죽기 직전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크게 외친다. 대숲에 바람이 불 때마다 이 소리가 나자 왕은 대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게 했다.”고 되어 있다.
    삼국유사가 이렇게 경문왕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한 시점은 경문왕 이후 경문왕 자손이 왕위를 이어가다 오리지널 신라 왕가인 박 씨로 왕의 성이 바뀐 신덕왕 때이다. 빼앗긴 왕권을 되찾은 박 씨 왕가의 폄훼일 가능성이 크다고 해석된다.
    또 경문왕은 ‘뱀과 함께 잠을 잤다’는 설화도 있는데 여기서 뱀은 경문왕이 기득권층을 배제하고 중용했던 신흥 세력인 화랑과 육두품으로 해석되고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각색한 선덕여왕과 미실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도록 했다는 구절은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그것은 당시 산수유가 약효가 좋은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던 걸 고려할 때 질병에 시달리는 백성을 위한 구휼 작목이 아니었을까 라는 해석이 있다. 결국 대나무 숲과 임금님 귀 설화는 백성에게 인기 없는 왕의 이야기가 아니라 백성을 위해 개혁에 나섰다가 기득권 토호 세력에게 배척당한 왕의 이야기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21세기의 대나무 숲이 부르는 노래
    21세기 대한민국에 대나무 숲과 임금님 귀가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온라인 공간에도 꾹 참고 가슴 속에 눌러 두었던 이야기를 쏟아놓는 ‘대나무 숲’이 확산되고 있다.
    ‘대나무 숲’에 모이는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하위직 샐러리맨 등 평소 사회의 부당하고 불평등한 구조에 대해 대놓고 불만을 제기하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대나무숲’의 시작은 ‘출판사 옆 대나무숲(@bamboo97889)’이다. 출판업계 종사자라면 누구에게나 계정 비밀번호가 공개되고, 언제 어디서든 계정에 접속해 글을 남길 수 있다. 출판업계 종사자들은 그간 불합리하다고 느끼면서도 참아왔던 말들을 이 익명 계정에 마음껏 쏟아냈다.
    출판사 옆 대나무 숲에 이어 방송사, 촬영장, 디자인회사 대나무 숲이 생기더니 백수 옆 대나무, 시댁 옆 대나무 숲까지 등장했다. 고단한 하루를 간신히 넘기며 살아가는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속풀이, 넋두리, 하소연, 스트레스해소의 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갑’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거나 침묵해야 하는 ‘을’들의 숲인 셈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단순한 익명의 게시판이 되는 것을 걱정도 한다. 또 악의적으로 남을 험담하고 비난하는 데 오용될 가능성도 있고, 재빠른 사람들이 광고글을 잔뜩 올려 게시판을 어지럽힐 수도 있다.
    당나귀 귀라고 소리치면 울화가 풀릴까?
    그런데 그런 두건장이가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그토록 외치고 싶을까? 소리쳐 알리지 못하면 울화병에 걸릴까? 여기에는 우리가 함께 피해 갈 두 가지의 함정이 있다. 카타르시스에는 효과와 오류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흔히 이야기하는 울화를 참으면 병이 된다는 우리의 믿음이다. 화가 나고 분할 때 샌드백을 두들기고, 야구 배트를 휘두르고, 두더지 잡기 망치를 내리치면 우선 기분이 좋아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감정의 분출은 마음의 균형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고 설파한 카타르시스 효과이다. 프로이드 역시 울분은 물이 고이듯 고이고 구멍을 뚫어 빼내지 않으면 터져 나온다고 했으니 화는 풀어야 한다.
    이 주제를 놓고 1990년 대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브래드부시먼이 이를 실험했다. 우선 학생들을 3 그룹으로 나누어 전혀 다르게 가르쳤다.
    1. 분노를 풀어야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2. 분노를 푼다고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3.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렇게 달리 가르친 3 그룹의 학생들에게 이후 강한 스트레스와 모욕을 줬더니 분노를 터뜨려야 건강한 거라고 학습한 학생들은 훨씬 더 공격적인 활동을 선택해 스트레스를 풀려고 했다.
    이어 2차 실험. 절반은 실험 전 샌드백을 마구 두들기고 잠시 대기, 다른 절반은 차분히 앉아서 대기한 뒤 게임을 시작했다. 자신에게 패한 상대에게 벌칙을 골라 주도록 하자 샌드백을 두들긴 학생들이 훨씬 가혹한 벌칙을 선택해 친구에게 가했다. 강한 감정 표출과 행동으로 얻은 카타르시스는 부정적 감정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가라앉혔다가 되살려 낼 뿐이고 습관적으로 강한 반응을 되풀이 하게 한다는 결과를 얻은 것이다.
    그러니 카타르시스를 통해 화를 풀려면 격렬한 행동보다는 전혀 공격성이 없는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산책, 음악 감상, 명상 등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도 된다. 울분을 터뜨려야 스트레스가 풀리고 평안을 되찾는다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누굴까? 승려, 수녀들이다. 자연스런 욕구까지 철저히 통제하고 상하관계, 서열, 명령 체계, 처벌도 가장 엄격하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과는 현격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아예 공격적인 말, 행동, 그런 마음조차도 갖지 않도록 훈련하고 그런 성취를 얻는 때문이다.
    이것이 카타르시스의 오류이다. 대나무 숲에서 솔직히 털어놓고 서로 위로하는 것은 좋지만 습관적으로 험한 말을 쏟아낸다면 잠시 후련해도 습관적으로 또 쏟아내야 하는 함정이 있다. 가능한 적절히 이용하고 과격한 언사가 일상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나무 숲이 없어지면 어떻게 할 건가?
    또 하나는 마치 군사정권 시절의 프로 야구장처럼 되어 버리면 그것도 곤란하다. 내 주변에 불만이 있고 차별이 있고 부조리가 있으면 똑바로 보고 일어나 함께 할 사람을 찾아 뭉치고 행동해야 한다. 분노한 다음은 조직하고 참여하고 연대하고 움직여야 세상이 바뀐다. 대나무 숲에 울분을 놓은 걸로 세상 부조리에 대해 스트레스가 풀리고, 소리칠 만큼 소리치고, 대들만큼 대들었다고 여긴다면 스트레스가 끝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진보가 거기서 끝나는 것이다.
    9 min
  • [2012/09/11 화]새누리 '빨간 파티'가 삼성동으로 간 까닭은?
    종합편성채널 ‘채널A’에서 지난 9일 ‘박근혜, 5년 만에 대문 연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박 후보가 주말에 자택공개 행사를 벌인다고 보도하면서 이는 자신들의 ‘단독보도’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단독? 과연 그럴까?
    “새누리당에서 빨간 파티를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삼성동 자택에서 여는 것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다.” - 청년들이 만드는 인터넷 언론 ‘고함20’의 7월 24일 자 기사 내용이다. 청년들이 종편이 한달 반 뒤에나 단독보도할 정치권의 기밀을 어떻게 알았을까?
    “(서울=연합뉴스) 정**.현** 기자의 보도 - 새누리당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새누리당의 젊은 층 대상 행사인 ‘빨간파티’를 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개최하려고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7월 22일 자 보도이다. 경향신문도, 인터넷신문 프레시안도 “박근혜 의원 자택서 ‘빨간 파티’ 연다”는 내용을 잇달아 보도했다.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었던 것.
    ‘빨간 파티’가 삼성동으로 간 까닭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자택에서 ‘빨간 파티’가 열린다는 건 정치적으로 무슨 의도일까? 우선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가 빨간파티를 왜 박근혜 후보 자택에서 열기로 한 것일까?’부터 살펴보자. 진보성향의 언론들은 “박 전 위원장의 불통 이미지도 극복하고 청년층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형성하려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청년 세대들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으로 파격행보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택개방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 등으로 보도하고 있다. 채널 A는 “2030 세대와의 소통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파격행보”라고 설명한다. 결국 계산이냐? 고민이냐? 강한 의지냐? 세 가지 해석이 나오는데 셋 중 하나일수도 있고 셋 모두일수도 있겠다.
    다음은 빨간 파티가 널리 공개된 장소에서 행해지다 박근혜 후보 자택으로 옮겨진 것의 ‘계산’이 아닌 ‘의미’는 무얼까? 빨간 파티는 새누리당의 김상민 의원, 이준석 전 비대위원, 손수조 당협위원장이 젊은이들과 가깝고 친근하게 소통하려고 시작한 행사이다. 새누리당은 전국을 돌며 빨간파티를 열어 당의 이미지를 보수정당이지만 젊고 열려있다는 쪽으로 조금씩 바꿔가고 있었다. 이런 이미지가 가능했던 것은 파티에 참여하는 것이 동원이 아닌 자발적이라는 점, 그리고 파티의 내용물이 당 차원의 지시나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꾸며진다는 점이었다. 그랬던 ‘빨간파티’가 경선 후보인 박근혜 후보 자택에서 열린다면 이제부터는 선거전략 상의 새누리당 주관행사가 되어버린다. 박근혜 후보 집 좀 구경해보자며 아무나 몰려 들어갈 수 없고,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면 당차원의 쇼 타임이 되어버린다.
    “청년들과 외친다, 용감한 녀석들!”
    이것은 전 새누리당 총선후보 손수조 씨의 네이버 블로그 제목이다. 이곳에 들어가면 ‘빨간파티’를 기획한 의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빨간 파티’는 새로운 정치문화와 소통문화를 만들어 내길 희망하는 젊은이들에게,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을 통해 새로운 정치문화놀이의 장을 열어주는데 있다. 온라인을 통해 무작위 선착순으로 참가자를 모았고 정치적 지향점도 각양각색이었고, 서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만나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던 행사였다. 단순히 젊은 층을 향한 새누리당의 지지기반 확대차원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그랬다면 왜 당의 지원을 받고 당 차원에서 진행하지 않았겠는가? ‘빨간 파티’에는 돈이 거의 안 들어간다. 참가자들이 전부 자발적으로 지원하고 먹을 것을 가져오고 진행한다. SNS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모집이기에 홍보비도 거의 안 들어간다. 소요되는 추가비용은 스스로 다 낸다. 누군가의 지시를 통해서도 하지 않는다. 젊은이 스타일대로 스스로 만들어내는 콘텐츠들이다. 바로 참여자들이 콘텐츠라는 이야기다.”
    청년의 청년에 의한 정치파티를 허하라
    그럼 민주당은 무엇을 했을까? 민주당에는 ‘락파티’가 있었다. 4.11총선 민주통합당 청년비례대표를 선발하기 위해 마련한 이벤트였다. 빨간파티의 라이벌이라 할 만한 신선하고 매력적인 프로젝트였다. 민주통합당 락파티에는 389명이 지원해 청년 비례대표 4명이 뽑혔고 김광진, 장하나 2명의 청년비례대표 의원을 당선시켰다. 그러나 생소하다. 락파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민주통합당이 공천잡음에 휘말리고, 보수언론이 공천잡음과 막말파문을 맹공격하면서 빛을 보지 못했다. 락파티에서 흥미로운 것은 비례대표 후보로 뽑히고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이 아니라 거기서 탈락한 참가자들이다. 탈락한 뒤 다시 모여 경선과정을 평가하고 청년과 정치에 대해 고민을 나눴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인터넷 신문 “프레스바이플”에 차례로 펼쳐냈다. 탈락자들은 플래시몹으로 뭉치고 노래방토크쇼도 갖고 투표격려 캠페인도 하면서 민주당 색깔을 지운 채 자신들만의 파티로 만들어갔다. 이름도 락파티가 아닌 ‘졸라 청춘 올라잇 프로젝트’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졸라 청춘’이라는 책으로 묶어냈다. 민주당이 만든 책이 아니고 민주당을 위해 만든 책도 아니다. 오히려 민주당의 헛발질에 대한 강한 비판들이 들어 있고 청년들의 정치에 대한 건강한 꿈과 좌절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기성정당에서 시작됐으되 기성정당에 구속되지 않는 모습은 새누리당의 빨간파티와 락파티에서 비롯된 ‘졸라 청춘’이 흡사하다. 개인적으로는 빨간 파티는 빨갛게, 졸라 청춘은 푸르게 더 활짝 오래 오래 피어나기를 기대했다. 청년 정치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싶었다. 선거 때만 되면 불러 모으고 행동대원으로 부려먹다 내던지는 게 청년 정치참여가 아니다. 한 두명 비례대표에 끼어주고 청년정치 활성화시켰다고 생색내는 그런 게 열린 정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빨간 파티’는 박근혜 후보가 접수해 버렸다. 재집권을 위해 뭐든 필요한 시점이니 탓할 일만은 아니다. 민주당은 그나마 그것도 못한다. 389명의 젊은 열혈 청년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남은 게 없다. 새로운 청년 프로젝트도 보이지 않는다. 경선 치르느라 당 차원의 전략적 사고는 일단 중지된 것일까? 혹시 젊은 유권자야 보수정당 새누리당보다 민주당을 찍겠지라는 환상에 젖어있거나 청년층에서야 새누리당에 뒤질 일 없다고 생각한다면 깨어나길 충고한다. 졸라 안이하고 위험한 생각이니까.
    9 min
  • [2012/09/07 금] 왜 국민은 정치인에게 속기만 할까?
    여야 정치권은 총선 이후 당을 재정비하면서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큰소리쳤다. 심지어는 세비를 반납하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래서 국민들은 감동마저 느끼며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19대 국회의 의원세비는 18대 평균과 비교해 20.3% 올랐다. 액수로는 연봉 2,326만 원 인상이다. 지난해 세비와 비교하면 15.2% 올랐다. 경기침체로 고통 받는 대한민국에서 봉급이 15% 인상된 직종은 없다. 그런데 국회 예산은 줄었다. 국회의원 세비를 포함한 전체 국회 예산은 지난해 5,175억 원에서 올해 5,060억 원으로 115억 원(2.2%) 줄었다. 그렇다면 어디서 깎아 국회의원 세비를 올렸을까?
    선거 때마다, 정치권에 국민의 질타가 퍼부어질 때마다 약속과 다짐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거의 모두 당리당략에서 나오는 헛말일 뿐이다. 정치권의 기득권과 특권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일본 의회는 지난 3월 세비를 14% 자진 삭감했고, 미국 상·하원도 세비를 동결하는 등 국민과의 고통분담에 나섰다. 물론 미국.일본 국회의원들도 정치적으로 시늉만 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이 나라 국회의원 역시 시늉이라도 내면서 성의를 보여야 할 것 아닌가.
    국회의원 세비는 항상 조용히 오른다. 이번에도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세비가 20% 올랐으니 의원들의 생산성도 그만큼 높여야 한다”고 다그치는 과정에서 알려졌다. 국회의원 세비는 그렇게 슬그머니 마구(?) 올릴 사안이 아니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고 국민 여론은 자기들 대표의 세비인상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대 국회 임기 시작 직후인 지난 6월 말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삭감해야 한다’ 29.9%, ‘현저히 줄여야’가 33.2%였으며, 아예 없애자는 응답자도 14.6%나 됐다. 결국 국민의 대표들이 국민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왜 국민은 속고 또 속을까’
    정치인이 커다란 약속을 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봐서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미 조사된 자료상에 나타난 확률로 봐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사람들은 객관적 자료나 경험들을 무시하고 믿는다.
    4대강 사업으로 홍수가뭄이 사라지고 엄청난 일자리가 생기고 경기침체로부터 벗어난다고 했다. 커다란 국제행사를 치르면 지역이 발전하고 부가가치가 몇 조, 몇 십조에 이른다고 했다. 반값 등록금 간단히 만들어 준단다. 자기를 국회의원으로, 대통령으로 뽑으면 잘 살게 해준다 한다. 국회의원 세비를 스스로 깎겠다, 국회의원 연금 안 받고 일하겠다고 했다 ..... 지금 생각하면 다 과장되고 허황된 이야기들이지만 사람들은 ‘설마 저리 큰소리치는데 비슷하게는 이뤄지겠지’라고 믿었다.
    이것은 ‘감정추단’에서 비롯되는 착각이다. 이성보다 순간적인 감정이 먼저 자리를 잡으며 판단을 흐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주 간단하게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웃으며 다가 온 사람과 찡그리며 다가 온 사람 중에 누가 더 내게 유익할지는 이야기를 나누고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웃으며 다가온 사람 이야기는 들어줄 것이고 찡그린 채 다가 온 사람은 빨리 끝내고 싶을 것이다. “걱정마, 책임지고 잘해 줄게” 다짐하며 결혼해달라는 사람과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워, 최선을 다해 볼게”라며 조심스럽게 청혼하는 사람이 있을 때 어느 쪽으로 끌릴까? 자신의 이익이 걸린 문제에 부딪히면 감정이 먼저 작용하며 이성적 판단이 흔들리는 ‘감정추단’이 이때 작용한다. 그래서 속기 쉬워진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을 나한테 좋은 것, 나한테 나쁜 것 두 가지로 빨리 간단히 결정하려 한다. 정말 그런가를 증명해야 하지만 생략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 때 이 결정이 옳은 것일까 회의하거나 반박하고 반증해야 하지만 접어버리거나 자꾸 뒤로 미뤄 놓는다. 남녀가 연애할 때 발생하는 현상과 비슷하다. 처음 사귈 때는 정말 괜찮았는데 날이 갈수록 사람이 영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작심하고 나서서 상대를 다시 살펴보고 상대의 말을 철저히 검증해 바꾸려면 즉시 바꿔야 한다. 그러나 예전처럼 다시 잘해주겠지라고 기다리거나 처음 가졌던 호감이 너덜너덜 누더기가 될 때까지 버티다 망신창이가 돼 포기한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할 줄 몰랐어 ..... 가 아니라 확인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을 속이는 게 가장 쉬웠어요?
    감정추단은 새로운 발표나 사실이 등장했을 때 좋거나 나쁘거나, 찬성할지 반대할지를 신속히 판단하는 방법이다. 특권 포기하겠다, 뼈를 깎는 쇄신을 하겠다 .... 라고하면 “좋은 거네, 당연히 찬성이지”라고 바로 결정해버린다.
    진짜 실천할 건지 가능성 있는 이야기인지의 판단은 생략된다. 그리고 그걸 말한 사람은 개혁의 이미지, 훌륭한 이미지로 머리 속에 남는다. 그 후에라도 그게 진심이었는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실천하는지 끝까지 확인하고 평가해야한다. 거짓말이면 좋았던 이미지를 꺼내 휴지통에 버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더구나 자신이 그 정치인의 지지자라면 ‘감정추단’은 훨씬 강하게 이뤄진다.
    인간이 자신의 이익에 반응해 성급히 판단을 내리고 처음 내린 판단에 붙잡혀 못 빠져 나온다는 걸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정치선전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 사람들이 너무 쉽게 속는단 말야”
    ...... 자기는 빼고 따지는 것, 이것을 제3자 효과라 한다. ‘운전 중에 휴대폰 사용 위험합니다’ ..... 하면 “아무렴 위험하지” 그래놓고선 운전 잘하는 나는 잠깐 해도 별 문제는 없을 거라고 여기며 휴대폰을 집어 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나야 속을 리 없다’고 생각하며 ‘저건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제 3자 효과’와 ‘감정추단’이 만나면 상승효과가 이뤄지며 국민은 정치인에게 속는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국민을 속이는 게 가장 쉬웠어요”.
    9 min
  • [2012/09/04 화]불심검문? 인간이 아니라 사회가 포악하다.
    환절기이다. 콧물이 흐르더니 감기몸살에 걸렸다. 이런 경험이 몇 번 반복되면서 어떤 사람이 콧물이 감기의 원인이라고 믿는다면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옳을까? 이런 걸 논리학에서 ‘결합효과의 오류’라고 부른다. 무언가 감기에 걸리게 하는 원인이 따로 있다. 그 원인으로 콧물도 나고 기침도 나고 몸살도 걸린다. 그런데 감기의 원인이 되는 그 무언가는 빼버린 채 콧물과 감기몸살을 원인과 결과로 이어 붙인다. 이것이 ‘결합효과의 오류’ 또는 ‘공통원인 무시의 오류'이다.
    까마귀가 날 때마다 배가 떨어진다. 까마귀가 날면서 배나무 가지를 흔들긴 했으니 원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배나무가 병충해에 걸려 배들이 겨우 매달려 있고 수시로 가지에서 떨어진다면 까마귀로서는 억울하다. 역시 결합효과의 오류이다.
    죄다 니 탓이야, 근본적 귀인의 오류
    사회현상 속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미국 헐리웃 영화에 등장하는 예를 들어보자. 집에서 어떤 여성이 남편 몰래 애인을 기다리는 내용의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었다. 잭 니콜슨과 제시카 랭이 주연한 이 영화는 나이 든 남편 몰래 떠돌이 부랑자와 사랑에 빠지는 여자의 파멸이 줄거리였다. 제목은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 영어 원제목이 ‘The Postman Always Rings Twice’이다.
    (혹 오해가 있을까 싶어 조금 자세한 설명을 붙인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상영되려 할 때 우편배달부들의 전국체신노동조합이 제목을 바꿔달라고 강력히 요청해 제목이 바뀌었다. 우편배달부에 대한 잘못된 상상이나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제목은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로 바뀌었다. 제임스 케인의 원작 소설에는 남편을 죽이고 보험금을 타내려 음모를 꾸민 여인이 자기 집을 담당한 우편배달부에게 보험회사 우편물이 있거든 꼭 벨을 두 번 울려달라고 부탁한데서 영화 제목이 그리 된 것이다. 우편집배원들은 보통 벨을 두 번 누른다. 한 번 눌렀는데 반응이 없다고 바로 자리를 뜨진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더 누른다. 그렇다고 세 번 네 번 누르기에는 짐도 무겁고 무지 바쁘다.)
    본론으로 돌아가 우편집배원, 우편배달부는 그런 오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차별과 오해에 시달리고 있다. 영어로 ‘~ go postal’이면 ‘우체국에 가다’라고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미쳐 날뛰다’라는 뜻의 속어로 쓰인다. 포스트맨은 건달을 뜻하기도 한다. 영화나 드라마, 비디오, 소설 등에는 우체국 직원이 무자비한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이 걸핏하면 등장한다. 물론 예전에 우체국에서 총기난동 사건이 벌어진 적도 있고 우체국 직원이 나쁜 짓을 저지른 적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우체국에서 범죄가 벌어지는 확률은 일반 편의점보다 훨씬 낮은데도 사람들은 드라마나 영화, 소설의 장면을 떠올리고, go postal 미쳐 날뛰다 .... 라는 속어를 떠올리며 우체국을 범죄와 쉽게 연관 지어 생각한다. 우체국에 가면 사람을 분노케 하는 일이 벌어지고 울화가 치민다고 여긴다. 범죄가 벌어지는 숱한 이유, 각각의 범죄가 갖고 있는 배경과 특수한 상황들을 일일이 파악하려니 머리가 아프고 복잡하다. 머리 안 아프도록 쉽게 생각하자. 그래 아무튼 우체국은 문제가 많아, 이렇게 되는 것이다.
    비슷한 경험들이 많을 것이다. 이 나라는 늘 그 모양이야, 정치인들이라는 게 다 그렇지 뭐, 그게 다 대통령 잘못 뽑은 탓이야 ..... 원인을 간단하게 편하게 하나로 몰아감으로써 복잡한 사유로부터 빠져나가려는 본능이다. 사회심리학에서 ‘근본적 귀인의 오류’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우리가 흔히 저지른 근본적 귀인의 오류들을 떠올려 보자. 시어머니 며느리 관계는 다 그래. 남자는 죄다 짐승, 여자의 마음은 못 믿어 ...... 모두 다 생각을 쉽게 하고 결론을 빨리 맺어 두뇌의 피로를 덜고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인간심리이자 ‘근본적 귀인의 오류’에 빠질 수 있는 명제이다.
    10살도 안 된 여자 아이를 성추행하고, 밤길이나 숲길에서 여성을 납치해 잔인하게 살해하는 인간들? 사람들은 ‘본래 미친 놈들이었겠지’라고 간단하고 명확하게 원인을 결론짓기도 한다. 이것도 근본적 귀인의 오류이다.
    그 범인들 중 동네에서 정상을 벗어난 미치광이로 낙인 찍혔던 사람은 드물다. 동네 아저씨이고 양아버지이고 옆 마을 청년이고 학교 동료들이다. 이런 저런 고통으로, 사회적 불만과 소외로, 가치관의 붕괴로 헤매다 범죄를 저지른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이웃이 싸이코패스로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나 자신이나 내 자식도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 무섭고 골치 아프니 본능적으로 피하려 한다. 애당초 미친 인간들이라 그랬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실은 거기서 너무 멀다.
    인간이 아니라 세상이 포악해지고 있다
    사람이 미친 게 아니라 세상이 미쳐가고 있는 것이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런데 그리 해석하고 정책을 짜려면 복잡해지고 해결책이 바로 안 나온다. 그래서 미친 놈, 불량배, 위험분자들이 필요해진다.
    정부와 경찰이 바로 그렇다. 대통령이 흉악 범죄의 원인이 뭐냐 경찰에게 물으면 ‘경제가 나빠져 그렇고, 정치가 희망을 못 준 것도 원인이고, 사회복지 안전망이 허술해 그렇고, 학교교육이 무너져 그렇고, 사회에 부도덕한 포르노물과 룸싸롱이 번창해 그렇고, 방송마다 넘쳐나는 막장프로그램들 때문이고, 사회의 건전한 가치관이 온갖 비리로 인해 설 자리를 잃어 그렇다’고 해야 하는데 대답은 엉뚱하다. 불심검문이 부족해 그렇고 전담팀을 저쪽에 둘 걸 이쪽에 두어서 그렇다고 한다. 정부도 경찰의 말을 받아 경찰이 대책을 열심히 마련하고 있다며 슬그머니 넘어간다.
    국민도 쉬이 속는다. 성범죄자와 흉악범들이 경찰에 붙잡혀 조사받는 장면을 떠올리며 ‘그래 경찰이 미리 잡아들이면 간단하지 않겠어?’..... 라고 착각한다. 근본적 귀인의 오류이다. 불심검문으로 성욕을 체크해 사전에 잡아들인다는 이야기일까? 얼굴만 딱 보면 일 저지를 인간인지 짚어낼 수 있다는걸까? 인권위원회의 권고로 사라진 불심검문이다. 부활시키면 뭘 어쩌자는 것인가?
    학교폭력전담팀, 주취폭력 전담팀, 성폭력 전담팀 ..... 지금까지 만든 전담팀들을 봐도 인간이 포악해지는 게 아니고 환경이 포악해지고 있음이 읽힌다. 무얼 잘못하고 있는지 더 솔직해지라, 그래야 바른 해답이 나온다.
    8 min
  • [08/29 수요일]태풍 앞의 기자들, 명성에 춤추고 명령에 춤추다
    1.방송사들의 이번 태풍 현장 보도가 너무 작위적이고 선정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종합편성채널의 한 기자는 자신의 몸을 밧줄로 묶은 상태에서 태풍 ‘볼라벤’의 강력함을 생생하게 전하기도 했다.
    28일 오전에 태풍이 접근한 목포지역 상황을 전하면서 자신의 몸을 밧줄로 묶고 등장한 기자는 “ ...... 보시는 것처럼 이곳 목포에는 엄청난 바람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로프에 몸을 묶어야만 간신히 서 있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라고 보도했다. 그러자 그 종편채널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는 신문은 ‘눈물 나는 기자정신’이라며 자기네 방송을 칭찬 선전하는 기사를 크게 실었다. 과연 아슬아슬한 위험 상황에서 생방송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밧줄로 몸을 묶지 않으면 날아가 버릴 곳에 기자를 세워놓아야만 하는 걸까? 그것보다는 그런 상황을 객관적으로 실증할 수 있는 다른 방책을 마련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조금 더 생각해 보자. 밧줄로 몸을 묶은 해당 기자 바로 앞에서 카메라까지 짊어지고 촬영하는 보도영상 기자란 존재이다. 그도 역시 밧줄로 묶고 카메라를 짊어지고 있었나? 밧줄의 위치도 문제다. 몸이 아니고 목에 밧줄을 걸고 있어 바람에 몸이 한쪽으로 떠밀리면 자칫 목이 졸릴 처지이다.
    2.태풍에 춤추는 기자들
    다른 방송 보도에서도 태풍 현장에 출동한 기자 대부분은 비와 바람에 몸을 가누기 벅차했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려 앞을 잘 못 보는 상황에서 현장 생방송을 하느라 고생들 했다. 카메라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눈을 뜨지도 못하고, 입을 제대로 못 벌려 발음이 부정확해 내용 전달이 불분명할 거라면 정상적으로 방송할 수 있는 장소로 위치를 옮겨 할 일이다.
    작위적인 모습도 보였다. 기자의 모습이 등장하는 처음 한 두 문장은 몸이 마구 흔들리고 말이 꼬이다가 카메라가 배경 쪽으로 돌아간 다음부터는 발음이 온전해 진다. 어떤 기자는 시작과 함께 바람에 휘날리는 중이라며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춤을 추어 놓고는 곧바로 반듯이 서서 현장 보도를 했다. 충분히 견딜만한 바람에 괜히 오버해 춤을 춘 것이다.
    트위터 상에는 신랄한 비판이 이어진다.
    “비바람 속에서 꼭 기자가 인증샷을 찍으며 보도해야만 하는 걸까?? 강한 비바람에 서있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인다.”
    “기자들 할리우드 액션 너무 표 난다. 그리 호들갑 난리 브루스를 추니 괴담이 나도는 거다. 연기도 못하는 기자들 보니 토할 것 같다”
    “기자가 바람에 휘청거리면서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 리포트하는 걸 보면 ‘사실 보도’보다는 ‘뉴스쇼’를 위해 "연출"을 하는 듯하다. 우리 방송이, 우리 기자가 더 위험을 무릅쓰고 보도한다고 내세우는 거냐. 지나친 흥분과 과장은 뉴스가 아니다”
    현장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뉴스 순서를 기다리다 머리와 어깨 위로 눈이 소복히 쌓여 눈사람이 되었던 박대기 기자와 비교도 한다. ‘여성판 박대기 기자 등장’ ..... 이런 식의 찬사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비판도 있다.
    ‘박대기 기자 때문에 기자들 목숨이 위태롭게 됐다.’
    ‘이제 막무가내내로 따라하는 예능 기자는 그만 그만’
    ‘박대기 기자 따라하며 나름 유명세 잡겠다는 속셈들인가’
    그러나 분명 박대기 기자는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을 뿐이고 처음부터 기획연출된 작위적인 이번 태풍 보도와는 처지가 다르다.
    3.인기와 명성에 춤추는 기자들
    뉴스 보도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쉬운 예로 일본의 현장 취재 기자들이 헬멧까지 갖춰 쓰고 보도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위험한 곳에 접근을 삼가고, 위험한 곳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면서 보도해야지 위험한 곳에 무모하게 뛰어드는 것처럼 상황을 과장해 보여주는 것은 보도 저널리즘이 아니다. 드라마에서도 담배를 마구 피워대는 장면을 삼가하고, 급하게 자동차를 몰고 나가는 장면에서도 꼭 안전띠를 매도록 연출한다. 이런 것이 방송의 사회적 책임인 것이다. 재난보도를 충실히 하다보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고, 그런 노력이 칭찬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방송사끼리 기자끼리 우리 편이 더 위험하게 접근했다고 경쟁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번 경쟁이 다음 태풍 때 더 과열되고 그렇게 진행되다간 마치 철길 위에서 기차가 다가올 때 누가 더 늦게 뛰어내리나로 승부를 가르려는 아이들이나 마찬가지가 되어 버린다.
    기자는 인기와 명성으로부터 멀어야 한다. 방송사마다 위험과 수고를 무릅쓰고 재난 현장에 달려가는 이유는 그것이 저널리즘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훌륭한 전통이다. 그러나 기자는 사건을 취재하는 것이지 사건에 출연해서는 안 된다. 기자가 화면에 등장할 자기 모습을 선정적으로 연출해 가며 화제의 주인공이 되기를 꿈꾸고 오락 프로그램 출연한 게스트처럼 행동하는 건 옳지 않다.
    그것을 허용하고 종용하는 방송사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기자정신을 팽개친 채 정치권력과 금권에 맹종해 온 이 땅의 방송 저널리즘이다. 올곧은 방송인들을 해고하고 징계한 방송사들이다. 고작 태풍 보도 현장에서 젊은 기자들을 위험 속으로 내몰며 이것이 저널리즘이라고 거드름 피운다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말이다.
    9 min
  • [08/28 화요일]천상천하유아안전, 정상화 편향 착각
    1. 태풍과 관련된 트윗의 글들을 읽다 보니 발견한 현상. 초등학생.중학생 자녀들은 엄청난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에 걱정이 많고 마음도 심란한데 부모들이 의외로 태연하자 어리둥절한가 보다.
    트윗에 올라 온 글들을 읽어보자.
    --- 엄마, 태풍 온다고! 태연하게 있을 때가 아니야!!! 그러나 태연하게 태풍을 생까는 엄마를 보며 나는 멘붕이 온다.
    --- 진짜 엄마아빠 왜 이렇게 태연해? 태풍 와서 휴교시키고 조정하고 난리 났는데 괜찮다고 나를 막 다그치고 나 참. 직접 겪어보면 정신차리겠지.
    --- 와..울 엄마 너무 태연하다. 내일 태풍 온다니깐 태풍 한 두 번 오냐, 그러시네. 간판도 사람도 막 날아다닌데 하니까 “나는 안 날아간다” 그러고 .....
    --- (아빠의 글인듯) 대형태풍이 온다고 어째 태연하냐고 딸애가 묻는다 ..... 오는 태풍을 부채질로 막을 수도 없는데 어쩌라는 건지.
    --- 엉엉...엄마 엄청 태연해..... 태풍 안 무섭냐고 물으니까 우린 집에만 있는데 뭐 이래.
    --- 내가 아빠한테 매미보다 더 심한 태풍 온대 하니까 태연하게 “길어야 수요일까질 텐데 별 신경 안 써, 할 거나 하렴” 너무 태연해 ~ 너무뻔뻔해 ~
    --- 내가 엄마한테 엄마 우리 집 물에 잠기면 어떠카냐고 그랬더니 엄마가 ‘잠겨? 잠기면 도망쳐야지’ 이러심
    2. 태풍은 별 것 아닌 게 아니다. 2002년 8월 31일 우리나라를 지나간 태풍 ‘루사’는 5조 4,700억 원, 이듬해인 2003년 9월 13일 우리나라를 덮친 태풍 ‘매미’는 4조 2,230억 원의 재산피해를 입혔다. 내 집 유리창은 무사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가 입는 피해는 막심하다. 대비할 것은 대비해 줄일 수 있는 피해는 줄이자.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이럴 때 집에서 할 일, 밖에서 주의할 일 등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한다.
    1)집 주변의 하수구나 배수구 점검
    2)비상사태시 대피소와 비상연락망 점검
    3)집을 비우고 대피할 때는 가스밸브를 잠그고 전기차단기 내려야 함
    4)가정 내 응급 의약품과 식수, 비상식품 점검.
    5)외출 시 감전 방지를 위해 물에 잠긴 도로는 피할 것
    6)아파트 거실 창문에 대각선 방향으로 테이프나 젖은 신문 붙이기.
    7)아파트 지하주차장 물막이 설치, 변전실과 승강기 기계실 누수 여부 점검
    .......
    아이들에게 ‘야, 안 죽어. 다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거야’라고 쉽게만 이야기하기 보다는 부모로써 윗세대로써 책임 있고 진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을 듯.
    3.천상천하유아안전 ..... 그렇게 될까?
    인간은 불안해지면 정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스스로 불안감을 달래는 본능이 있다. 이걸 ‘정상화 편향’이라고 한다. ‘정상화 편향’은 모든 게 괜찮다고 확신을 강하게 가짐으로써 자신을 달래고 편안케 하려는 행동양식이다.
    ---- ‘내 할 일 하고 가만히 있으면 큰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아직은 괜찮아’, ‘태풍이 며칠 씩 불지는 않아, 한 나절이면 지나가니까‘ ..........
    이런 식이다. ‘정상화 편향’이 작동되면 위험한 사태가 밀려닥치리라는 이런 저런 뉴스나 경고가 접수되어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떻게든 괜찮을 거라는, 내게는 큰 일이 닥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으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을 예로 들어 보자.
    어렵고 위험한 일이 터지면 대개는 옆 사람에게 묻는다. ‘별 일 아니겠지? 괜찮겠지? 그냥 지나갈거야, 그치?’ .... 다들 ‘아니야 위험해’라고 말하다가 어느 한 사람만 강하게 ‘그럼 괜찮을거야’하고 말하면 그 사람 말을 믿어버리기도 한다.
    또 우산 들고 나가기 싫은 경우 창밖을 내다본다. 다들 우산을 쓰고 다닌다. 그런데 저쪽에 누군가 우산을 받치지 않고 어슬렁거리면 ‘그 봐 우산 안 써도 될 만한 가봐’하며 얼른 우산을 내려 놓는 것도 정상화 편향이다.
    위험하다는 경고를 반사적으로 거부한다 해서 ‘반사적 불신’이라고도 부른다. 나쁜 일은 이미 벌어졌는데 마음은 아니야 아니야 중얼거리며 정확한 상황 인식을 어렵게 만드는 인간의 모순이다. 다행히 이런 심리적 기재로 침착함을 이끌어낸다면 좋지만 일본 쓰나미 재난 영상에서 보았듯이 그 몇 분 몇 초의 망설임과 느긋함이 때로는 자신과 가족의 생사를 결정짓는다. 빨리 도망쳐야 하는데 주변 사람과 괜찮겠지, 아니겠지, 저 사람들도 그냥 있는데 ..... 등 안심해도 될 거라는 온갖 이유를 찾아 들이대며 시간을 끈다. 더 이상 어쩔 수 없게 됐을 때 비로소 인정하고 황망히 움직이는 인간의 심리적 본능을 스스로 이해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이때 ‘정상화 편향’에서 먼저 깨어나 움직이는 사람은 위험을 겪어 본 사람, 훈련에 의해 어느 정도 숙달된 사람들이라고 한다. 민방위 훈련, 재난대피훈련, 소방훈련 열심히 참여해 배우고 익히자.
    1982년 나가사키 홍수. 종종 홍수가 나던 지역이었다. 이번엔 홍수 규모가 더 크다고 경고했지만 주민들 일부는 평소보다 얼마나 더 위험한지 보겠다고 자리를 지켰다. 오후 5시에 홍수경보를 내렸는데 밤 9시까지 13%의 주민만 대피하고 결국 270여명이 사망했다.
    2005년 8월 태풍 카트리나 때 미국 미시시피에서도 슈퍼마켓에 들른 많은 사람들이 음료수와 빵 조금만 사가지고 귀가했다. 물과 통조림 기타 생필품을 더 준비하라고 해도 ‘별 일 없을 거예요’ 라며 무시했다. 그러나 수 천 명의 인명피해와 함께 전기 끊기고 길도 끊겨 2주간 고립됐다.
    9/11 테러 때 건물에 충격이 가해지고 빨리 빠져나가라 할 때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코트를 찾아 입고, 주위 사람들에게 지금 일이 생겨 사무실에서 나간다고 전화 걸고, 컴퓨터 프로그램 접고, 전원 끄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긋하게 움직였다고 한다. 우리가 외신을 통해 지켜 본 사람들은 건물이 붕괴된 다음의 패닉 상태였고 사태 초기에는 정상화 편향이 작동되었다는 해석이다. 내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하면 세상도 아무 일 없는 게 되어버리기를 바라는 마음, 그 본능적인 간절함이 ‘정상화 편향’이다.
    4.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면 좋겠지만 ....
    사람들은 불이 나거나 폭발한다면 위험을 실감하며 서두른다. (물론 이 때도 정상화 편향이 작동되기도 한다. 그런데 태풍이나 홍수는 들이닥치기 전에는 실감하지 못한다.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면 이미 한참 늦은 상황이다. 귀찮더라도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나름의 믿는 바가 있더라도 방재당국이나 전문가들이 권고하는 대로 따르며 사태를 잘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치나 경제에도 정상화편향이 존재한다. 주식시장에서 반토막 나 보신 분들 금방 이해하실 것이다. 정치 분야에서도 이래선 나라가 안 될 거라는 여러 신호나 경고가 울려도 사람들은 ‘괜히들 걱정하는 걸거야’, ‘그렇게 망가지기야 하겠어’ .... 라며 새로운 변화를 거부한다.
    때로는 자기 자신을 의심할 필요도 있다.
    9 min
  • [08/24 금요일]새마을운동의 시작은 장준하? 박정희?
    이번 한 주간 가장 이슈가 되었던 인물은 고 장준하 선생. 오늘 기자수첩은 정치적 이슈에 가려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 - 박정희.장준하, 장준하.박정희 두 인물이 연결된 ‘새마을운동’을 살펴보자.
    한반도 민족계몽운동 50년 史
    1919년 3·1운동을 경험한 우리 민족은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에 대한 경험을 통해 무언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는 열기 속에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독립군이 되기 위해 만주로 떠나기도 하지만 한반도 내부에서도 민족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그 가운데 농촌계몽운동인 브나로드(v-narod)운동도 있었다. 농촌에서 못 배웠고 가난하다면 배우고 땀 흘려 벗어나면 될 것 아니냐는 의식개혁운동인 셈. 그래서 문맹퇴치와 빈곤타파를 목표로 야학과 공동경작회 등이 만들어졌다. 1930년대 초반 심훈의 ‘상록수’가 탄생한 배경이 바로 브나로드 운동이다.
    ‘브나로드'(vnarod)’란 러시아 말로 ‘민중속으로’라는 뜻이다.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청년학생들이 전개한 농촌운동이다. 이것을 모델로 해 1931년 동아일보사에서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며 전파됐다. 동아일보가 시작할 때는 브나로드 운동이었고, 1933년에 계몽운동이라 이름을 바꿨다. 그 때 만들어진 조직이 계몽대이다. 오늘에 고교생과 대학생인 고보(高普) 4·5학년과 전문학교 학생으로 구성되어 각 지방에 나아가 한글·산술을 가르치고 보건위생 교육, 문화소양 등을 지도하면서 민족의식을 일깨우려 했다. 1931년 ~ 1934년까지 계몽대원 수가 5,750명, 강습활동 지역이 1,320개에 이르렀다.
    경쟁지인 조선일보는 문자보급운동이라는 문맹퇴치운동을 시작했다. 1929년 여름부터 1934년까지 6년간 실시했다. 조선어학회에서도 1931년에 전국순회 조선어강습회를 여는 등 민족계몽운동에 불이 붙었다.
    관제 국민계몽운동도 시작되다
    민족의식의 고취와 계몽운동을 일본 총독부가 그냥 둘 리 없다. 총독부는 농촌의 게으름과 낭비를 몰아내고 근대화한다며 농촌진흥운동이란 것을 관주도로 펼쳐가기 시작했다. 근검절약, 근면성실을 강조한 일제 총독부의 농촌진흥운동은 1932년 7월부터 1940년 겨울까지 진행됐다. 역시 마을회관(공회당) 건립, 금주금연운동, 절미운동, 가마니 짜기, 공동경작, 빚 갚기 등이 운동의 내용이다. 문제는 조선 농촌의 가난과 고통이 식민체제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농민들의 무지와 게으름에 원인이 있다고 몰아간 것. 그리고 일제의 농촌진흥운동과 충돌하는 동아일보.조선일보의 민족계몽운동은 1934년을 끝으로 총독부 경무국의 명령에 의해 강제 중단시켰다.
    이 점과 관련해 새마을 운동을 유심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노출된다. 1960년대 경제개발이 도시와 공업에 집중되면서 농촌의 빈곤과 낙후성이 문제로 떠오르자 군사 정권은 농민들의 게으름과 무기력, 협동정신 부족이 원인이라며 근면.자조.협동 등 정신개조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를 했다. 정부 정책의 편향과 자원의 불평등한 배분을 거론하지 않고 국민의 문제이고 책임이라 몰고 가는 것이 관주도의 계몽운동이 갖는 특징이자 한계라 할 수 있다.
    장준하, 국민정신혁명사업의 전면에 나서다
    해방 후 6.25 전쟁을 치른 뒤 나라가 혼란스러운 중에도 1950년대 후반 들어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무너진 농촌사회를 일으켜 세우자는 자발적인 농촌운동들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애향청년회라는 농촌계몽조직도 있었고 야학과 미신.도박 추방운동, 농업협동조합 설립도 있었다. 4.19로 들어선 장면 정권은 국민계몽운동의 흐름을 그대로 이어가고자 했다. 장면 정부는 정권이 자리를 잡자 곧바로 경제발전 계획을 짰다. 그 때 내건 표어가 “경제 제 1 주의”, “1961년은 경제건설 출발의 해”였다.
    그 계획 중 하나가 농촌개발을 중심으로 한 국토개발기획단 사업. 그 단장을 장준하 선생이 맡았다. 장면 정부의 경제정책 골자가 첫째 ‘국민정신의 혁명을 위한 국토건설사업의 시행’, 둘째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수립 시행이었으니 이것만 봐도 장면 정부가 국토건설사업을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국토건설 사업의 핵심에 대해 장준하 선생은 서울대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 국민 여론에 의한 국민운동의 전개.
    * 국가의 이익에 부합.
    * 원조물자를 낭비하지 말고 재생산에 써 자손에게 이득이 돌아가게 하자.
    *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업을 우선적으로 만들어 집중하자.
    그리고 ‘국토건설대’를 만들었다. 당시로서는 엘리트인 대학 졸업자들을 대거 기용해 사무직 1,600명, 기술직 450명으로 ‘건설대’를 만들고 교육을 시킨 뒤 국토건설 현장 지휘 감독을 맡겼다. 기존 공무원의 의식으로는 새 국토건설이 어렵다고 보고 4.19의 주역인 젊은 세대를 가능한 많이 참여 시킨 것이 특징이다. 1930년 대 브나로드나 농촌계몽 민족운동에서 조직했던 계몽대 조직을 참고로 해 만들어 낸 것이다. 장준하 선생이 이 젊은이들과 함께 야근을 하며 빵으로 저녁끼니를 대신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
    ‘국토개발’이 ‘재건’으로 다시 ‘새마을’로
    그러나 국토개발기획사업이 본 궤도에 올라서려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벌어졌고 모든 정책과 사업은 중단되었다. 기습적인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세력이 정권의 정통성 보강 작업이 시급한 마당에 대대적인 국토개발과 국민계몽사업을 펼칠 리는 없는 것. 장면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만 제3공화국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바꿔 도시화와 공업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국토개발기획사업은 폐기처분했다. 대신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직속기관으로 재건국민운동본부를 두고 군부의 개혁의지를 국민에게 선전하는 강력한 관주도의 국민동원운동을 전개했다. 마을.직장.학교를 대상으로 정신훈화 교육과 향토개발운동 등을 주관한 재건국민운동은 별 성과 없이 조직개편을 거듭하다 훗날 새마을운동에 흡수통합되었다.
    이렇게 정권의 정통성 강화와 대국민 선전, 도시화와 공업화에 몰두하다보니 1970년대에 접어들며 방치되었던 농촌개발과 식량문제가 현실 과제로 대두됐다. 그리고 10월 유신이라는 장기집권의 토대를 위해 새로운 국민의식운동이 필요했다. 새마을 운동은 그렇게 등장한다.
    정리를 해 보면 일제 강점기에 민족운동으로 시작된 농촌계몽운동이 4.19의 힘을 받아 장준하 선생의 국토건설사업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5.16 군사정권은 장면 정부의 이 거국적 사업을 폐기해버렸다가 10년이 지난 뒤 이를 적당히 짜깁기해 새마을운동이란 모방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을 10년 뒤에 리바이벌 시켰다고 해야 할까? 다른 각도에서 보면 1960년에 이미 시작돼 궤도에 오르려는 새마을 운동을 정치적.정략적 이유로 10년을 지연시켰다는 해석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9 min
  • [08/22 수요일]펜으로 싸우는 자 칼로 죽는다?
    한국기자협회가 창립 48주년을 맞았다. 박종률 한국기자협회장은 “너희가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언론이 불의와 타협하고, 진실을 왜곡하며 침묵한다면 국민적 분노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저널리즘의 회복을 주창했다. 그런데 문제는 저널리즘의 회복을 위해 열심히 뛸 유능한 기자들이 소속사에서 쫓겨나 떠돌고 있는 것. 이른 바 해직기자들이다. 해직기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회사가 일을 시키지 않고 대기상태로 밀쳐놓은 대기자들도 부지기수이다.
    1. KBS는 파업을 이끈 노조 집행부와 KBS기자협회 회장·부회장 등 12명에게 정직 이상의 중징계를 내렸다. 정직 6개월부터 1개월까지의 중징계이고 감봉과 견책 등의 징계를 받은 직원들도 있다. 그런가하면 KBS의 간부급 인사 수십 명으로 구성돼있는 ‘KBS 공영방송노동조합’은 KBS 새노조를 종북세력이라고 규탄하고 나서 노노 이념갈등으로 빠져들고 있다. 동료가 동료를, 선배가 후배를 종북좌파로 몰아가는 세상이라니 ......
    2. 연합뉴스는 사측이 노조위원장에게 정직 12개월, 노조 부위원장과 사무국장에게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쟁의대책위원 4명에게도 각각 정직 6개월에서 2개월 등 중징계를 내렸다. 또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던 간부급 사원들 가운데 사내 게시판에 글을 남긴 간부 4명에게는 경고, 또 사장에 대해 사내 여론조사를 벌인 간부들은 견책이란 징계를 결정했다. 연합뉴스 전체 사원 816명 가운데 617명이 참여해 71%가 사장 반대표를 던진 여론조사였다.
    3. 국민일보는 노사 합의에 따라 파업을 끝냈지만 파업 책임을 물어 지난 20일 기자 4명을 다시 해고했다. (해고 1명, 권고사직 3명, 정직 5명, 감봉 4명). 징계 통보를 받은 13명 모두가 기자다. 국민일보 해고기자는 5명이 되었다.
    쟁의행위로서의 파업은 헌법과 노동조합법, 단체협약에도 명시돼 있는 합법행위이다. MBC, KBS, YTN, 연합뉴스 등 여러 파업 언론사 가운데 파업이 끝난 뒤 노조원을 해고시킨 곳은 국민일보뿐이다. 왜 장로님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언론계가 이리 됐을까? 왜 목사님 가족이 꾸려나가는 국민일보만 기자를 해고했을까 .... 시험에 드는 요즘이다.
    4. YTN은 2008년 4월 대통령 후보 언론특보를 지낸 사장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로 노조가 사장 출근저지와 공정방송투쟁에 나섰다. 그에 따라 6명의 기자가 해고당했고, 해고 당사자들은 징계무효소송을 내 다음해인 2009년 11월 1심판결에서 전원 복직판결을 받았다. 노사는 그해 4월에 법원의 판결을 따르기로 합의한 바 있으나 사측이 항소해 일부 해고 기자에 대해서는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받아내며 사태가 장기국면에 접어들었다. 현재 해고 무효소송은 대법원의 판결을 남겨두고 있다. 해직 1400일을 넘겼다.
    5. MBC는 사장 퇴진 투쟁에 참여했던 노조원 770 명에게 인사 상 불이익을 주었다. 그리고 파업 이후 사내에 설치된 CCTV를 고화질로 교체했다. 현재 MBC 보도국에는 12대의 CCTV가 설치돼 있다고 한다. 파업 기간에 8대가 설치됐고, 파업 이후 4대가 추가로 설치됐다. 보도국 외에는 ‘PD수첩’과 ‘시사매거진 2580’을 제작하는 시사제작국이 자리한 6층에도 4대가 새로 설치됐다. 직원 책상 위에 놓인 서류의 제목이나 인터넷 검색 내용이 읽힐 정도로 고화질이라고 한다. 물론 회사 측은 순수한 도난방지용이라고 설명.
    MBC는 또 정직과 대기발령 조합원 20명에게 잠실에 있는 MBC 아카데미에 가서 3개월 간 교육을 받으라고 명령을 내렸다. 교육대상자는 국장, 부장, 차장급들이다. 전 논설주간, 한국PD연합회 차기 회장, 전 방송기자연합회장 ..... 등등 방송사를 새로 세울 만큼 유능한 인재들이 방송시설이 없는 잠실로 출근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교육 내용을 보자.
    ‘시와 철학’, ‘음반산업의 이해’, ‘실용음악 실습’, ‘트위터 사용의 이해’, ‘페이스북 운영 어떻게 하나’, ‘내가 만드는 브런치’, ‘미디어의 이해’, ‘만화 산업의 현재와 미래’ ......
    이번 주부터 실시되고 있는 CBS의 중간간부 교육 커리큘럼과 나란히 놓고 보면 알 사람은 다 안다.
    ‘국내외 경제위기와 미디어 산업의 환경 변화’
    ‘스마트 미디어와 미디어 트렌드’
    ‘미디어의 마케팅과 비즈니스’
    ‘소셜 미디어의 이해’
    ‘디지털 콘텐츠와 소비자’
    ‘디지털 영상시대의 기독교와 미디어’
    ‘디지털 뉴미디어 시대의 저널리즘과 뉴스’
    아카데미로 출근해 거기서 교육을 받으라 명령받은 MBC 간부들은 사실 거기에 강사로 와주십사 모셔야할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여의도 MBC 근처에 오지도 말고 사람들을 만나지도 말라는 격리수용 지침이 아닌가 말이다.
    펜으로 싸우면 칼로 죽는다?
    복잡해 보이지만 뿌리는 모두 하나이다. 방송사 사장을 정권이 입맛대로 앉히려는 데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국민일보는 자기 재산도 아닌 신문사의 사장을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책략을 꾸미면서 벌어진 일이다. 결국 집권 이후 정략적 목적으로 언론을 황폐화 시킨 책임이 정치권 특히 여권에 있음은 분명하다. 한국기자협회 창립기념식에 참석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축사에서 “해직기자들이 아직 복직이 안 되고 있다니 우리가 모든 힘을 모아서 함께 해직기자들의 아픔을 나눴으면 한다”고 밝혔다. 뭔가 노력해 보겠다는 것인가?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도 “유신 이후로 이렇게 많은 언론인들이 해직되고 파업을 한 적이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엇으로 언론 정상화에 기여할 지 지켜보자.
    펜으로 싸우는 자 칼로 죽는다 ..... 알제리의 회교원리주의 지도자 ‘아부압둘 라만 아민’이 남긴 말이다.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사회통제와 국가 통치에 따르지 않고 ‘펜이 칼보다 강하다’며 저항하다가는 처형될 줄 알라는 경고였다. 그러나 이 나라는 권력자가 그런 수고를 아낄 수 있다. 언론사주와 사장, 충성스런 간부들이 자기들 선에서 깔끔히 처리하지 않는가 말이다.
    8 min
  • [08/21 화요일]내 땅이 온전해야 예술도 온전해
    독도에는 국기게양대가 있다. 국기게양대의 디자인과 제작을 맡았던 사람은 작가 홍 모 씨. 홍 씨는 국기게양대의 좌대 격인 바닥을 원형 태극문양으로 디자인하고 건곤감리를 배치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지도의 형상인 호랑이를 세웠다. 그런데 경상북도와 울릉군이 독도에 독도표지석(이명박 대통령의 친필이 들어감)을 설치한다며 그 국기게양대 작품을 작가 동의도 구하지 않고 철거해 버려 논란이 일고 있다. 호랑이는 떼어내 한 쪽 구석에 처박아 뒀고 태극 문양의 위치도 무단으로 바꿨다고 한다.
    그러자 작가 홍 씨는 독도표지석을 세우는 걸 반대하지는 않는데 자신의 작품을 무단훼손하지는 말아달라고 청원의 글을 올렸다. 차라리 자신의 작품 전체를 모두 철거해 돌려달라는 요구다. 작가로서 자신의 작품이 훼손된 채 방치된 것을 지켜보는 게 괴롭다고 호소하고 있다.
    엿 주고 바꿨으니 엿장수 맘대로?
    비슷한 사건이 2010년에도 있었다.
    휴전선 도라산 역 통일문화광장에 벽화 15점이 그려져 있었다. 통일부의 요청으로 원로작가 이반 씨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통일을 기원하며 그린 작품이다. 작품의 주제는 만해 한용운의 ‘생명·인간·자유·평화·자연사랑’이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더니 통일부는 ‘민중적이며 어둡고 칙칙하다는 이유로 2010년 벽화에 물을 뿌려 벽에서 떼어냈다. 물론 작품은 상당 부분 훼손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백두산 천지 벽화가 걸렸다. 관계 당국은 ‘어둡고 칙칙하다는 건 오가는 사람들의 평이고 국가예산을 들여 국가소유의 벽에 그린 벽화이니 작가의 동의없이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법원도 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작가 이 씨는 “국민의 한 사람인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작품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나라가 지구상 어느 문명국가에 있겠느냐, 이게 입만 열면 이야기하는 국격이냐”며, “이 일은 결코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후퇴의 시대에 살고 있는 모두의 문제’로 여겨 시대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이 씨는 민중화가가 아니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7년 ‘88 서울올림픽 공식예술판화 포스터를 제작한 작가이다. 이것도 민주주의의 후퇴를 반증하는 것일까? 재판부는 그림의 소유권만 따졌다. 정부가 작가에게 저작물 철거에 동의를 구할 의무는 없고 예술의 자유나 인격권을 침해한 걸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정부나 법원의 판단은 내가 그림을 한 점 샀지만 마음에 안 들어 찢어버리거나 불태워 버린다 해도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다. 명품 핸드백은 돈 주고 샀다 내버려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애완견은 어떨까? 예술작품은?
    이에 대해 벽화의 소유권은 정부에 있지만 인격저작권은 여전히 창작자에게 있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작가의 인격이 예술 작품에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면 소유권자라도 마음대로 고치거나 공표할 수 없다고 보는 견해이다. 특히 민족통일의 상징인 도라산 역 광장에 걸려 모두에게 공유되고 있는 작품, 독도에 설치돼 조국을 상징하는 작품이라면 소유권을 떠나 공공의 차원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라는 견해도 있다.
    나라가 온전해야 예술도 온전하다
    예술작품을 만드는데 2년, 정부기관이 맘대로 뜯어내는 데 2시간 ..... 예술에 무지한 공무원의 횡포인지 과잉충성에 의한 몰상식인지 명확히 가려낼 수 없지만 작가는 지금도 작품의 부활을 꿈꾸며 다시 작업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각각 다를 수 있겠지만, 자신들의 기준과 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작품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건 지나친 처사가 아닐까?
    국가권력에 의해 벽화와 조소 작품이 철거된 이 사건들은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권력에 의해 침해당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는 결코 과장되거나 피해망상이 아니다. 최근에도 도종환 시인의 시를 교과서에서 퇴출시키는 문제로 논란이 일었다. 한국작가회의는 ‘민주주의를 위한 저항의 글쓰기’ 운동에 나서 정부로부터 한 푼의 보조금도 받지 않고 있다. 민주통합당 정청래 의원이 폭로했던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이라는 괴문건도 이런 맥락에서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정 의원은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실이 2008년 8월에 만든 문건으로 좌파로 분류한 예술 인사들과 단체를 지속적으로 청산해 나가야 한다는 내용이라고 폭로했다.
    작가 이반 씨는 벽화 사건 이후 이렇게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내가 서 있는 땅이 온전해야 그림도 온전할 수 있구나”.
    예술은 그 표현방식이 어떠하든 인간 삶에 대한 성찰과 애정에서 비롯된다. 결국 예술에 대한 예의는 인간에 대한 예의에 이어져 있는 것. 정치권력의 취향에 의해 벌어지는 예술에 대한 횡포는 우리가 딛고 선 이 땅의 민주주의의 현 주소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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