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풍과 관련된 트윗의 글들을 읽다 보니 발견한 현상. 초등학생.중학생 자녀들은 엄청난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에 걱정이 많고 마음도 심란한데 부모들이 의외로 태연하자 어리둥절한가 보다.
트윗에 올라 온 글들을 읽어보자.
--- 엄마, 태풍 온다고! 태연하게 있을 때가 아니야!!! 그러나 태연하게 태풍을 생까는 엄마를 보며 나는 멘붕이 온다.
--- 진짜 엄마아빠 왜 이렇게 태연해? 태풍 와서 휴교시키고 조정하고 난리 났는데 괜찮다고 나를 막 다그치고 나 참. 직접 겪어보면 정신차리겠지.
--- 와..울 엄마 너무 태연하다. 내일 태풍 온다니깐 태풍 한 두 번 오냐, 그러시네. 간판도 사람도 막 날아다닌데 하니까 “나는 안 날아간다” 그러고 .....
--- (아빠의 글인듯) 대형태풍이 온다고 어째 태연하냐고 딸애가 묻는다 ..... 오는 태풍을 부채질로 막을 수도 없는데 어쩌라는 건지.
--- 엉엉...엄마 엄청 태연해..... 태풍 안 무섭냐고 물으니까 우린 집에만 있는데 뭐 이래.
--- 내가 아빠한테 매미보다 더 심한 태풍 온대 하니까 태연하게 “길어야 수요일까질 텐데 별 신경 안 써, 할 거나 하렴” 너무 태연해 ~ 너무뻔뻔해 ~
--- 내가 엄마한테 엄마 우리 집 물에 잠기면 어떠카냐고 그랬더니 엄마가 ‘잠겨? 잠기면 도망쳐야지’ 이러심
2. 태풍은 별 것 아닌 게 아니다. 2002년 8월 31일 우리나라를 지나간 태풍 ‘루사’는 5조 4,700억 원, 이듬해인 2003년 9월 13일 우리나라를 덮친 태풍 ‘매미’는 4조 2,230억 원의 재산피해를 입혔다. 내 집 유리창은 무사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가 입는 피해는 막심하다. 대비할 것은 대비해 줄일 수 있는 피해는 줄이자.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이럴 때 집에서 할 일, 밖에서 주의할 일 등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한다.
1)집 주변의 하수구나 배수구 점검
2)비상사태시 대피소와 비상연락망 점검
3)집을 비우고 대피할 때는 가스밸브를 잠그고 전기차단기 내려야 함
4)가정 내 응급 의약품과 식수, 비상식품 점검.
5)외출 시 감전 방지를 위해 물에 잠긴 도로는 피할 것
6)아파트 거실 창문에 대각선 방향으로 테이프나 젖은 신문 붙이기.
7)아파트 지하주차장 물막이 설치, 변전실과 승강기 기계실 누수 여부 점검
.......
아이들에게 ‘야, 안 죽어. 다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거야’라고 쉽게만 이야기하기 보다는 부모로써 윗세대로써 책임 있고 진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을 듯.
3.천상천하유아안전 ..... 그렇게 될까?
인간은 불안해지면 정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스스로 불안감을 달래는 본능이 있다. 이걸 ‘정상화 편향’이라고 한다. ‘정상화 편향’은 모든 게 괜찮다고 확신을 강하게 가짐으로써 자신을 달래고 편안케 하려는 행동양식이다.
---- ‘내 할 일 하고 가만히 있으면 큰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아직은 괜찮아’, ‘태풍이 며칠 씩 불지는 않아, 한 나절이면 지나가니까‘ ..........
이런 식이다. ‘정상화 편향’이 작동되면 위험한 사태가 밀려닥치리라는 이런 저런 뉴스나 경고가 접수되어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떻게든 괜찮을 거라는, 내게는 큰 일이 닥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으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을 예로 들어 보자.
어렵고 위험한 일이 터지면 대개는 옆 사람에게 묻는다. ‘별 일 아니겠지? 괜찮겠지? 그냥 지나갈거야, 그치?’ .... 다들 ‘아니야 위험해’라고 말하다가 어느 한 사람만 강하게 ‘그럼 괜찮을거야’하고 말하면 그 사람 말을 믿어버리기도 한다.
또 우산 들고 나가기 싫은 경우 창밖을 내다본다. 다들 우산을 쓰고 다닌다. 그런데 저쪽에 누군가 우산을 받치지 않고 어슬렁거리면 ‘그 봐 우산 안 써도 될 만한 가봐’하며 얼른 우산을 내려 놓는 것도 정상화 편향이다.
위험하다는 경고를 반사적으로 거부한다 해서 ‘반사적 불신’이라고도 부른다. 나쁜 일은 이미 벌어졌는데 마음은 아니야 아니야 중얼거리며 정확한 상황 인식을 어렵게 만드는 인간의 모순이다. 다행히 이런 심리적 기재로 침착함을 이끌어낸다면 좋지만 일본 쓰나미 재난 영상에서 보았듯이 그 몇 분 몇 초의 망설임과 느긋함이 때로는 자신과 가족의 생사를 결정짓는다. 빨리 도망쳐야 하는데 주변 사람과 괜찮겠지, 아니겠지, 저 사람들도 그냥 있는데 ..... 등 안심해도 될 거라는 온갖 이유를 찾아 들이대며 시간을 끈다. 더 이상 어쩔 수 없게 됐을 때 비로소 인정하고 황망히 움직이는 인간의 심리적 본능을 스스로 이해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이때 ‘정상화 편향’에서 먼저 깨어나 움직이는 사람은 위험을 겪어 본 사람, 훈련에 의해 어느 정도 숙달된 사람들이라고 한다. 민방위 훈련, 재난대피훈련, 소방훈련 열심히 참여해 배우고 익히자.
1982년 나가사키 홍수. 종종 홍수가 나던 지역이었다. 이번엔 홍수 규모가 더 크다고 경고했지만 주민들 일부는 평소보다 얼마나 더 위험한지 보겠다고 자리를 지켰다. 오후 5시에 홍수경보를 내렸는데 밤 9시까지 13%의 주민만 대피하고 결국 270여명이 사망했다.
2005년 8월 태풍 카트리나 때 미국 미시시피에서도 슈퍼마켓에 들른 많은 사람들이 음료수와 빵 조금만 사가지고 귀가했다. 물과 통조림 기타 생필품을 더 준비하라고 해도 ‘별 일 없을 거예요’ 라며 무시했다. 그러나 수 천 명의 인명피해와 함께 전기 끊기고 길도 끊겨 2주간 고립됐다.
9/11 테러 때 건물에 충격이 가해지고 빨리 빠져나가라 할 때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코트를 찾아 입고, 주위 사람들에게 지금 일이 생겨 사무실에서 나간다고 전화 걸고, 컴퓨터 프로그램 접고, 전원 끄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긋하게 움직였다고 한다. 우리가 외신을 통해 지켜 본 사람들은 건물이 붕괴된 다음의 패닉 상태였고 사태 초기에는 정상화 편향이 작동되었다는 해석이다. 내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하면 세상도 아무 일 없는 게 되어버리기를 바라는 마음, 그 본능적인 간절함이 ‘정상화 편향’이다.
4.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면 좋겠지만 ....
사람들은 불이 나거나 폭발한다면 위험을 실감하며 서두른다. (물론 이 때도 정상화 편향이 작동되기도 한다. 그런데 태풍이나 홍수는 들이닥치기 전에는 실감하지 못한다.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면 이미 한참 늦은 상황이다. 귀찮더라도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나름의 믿는 바가 있더라도 방재당국이나 전문가들이 권고하는 대로 따르며 사태를 잘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치나 경제에도 정상화편향이 존재한다. 주식시장에서 반토막 나 보신 분들 금방 이해하실 것이다. 정치 분야에서도 이래선 나라가 안 될 거라는 여러 신호나 경고가 울려도 사람들은 ‘괜히들 걱정하는 걸거야’, ‘그렇게 망가지기야 하겠어’ .... 라며 새로운 변화를 거부한다.
때로는 자기 자신을 의심할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