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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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episodes

  • [07/25 수요일]올림픽을 올림픽이라 부르지 못하다니
    오늘은 올림픽 이야기. 올림픽의 유래는 모두 아시는 대로이다. BC 870년 경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4년마다 한 번 씩 열린 것이 기원이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인 엘리스에서 처음으로 열렸다는 설도 있는데 주최국이 엘리스여서 그런 설이 나돈다고 보고 있다. 고대 올림픽 경기는 남자들만이 벌거벗은 채로 참가했고 여자는 참가뿐만 아니라 구경도 허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BC 431년 아테네 동맹과 스파르타 동맹 간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벌어지고 주최국 엘리스의 정치적 중립이 무너지면서 올림픽을 통한 결속은 깨졌고 고대 올림픽은 근근이 이어가다 결국 막을 내린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 후 쿠베르탱이 근대 올림픽을 재건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올림픽, 정치를 떠나 돈벌이로 ...
    그러나 그 근대 올림픽도 여러 번에 거쳐 자칫 판을 접어야 할 위기에 놓였었다. 가장 최근의 위기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무럽. 1979년 이란 과격파 학생들이 테헤란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침범해 인질 사건을 벌이고 소련이 중앙아시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미국을 비롯한 65개 국가가 소련을 규탄하며 올림픽을 거부했다. 그런데 다음 올림픽이 하필이면 LA 올림픽. 소련은 1984년 공산권 국가들을 이끌고 LA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는 것으로 보복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때 금고가 바닥을 드러냈다. 현금성 재산이 겨우 20만 달러 수준. 보다 못한 국제연합(UN)이 올림픽을 직접 주관할 테니 물러서라고 나설 정도였다. 그 때 올림픽을 구한 것이 사마린치이다. 사마란치는 우선 IOC 금고에 돈을 채워 놓기 위해 방송중계권을 치열한 공개경쟁 입찰로 몰아갔다. 입찰 대상자는 당연히 NBC.ABC.CBS 미국의 텔레비전 방송 3사. 사마란치는 미국 방송사 대표들을 만나러 미국에 간 것이 아니라 스위스 로잔으로 불렀다. 입찰 순서를 선착순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abc 순서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동전 던지기로 정해 서류를 받았다. 가능한 방송사들끼리 협의를 하지도 못하고 시차 때문에 본사하고도 자유롭게 연락을 못하도록 혼란에 빠뜨리는 전략이었다.
    어떻게든 올림픽 중계권을 따내기만 하면 광고 수입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NBC.ABC.CBS 방송 3사는 올림픽 때마다 IOC의 계략에 말려들었다. 서로 싸우면 IOC에게 바가지를 쓸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이 진흙탕 싸움을 한 마리만 살아남고 살아남은 하나 역시 불구가 된다고 해서 ‘전갈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때부터 방송사들은 올림픽 월드컵의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노예가 됐다. 훗날 우리 KBS MBC 등도 주요 국제스포츠 중계권 협상 때마다 이런 계략에 말려들어 제각각 비싸게 계약해 아까운 돈을 날린 것은 잘 아는 일. 대표적인 예가 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 방송중계권을 ABC가 따내긴 했는데 4년 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때보다 무려 337% 오른 2억1,750만 달러에 겨우 얻어냈다. ABC는 “스포츠 방송 사상 가장 실망스럽고 분노스럽고 터무니없는 협상”이었다고 밝혔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
    IOC의 다음 카드는 모든 마케팅 권한을 4년간 독점 패키지로 묶는 것이었다. IOC는 4년짜리 패키지 스폰서 프로그램을 만든 뒤 다국적 대기업들에게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은 4년 독점에 긴장했다. 각 분야마다 숙명의 라이벌이 있다. 코카콜라와 펩시 콜라, 나이키와 아디다스 ...... 라이벌을 제치고 올림픽 스폰서가 되기 위해 다들 눈에 핏발이 선채 달려들었다. 비자카드가 라이벌 아멕스의 가슴에 칼을 꽂겠다며 달려든 것은 유명한 일화. 코닥 필름이 잽싸게 스폰서 자리를 차지하려는 순간 후지필름이 뒤통수를 치며 막판 뒤집기를 하기도 했다. 모토롤라는 스폰서 값이 너무 비싸 가격흥정을 해보려다 승부수를 던진 삼성전자에게 당하고 말았다.
    올림픽을 올림픽이라 부르지 못하고
    런던올림픽을 치루는데 드는 예산은 16조원. 중국 북경 올림픽의 절반 쯤 된다. 유럽 경제가 어려운 만큼 깎고 깎아 16조가 되었다. 중국이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치른 예산이 17조였다. 런던 올림픽 예산 16조원 가운데 가운데 3조 6천억 원을 올림픽 공식스폰서 기업이 낸다. 올림픽의 스폰서가 다 같은 스폰서는 아니다. 가장 높은 단계인 월드와이드 공식스폰서 기업, 올림픽 파트너 기업, 올림픽 공급처 기업 등 몇 단계에 걸쳐 수십 개의 스폰서 기업이 돈을 내고 올림픽 마케팅에 참여하고 있다.
    월드와이드 공식스폰서 기업은 동계.하계 올림픽을 묶어 시즌 내내 홍보와 마케팅에 올림픽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따낸 기업이다. 흔히 ‘월드와이드 톱 파트너’ 또는 ‘톱 올림픽 파트너’라고 부르는데 4년마다 계약을 연장하며 올림픽과 함께 계속 꾸준히 가는 기업들이다. 우리가 올림픽마크와 함께 흔히 떠올리는 코카콜라, 맥도널드, 비자카드, 오메가시계, 파나소닉, 제너럴일렉트릭 ..... 그리고 삼성 ! 그 밑의 단계가 ‘런던올림픽 공식 파트너’이다. 아디다스, 베엠베, 브리티시 에어웨이 등 ...... 매번 올림픽 때마다 계약하는데 올림픽을 치르는 나라의 기업들이 주축이 되는 것이 보통.
    왜 엄청나게 비싼 돈을 내가며 올림픽 스폰서기업이 되려 하는가? 통상 마케팅에 1억 달러를 쏟아 부으면 기업 브랜드 이미지가 1% 올라간다고 추산한다. 그런데 올림픽을 내걸고 마케팅을 하면 1억 달러에 1%가 아닌 3%가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공식 스폰서를 놓친 기업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로 끝날까? 아니다. 실패한 기업들은 또 다른 방법을 동원해 마케팅에 나선다. 아이디어만 잘 짜내면 비싼 돈 안내고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이런 걸 앰부시 마케팅이라 하는데 대표적인 예는 한국에 있다. 2002 월드컵에서 공식 스폰서는 KTF였지만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잔치를 연 것은 SKT여서 사람들은 지금도 SKT가 월드컵 스폰서인 줄 안다. 올림픽, 월드컵 등에서 공식 대표 유니폼은 공식 스폰서기업의 옷을 입었는데 다른 회사 제품의 겉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 선수들은 따로 자기 스폰서로부터 돈을 받고 슬그머니 마케팅을 해주는 선수들이다.
    올림픽이라는 단어 사용, 로고 사용, 오륜 마크 사용, 마스코트 사용은 엄격히 제재를 받지만 죽으란 법은 없다. ‘올림픽’이라는 단어를 마케팅에 사용하면 규제를 받으니 ‘파이팅 코리아’, ‘힘내라 우리의 영웅들’ ‘스포츠는 위대하다’ ....... 요런 식으로라도 하면 된다.
    그러나 런던 올림픽부터는 이런 앰부시 마케팅에 대해 규제가 더욱 심하다. 돈도 안 내고 어딜 껴드느냐 이거다. 런던 올림픽은 모든 참가 선수의 초상권 사진을 올림픽위원회가 소유하는 걸로 더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그리고 금메달, 은메달이란 단어도 올림픽 끝날 때까지 마케팅에 사용하면 걸린다.
    런던 올림픽의 최대 관심사는 메달만이 아니다. 런던 올림픽은 모바일 디지털이 관건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PC가 대중화된 뒤 처음 치러지는 올림픽이어서 그렇다. 또 SNS와 올림픽은 어떻게 소통할까도 관심사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SNS 트위터 이용자는 600만 명이었다. 페이스북은 1억 명. 그러나 지금은 트위터는 1억4천만. 페이스북은 9억명이다. 우리 기업들도 런던에서 치열한 글로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제는 메달이 전부가 아니다. 올림픽의 숨은 뒷거래와 작동원리,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른 올림픽의 변화를 놓치면 올림픽의 절반은 놓치는 셈이다
    8 min
  • [07/23 월요일]콜트콜텍.쌍용차.용산 .. 누가 우리의 하나됨을 가로막는가
    이승만 정부의 토지개혁으로 분배받은 구로동 농민들의 땅을 5.16 군사정권이 강제로 빼앗았다 50년 만에 농민에게 돌려주게 되었다. 토지개혁은 토지개혁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6.25 전쟁, 공산침략 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해방 직후 북한에서 먼저 토지개혁이 이뤄졌고 남한은 미군정과 친일파가 토지개혁에 미온적이어서 사회 불만이 높아졌다. 이승만 정부가 여론을 감지해 토지개혁을 강행 한 뒤 6.25 전쟁이 터졌다. 남한을 점령한 북한 공산집단이 ‘이제 국가의 모든 땅을 거두어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주겠다’고 선전선동에 나섰을 때 남한의 농민들은 그거 우리 정부가 벌써 다 해놓은 일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민심이 북의 공산집단에 속아 넘어가는 걸 막는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그 민심을 기반으로 국군의 반격이 이뤄지고 반공의 기초가 닦여나갔다. 또 1960년대 70년대 농사짓고 소 팔아서 자식들 대학 보내고 이 나라 교육수준을 끌어올려 산업화를 이룬 것도 농민들이 토지개혁으로 소작농에서 자영농으로 올라섰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처럼 개혁해야 할 때 소수의 기득권에 떠밀려 개혁을 놓치고 다수 서민들의 민심이 국가로부터 떠나버리면 국가는 자칫 수렁에 빠지고 만다. 그럴 때 나라 밖으로부터 위기가 닥쳐오고 국민통합의 기반이 없으면 뿌리 채 흔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콜트콜텍 2천일, 쌍용차, 용산 철거민 ......
    그런 점에서 오늘 몇 사건을 되돌아보기로 하자.
    오늘(23일)이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이 2천일을 맞는 날이다. 주말이던 21일 저녁에는 서울시청 광장에서 콜드콜텍 노동자를 격려하는 콘서트가 열렸다. 22일에는 부평 콜트 공장에서 미사, 문화예술인과 노동자 시민이 함께 하는 공연, 24일에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영화 상영, 25일에는 마무리 콘서트가 부평 공장에서 열린다.
    기타를 만드는 제조업체 콜트,콜텍은 지난 2007년 경영위기와 노사갈등을 이유로 부평의 콜트공장과 대전의 콜텍공장을 폐업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부평에 있던 콜트는 전자 기타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30%나 되고, 흑자를 이어가던 회사였다.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나 환경은 아주 나빴고 노조가 만들어지자 사장은 회사가 어렵다면 정리해고와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그 대신 대전에 콜텍이란 자회사를 만들었다. 콜텍에도 노조가 생기자 콜텍도 공장을 폐쇄하고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그러나 사장은 이미 인도네시아와 중국에 공장을 마련해 놓고 관리직과 기술직, 생산설비를 옮겨 놓았다. 아직도 그 사장이 만들어 파는 기타의 이름은 콜텍이다. 명백한 위장폐업이다. 지난 2월 대법원이 “콜트악기의 2007년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회사는 공장을 팔아치우고 꿈쩍도 않는다.
    지난 21일에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복직을 위한 범국민 집회도 열렸다. 노동자 시민 천2백여 명이 모였다. 7월 21일은 3년 전 쌍용차 노조원들이 회사 측의 일방적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공장에서 77일간 파업농성을 계속하고 있을 때 경찰과 회사 측이 물과 전기를 끊고 식수와 약품, 식료품 반입을 막은 날이다. 당시 쌍용노동자들의 구호는 ‘함께 살자’, ‘해고는 살인이다’였다.
    그 후 3년 간 무급휴직자가 되어 일용직과 날품팔이로 생계를 잇던 노동자와 그 가족 22명이 숨졌다. 회사 측은 대화도 대책도 내놓지 않는다. 지난 2009년 구조조정 당시 노사는 무급휴직자를 1년 후 복직시키자고 합의했었다. 3년이 지난 지금 노동자와 시민들이 만든 구호는 “국가가 책임져라”이다. 사측은 협력업체에 취업을 알선하겠다 한다. 사내에 일감이 많아 인력이 모자란다고 하는데 외부 취업 알선이면 공장으로 돌아오지 말라는 의미이다.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남일당터에도 사람들이 모여 다시 촛불을 밝혔다. 지난 20일 밤, 용산참사 유가족을 비롯한 500여 명의 시민들과 각지의 철거민들, 시민단체 회원들이 모여 ‘잊지 않은 우리는 다시 모인다, 그 곳으로’라는 이름의 문화제를 열었다. 인근의 용산 CGV에서 용산참사를 기록한 영화 ‘두개의 문’을 관람한 관객들이 현장을 찾아가 추모하고 싶다고 해 마련하게 된 추모집회이다. 이런 추모객들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 현장 남일당 터는 지금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차장 터가 그렇게 급해 갈 곳 없는 철거민들을 국가보안법을 들먹이고 테러범이라 부르며 죽음으로 몰아갔는가? 철거민들은 아직 감옥에 있고 작전지휘자들은 높고 편한 벼슬자리에 앉아 잘 살고 있다.
    무엇이 우리의 하나 됨을 가로막는가?
    국민의 존엄과 국가.국법의 권위를 무시한 반역사적 행태들이 걸림돌이다. 친일파의 득세, 3.15 부정선거, 5.16 군사반란, 유신독재, 12.12 군사반란, 5공 군사독재 등 잘못된 역사 속에서 나온 것들이다. 힘이 있으면 그걸로 누르면 되고, 힘을 가진 자에게 빌붙으면 앞질러 갈 수 있는 사회의 부패와 불의가 우리들 사이에 불신을 키우고 폭력을 키웠다.
    더 늦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모든 공정함과 정의로움을 동원해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국민이 국민 대접을 받지 못하는 역사가 길게 이어질 것이고 그건 정말 나라가 아니다.
    9 min
  • [07/20 금요일]참회와 사죄없인 나라도 아니다, 구로동 농지강탈 50년
    서울 구로동 지역 농민 200여명은 오랫동안 농사짓던 땅이 1942년 일본 육군성에 강제 수용됐다. 다행히 일본군이 곧바로 사용하지 않고 방치하는 바람에 계속해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해방이 되면서 일본 소유의 땅이니 당연히 귀속농지의 관리를 맡은 신한공사로 넘어갔고 중앙토지행정처, 귀속농지관리국의 관리를 받으며 농사를 짓고 살았다. 1949년 이승만 정부는 농지개혁법을 만들고 1950년 6.25 직전에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조선시대에서 대한제국,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농사짓고 살아 온 땅이 드디어 대한민국에서 내 땅이 된 것. 그런데 6.25 전쟁이 끝나면서 국방부가 일본군 소유의 땅이었으니 국방부로 넘기라고 요구했다. 다행히 서울시와 영등포구청이 국가적인 농지개혁에 의해 법으로 농민에게 준 땅이라고 난색을 표했고(후에 입장 변경), 법원이 농민 편을 들어 주어 무사히 넘어갔다.
    구로동 농민을 묻어버린 구로공단
    문제는 5.16 군사쿠데타가 터지면서 불거졌다.
    박정희 정권이 이들의 농토에 ‘구로공단(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을 짓겠다며 농민들을 강제로 쫓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깡패들이 나타나 농사일을 방해했고 밤사이에 논에 깨진 유리병 조각, 폐기물, 돌 등을 쏟아 부었다. 농민들을 강제로 내몰더니 논을 메우고 공단부지를 조성했다며 분양했다. 또 논 위에다가 간이주택이라는 조잡한 집을 마구 짓더니 청계천에서 쫓아낸 철거난민들을 수용했고 시영주택을 지어 분양도 했다.
    쫓겨난 농민들은 이 땅이 오랜 세월 농사짓고 살다 국가로부터 국법에 의해 분배받은 농지임을 주장하며 1964년 소송에 들어갔다. 군사정권이 얼마나 무서운지 미처 몰랐던 순진한 공무원들도 농민들이 법으로 분배받은 땅이 맞다며 법정에서 농민 편을 들어줬다. 이번엔 공무원들이 어디론가 끌려갔다. 끌려갔다 돌아 온 공무원들은 농민들 땅이 아니라고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농지개혁법에 의한 분배서류가 구청에 남아 있고, 분배받은 대가로 농민들이 수확한 곡식을 정부에 가져다 바친 기록이 남아있어 법원은 당연히 농민들 땅이라고 판결했다.
    그러자 군사정부는 농민들이 소송과정에서 사기를 치고 서류를 조작했다며 소송사기범으로 몰아 표적수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사기범들이 조작한 증거로 이뤄진 민사소송 재판을 다시 해야 한다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런데 법원은 군사정권의 억지라며 농민들을 모두 풀어줬다. 1968년에 벌어진 사건이다.
    1969년 3선개헌으로 장기집권을 노린 박정희 군사정권으로는 구로공단 조성이 대단히 중요한 공약 사업이었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 절대로 재판에서 지지 말고 땅을 차지하라며 법무부 장관에게 특명을 내렸다. (증거자료 - 청와대 특별지시 문건)
    대통령의 특별 지시가 떨어지자 수사기관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져 버렸다. 꼭 42년 전인 1970년 7월 농민들 집으로 검은 지프차들이 몰려들더니 농민들을 싣고 가버렸다. 잠깐 어디 가 이야기만 하면 된다고 해서 런닝셔츠에 양말도 신지 않고 지프차를 탔던 농민들은 불법구금에 가혹행위를 당했다. 땅을 차지하려고 사기 소송을 벌인 걸 인정하고 땅을 포기하라고 했다.
    국가가 법으로 농민들에게 나눠준 땅이 맞다고 소신껏 증언한 공무원들도 끌려갔다. 공무원들이 끌려 간 곳은 서울 프레스 센터 뒤에 있던 뉴서울 호텔. 호텔방에 벽을 보고 무릎을 꿇린 채 구두 발에 채이고 위협과 모욕을 당했다. 결국 땅을 포기하지 않은 농민 26명 등 40 여명이 소송사기죄, 위증죄로 재판에 부쳐져 감옥에 갔다.
    당시 끝까지 결백과 권리를 주장했던 한 모 씨. 아들이 서대문 형무소로 찾아와 병색이 짙은 아버지 얼굴을 보며 “아버지 땅 내주고 살아서 나가요”라고 울며 청했다. (부산일보와 부산MBC, 서울MBC를 빼앗기던 부일장학회 김 씨 부자의 감옥 상봉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
    한 씨는 “차라리 국가사업을 위해 땅이 필요하니 도와달라고 했으면 기부했을 거다. 느닷없이 깡패를 동원해 쫓아내더니 나라 땅을 탐낸 사기꾼이라고 몰아붙이니 누명을 벗고 결백을 증명하기까지 물러설 수 없다”며 흔들림이 없었다고 한다.
    한 씨는 그 후 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나와 겨울에도 웃통을 벗고 부채질을 하며 화병을 앓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참회와 사죄가 없으면 나라도 아니다
    수백명의 농민들이 포기하거나 사기범으로 형이 확정되기까지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거치며 15년이 흘렀다. 모든 농민에 대한 처리를 끝낸 뒤 군사 정권은 박정희 대통령이 절대로 지지 말라 지시했던 민사소송 재심을 시작했다. 권리를 주장한 사람들이 모두 사기범이 되었으니 당연히 구로 땅은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89년 국가차지가 되었다.
    그러나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 사건을 조사해 청와대, 검찰, 정보기관, 시청, 구청 모든 권력기관이 농민들의 땅임을 뻔히 알면서도 강제로 빼앗기 위해 협박과 공문서위조 재판조작 범죄를 벌여 왔음을 밝혀내고 재심권고 결정을 내렸다. 농민들의 누명은 재심 재판을 통해 벗겨져 모두 결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재판에 의해 범죄자가 된 지 30년, 권력과의 싸움이 벌어진 지 50년이 지났다. 살아남아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재판 당사자는 할아버지가 된 그 아들들이고 집에 없는 어머니 대신 끌려가 죄인이 된 젊은 아가씨는 할머니가 됐다.
    그런데 아직 땅은 농민들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땅을 되찾기 위해 농민이 민사소송에서 이겨 지켰던 땅을 권력의 재심으로 도로 빼앗겼고, 다시 재재심이 진행됐다. 권력은 농민들에게 땅을 되돌려 주지 않기 위해 하나의 땅을 여럿으로 쪼개고 쪼갠 땅을 섞고 합쳐 어느 것이 누구의 땅인지 알아 볼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졸렬하고 치사하다. 이건 나라도 아니다.
    오늘(20일)은 법원에서 그 재재심의 선고가 있는 날이다. 꼭 땅을 되찾으라 응원을 보낸다. 힘없는 농민을 짓밟은 지 꼭 50년 만에 이뤄지는 역사 바로 세우기이다.
    10 min
  • [07/18 수요일]백백교에서 신천지까지, 신흥사교집단 열전
    지난 주 파푸아뉴기니에서 사람을 죽이고 인육을 먹은 사이비 종교집단이 경찰에 체포됐다. 종교집단을 이끌던 주술사들이 재산을 갈취하고 부인과 딸을 바치라고 요구하자 신도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세계사 속에서 흉명을 떨친 사이비 종교를 열거해보자.
    인민사원(人民寺院, Peoples Temple) 사건 - 1978년 11월 18일 가이아나 존스타운에서 벌어진 집단 자살로 널리 알려진 사교집단. 처음엔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가난한 흑인, 마약중독자, 노숙자 등 도시 빈민을 도우며 좋은 평판을 얻었다. 그러나 교주이던 존스가 스스로를 예수, 부처를 잇는 신적인 존재라고 우상화하면서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해 1970년대부터 탈출자들이 폭력과 학대의 실상을 폭로했다. 교주 존스는 1천 명의 신도들을 데리고 가이아나의 정글 속에 은거해 지내다 결국 신도들에게 청산가리를 탄 주스를 마시도록 해 집단살해한다. 강압적인 자살로 914명이 사망했고 그 가운데 276명은 어린이였다.
    옴진리교 - 1984년 교주 아사하라 쇼코가 설립한 일본의 종교집단. 각종 불법적인 비리와 반대자 일가족 살해 사건 등으로 경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1995년 3월 20일에 도쿄 지하철 무차별 독가스 살포 사건을 일으켰다. 경찰 압수수색에서 사린가스 등의 화학무기 제조 설비, 생물무기 설비, 독가스 살포를 위한 군용 헬리콥터 등이 발견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2006년 교주 아사하라 쇼코를 비롯, 핵심 주모자 13명의 사형이 확정됐고 5명은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백백교에서 신천지까지
    백백교 - 1900년 평안남도 영변에서 전정운이란 인물이 금강산에 들어가 3년 동안 도를 닦고 세웠다는 사교집단. 1904년 6월에 인류가 멸망하지만 백백교를 믿으면 동해바다에 새로 생길 신선의 땅으로 옮겨져 불로장생하게 된다면서 신도를 끌어 모았다. 1904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신도들이 반발하자 반대신도들을 살해하고 강원도 산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신도 1만 명, 전정운이 거느린 여인만 60명, 교인들의 재산을 갈취해 방탕한 생활을 하다 병으로 숨졌다. 그러나 아들이 뒤를 이어 교주가 돼 부하들과 함께 신도들의 부인과 딸을 빼앗고 남자들을 죽인 뒤 도시로 진출해 교세를 넓혔다. 교주와 측근들에게 살해당한 사람만 450 여명이 넘는 희대의 살인 사교집단.
    용화교 - 교주는 서백일. 교리를 빙자하여 금품을 갈취하고, 여신도들을 간음해 오다가 1962년에 발각되어 사회적으로 크게 물의를 빚은 집단. 전라북도 김제군 청도리가 근거지였다.
    오대양 사건 - 교주 박순자가 1984년에 공예품 제조업체인 오대양을 설립하고, 종말론을 내세우며 사이비 교주로 행세하였다. 신도들과 자녀들을 집단 시설에 수용하고, 신도들로부터 170억 원에 이르는 거액을 뜯어냈다. 이 돈을 받으러 간 신도의 가족을 집단 폭행하고 3명을 살해한 후 잠적했다가 31명의 집단자살극으로 막을 내렸다.
    그 밖에도 다미선교회 시한부 종말론 사건, 영생교 사건, 아가동산 사건, 장막성전 사건, 천존회 사건, JMS 사건 ..... 사교 집단의 폐해는 조선시대로부터 21세기에 이르도록 끊이질 않는다.
    지난달 22일 경북대학교 총장에게는 학교 안에서 사이비 종교를 포교하는 이들을 막아달라는 호소가 전달됐다고 한다. 밤에 학교를 나서다 사교집단 사람들에게 붙잡혀 ‘조상에게 제사를 드려야 인생을 편하게 살 수 있다’, ‘제사 비용을 내놓으라’는 강압적인 요구를 받으며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학교는 홈페이지에 “사이비 종교 금품 요구 주의” 팝업창을 띄우고 신고를 받으면 즉시 출동해 구조하는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실제로 대구 지역 대학생들 중에는 이런 사이비 종교 신도들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르거나 돈을 뜯긴 사례가 많다고 한다. 제사비용은 12만 원쯤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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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7/16 월요일]유력후보님과 과메기형님께 알아서 기는 언론
    이명박 대통령의 747 공약 ..... 핵심은 앞의 7이다. 경제성장률 7%만 착실히 이뤄나가면 나머지 ‘소득 4만불’, ‘7대 경제대국’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이다. 해마다 7% 안팎의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이지만 올해 경제성장율 목표치는 3.0%이다. 지난 4월엔 3.5%라더니 지난 주 0.5%포인트 낮추었다. 기획재정부가 6월 발표한 2012년 경제성장률 전망치 3.3%보다 0.3%포인트 낮다. 4월의 3.5%도 지난해 12월 전망치(3.7%)를 내려 잡은 것이다.
    747 공약이 처음 등장할 때 그리고 황당한 목표였음이 드러났을 때도 언론들은 지적하지 않았다. 그저 그렇다고 하면 그대로 베껴 쓸 뿐이었다. 4대강 사업도 그랬고 세빛둥둥섬, 경인운하, 경인전철 ..... 모두 그랬다.
    그 무엇이든 집권당 실력자가 그렇다고 말만하면 그렇다고 베껴 쓴다. 금배지와 장관 배지를 달거나 달고 싶은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언론과 기자들은 왜 그런 걸까?
    물어나 봤나, 물어 볼 수나 있나?
    박근혜 의원의 경제정책이 ‘줄푸세·성장’서 ‘경제민주화’로 180도 전향했다. 줄푸세를 이야기할 때와 지금 상황이 달라진 것은 박 의원이 대통령 예비후보로 본격 행보를 시작한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결국 진정성 없는 정략적 변신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언론들은 ‘재벌개혁과 따뜻한 시장경제로’의 전환이라고 한다. 우리 경제를 바라보는 눈이 제목 그대로 180도 바뀌게 된 이유도 묻지 않는다. 조금만 들여다 봐도 민주당 것을 급히 빌려다 쓴 흔적이 역력하지만 그것도 생략한다. 차라리 임태희 김문수 등 여당의 경쟁 후보들 입이 공정보도처럼 들린다.
    특히 D 일보는 “‘미래 지도자 박근혜’로서 아버지 박정희를 뛰어넘는 ‘비욘드 박정희’의 새로운 비전을 보여 주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며 거의 대통령 당선자 대접을 한다.
    박근혜 의원의 출마선언문을 빼곡하게 옮겨 쓴 D일보의 기사 제목은 “아버지의 국가주의를 넘어…"국민 한 명 한 명 행복한 시대로”이다. 찾아 읽어보실만 하다.
    출마선언문을 옮겨 쓴 내용은 빼고 뒤에 붙는 서술형 어미들을 모아보면 이렇다.
    “감사의 뜻을 밝혔다.”, “국민과 같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패러다임 변화를 선포한 것이다.”, “박 전 위원장 나름의 깊은 성찰에서 나왔다는 설명이다.”, “새롭게 가꿔 나가겠다는 포부인 셈이다.”, “국민행복의 초석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국가대계를 수립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등등 강력한 지도자에게
    헌정하는 서술어들이 가득하다.
    말씀하소서 우리의 유력후보님
    이런 박 의원 추켜세우기는 트렌드인 모양이다. 지난 10일 밤 Y방송에 출연한 기자는 박근혜 의원의 ‘말씀’이라고 표현했다 한다. 기자는 아버지 나이의 기자에게도 선배에 ‘님’을 붙이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겁먹지 않고 누구라도 겁 줄 수 있도록 국민의 대변자로 길러내기 위해 그리 훈련시킨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도 대통령이 말했다고 하지 말씀했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로도 결정되지 않은 국회의원에게 ‘말씀’? 과공은 비례, 박근혜 의원을 일부러 깎아내리려는 역공작은 아닌지 .....
    Y 뉴스로 가보자. 다른 후보 관련 기사보다 2배 가까이 줄줄이 쏟아진 박근혜 의원 관련 시리즈 기사의 제목들을 보면 “사상 첫 여성대통령 노리는 박근혜 누구인가”, “육영재단 이사장, 영남대학교 이사장,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내면서 선친의 업적과 역사적 정당성을 외롭게 주장했다”, “세종시 원안고수는 그를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려하는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으로 각인시켰다”, “애국심, 철저한 안보관, 국가·국민에 대한 사랑은 그가 가진 덕목으로 꼽힌다. 부정부패와 불법에 단호하고, 한번 옳다고 결단한 것을 번복하지 않은 결연함도 그의 장점들로 언급된다.”
    연합뉴스 노조는 “기사 꼭지 수와 분량만 봐도 단순히 유력 후보라는 점을 감안했다고 보기에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며 “사내 구성원들의 들끓는 분노에서 그치지 않고 언론계 안팎의 웃음거리가 되면서 파업의 의미까지 훼손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노조는 “연합뉴스 기사를 보고 ‘박근혜는 이미 대통령인가”라고 묻는 독자들의 지적에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가라는 자괴감 가득한 비판을 내놓았다. 연합뉴스 구성원들이 게시판에 올린 반응이 일부 미디어 비평 전문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는데 “참담하고 분통이 터진다”, “기자가 아니라 타이피스트다”, “103일간의 공정보도 외침이 무색한 기사다” 등의 자괴감 어린 내용들이 가득하다.
    대통령 친형도 그 때 그 때 달라요
    그나저나 방송은 정말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이자 국회부의장을 지낸 거물정치인 이상득 전 의원이 동생의 대통령 임기 중에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되었는데 시큰둥한 반응이다. MBC와 SBS는 11일 밤 메인 뉴스 시간에 세 번째 리포트로 한 꼭지만 보도했다. KBS는 9시 뉴스에 세 번째와 네 번째로 두 건을 방송했다. 사회부에서 기자들이 이상득 전 의원의 구속과 관련해 3건의 보도 안건을 제출했더니 1건만 받아들여졌고 정치부의 야당반응 1건 해서 도합 2건의 기사가 방송됐다고 KBS 새노조 관계자가 토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친형인 일선 공무원 출신의 노건평 씨가 구속될 때는 벽에 방송사마다 6~7건 씩 온통 도배를 하더니 이명박 대통령 친형 구속 때는 편지봉투 침 발라 붙이는 정도이다. 노건평 씨 구속수감 당일 저녁 메인 뉴스 방송 3사 기사 제목들을 되살려 보자. (미디어 오늘 참조)
    노건평 ‘알선수재’ 혐의 구속 “사실상 로비 주도 판단” 노건평씨, 말 많고 탈 많았던 ‘5년 행적’, 봉하마을 ‘큰 충격’, 노 전 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 탄력 받나?, ‘대통령 친인척 비리’ 근절대책은?, 박연차 회장 “비자금 조성·전달한 적 없다”, “30억 통장 받았다”, 봉하마을 충격과 침묵, 탄력 받는 수사, 참여정부 도덕성 타격, 반복되는 대통령 측근 비리, 노건평씨 결국 구속수감, “노씨, 정화삼 형제와 공모”, 노 씨 사건의 재구성, 정치권 반응, 끊이지 않는 대통령 친인척 비리, 박연차 회장 ‘비자금 의혹’ 부인 ......
    현직 대통령의 친형이자 최다선 의원이었고, 현직 의원시절 고향에 예산 몰아주고 과메기 라인,영포라인의 최고 실력자인 이상득 전 의원이 구속된 사건은 헌정사상 처음이라 할 큰 사건, 이것을 제대로 보도하려면 이명박 대통령 퇴임식은 끝나야 할까? 도대체 언론에 몸담아 무엇을 가르치고 배운 것일까? ‘누구에게도 겁먹지 말고 누구도 겁줄 수 있어야 한다’가 아니라 ‘자나 깨나 몸 조심’을 가르치고 배운 것일까?
    개신교도들을 스위스로 쫓아냈다가 그들의 스위스 은행에 신분을 감추고 접근해 돈을 빌려야 했던 비밀계좌의 원조 프랑스의 루이 14세 이야기를 지난 시간에 했다. 가난한 철학자 스피노자에게 루이 14세가 “당신이 쓰는 책 중 하나에다 ‘이 책을 루이 14세에게 바친다’고 한 마디만 써주면 당신이 죽을 때까지 연금을 지불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어림없는 말씀이라고 거절하며 죽을 때까지 안경 렌즈를 깎으며 살았다. 늙고 병든 가난한 철학자가 절대군주에게 내보인 기개이다.
    그런데 이게 무언가. 21세기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 주변 인물들에게조차 대책 없이 떠밀리며 몸 사리는 언론이라니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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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7/13 금요일]스위스 비밀계좌의 비밀스런 역사
    한국-스위스 조세조약이 25일 발효된다. 이름이나 주소 등 특정 인적사항이 없더라도 계좌번호만으로 정보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두 나라 과세당국 이 합의해 지난 10일 스위스 베른에서 조세조약 비준서가 교환됨으로써 이뤄지는 조치이다. 기존의 조세조약에는 정보교환 규정 등이 없어 스위스 현지계좌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조세조약 개정으로 개인이나 기업의 명의로 스위스에 개설된 계좌의 명세 및 금융거래내역을 우리 정부가 받아볼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이름, 주소 등 인적사항 없이 계좌번호만으로도 정보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협의된 부분이 핵심 포인트다. 국세청 역외탈세 조사도 더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스위스 은행이 예금주의 신분을 철저히 감춰주며 ‘검은 돈의 은신처’로 불리는 것은 스위스 은행법에 따른 것이다. 거액의 개인비밀예금을 주로 취급하는 스위스 은행은 약 12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BANK라는 이름도 없이 조그마한 건물에 직원 수도 많지 않은 비밀 계좌 전문 은행도 많다고 한다. 통상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는 예금주 이름 없이 숫자와 문자의 조합으로만 이뤄져 비밀을 보장하게 된다. 모든 거래는 계좌번호로만 이뤄지니 전표가 유출돼도 예금주가 드러나는 일이 없고 예금의 주인은 극소수의 은행간부 및 고위층만이 알고 있다고 한다. 최소 10만 스위스 프랑(1억 3천만 원)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
    비밀계좌의 비밀스런 역사
    프랑스에서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위그노) 사이에 치열한 대립이 전쟁으로까지 번지다 결국 낭트칙령에 의해 양쪽이 타협을 본다. 국가가 개신교의 기득권을 보장하고 개신교는 가톨릭을 국교로 인정해 공격하지 않기로 한 것.
    그러나 가톨릭 측의 반발이 이어지다 1685년 루이 14세가 ‘낭트 칙령’을 폐지해버리자 개신교도들은 궁지로 몰리며 급히 가까운 스위스로 피신해 은행업을 시작했다. 그러자 곤란해 진것은 정작 루이 14세. 영토확장은 하고 싶고 왕실 재정은 바닥나고 어쩔 수 없이 스위스로 피신한 위그노 개신교도들에게 돈을 빌려야 할 처지가 됐다. 그래서 신분을 감추고 고객의 비밀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스위스 은행의 돈을 빌리면서 비밀계좌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 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 귀족과 부자들이 스위스 은행에 몰려가 재산을 맡기면서 스위스 비밀금고는 가장 안전한 피난처로 각광을 받았다. 경제가 금본위로 돌아가던 시절이니 금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각 나라의 왕들이 신용보증과 무역결제의 기초이다. 그런데 혁명으로 왕이 쫓겨나는 판국이니 왕실 귀족 부자들은 왕 아닌 다른 신용 보증처를 찾아야 했는데 스위스은행이 단연 돋보였던 것.
    혁명을 성공시킨 프랑스 부르주아 세력이 프랑스 왕실 귀족 계좌를 내놓으라 하자 스위스는 단연코 거부했다. 이를 욕하는 프랑스 혁명 부르주아들에게 너희들도 별 수 없이 우리가 필요해 질 것이라고 응수했다 한다. 정말 프랑스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자 프랑스 부르주아들이 스위스은행에 돈을 맡기는 사태가 발생했다나.
    스위스는 이어 1차 세계대전 때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가장 안전한 돈과 은행을 갖고 있는 나라로 부각되었다. 그래서 유럽 유대인들의 돈도 스위스 은행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랑스가 세금 확보를 위해 스위스 은행을 뒤지기 시작하고, 독일 나치정권도 유대인 계좌를 눈독들이자 스위스는 1934년 비밀주의를 국법으로 제도화했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 재산 색출을 위해 고객 정보공개를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했고 대신 유대인으로부터 약탈한 나치 정권 역시 고객으로 받아들여 양다리 비밀주의를 지켜나갔다.
    비밀보호주의와 관련된 사건들도 유명한 것이 많다. 1943년 스위스의 한 은행원은 74개 비밀계좌의 고객 정보를 나치에 빼돌리다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1945년 연합군이 전쟁에서 이긴 뒤 독일 나치 일당의 비밀계좌를 열라고 스위스에 요구하자 어느 계좌인지 정확히 대면 열어주겠다며 버티다 연합국이 파악한 정확한 나치 계좌만 넘겨주고 나머지는 입을 EKE아버렸다. 그리고 나치 잔당이 나중에 나타나 왜 내 계좌를 남에게 열어줬느냐 항의하자 다시 그 돈을 지급했다가 들통이 나기도 했다.
    왜 돈의 비밀을 지켜주는가
    이런 스위스은행의 태도는 비밀을 지켜주면 결국 그만큼 돈이 돌아오고 들어온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1982년에는 로마에서 비밀계좌 해외영업을 하던 스위스 은행 직원 2명이 체포됐다. 이탈리아 검찰이 비밀계좌 예금주의 신원을 털어놓으면 면죄부를 주겠다며 타협안을 내놨다. 그러자 한 사람은 고객의 신원을 고해바치고 풀려났고 다른 한 명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고 실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비밀을 털어놓고 풀려난 은행원은 스위스법에 의해 5만 스위스 프랑의 벌금형에 처해지고 비밀을 지킨 은행원은 국가적 영웅이 되며 고생한 대가로 보상금을 지급받았다.
    2008년 4월에는 스위스 UBS은행 간부가 미국 억만장자 탈세를 돕다가 미국 마이애미 공항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국민 여론조사에서 고객에 대한 ‘비밀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응답이 80%에 이를 만큼 스위스 은행 비밀주의는 뿌리가 깊다. 은행업에 스위스 경제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인구가 760만 명에 불과하지만 은행이 300개가 넘는다. 은행금융업이 스위스 국내총생산(GDP)의 11%, 고용시장의 6%를 차지한다. 세금을 피해 스위스에 묵혀두고 있는 해외 예금만 2조 달러(2,50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 스위스 정부는 스위스 은행에게 국제기준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재정건전성을 높게 유지한다. 자기자본비율이 19%를 넘겨야 한다. 유럽기준은 9%~10.5%.
    1990년대부터 스위스 정부와 은행의 비밀주의는 지구촌의 지탄을 받게 되고 서서히 압박에 떠밀리다 2001년 9·11 테러로 궁지에 몰린다. 미국이 테러단체의 돈줄을 쫓다 스위스 은행의 벽에 막히자 문제 제기에 나선 것. 그러나 아주 강하게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미국 은행들도 갑부들의 뭉칫돈을 비밀관리해 먹고사니 그랬다. 그러나 서서히 밀리기 시작한 스위스 은행은 2009년 4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G20 회의에서 결정타를 맞는다. 금융정보의 교환을 기피하는 조세피난처 국가나 비밀계좌 운영 국가들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고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국제여론이 기운 것.
    그 후 재정이 고갈된 미국도 스위스를 더 몰아붙였다. 미국인들이 해외로 자산을 빼돌려 입는 세수 손실이 연간 1천억 달러(130조원)에 이른다며 탈세 혐의 미국인 5만2천명의 계좌 내역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자 유럽 나라들도 스위스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블랙리스트’에 올리겠다며 으르렁거렸다. 은행 측이 미국의 압력에 떠밀려 공개하려 했으나 스위스 정부가 은행비밀법에 따라 불가하다고 버텨 국제 재판까지 벌어졌다. 스위스의 평판이 나빠지자 스위스 법무장관이 ‘은행비밀주의’가 고객의 범죄행위까지 보호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며 물러서 탈세혐의가 있는 4,450명의 명단이 미국에 넘겨졌다.
    스위스는 거액의 비밀계좌 뿐 아니라 새로운 상품들을 개발해 세금을 피하고 싶은 부자들을 돕는다. 범죄와 탈법을 숨겨주는 가장 위험한 사업, 그래서 이윤도 크다. 세상의 부패와 범죄에 대해 미필적.잠재적 협력을 하고 있는 셈이고 쉬운 말로 하자면 장물아비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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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7/11 수요일]기모노에 얽힌 내 안의 전봇대
    최근 벌어진 한일관계에 얽힌 두 개의 사건.
    신라호텔이 귀빈 객실에 일본 전통 유카타를 비치해 놓았다는 주장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면서 한복 홀대, 기모노 우대 논란이 다시 일었다. 호텔 측은 일본인 투숙객이어서 비치해 놓았다고 해명하고 이후로 일본인 투숙객이 필요로 할 때만 비치할 것이라 한다. 신라호텔이 자리한 곳은 이토 히로부미 사당인 박문사가 있던 자리이다. 박문사를 만들기 위해 장충단 숲 4만평을 파헤쳤다. 그리고 광화문 석재를 뜯어내고, 경복궁 선원전 등을 헐고, 경희궁 정문을 뜯어다 건축자재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아직은 호텔 측이 국민감정을 잘 살펴 일본 관련 사업이나 서비스를 실시해야할 듯.
    일본 기모노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신라호텔 유카타가 지적되자 인터넷에는 엉뚱한 이야기도 나돈다. 일본이 전국시대 오랜 전쟁을 치르며 인구가 줄어들자 통치 차원에서 인구를 늘리려고 여성을 공유재산으로 인정했다는 근거 모를 내용이다. 남성들에게 언제 어디서나 어떤 여성과도 잠자리를 같이할 권리를 주어 아기를 많이 낳도록 정책을 썼고 그래서 속옷을 입지 않고 등허리에 담요를 말아 붙인 기모노란 옷이 나왔다는 억지스런 이야기이다.
    기모노, 한자어로는 着物이니 그냥 ‘입을 것’이란 뜻이다. 기모노는 (Kimono)는 중국의 파오 식 옷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다. 발목까지 길게 내려오고 소매도 길고 넓다. 목 부분이 V자로 패여 있고 단추나 끈이 없이 왼쪽 옷자락으로 오른쪽 옷자락을 덮어 허리에 오비(帶)를 둘러 묶는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장식과 무늬가 화려한 여성복 기모노는 17세기 18세기의 일본의 장인들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아주 오래 전에는 천에다 목 부분에 구멍을 뚫어 뒤집어쓰던 데서 점점 옷 모양을 갖추고 옆을 갈라 입기 편하게 만든 뒤 끈으로 동여맨 것이 기모노의 옛날 모습. 당나라의 불교와 함께 전해진 옷과 염직 기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엔 네덜란드나 포르투갈 사람들에 의해 여러 가지 옷감이 전달되고 나염 기술이 전해지면서 더욱 화려해졌다.
    일본 사람들이 입는 옷을 통털어 기모노라 하기 때문에 기모노의 종류는 무척 다양하다. 우리가 한복을 이야기할 때 치마저고리를 흔히 떠올리지만 사실 마고자, 배자, 두루마기, 활옷, 원삼 등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카타는 여름철에 가볍게 입을 수 있는 기모노이다. 기모노의 여름옷이자 일종의 잠옷이기도 하다. 또 목욕 후 물기를 말리기 위해 입기도 하는 간편한 목욕가운이기도 하다. 그래서 속옷을 안 입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기모노 입을 때는 속옷을 안 입는다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기모노 속에 아무 것도 입지 않는다고 하지만 겉으로 자국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속옷을 받쳐 입는다. 오래 전에도 헐렁한 속바지 같은 것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섹시함 어쩌구 하는데 서양처럼 몸매의 굴곡이 글래머러스하게 드러나는 건 촌스러운 것이고 굴곡 없이 완만하게 내려가는 밋밋한 선이 더 멋진 옷맵시이다. 기모노의 매력은 슬쩍 젖혀진 어깨와 목 뒤로 드러나는 목선에서 느껴지는 에로틱함인 듯하다.
    허리에 두르는 띠 오비도 그전에는 끈 수준이었지만 에도 중기에 가부키가 유행하면서 여자 역을 맡은 남자배우가 여성다움을 강조하기위해 폭이 넓은 띠를 등에 묶다가 여성들의 폭발적 인기를 얻어 무늬 매듭 등이 화려해졌다 한다. 기모노는 그렇게 가부키 배우에서 멋지게 변하기 시작해 부유층으로 번져나간 것이지 남성이 자유롭게 소유하고자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은 남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폄훼하는 것이다.
    남의 눈 티끌보다 내 안의 전봇대
    한편으로는 그런 오해가 빚어질만한 일본의 성풍속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의 성문화는 개방적이다 못해 우리와는 몹시 달라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많다.
    요타카 - 옛날 먹고 살기가 어려울 때 깊은 밤에 가난한 여성들이 밤거리로 나가 성매매를 해 목숨을 부지하던 풍습이다. 아주 어린 소녀부터 노인까지 성매매에 나섰다고 하는데 따로 방이 마련된 것이 아니니 바깥 어디서나 성매매가 이뤄졌고 손님을 끄는데 입을 옷을 빌려주는 전문대여업이 생겨났다 한다. 이 의상대여업은 결국 포주 격인 ‘요타카야’ 라는 집단으로 발전했다. 이 때 성매매에 나선 여성들(요타카)이 거적 같은 것을 같고 다녔다한다. 거적이라도 갖고 다니면 그나마 형편이 좀 나은 편이었다고. ‘아소비메’라는 유곽이라는 정해진 장소에서 성매매를 하던 여성과 구분해 부른다. 여기에서 유래되어 전쟁 중인 일본군에게 끌려 다닌 종군 성노예 여성들도 거적이나 모포를 소지했다고도 하고 우리 사회에도 해방 이후 상당 기간 흔히 ‘모포부대’라고 불린 성매매 여성들이 존재했었다.
    와카모노렌주 - 청년들이 단합해 일하고 공동체를 이끌던 마을 모임인데 마을 여성을 공동재산으로 삼으면서 다른 마을 청년들에게는 배타적이었다는 풍습이다.
    이밖에도 마을에서 소년이 성년이 될 때 성매매 여성에게 데려가 성을 가르치는 풍습 등도 있었다 한다. 우리 사회도 일제강점기에 이것을 그대로 배웠는지 ‘딱지 떼준다’는 명목으로 성매매를 하던 풍습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좋지도 않은 일제의 잔재를 꽤나 끈질기게 보존하고 있는 셈이다. 근거도 없이 기모노를 흉보기보다는 우리 안에 잔존하는 흉한 일제잔재부터 털어버려야겠다.
    9 min
  • [07/09 월요일]일은 너무 많이 하고 삶은 너무 적게 누린다.
    총수 귀하, 휴가가 뭔지는 아시는지?
    연합뉴스가 휴가철을 맞아 재벌 총수들의 여름휴가 동정을 보도했다.
    2012년 여름,
    “재벌 총수들 "여름휴가 못가겠네” - 비상경영 시국에 런던올림픽까지 겹쳐
    그렇다면 예전은 어떠했을까? 대기업 총수들의 여름휴가는 연합뉴스가 연례행사로 해마다 보도한다. 금융 위기나 경기침체로 지구촌이 떠들썩한 최근은 물론이고 이전에도 재벌 총수 여름휴가는 늘 ‘바빠서 못 쉰다’였다.
    2002년 여름,
    “대기업 총수, 일하는 게 휴가”
    1999년 여름,
    “올 여름 재벌총수 휴가 없다”
    1991년 여름,
    “재벌 총수들 대부분 휴가 없이 일에 몰두”
    직장인 휴가 백태
    여름휴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직장 상사와 겹치지 않는 것이다. 상사가 휴가 떠나 버린 사무실서 느긋한 여름을, 상사 돌아오면 내가 떠나 느긋한 여름을 .....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여름휴가의 핵심 포인트.
    직장인의 여름휴가에서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업무 진행 상황을 보고 자리를 비워도 될 시점 파악하는 것이다. 긴급한 현안을 놓고 떠나기는 아직 우리사회의 휴가문화나 의식이 받쳐주기 어렵다.
    또 휴가 전 할 일은 해 놓고 가야 한다. 죄다 대타에게 떠맡길 수는 없는 일. 휴가 즐기러 간다고 동네방네 떠드는 건 마이너스이다. 놀라가는데 정신 팔린 직원이 되어버린다. 다만 언제 어떤 사유로 해서 반드시 가야만 한다는 건 모두에게 확인시켜 두는 것이 좋다. 장기 휴가는 일찌감치 허락 구하는 것이 잘하는 일이다. 휴가 중에 사무실에 연락을 할 것인지 연락을 끊을 것인지는 선택에 맡긴다. 휴가 중간 쯤 상사와 대타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 정도는 건네고 현안이 잘 처리되고 있는 지를 묻는다면 스마트한 직원이 되는데 동료들에겐 밉상이 될수도 있다. 휴가 다녀 와 한동안은 지각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신상에 좋다. 시커멓게 태운 몸으로 너무 티내지 말고 휴가 다녀와서 한동안은 점심시간을 동료들과 함께 할 것.
    그런데 휴가지에서 가장 만나기 싫은 사람은 누굴까?
    (2007년 인터넷서 4천3백명 대상으로 조사)
    1위 직장 상사
    2위 옛 애인
    3위 직장 동료
    아마 크게 변동은 없으리라 여겨진다. 어떤 샐러리맨은 해외에서 직장상사를 맞닥뜨려 통역과 안내, 밤에 술친구까지 하느라고 휴가를 망쳤다는 괴담도 있다.
    지난달 직장인들 사이에서 번진 휴가원 내용은 가히 레전드급이다. 한 직장인의 휴가 사용을 위한 휴가원 작성 내용이 다음과 같았다고 하는데 ......
    “2012년 6월 5일, 1일간 연차 사용을 원합니다. 휴가 사유는 그 다음날이 휴일이어서” 현충일 휴일에 맞춰 연휴를 즐기겠다는 강력한 도발.
    전설의 휴가원 제 2탄도 있다.
    “1주일 간 휴가 냄. 휴가 사유는 개인적인 사유라 말할 수 없음. 다녀 와 말씀드리겠음. P.S. - 저를 못 알아보실 수도 있음.”
    황당한 경우 하나는 직장 상사가 휴가 중인데 사무실에 출근을 하는 경우이다. 대부분 회사가 시원하고 편해서이다. 휴가 중이니 일할 필요는 없고 아래 사람들 즐비하고 얼마나 좋은가. 바꿔 말하면 쉬라고 해도 쉴 줄을 모르는 것이 문제.
    두 번 째 황당한 건 직장 상사가 아무래도 일 때문에 나는 여름휴가 못 가겠다고 선언하는 것. 누군가가 용감하게 돌파해야 한다. 서로 눈치 보다가 여름 다 지나가는 수도 있다.
    직장인이 휴가를 마음대로 못 쓰는 이유를 물으니 직장인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1. 비협조적인 직장 상사
    2. 휴가 계획을 못 짜서
    3. 휴가에 필요한 자금 부족
    4. 휴가 대신 돈으로 받자
    5. 찍힐까 봐
    6. 일하는 것이 보람이자 삶이다.
    일은 너무 많이 하고 삶은 너무 적게 누린다
    2010년 ‘월스트릿저널’이 한국 기업의 휴가문화를 보도한 적이 있다.
    제목은 “휴가 맘대로 못쓰는 한국”
    ---- “한국은 생산성 낮은 워커홀릭 챔피언. 직장 상사 눈치보는라 휴가를 제대로 못 즐기고 겨우 허락을 받다보니 휴가계획을 제대로 짜고 다녀오는 게 아니라 급작스레 후닥닥 다녀오기도 한다”.
    이 신문은 한국의 행정안전부가 공무원들에게 연간 16일의 휴가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추진 중이라고 보도하면서 문제는 “상사가 직장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위계질서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정작 상사들이 휴가를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무원들에게 휴가를 가라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후인 2009년 공식 휴가를 겨우 4일만 사용했으니 밑에서 마음 놓고 가겠냐고 꼬집었다. 특히 공무원 의무 휴가계획을 추진하는 행정안전부 과장조차도 지난 여름 휴가를 가지 않았다고 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 2007년 한국인은 평균 2,316시간을 일해 10년 전의 2,592시간 보다는 줄었지만, 여전히 OECD 30개국의 평균 1,768시간이나 미국의 1,794시간보다 높다. 워커홀릭(일중독자) 분야에서 선진국 중 1위이다.
    2010년 통계로도 한국 근로자의 연평균 근무시간은 2,193시간으로 OECD 회원국 전체 평균(1,749시간)보다 20% 이상 많다. 반면 한국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OECD 회원국 중 하위권(23위)를 차지했다. 집중과 만족도가 높아지지 않고 일하는 시간만 늘린다고 해서 경쟁력이 생기진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휴가를 제 맘대로 못 가는 상황에서 급히 겨우 다녀오는 휴가는 쉼과 재충전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고단하고 지치게 만든다. 쉬며 소박히 즐길 줄 모르는 사회의 반증이 격렬함이다. 좁은 공간에서 쉼 없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떤 생명체이건 난폭해진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작은 차이를 용납지 않고, 소비마저 격렬해지며 술도 폭탄주고 너도나도 명품으로 치장하다 골병이 든다.
    우리를 쉬게 하자.
    우리는 일은 너무 많이 하고 삶은 너무 적게 누렸다.
    여름휴가, 기꺼이 허락해 주시고 즐겁게 다녀오시길.
    9 min
  • [07/06 금요일]이승만 견통령, 대령,... 막 나가는 언론 열전
    신문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고 잘못 표기해 화제가 됐다. 2011년 2월에도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오기한 신문 보도가 있었다. 기사를 쓰다보면 관성에 의해 이명박 대통령은 무의식적으로 단숨에 써내려가는 단어이다. 그런데 앞에 前 이란 글자를 굳이 왜 붙이게 됐을까? 그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최근에 전직 대통령 이야기를 자주 쓰다 보니 이어진 실수로 여겨진다.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맞서는 박근혜 위원장의 그늘 속에서 임기 내내 기를 못 펴고 살아온 셈이다.
    대통령, 황제를 견犬으로? 이건 역모야!
    한자 문화권 나라들의 신문은 표의문자인 한자를 쓰다 보니 실수가 발생하면 단순한 오자 아닌 전혀 다른 뜻의 사건을 부른다. 이것도 필화筆禍라면 필화. 납으로 만든 활자를 하나 하나 뽑아 판에 심어서 조판하던 시절엔 여러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1950년대 대구매일신문과 삼남일보, 국민일보의 이승만 犬統領(견통령) 오기 사건이 대표적 사례. 대구매일은 사장 구속, 책임편집자 사임, 삼남일보는 편집자 구속, 정간조치 되었다. 부산일보는 1954년 대통령에서 ‘통’자가 빠져 이승만 대령으로 강등시켰다. 이런 사건으로 다들 犬자를 활자에서 없애버리거나 ‘대통령’이란 활자를 하나로 묶어 썼다. 하나의 판으로 주조하기도 했고 급하니 고무줄로 묶어놓고(띠활자) 쓰기도 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하나의 판으로 만들어 둔 ‘대통령’이란 활자판을 거꾸로 집어넣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대통령 이란 활자가 잘못될까 노심초사하다보니 ‘대통령’이란 활자는 몇 번이고 확인해 제대로 나갔는데 이승만 대통령의 성 李 위에 지푸라기가 묻어 季(계)승만 대통령이 되어버리는 사건도 발생.
    1955년 3월 동아일보는 “고위층 재가 위해 대기 중”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며 “괴뢰 휴전협정 위반”이라고 다른 기사 제목으로 뽑아놓은 활자 중 ‘괴리’를 잘못 가져다붙여 “괴뢰 고위층”으로 ...... 고위층이라면 대통령이나 경무대 측근을 지칭하는데 괴뢰라니. 가판으로 360부가 찍혀 나간 뒤 정정했으나 해직, 사임, 한 달 정간 조치됨.
    2011년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원자바오 총리의 이름을 잘못 표기해 세계의 화제가 됐다. 원자바오를 한자말로 쓰면 ‘온가보(溫家寶)’이다. 그런데 인민일보는 보배 ‘보(寶)’자를 ‘온가실(溫家室)’로 적어 온실 내지는 찜질방으로 만들어 버려 17명이 문책 당했다.
    시진핑 국가부주석도 다오진핑으로 한자가 잘못 표기된 적이 있다. 다오는 간사하다는 뜻이 담겨 이것 역시 대사건. 시 는 한자로 익힐 ‘습’, 그런데 이것이 간사할 ‘조’로 바뀐 것. 중국중앙방송이 저지른 실수.
    장쩌민 국가주석은 칭호에서 國자가 빠져 家의 주석, 집안 책임자가 되어 버린 적도 있다. 또 강택민에서 택 자가 비슷한 모양의 괴怪로 바뀐 적도 있다.
    인민일보의 전과는 또 있다. 1990년대 ‘전국인민대회’에 들어가는 클 ‘대(大)’자를 개 ‘견(犬)’자로 내보내는 만용을 저질렀다. 우리로 치면 국회의원들의 정기국회를 ‘개들의 모임’이라고 쓴 셈인데 복날을 앞둔 개들의 대책회의였나?
    일본도 피해갈 수 없다. 1980년대 ‘요미우리 신문’의 똑같은 실수. 메이지대제(明治大帝)가 아닌 ‘메이지견제(明治犬帝)’로 표기하여 역모 아닌 역모를 감행했다.
    신문은 아니고 출판사 이야기인데 어떤 출판사의 사장은 1980년대 초반 책 교정을 보다가 ‘이순자 여시’를 발견했다고. ‘여사’ 와 ‘여시’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1951년 대구.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여사 결혼식. “지금부터 신랑 육영수군과 신부 박정희 양의 결혼식을 거행하겠다”고 식순을 진행해 박장대소. 주인공은 주례를 맡은 당시 허흡 대구시장 .
    신문은 그렇다치고 방송 너마저
    다음은 방송.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당시 스포츠 중계 아나운서들은 중계방송 중간 중간 대통령께서 축구를 위해 얼마나 애쓰시는지 운동장 시설을 확충하는데 얼마나 도와주셨는지, 이렇게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게 대통령의 치적 덕분이라는 등등 대책 없는 찬사를 마구 남발했다. 그러다 대통령이 우연히 중계방송을 듣고 기분이 좋으면 벼락 출세길이 열렸다고 한다. 어떤 아나운서는 박정희 대통령 찬사가 입에 배어 전두환 대통령으로 바뀌었는데도 “..... 네,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는 박정희 대통령” 했다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씨가 보안사령관에서 드디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모 방송 아나운서는 뉴스에서 “미국이 전두환 대통령을 적극 지지할 것으로 보입니다”를 “미국이 전두환 대통령을 적극 저지할 것으로 보입니다”로 잘못 읽었다는 일화도 있다.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해.
    4년 전인 2008년 여름 모 텔레비전 방송 자막 뉴스,
    ‘이명박 대통령’을 ‘이멍박 대통령’으로 잘못 표기, 그런데 그 다음에는 ‘이명박 대통렁’으로 잘못 적어 사고연발.
    신문이나 책을 만들며 글을 쓴 사람, 편집자, 교정 담당 등 교정을 1교 2교 3교 몇 번이고 본다. 아무리 완벽을 기하려 해도 마지막 하나의 오자는 절대 찾지 못해 마지막 오타는 하나님도 못 찾는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있다. 이것을 노어지오(魯魚之誤)라고 한다. 한자의 ‘노’ 와 ‘어’가 모양이 비슷해 자칫 틀리기 쉽다는 의미로 글씨의 잘못 쓰는 실수를 경계하는 말.
    그런데 과거 중국에는 일부러 ‘오자’를 남겨 통치자를 비웃는 지식인도 많았다 한다. 허리를 자르는 참형과 삼족, 구족을 멸하는 혹독한 처형이 내려질 수 있음을 알면서도 통치자를 조롱했다니 놀랍다.
    “빈 산 빈 계곡에 황금 만 냥과 미인 한 명이 있는데, 누군가 그대에게 마음이 동動하지 않겠는가 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동한다, 동한다, 동한다, 동한다, 동한다, 동한다, 동한다, 동한다, 동한다 …….”
    이렇게 ‘동한다’를 39번을 적어 내려가는 詩로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들어선 청 왕조를 규탄했던 명나라 말의 문인 김성탄의 글이다.
    그런데 겁낼 권력이 없는 21세기의 언론인이 곡학아세로 정치권에 줄을 대 사장 한 자리, 감사 한 자리 얻고, 그것도 자랑이라고 떵떵거리다니 부끄러운 세상이다.
    10 min
  • [07/04 수요일]삭발투혼? 사람들은 무얼 위해 삭발하는가
    최근 프로야구에서 삭발선수들의 투혼이 화제가 되고 있다. 기아와 엘지 선수들이 삭발로 팀 분위기를 바꾸고 연승행진을 하고 있다. 더구나 외국인 선수들까지 삭발에 동참하면서 삭발에 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삼손은 머리를 깎으면 힘이 빠지는 데 야구선수는 머리를 깎으면 힘이 솟는 걸까?
    머리카락 우습게 여기지 말자
    스포츠 선수의 삭발은 각오와 다짐, 분발의 의미를 갖는다. 자신의 한계를 느낄 때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각오라고 봐야겠다. 제17회 로마 올림픽 때 일본 레슬링 선수들이 은메달 하나만 겨우 따내 국민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자 모두 머리를 밀어 버렸다. 이 사진이 ‘런던 타임즈’에 실리며 서구인들을 놀라게 했다. 이것이 전례가 되어 일본 레슬링 선수단에는 삭발의 전통이 만들어졌다. 대회 끝날 때까지 술.담배를 금지령을 내렸는데 어기면 삭발, 경기에서 파이팅이 약했다고 지적 받으면 이겼어도 삭발, 아침 기상집합이 늦으면 삭발, 계단은 반드시 걸어 다님으로써 생활 속에서 체력을 키우는 것이 규칙인데 엘리베이터를 타면 삭발 ...... 이런 식으로 삭발을 정신력 강화에 접목시켜 도쿄 올림픽에서 5개의 금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머리카락은 그 사람의 생명이나 정체성과 이어진 것으로 여겨 왔다. 구한말 단발령에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며 차라리 목을 치라 내민 것도 그런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유럽에서는 잘린 머리카락으로 새가 둥지를 치면 그 사람은 평생 두통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어 머리카락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모아 태우거나 묻는다. 우리도 빗질을 하며 빠진 머리카락을 모았다가 섣달 그믐날에 태운다.
    머리카락은 맹세의 징표로 쓰이기도 한다. 여성이 머리카락을 자르면 변치 않을 사랑의 징표가 되고, 서로의 사랑이 변치 않기를 바라며 머리카락을 나누기도 한다.
    삭발하면 흔히 불교에서의 득도식을 떠올릴 것이다. 머리카락을 마음 속 번뇌가 밖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해서 ‘무명초(無明草)’라 부르며 깎고 밀면서 수행자의 본분을 다짐한다. 그러나 번뇌는 가라앉지 않고 머리카락도 자꾸만 자란다. 그러니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수행일 수밖에 없는 것.
    기독교에선 삭발에 대해 부정적인 역사기록이 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의 영웅 삼손이 적의 계략에 빠져 힘이 담긴 머리카락을 잃고 굴욕을 당했다. 그런데 신약시대로 넘어와 사도행전의 바울은 전도여행을 하던 중 하나님께 충성과 헌신을 다짐하며 머리를 깎기도 했다.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 갈 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사도행전 18:18)
    한국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라 할 큰 교회 목사들도 사학법 개정 반대, 개방형 이사제 반대를 외치며 삭발을 했다. 삭발한 목사가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하는 보기 드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신부도 삭발을 했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한다는 의지를 내보이려 경기도에서 두 신부가 삭발을 했다. 그런데 김문수 경기 지사가 “신부가 삭발을 했어? 그러면 절에 들어가야지”라고 힐난했다가 가톨릭에 대한 모욕이라고 반발이 일어 급히 사과했다. 과거 기독교는 ‘톤스라’라는 삭발의 전통이 있었다. 머리 한 가운데를 동그랗게 잘라내는 것이 톤스라.
    삭발의 정치사회학
    삭발을 스스로 행하면 결의와 약속이지만 강제로 당하면 엄중한 처벌이자 모욕이 된다. 독일 나치스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 독일 점령군에게 부역한(성관계에 따른 반대급부 등) 여성들이 강제로 삭발을 당하고 모욕적인 처벌을 받는 장면은 전설적인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의 사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43년부터 1946년 초까지 15살 이상의 여성 약 2만 명이 그러한 삭발식을 당했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독일군과의 관계를 강요당한 프랑스 파리 여성들이 스스로 삭발해 저항의 뜻을 내보인 사건이 있다. 삭발에는 공개적인 저항과 공개적인 처벌 ...... 두 가지 의미가 모두 담겨 있는 것.
    특히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약자의 입장에 놓였을 때 저항의 표시로 삭발하는 예가 많다. 그래서 정치인들에게도 삭발이 종종 있다. 삭발 정치인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박찬종 전 의원. 1987년 김대중 김영삼 두 정치지도자의 후보 단일화를 주장하며 삭발농성을 했다. 마침 겨울이어서 삭발하고 정치 현장을 뛰어다니는 게 몹시 고달팠을 듯. 눈이나 찬비가 내리는 날은 잠시 모자를 썼다 벗었다 하기도.
    지식인들도 머리를 깎는다. 최근 보수논객인 강재천 씨가 중국 탈북자 강제북송에 항의해 탈북자들의 울음이 들리지 않냐고 외치며 머리를 깎았다.
    진보논객 우석훈 씨도 한미FTA 발효에 항의해 삭발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머리를 깎았다.
    부산에서 출마한 모 국회의원 후보는 스캔들 의혹이 터지자 결백을 주장하며 삭발하고 선거운동에 나서 당선되기도 했다. 며칠 전 소개한 청주청원 통합 투표에서 통합반대에 나선 시민단체 대표들도 삭발식을 열며 항의했으나 주민투표에서 지고 말았다.
    여성들도 깎을 때는 깎는다. 아일랜드 가수 시너드 오코너가 늘 머리를 밀고 활동하며 정치 색깔 짙은 노래들을 불렀다.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이지연 씨가 등록금 동결을 요구하며 삭발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삭발이 정치인, 사회운동가의 전유물은 아니다. 경제인도 삭발을 한다. 화인코리아 대표이사인 최 모 씨는 서울 충정로 사조산업 앞에서 머리를 깎고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최 씨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회생의 길을 막고 있다고 주장하고 사조산업 측은 경영권을 지키려고 떼를 쓰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중. 채권채무와 경영권 문제가 얽혀 있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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