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6.10 민주항쟁 25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 중에 금지곡만 부르는 음악회도 있다한다. 오늘은 노래와 정치적 저항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미국은 저항가요(Protest song)의 전통을 일찍부터 갖고 있었다.
“무의미하게 죽어간 한 사람을 위해
천만 어머니들의 가슴이 무너진다 .....
한 어머니가 눈물 흘리며 중얼거리는 말이 들린다.
‘나는 내 아들을 병사로 키우지 않았어요
나는 자랑과 기쁨으로 그 아이를 길렀어요.
누가 감히 그 아이의 어깨에 총을 메고
다른 어머니의 사랑하는 아들을 쏘게 만들었나요?......’”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때 반전운동에서 불린 “나는 내 아들을 병사로 키우지 않았다.”라는 저항가요이다. 앨프레드 브라이언이 지은 노래로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무지 싫어했던 노래.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추진해 조선을 일본에 넘긴 미국 제국주의의 개척자)
저항가요로 우리가 김민기 씨를 떠올린다면 미국인들은 포크음악의 창시자 피트 시거를 기억한다. 피트 시거는 저항가요를 확실한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만들었다. 1940년대 스페인 내전에서 60년대 베트남전 반대, 최근의 이라크 전쟁 반대에 이르기까지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음악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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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shall overcome 우리 승리하리라, 들에 핀 꽃들은 어디로 갔나 등이 그의 작품이다. 존 바에즈, 밥 딜런, 피터 폴 앤 메리 등 유명한 가수들이 피트 시거의 추종자들이었다.
아침이슬은 금지곡? 대통령 애창곡?
피트 시거의 노래들은 1970년대 초 한국으로 상륙한다. ‘우리 승리하리라’는 1972년 김민기 씨가 서울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처음 번안해 불렀고 이후 대학가로 번져 197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가요가 됐다. 이때 저항의 의지를 노래에 담은 가수들이 김민기 씨를 비롯해 한대수, 서유석, 양희은 씨 등이다.
독재정권의 감시와 통제가 아주 엄격했기 때문에 김민기 씨가 작곡한 저항가요들은 대중적으로 불리지 못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으로 시작하는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금관의 예수)”, “예쁘게 빛나던 불빛 공장의 불빛 온데 간데도 없고 희뿌연 작업등만 이대로 못 돌아가지 그리운 고향마을‘ - “공장의 불빛”,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까 있을까 분홍빛 고운 꿈나라 행복만 가득한 나라, 하늘빛 자동차 타고 나는 화사한 옷 입고 잘생긴 머슴애가 손짓하는 꿈의 나라’ - “이 세상 어딘가에”
그래서 일반 대중가요를 저항의 뜻을 담아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아침 이슬’이 대표적인 예이다. 결국 많은 노래들이 정치적 의도로 또는 오해로 금지곡이 되어 버린다.
아침이슬은 겉으로는 ‘붉은 태양’이 문제가 되었지만 사람들이 시대상황에 실망할 때마다 너무 애창해 금지곡.
이장희의 ‘그건 너’는 군사정권에게 손가락질하며 대드는 이미지라고 금지곡.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정권의 신뢰를 훼손한다고 금지. (전설에 의하면 방송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이 막 나갔는데 그 다음 프로그램 프로듀서가 이 노래를 내보내는 바람에 금지라고......)
송창식의 ‘왜 불러’는 돌아서서 가는 사람을 왜 불러? 장발단속, 불심검문하는 경찰 공권력에 저항하는거냐며, 금지
한대수 ‘물 좀 주소’는 물고문을 연상케 해서 금지. ‘행복의 나라로’는 독재정권 아래서 살기 싫다는 거냐며 금지.
신중현 ‘아름다운 강산’은 정권 찬양 홍보 노래 좀 만들라는데 신중현 씨가 거절해 미운털이 박혀 금지.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은 한일관계를 풀어가려는데 일본 감정 자극한다고 금지. 반면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창법이 왜색이 짙어 금지.
상당히 엉뚱한 금지곡도 있다.
‘키다리 미스터 김’은 박정희 대통령의 작은 키 때문에 금지. ‘고래사냥’은 허무주의 조장이라고는 하지만 실은 대학생들이 데모하러 나가자고 목이 터져라 부르는 통에 금지.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겉으로는 ‘너무 허무주의야’라고 핑계를 댔지만 민주화를 그리는 이미지라고 금지됐다.
1980년대, 참으면 이긴다
1980년대에는 대학가와 노동계를 중심으로 운동권이라는 영역이 자리 잡으면서 지어 부르고 구전되는 노래가 많아졌다. 특히 광주민주화항쟁 이후 저항을 담은 노래도 많아지고 책으로 묶어내는 작업들도 이뤄져 시중에 유통되었다. 정권이 금지하든 말든 공권력의 힘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서 부르는 노래들이 많아지니 굳이 대중가요를 저항의 뜻으로 빌려쓰지 않았고 저항가요와 대중가요가 확실히 분리되어 금지곡이 많지 않다.
심수봉 씨의 금지곡 리스트가 눈에 띈다.
‘그 때 그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때문에 금지.
‘순자의 가을’ - 이건 전두환 대통령만 부를 수 있는 노래라 금지. 그래서 ‘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 바뀌었다.
‘무궁화’는 ‘참으면 이긴다 ~’는 가사가 문제가 돼 금지. 뭘 참고 누구를 이겨?
6.10 항쟁 25주년.
6.10을 항쟁으로 부르기도 하고 혁명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아직 국민 모두가 공감하도록 정리가 되지 않고 있음을 반증한다. 국가와 국민이 발전하는 토대 중에 ‘공유’라는 것이 있다. 과거의 아픔과 기쁨 역사적 사건을 공유해야 하고 미래의 꿈과 희망을 공유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많이 아쉽고 아프다. 일제의 침략과 강점, 해방과 친일, 6.25와 분단, 군사독재, 지역감정과 이념대립 ..... 그걸 정치적 정략적 이해가 아니라 모두의 아픔과 안타까움으로 공유하고 미래의 희망도 공유해야 하는데 아직도 치열하기만 한 분열과 대립으로 우리 사회는 어지럽기만 하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그냥 한 번 불러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