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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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episodes

  • [06/18 월요일] 그 많던 복지논의들은 누가 다 삼켰을까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축복입니다”
    우리 사회에 이 말을 전한 곳은 음성 꽃동네이다. 1976년 오갈 데 없이 떠돌며 구걸로 목숨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열었던 ‘사랑의 집’이 꽃동네의 시작이다. 얻어먹을 힘조차 없는 사람들이 서로를 도우며 재활의 길을 열어가는 모습에 온 국민이 감동해 1981년 후원이 시작됐고 1984년 사회복지시설로 인가를 받아 오늘에 이른다. 꽃동네 안에는 노인요양원, 심신장애인 요양원, 아동양육시설 등 7개의 시설이 마련돼 있고 전국에서 모여든 2,04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꽃동네는 지난 1999년 캘리포니아주 다우니에 진출했고, 2002년 가을 미국 캘리포니아주 테메큘라와 뉴저지주 에섹스 카운티에서도 ‘테메큘라 꽃동네’와 ‘뉴저지 꽃동네’가 문을 열었다.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이들’을 위해 한국의 꽃동네 정신을 미국에 전파한 것. 물론 한국과 미국의 꽃동네는 설립취지와 이념이 같을 뿐 재정과 운영은 전혀 별개인 단체이다.
    복지시설은 전국구, 예산은 자치구?
    2012년 음성 꽃동네 전체 예산 230억 규모. 충청북도가 99억 원을 지원하고, 충북 음성군이 66억 원을 지원했다. 전체 예산의 72%를 충청북도와 음성군이 부담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얼마를 지원했을까? 음성군보다 1억 원이 적은 65억 원을 지원했다. (이하 충청리뷰 6월15일자 참조).
    그렇다면 음성 꽃동네는 충청북도의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모인 지역 시설일까? 꽃동네 생활자 중에서 충청북도 사람은 2천여 명 중 390 여명으로 20%가 채 안 된다. 전국에서 모여드는 노숙인, 장애인들을 충청북도와 음성군이라는 지방자치단체가 힘겹게 돌보고 있는 중이다. 음성군은 재정자립도가 26% 밖에 안되는 지자체이지만 중앙 정부보다 많은 예산을 꽃동네에 지원하며 허덕이고 있다. 음성군 전체 복지예산의 3분의일에 맞먹는 예산이 꽃동네로 투입된다.
    정부가 2004년 7월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을 키워준다며 국가보조금 사업 중 일부를 지방자치단체에게 넘겨주면서 지역의 꽃동네에 대한 부담이 커지기 시작했다. 재정의 70%를 부담하던 중앙정부가 25%부담으로 물러섰으니 다연한 귀결. 2008년 감사원의 감사도 노인,장애인 시설, 정신요양시설의 지방이양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가가 전국적인 복지시설로 지원할 것을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기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지방에 권한을 이양한다고 넘겨준 사업이 90개 정도 되는데 이 가운데 55%~ 60%는 사회복지사무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복지예산 부담이 갑자기 늘어난 것은 이때부터이다.
    때문에 정부와 정치권이 새로운 복지정책을 도입하거나 확대하면 지자체 부담은 크게 늘어난다. 0~2세 무상보육 확대 시행 몇 달 만에 지자체장들이 대정부 시위농성에 나서려는 게 대표적인 예이다. 공무원 봉급도 제때 못주는 지자체가 늘어나는 시점에서 지자체가 감당해낼 방법은 없다. 결국 중앙정부와 여의도 정치권이 생색은 다 내고 지자체와 지역주민들이 뼈골 빠지게 뒷감당하는 셈이다.
    때론 복지비가 자치 예산의 50% 이상 50%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다. 복지사업이 매칭펀드 방식으로 옮겨지면서 특정 자치단체들은 얻어올 것도 못 얻어와 국가가 마련해주는 복지마저도 빈익빈 부익부가 이뤄진다. 복지 분야의 매칭펀드나 국고지원은 훨씬 더 유연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 많던 복지 논의들은 누가 다 삼켰을까?
    복지예산 이야기를 장마철을 앞둔 시점에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 예산편성은 4월 말에 내년도 예산 편성 지침이 마련된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는 5월까지 국고보조금 요청을 중앙 정부에 제출해야 중앙 정부의 각 부처들이 이달(6월)말까지 부처별 예산요구서를 만들어 기획재정부에 제출한다. 그러니 국가 예산을 짜는 시기는 5월과 6월이다.
    지금 복지에 대해 논의도 없고 국회도 제대로 안 열리고 하면 내년도 예산은 현장의 요구와 국민 여론과 정책환경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채 하던 대로 짜 올린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어려워질 경제여건과 부의 양극화에 대한 대책이 되질 못한다. 결론적으로 다음의 것을 생각하며 정국을 살피자.
    첫째 복지에 대한 논의가 정쟁에 묻혀 실종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는 허울만 좋고 부담은 엉뚱한 데로 떠넘겨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복지가무너져 가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복지도 안 된다.
    셋째 복지 슬로건은 넘쳐 나지만 실제로 예산도 추진 능력도 없는 것을 떠벌려 국민에게 혼란을 주어선 안 된다.
    10 min
  • [06/15 금요일] 눈물은 변화보다 쉽다, 변화하는 것이 진정한 뉘우침
    장로교 최대 교회 중 하나인 충현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를 세운 김창인 목사가 아들에게 교회세습한 것을 공개 사죄했다. 지난 12일 충현교회 원로목사인 김창인 목사는 ‘충현교회 회복을 위한 긴급성명서’를 통해 “충현교회 4대 목사를 세우는 과정에서 목회 경험이 없고, 목사의 기본 자질이 되어 있지 않은 아들을 무리하게 지원하여 공동의회를 무기명 비밀투표 방식이 아닌 찬반기립 방식으로 진행, 위임목사로 세운 것을 나의 일생 일대 최대의 실수로 생각하며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크나큰 잘못이었음을 회개한다”고 고백했다. 이어 김창인 목사는 아들 김성관 목사가 정년퇴임할 시기가 지났는데도 임기연장과 죽을 때까지 예우를 받는 원로목사, 실질적인 재산관리자인 재단이사장 자리를 유지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한국 교회 세습이 대세되나?
    김창인 목사는 강남 초호화 대형교회 건축의 시초이자 대형교회 목사세습 1호로서 한국 교회 타락의 길을 터나간 인물이다. 미국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던 55살 난 아들을 급히 목사자격을 따게 한 뒤 한국으로 불러들여 교인들의 반대를 강압적으로 누르고 목사 자리에 앉혔다. 한국 교회의 세습 중에서도 가장 마구잡이식 세습이었다.
    그 뒤로 충현교회는 내분과 폭력사태에 휘말렸고 아버지와 아들 목사도 패륜적인 싸움을 벌여 왔다. 이전투구가 계속되자 소속 교인들도 지치고 실망해 교회를 떠남으로써 교회 규모는 1/3수준으로 줄어 든 상태. 아직도 불투명한 재정관리와 권력연장 시도로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장로교에서 충현교회가 세습에 성공하자 기다렸다는 듯 감리교 김선도, 김홍도, 김국도 목사 3형제가 세습을 시도했다. 또 K교회, 강남J교회, D교회, DS교회, 인천S교회, 인천K교회, 인천B교회, 주안J교회, 부천K교회, 대구S교회, 전주H교회 ..... 줄줄이 세습을 단행해 이제는 세습이 관행처럼 굳어지는 단계이다. 예배 설교 등을 통해 세습이 교리나 윤리 상 정당하고 효과적이라는 인식을 일찌감치 교인들에게 주입시키고 슬금슬금 옹호하는 사람들도 늘어 한국 교회의 수구기득권 세력화의 징표가 되고 있다.
    장로교 통합 측의 소망교회는 분당에 교회를 하나 지어 곽선희 목사 아들에게 넘기는 방법으로 변칙세습했고, 서울 D교회처럼 사위에게 세습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는 여론의 세습 비난을 피해 신문사를 만들어 물려주었다가 신문경영이 파행을 빚으며 노조의 장기파업사태를 불러일으켰다. 충현교회나 여의도순복음교회 예에서 보듯이 교회 자산을 또 다른 선교재단 자산으로 옮겨 놓고 교회를 떠나도 재단을 소유해 권세를 이어나가는 변칙적인 방법들도 문제다. 그제(13일)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조용기 여의도 순복음교회 원로목사의 일가족이 노골적인 교회재산 사유화를 지속해, 교회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 의혹이 있다며 진실 규명을 촉구한 것도 이런 문제에서 비롯된 것.
    눈물은 변화보다 쉽다
    이제라도 김창인 목사의 공개사죄가 한국 교회 개혁의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온 교회 온 기독교인들의 간절함과 실천 없이는 아무런 일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고 지금껏 그래왔음을 아프게 새겨야 한다. 김창인 목사의 회개한다는 성명서 내용도 뜯어 읽어보면 참회인지 회환인지 애매하다. 최소한 자신의 원로목사직부터 내려놓으며 아들의 회개를 촉구했어야 하지 않을까.
    눈물을 흘렸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에게 눈물은 변화보다 훨씬 쉽다.
    1년 전 조용기 목사도 눈물을 흘리며 사죄한다 했고 모든 언론이 “모든 게 내 잘못, 무릎 꿇고 눈물로 사죄”라고 대서특필 보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한가. 기득권과 자기 사랑, 가족에 대한 애착을 내려놓는 변화보다 확 울어버리는 게 훨씬 쉽다. 그리고 아버지가 아들을 그렇게 키우면 안 된다. 사랑해도 그렇게 인도해선 안 된다.
    “내 사랑하는,
    만지면 아픈 아들아
    네가 태어난 집은 둥지일 뿐이고
    네가 도착한 여관은
    이 세계로의 입구일 뿐이다.
    이곳에서 너는 싹트고 꽃 필 것이나
    너의 진정한 집은 다른 곳이니라”
    - 베르나디노 데 사아군 (에스파니아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사) -
    10 min
  • [06/14 목요일]4대강에 물이 차면 뭐하나 .....
    우리나라는 기후 특성 상 가을가뭄, 봄가뭄이 해마다 이어진다. 홍수기인 6월부터 9월 사이에 연간 강우량의 약 3분의2가 집중되고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는 큰 비가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해마다 되풀이돼도 그 강도는 크게 다르다. 피해가 심각해 큰가뭄이라고 부르는 가뭄은 5년~7년 주기로 반복해 발생하고 있다. 지난 94~96년은 3년 연속가뭄으로 고생했고, 2001년의 가뭄은 ‘왕가뭄’이라고 불렀다. 2008년 가뭄도 심각했고 2009년 가뭄은 강원도 지역에 집중되었다. 2011년 지난해도 경북 지역에 가뭄이 심각해 마실 물조차 부족하자 트위터를 통해 생수지원 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1970년에는 큰 가뭄이 14년 주기로 온다고 설명하기도 했는데 먼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가뭄의 주기는 계속해 짧아진다. 그러니 언론에서 10년만의 대가뭄, 34년만의 대가뭄, 60년만의 대가뭄하는 이야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1970년대와 2000년대를 비교하면 자연재해 건수가 5배, 재산피해액은 14배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10달째 가뭄 ..... 4대강 말고 대책이 없다 ?
    이번 가뭄은 지난해 9월 가을가뭄부터 꽤 심각했다. 지역에 따라선 30년 만의 가을가뭄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11월까지 가뭄이 계속되고 가을가뭄에 이어 봄가뭄도 상당히 심각할 것으로 예상되자 소방방재청이 지난해 12월 범정부차원의 ‘가뭄 대비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관계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고 3월에 점검회의도 갖고 부산하게 움직였다. 이제 6월로 접어들었으니 비가 흠뻑 내려주어야 하는데 비 소식이 없이 대가뭄을 겪고 있는 것.
    4대강에 16개의 커다란 보를 만들어 물그릇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가뭄 피해를 예방한다는 것이 4대강 사업의 목적이었다.
    5월 10일 이명박 대통령 글로벌 녹색성장 서밋 2012 기조연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홍수와 가뭄 모두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적응전략의 대표적 프로젝트가 되고 있다”
    이 말은 결과적으로 거짓말이다. 지금 가뭄은 갑자기 들이닥친 가뭄이 아니다. 지난 가을부터 시작해 봄을 거쳐 여름까지 오면서 진행됐고 정부가 대책회의, 점검회의까지 열었다. 그랬는데도 손을 못 쓰고 있다면 4대강 사업은 이번 가뭄을 극복하는데 별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6월11일 제 92차 라디오 주례연설,
    “지난해 4대강 사업이 마무리되면서 여름철마다 반복돼 온 고질적 비 피해가 거의 사라졌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비 피해는 홍수 피해를 말하는 것이지 가뭄 피해는 아니라는 뜻일까?
    뻔히 보고도 못 쓰는 강물 ......
    현재 전국 저수율은 52% 수준으로 평년 61%보다 9.4% 포인트나 낮다. 2009년 6월 46.5%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기상청은 전국 76%에 달하는 지역이 심각한 작물 손실과 물 부족이 우려되는 ‘매우 위험’ 단계에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논밭이 타들어가고 있다.
    첫 번 째 문제는 4대강 16개 보에 13억톤의 물이 차 있다 해도 그 물을 전국 방방곡곡 메마른 논과 밭에 어떻게 되돌려 보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타들어가는 지역, 특히 산간농촌 지역은 4대강 공사구간과 너무 멀다. 그런 곳들까지 물을 끌어댈 공사는 한 적이 없다. 이제라도 하고 싶지만 할 돈이 남아 있지 않다. 4대강에 취수설비를 다시 지어야 하고 이걸 높은 산으로 끌어올려 전국 곳곳에 송수관을 깔아 물을 흘려보내야 한다.
    그래서 지류를 먼저 정비하고 작은 규모의 저수지를 지류 주변으로 많이 건설해 홍수와 가뭄에 대비해야 한다고 비판적인 전문가들이 지적했던 것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22조를 들여 4대강 사업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더니 이제부터 15조를 들여 지류 사업을 마저 추가해야 되겠다고 한다. 그러나 지류 사업도 4대강 사업 스타일로 하면 더 문제가 크다고 지적이 나온다.
    그 다음 4대강 사업 인근 지역도 강물을 길어 쓰기가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강을 깊게 파고 주변을 콘크리트로 정리해 놓는 바람에 강까지 접근하기가 어렵고 강둑 경사가 높고 가팔라져 웬만한 장비로는 물을 끌어올리지 못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에는 경운기로 강에서 물을 퍼올렸는데 지금은 뻔히 강물을 보고도 쓰지 못한다는 농민들 하소연이 보도되고 있다.
    4대강 보에 물을 너무 많이 가두면서 보의 물이 역으로 농지로 흘러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좋은 게 아니냐 할 지 모르지만 시절과 맞지 않게 물이 땅에 차면서 강 근처에서 많이 짓는 수박농사는 오히려 망치고 있다는 원망도 나온다. 경남 고령 합천보 지역.
    4대강 사업으로 취수장애(상수도 물을 길어 올리는 양수장에 물이 부족한 상태)는 상황이 좋아진 것으로 보인다. 다기능 보에 강물을 대용량으로 담아두면서 4대강 근처에서 취수장애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4대강 공사 완료 이후 첫 번째 가뭄에서 4대강 사업은 낙제점. 잠시 뒤에는 홍수가 시작된다. 4대강의 대형보들이 큰 역할을 해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9 min
  • [06/13 수요일]로스쿨, 이 산이 아닌가벼?
    2017년 사법시험이 폐지된다. 지금은 사법시험 출신과 로스쿨 출신이 병행되고 있지만 이때부터는 법조인 양성코스가 로스쿨로 일원화된다. 그런데 국민법률상담센터가 최근 온라인을 통해 무기명 설문조사(응답자 550명. 법조계 종사자이거나 법학 관련 교육 유경험자가 4분의3, 일반 시민 4분의1)를 해보니 71%가 사법시험 폐지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인원수를 줄이더라도 사법시험을 통해 법조인이 등용되는 길을 열어두라는 요구이다. 사법시험 폐지해야 한다는 27%. 71 대 27 ..... 그런데 법은 이미 27%의 의견대로 시행되고 있다. 로스쿨을 주제어로 해서 물어 보니 아예 로스쿨을 폐지하자는 응답도 58%나 됐다. 로스쿨로 일원화는 25%.
    로스쿨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사법시험에 대한 선호도의 이유를 보니 로스쿨보다 ‘사법시험이 더 공정한 선발이라고 여겨서’와 ‘로스쿨에 진학할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라는 대답이 다수의 응답이었다. 68%는 19대 국회가 이 문제를 다시 다루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로스쿨 ..... 이 산이 아닌가봐
    전반적으로 로스쿨 관련 법안과 제도가 정교하지 못한 건 분명해 보인다. 되돌릴 수는 없지만 뜯어고칠 곳이 많다는 건 인정하고 앞으로 몇 년을 지켜봐야 할 듯.
    법률시장은 구조적으로 침체기이다. 변호사 천국이라는 미국도 변호사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 12일 자 월스트릿저널 보도를 보면 미국 내 200 여개 로스쿨 중에 최소 10개 이상의 학교가 다음 학기 입학정원을 줄일 거라고 보도하고 있다. 미국 로스쿨 올해 지원자가 지난해에 비해 14%나 줄어드는 등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일본도 로스쿨 도입 첫 해가 2004년인데 3만5천5백명 지원이었다. 올해는 7천250명 정도로 첫 해의 20% 수준이다. 신입생 모집 중단과 로스쿨끼리의 통폐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일본의 현실. 일본 로스쿨의 상황도 취업난이 심각하고, 법대출신 합격자가 많아지고, 로스쿨 간의 수준차도 역시 크다는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우리도 로스쿨 도입 5년째인데 법학적성시험 지원자 수를 보면 2009 학년도 1만1천명 수준에서 8천4백명, 8천5백명, 8천8백명, 7천6백 명으로 뚝 떨어졌다.
    사법시험 합격자를 본격적으로 줄여나가는 시점이니 로스쿨 쪽에서 늘어야 하는 데 갑자기 크게 줄어들 것으로는 예상치 못한 일이다. 물론 로스쿨 도입 초기에 나도 한 번 해보자며 나선 직장인 로스쿨 붐이 시들면서 거품이 꺼지는 걸 반영하지만 변호사 전성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법률시장도 이제 포화상태로 가고 있다.
    로스쿨의 인기가 떨어지는 것은 지난 2월 사회로 진출한 로스쿨 1회 졸업생들의 취업난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25개 대학에서 2천명의 로스쿨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절반 이상이 취업난을 겪고 있다는 보도이다. 수치로 분석해보면 올해 쏟아져 나온 변호사가 사법연수원 출신 1천명, 로스쿨 출신 1,500명 모두 2,500명이다. 그런데 기존의 변호사 수는 1만1천명 수준이니 갑자기 25%나 늘어나는 것. 이들을 받아 줄 일자리는 1천개가 못될 거라는 분석이니 절반 훨씬 넘게 취업난이라는 분석은 타당성이 있다.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또 변호사가 신분상승의 지름길이라는 인식도 줄어들고 있다. 서울대 법대 교수가 우리의 로스쿨은 정치적 산물이며 ‘돈스쿨’이고 이는 결국 미국처럼 유전무죄ㆍ무전유죄, 그리고 사법의 스포츠화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던 것은 유명한 사건. 사법고시가 폐지되고, 로스쿨만 남게 되면 그 비싼 학비를 대기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은 애당초 진입이 가로 막혀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가난한 집에서 판·검사가 나오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지적이었다. 실제로 올해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채용하는 로펌들이 학벌 또는 집안 배경을 상당히 따졌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로스쿨 나와 변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로펌에 들어가려 해도 성골, 진골로 구분된다는 비판이다. 로스쿨 3년. 등록금만 6천만 원, 생활비에 책값까지 더하면 1억 원 넘게 들여야 졸업이 가능하다. 그 이후에도 취업난을 겪고 유명 로펌은 성골진골을 구분한다면 인기가 식는 건 당연.
    이 같은 여론은 로스쿨 도입 당시부터 고비용.저효율일 거라고 반대 여론이 높았던 것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로스쿨 제도는 철저히 미국식 제도이고 한국과 일본의 법률체계는 엄격한 독일식이라는 점부터 지적이 된다. 미국식 제도와 독일식 체계를 동양 유교전통 나라에서 융합시키려니 무척 어렵고 대단히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그러나 여기까지 이미 왔으니 되돌릴 수는 없다. 또 우리사회가 지금 변호사 취업난까지 신경 써 돌봐줄 수는 없다. 로스쿨의 취지는 국민에게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착한 가격으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부응하느냐 아니냐가 로스쿨 제도 정착의 기본 요건임이 분명하다.
    다만 로펌과 기업, 공공기관들이 수익과 효율만 따지지 말고 국민에게 더 봉사할 수 있는 다양한 법률서비스 직무를 만들어 제도의 취지도 살리고 변호사 고용도 늘리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정부조직과 금융권도 변호사 고용을 늘릴 여지가 있어 보인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도 눈높이를 낮추고 멀리 보며 실력과 경험을 키워나가야 한다. 실제로 법률구조공단 7급 공무원 시험에서 로스쿨 출신들이 눈높이를 낮춰 응시했지만 모두 탈락했다. 사법시험을 오랫동안 준비한 고시재수생들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 것. 아직은 자중하며 실력향상에 힘쓸 때이다.
    9 min
  • [06/12 화요일]종북검증에 쓰자는 후미에, 인간의 내면을 찢어발기다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이 기독교를 빗댄 종북 관련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라디오 인터뷰에서 ‘종북 국회의원을 가려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옛날에 천주교가 들어와서 사화를 겪으면서 십자가를 밟고 가게 한 적이 있지 않냐”라는 예를 들었다. 이에 대해 야당은 매카시적 사상검증 발언이고 기독교 수난의 역사를 폄훼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기호 의원은 천주교 신자로서 예를 든 것이 부적절할 수도 있지만, 종북주의자들을 가려내 심판해야 한다는 의지는 굽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후미에, 기리시단 ...... 일본의 기독교 박해 300년
    후미에는 일본의 에도 시대에 막부가 기독교(가톨릭)를 금지(1612년 에도 막부 초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하면서 기독교 신자(기리시탄, 크리스천)를 색출해내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 또는 거기에 사용했던 목조/금속제의 판을 말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나 성모 마리아가 새겨진 판이다. 이것에 침을 뱉거나 밟고 지나가도록 강요한 뒤 주저하거나 밟지 않으면 기독교 신자로 간주해 처형했다. 이것을 해마다 연중행사로 강요하며 1873년까지 250년에 거쳐 기독교박해가 이뤄졌다. 후미에를 처음 고안해 낸 사람은 나가사키의 영주 이노우에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어떤 결정사항에 몰래 반대한 사람을 색출해 내기 위한 방법을 ‘후미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에 처음으로 기독교가 들어 온 것은 1549년이다. 예수회 소속 신부 프란시스코 사비에르(스페인 출신으로 인도에서 선교하다 일본행)가 큐슈 남단 가고시마에 상륙해 당시 세력가인 오다 노부나가의 승낙을 받으면서 크게 전파돼 나갔다. 기독교도의 수가 70년 간 80만 명으로 불어나 일본 전체 인구의 5~6%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 직전인 1587년 기독교가 서양세력 침략의 통로로 이용되고 일본의 통치이념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텐렌(선교사) 추방령을 내렸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기독교 금지령을 내렸다. 일본의 정체성과 전통문화가 와해되고 국가지배 체재가 붕괴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면에는 다케다 신겐,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으로 이어지는 군벌 세력들의 오랜 전쟁과 권력다툼으로 인한 국정혼란을 덮으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일본, 그 알 수 없는 나라의 뿌리 후미에
    이로 인해 로마의 카타콤의 순교자보다도 더 많은 28-30만 명의 순교자가 발생했다 한다. 박해로 인한 순교자가 30만 명 정도 나왔다는 것은 당시 크리스챤 3명중 1명이 순교를 당했다는 결론.
    이때 기독교 박해의 시작은 1597년 나가사키에서 26명이 순교한 사건 (십자가에 매달고 창으로 찔러 죽이는 처형이었음). 이후 1622년에 나가사키의 리츠야마(立山)에서 55명이 순교했고(화형과 참수형), 후미에도 1626년 나가사키에서 발발했다. 1637년 가혹한 처벌과 과중한 세금 때문에 기독교도를 주축으로 주민 폭동도 발생하는데 대표적인 것은 1637년 발생한 시마바라의 난이다. 3만 7천여 명이 석 달간 정부군에 대항하다 모두 전사하거나 처형당했다. 이후 1년간 계속해 저항하다 정부군에 학살된 사람을 모두 합치면 12만 명 정도 된다는 대규모 민중봉기 사건.
    당시 기독교도들에게 가해진 박해는 오늘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처형과 고문, 감시제도의 원조 종합판이다. 처음에는 십자가형이나 화형이었다. 그런데 기독교도들이 죽음을 순교로 받아들이자 최대한의 고통 속에 죽도록 갖가지 방법들이 고안됐다.
    썰물 때 갯벌에 묶어두고 밀물 때 서서히 익사시키는 방법은 잘 알려져 있지만 끓는 유황열탕이나 끓는 물, 오물 등을 이용해 고통 속에 죽어가도록 한 방법들도 기록에 남아 있다.
    고문은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나가사키와 오우라, 시마바라 지방에서 특히 잔혹하였다. 그들의 고뇌와 절망을 그려낸 엔도 슈샤쿠의 ‘침묵’은 필독서로 유명하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혹한 처벌제도를 뒷받침하는 감시제도, 불순분자 격리제도, 일가친척 연좌제, 마을주민 밀고제 ..... 숱한 방책들이 그 뒤를 따른다. 북한이 가져다 쓴 오호감시제, 집단따돌림 이지메, 자학과 가학이 뒤얽히고 꼬인 채 속마음을 끝내 숨기는 사회적 성격, 무조건 맹종하는 집단심리, 집단자살, 묻지마 불특정다수 집단살인 범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남경 중국인 학살, 끈질긴 역사왜곡 및 잡아떼기 ...... 일본의 숱한 병리적 현상의 뿌리가 후미에로 대표되는 기리시탄 박해에 집약돼 표현되고 있다.
    후미에 - 인간의 내면을 찢어발기다.
    지금부터 140년 전인 1865년 규슈 나가사키, 오오우라(大浦)라고 하는 곳에 프랑스 인들에 의해 오우라 성당이 지어졌다. 기독교 박해 300년 만의 일이다. 외국인들만으로 헌당식이 치러지고 두 달 뒤 인근 우라가미 마을 일본인 남녀 10여명이 갑자기 교회당으로 뛰어 들어가 자신들이 그동안 숨어 지내 온 기독교인(가쿠레 기리시탄)임을 밝힌 사건이 발생했다. 300년 만에 이뤄진 신앙고백인 셈이다. 그래서 우라가미 기리시단이라는 말까지 생겼으나 이들도 이후 거의 모두 색출돼 순교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1873년에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공식적으로 풀렸다.
    이런 시련의 역사로 나가사키를 기독교의 성지로 여기기도 하지만 나가사키에는 기독교를 불길하게 여기는 두려움도 공존한다. 일본 3대 축제에 들어가는 나가사키 쿤치 마쯔리(축제)에서는 최근도 십자가를 밀봉해 가둔 뒤 행진함으로써 기독교 박해 당시의 트라우마가 왜곡된 형태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의 학살된 기리시탄 가운데 조선 기리시탄들도 많았다. 이들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압송된 조선인 중에서 예수회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었다.
    정리하자면 ‘후미에’는 속내와 사상을 알아내기 위해 인간의 내면을 찢어발기는 가혹행위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권력이 민심을 장악하고 정치적 실패나 전쟁 실패의 후유증과 책임을 무고한 이들에게 덮어 씌워 자신의 권세를 유지하려는 정략적 술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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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6/11 월요일]6월의 깃발, 6.10 만세운동과 6.10 민주항쟁
    1919년 3·1운동 이후 일본 제국주의는 식민지통치를 한층 강화했다. 일본 독점자본으로 조선 경제를 마구 삼키기 시작했고 치안유지법을 만들어 자주독립운동의 움직임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그러다 1925년에 조선공산당이란 조직이 결성되고 경성(京城)전차승무원파업, 평양인쇄직공파업, 평양양말직공파업, 목포제유(製油)노동자파업, 경성방직노동자파업 등이 잇달아 벌어지며 조선 노동계가 일제의 차별과 억압에 맞섰다. 1926년 조선공산당 임시상해부는 이때를 노려 메이데이 노동절 시위를 기획했다. 그런데 4월 26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서거라는 변수가 생겨났다. 반일감정이 높아지고 일본제국주의를 규탄하는 모임들이 생겨나던 중 4월 28일 창덕궁의 西門인 금호문(金虎門)에서 시골청년 송학선(宋學先)이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암살을 기도했다 실패하는 사건이 벌어지며 감시와 규찰이 강화됐다. 그래서 노동절 시위 계획을 뒤로 미뤄졌다. 순종의 장례일이 6월 10일로 정해지면서 6월10일에 3.1운동과 같은 전국적인 만세운동을 다시 벌이는 것으로 결정됐다.
    6.10만세운동의 총괄기획은 조선공산당이 맡고, 전국적인 조직과 연락.동원은 천도교가 맡았다. 그리고 조선학생사회과학연구회, 중앙고보 등 학생들이 한 축을 맡았다. 일본경찰에 사전에 발각돼 주동자들이 체포되기도 했지만 조직을 급히 정비해 끝내 만세운동을 터뜨렸다. 만세운동의 시작은 서울 종로 3가 단성사 극장 앞이고 그곳에서 청계 3가 을지 3가, 동대문 쪽으로 번져 나갔다. 6.10만세운동으로 전국에서 약 5,000여 명의 시위대가 연행되었으며 독립운동 탄압이 본격화 돼 주요 조직의 간부 100여 명이 대거 검거되었다. 한편으로 우리에게 사회주의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 학생운동 세력의 결합이라는 소중한 경험을 남겨 훗날 범민족진영이라 할 신간회(新幹會)를 결성하는데 기초가 된다.
    6.10 만세운동이 학생운동
    그러나 6.10 만세운동은 해방 후 반공이데올로기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가운데 자주독립운동의 기념비적 사건으로 부각되지 못한다. 사회주의 세력이 주도한 자주독립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세력이 노동계의 쟁의와 파업을 연계해 주도했다는 점이 우익반공 정권으로서는 거슬렸던 것. 그래서 그저 학생들의 운동이었다고 깎아내렸다. “학생들의 감상적인 민족의식으로 일어난 충동적인 사건” ..... 이것은 당시 일본총독부의 발표 내용인데 해방 후에도 일본총독부 발표 내용 비슷하게 6.10만세운동을 억지로 깎아 내리거나 무시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려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엄연한 우리 민족의 단결된 독립만세운동이었다. 조선공산당이 앞서 기획했다하지만 천도교가 몸통이고 전국의 학생들이 조직적으로 주체가 돼 참여한 만세운동이다. 소련, 중공과는 아무 관련도 없고 김일성도 관련이 없는 의거이다.
    6월의 깃발 아직 내릴 때가 아냐
    지난 8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조지 카치아피카스(George Katsiaficas, 미국 웬트워스공대) 교수가 지적한 내용들이 흥미롭다.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아시아 지역의 민주항쟁 역사에 관해 연구하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전통에 주목했다.
    “1700년대 조선시대에는 서원이 있어 중앙 정부를 견제했고, 동학농민운동, 3.1운동, 4.19 혁명, 광주민주항쟁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으며 2008년 쇠고기 촛불집회 또한 이런 전통이 반영된 것”이라는 게 카치아피카스 교수의 해석이다. 특히 고 김근태 고문의 말을 인용해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서는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이 일본을 앞지르게 되었다’는 평가도 내렸다. 또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폭력집단으로 변질되지 않았고,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의 민중봉기처럼 대규모 유혈사태로 번지지 않은 점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이 6월 민주항쟁 기념토론회를 취재한 한국 기자는 노컷뉴스 한 명 뿐. 그리고 6.10 민주항쟁 관련 기사는 모두 기념식, 기념행사 일색이다. 정치인들이 어디에 갔다 어디에 참석했다 등등 의미있는 기획이나 탐사 기사는 어디에도 없다. 6.10만세운동을 조선총독부와 군사독재정권들이 깎아 내리더니 6.10민주항쟁도 21세기에 홀대를 받고 있다.
    6.10 민주항쟁은 우선 정치체제를 바꾼 혁명이냐 항쟁이냐 준혁명이냐 성격규정도 마저 해야 한다. 군부정권을 끝내고 국민이 대통령을 뽑는 민선정부로 옮겨가며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뤄낸 데 대한 긍정적 평가는 당연하다. 그러나 이면에 있는 6.29 선언으로 시민의 혁명은 일단락되고 7.8월 노동계 투쟁으로 옮겨간 과정에 대한 해석과 평가, 그 뒤 김영삼.김대중 양김 대결로 이어지며 시민사회의 동력이 흐트러진 데 대한 평가, 광주민주화항쟁 정신과 6월 민주항쟁 내지는 혁명의 연결성, 미국의 정치.외교적 입장과 역할, 6월 항쟁 이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어떻게 엮이며 신자유주의에 이르게 됐는지의 과정에 대한 연구, 신자유주의 속에서의 6월 항쟁 정신의 계승 ..... 아직 깃발을 내릴 때가 아니다.
    국가와 국민이 발전하는 토대 중에 ‘공유’라는 것이 있다. 과거의 아픔과 기쁨 역사적 사건을 공유해야 하고 미래의 꿈과 희망을 공유해야 민족이 하나의 운명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 작업들이 역사 속에서 분열과 대립, 정파적 이해 때문에 끊기고 깎여 나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9 min
  • [06/08 금요일]우리 승리하리라, 참으면 이긴다 .... 금지된 노래
    1987년 6월, 6.10 민주항쟁 25주년을 맞아 기념행사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 중에 금지곡만 부르는 음악회도 있다한다. 오늘은 노래와 정치적 저항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미국은 저항가요(Protest song)의 전통을 일찍부터 갖고 있었다.
    “무의미하게 죽어간 한 사람을 위해
    천만 어머니들의 가슴이 무너진다 .....
    한 어머니가 눈물 흘리며 중얼거리는 말이 들린다.
    ‘나는 내 아들을 병사로 키우지 않았어요
    나는 자랑과 기쁨으로 그 아이를 길렀어요.
    누가 감히 그 아이의 어깨에 총을 메고
    다른 어머니의 사랑하는 아들을 쏘게 만들었나요?......’”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때 반전운동에서 불린 “나는 내 아들을 병사로 키우지 않았다.”라는 저항가요이다. 앨프레드 브라이언이 지은 노래로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무지 싫어했던 노래.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추진해 조선을 일본에 넘긴 미국 제국주의의 개척자)
    저항가요로 우리가 김민기 씨를 떠올린다면 미국인들은 포크음악의 창시자 피트 시거를 기억한다. 피트 시거는 저항가요를 확실한 대중음악의 한 장르로 만들었다. 1940년대 스페인 내전에서 60년대 베트남전 반대, 최근의 이라크 전쟁 반대에 이르기까지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음악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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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 shall overcome 우리 승리하리라, 들에 핀 꽃들은 어디로 갔나 등이 그의 작품이다. 존 바에즈, 밥 딜런, 피터 폴 앤 메리 등 유명한 가수들이 피트 시거의 추종자들이었다.
    아침이슬은 금지곡? 대통령 애창곡?
    피트 시거의 노래들은 1970년대 초 한국으로 상륙한다. ‘우리 승리하리라’는 1972년 김민기 씨가 서울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처음 번안해 불렀고 이후 대학가로 번져 197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가요가 됐다. 이때 저항의 의지를 노래에 담은 가수들이 김민기 씨를 비롯해 한대수, 서유석, 양희은 씨 등이다.
    독재정권의 감시와 통제가 아주 엄격했기 때문에 김민기 씨가 작곡한 저항가요들은 대중적으로 불리지 못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으로 시작하는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금관의 예수)”, “예쁘게 빛나던 불빛 공장의 불빛 온데 간데도 없고 희뿌연 작업등만 이대로 못 돌아가지 그리운 고향마을‘ - “공장의 불빛”,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까 있을까 분홍빛 고운 꿈나라 행복만 가득한 나라, 하늘빛 자동차 타고 나는 화사한 옷 입고 잘생긴 머슴애가 손짓하는 꿈의 나라’ - “이 세상 어딘가에”
    그래서 일반 대중가요를 저항의 뜻을 담아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아침 이슬’이 대표적인 예이다. 결국 많은 노래들이 정치적 의도로 또는 오해로 금지곡이 되어 버린다.
    아침이슬은 겉으로는 ‘붉은 태양’이 문제가 되었지만 사람들이 시대상황에 실망할 때마다 너무 애창해 금지곡.
    이장희의 ‘그건 너’는 군사정권에게 손가락질하며 대드는 이미지라고 금지곡.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정권의 신뢰를 훼손한다고 금지. (전설에 의하면 방송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이 막 나갔는데 그 다음 프로그램 프로듀서가 이 노래를 내보내는 바람에 금지라고......)
    송창식의 ‘왜 불러’는 돌아서서 가는 사람을 왜 불러? 장발단속, 불심검문하는 경찰 공권력에 저항하는거냐며, 금지
    한대수 ‘물 좀 주소’는 물고문을 연상케 해서 금지. ‘행복의 나라로’는 독재정권 아래서 살기 싫다는 거냐며 금지.
    신중현 ‘아름다운 강산’은 정권 찬양 홍보 노래 좀 만들라는데 신중현 씨가 거절해 미운털이 박혀 금지.
    정광태의 ‘독도는 우리 땅’은 한일관계를 풀어가려는데 일본 감정 자극한다고 금지. 반면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창법이 왜색이 짙어 금지.
    상당히 엉뚱한 금지곡도 있다.
    ‘키다리 미스터 김’은 박정희 대통령의 작은 키 때문에 금지. ‘고래사냥’은 허무주의 조장이라고는 하지만 실은 대학생들이 데모하러 나가자고 목이 터져라 부르는 통에 금지.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겉으로는 ‘너무 허무주의야’라고 핑계를 댔지만 민주화를 그리는 이미지라고 금지됐다.
    1980년대, 참으면 이긴다
    1980년대에는 대학가와 노동계를 중심으로 운동권이라는 영역이 자리 잡으면서 지어 부르고 구전되는 노래가 많아졌다. 특히 광주민주화항쟁 이후 저항을 담은 노래도 많아지고 책으로 묶어내는 작업들도 이뤄져 시중에 유통되었다. 정권이 금지하든 말든 공권력의 힘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서 부르는 노래들이 많아지니 굳이 대중가요를 저항의 뜻으로 빌려쓰지 않았고 저항가요와 대중가요가 확실히 분리되어 금지곡이 많지 않다.
    심수봉 씨의 금지곡 리스트가 눈에 띈다.
    ‘그 때 그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때문에 금지.
    ‘순자의 가을’ - 이건 전두환 대통령만 부를 수 있는 노래라 금지. 그래서 ‘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 바뀌었다.
    ‘무궁화’는 ‘참으면 이긴다 ~’는 가사가 문제가 돼 금지. 뭘 참고 누구를 이겨?
    6.10 항쟁 25주년.
    6.10을 항쟁으로 부르기도 하고 혁명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아직 국민 모두가 공감하도록 정리가 되지 않고 있음을 반증한다. 국가와 국민이 발전하는 토대 중에 ‘공유’라는 것이 있다. 과거의 아픔과 기쁨 역사적 사건을 공유해야 하고 미래의 꿈과 희망을 공유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많이 아쉽고 아프다. 일제의 침략과 강점, 해방과 친일, 6.25와 분단, 군사독재, 지역감정과 이념대립 ..... 그걸 정치적 정략적 이해가 아니라 모두의 아픔과 안타까움으로 공유하고 미래의 희망도 공유해야 하는데 아직도 치열하기만 한 분열과 대립으로 우리 사회는 어지럽기만 하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그냥 한 번 불러봤어~!
    10 min
  • [06/07 목요일]우리는 깃발이다
    3월 6일부터 총파업을 벌여 온 KBS 새 노조가 사측과 잠정 합의를 이끌어냈다. 잠정 합의안에는 *징계 최소화 *대선 공정방송위원회 구성(사장ㆍ노조위원장 포함) *탐사보도팀 부활 *사회비판 프로그램의 부활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인적쇄신이다. 사장퇴진은 아니더라도 기자들이 거부하고 있는 보도본부장 등을 어찌 처리할 거냐가 핵심사안 중 하나인데 사측이 어느 정도의 의지를 갖고 있는지가 잠정합의안을 완결짓는 데 관건이라 하겠다. 새 노조는 오늘 오후 대의원대회를 개최해 협상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한다.
    MBC .... 아 MBC ....
    MBC TV의 시청률은 지난해 5월 6.51% (AGB닐슨 기준)에서 지난 5월에는 4.58%로 나타났다. 시청률이 2% 포인트 정도 떨어졌다는 건 심각한 상황. 지난 4월도 4.9%여서 MBC의 시청률이 4%대로 굳어지고 있다는 평가이다.
    KBS는 지난해 5월은 5.46%에서 올해 5.22%로 낮아졌지만 MBC에 뒤졌던 시청률을 우위로 확실하게 끌어올렸다. SBS도 지난해 5.59%, 올해 5.35%로 약간 하락. 전체적인 지상파 텔레비전 시청이 줄고 있는 추세를 반영해 하락세를 보이지만 MBC의 2% 포인트 가까운 하락은 폭락에 가깝다.
    시청률은 함께 떨어졌지만 KBS와 SBS는 광고 수입은 약간 늘었고 MBC만 광고수익이 크게 줄어든 것도 이를 반영한 것이다. MBC로서는 방송콘텐츠, 브랜드 이미지, 신뢰도, 조직, 경영 등 총체적인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는 중이라 하겠다.
    현재 MBC 김재철 사장에게 제기된 비판과 의혹은 이전에 퇴진한 2명의 MBC 사장과 비교하면 가히 심각한 수준. 그런 점에서 정부와 방송통신위윈회, 국회까지도 이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여권은 비판적인 뉴스시사프로그램을 되살리느니 MBC 파업이 대선 끝나도록 오래 오래 가기를 희망하는 듯 보인다. 파국에 이르도록 방치하다 모든 책임을 김재철 사장에게 덮어씌우면 그만이라는 전략일 것이다.
    국민일보의 자연인 회장과 비자연인 회장
    국민일보 노조 파업은 7일 현재 168일 째를 맞는다. 집행부의 무기한 철야 단식농성이 진행 중이다. 사측은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오늘(7일) 오전 9시까지 업무에 복귀라고 통보해 놓고 있다. 파업을 풀기 위한 노사협상을 진행하면서 파업노조에게 업무복귀명령을 내리는 것은 단결권, 행동권을 갖고 있는 노조를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국민일보 노사는 어느 정도 합의를 이뤄 가합의안을 갖고 있다. 그런데 사측이 조합원 23명 중 20명에 대한 고소·고발을 취하하지 않는 것이 타결의 걸림돌이다. ‘노조원들이 회장에게 사과를 해야 명예훼손 고소 건을 풀어주겠다’, ‘회장이 자연인으로서 노조원을 고소했으니 노사협의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것이 회사측의 주장이라 한다.
    파업으로 생활고까지 겪으며 파업에 임한 것은 그만큼 회사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이고 그걸 풀자고 합의안을 만드는 것인데 고소고발 20건은 내가 개인적으로 한 거니 건드리지 말라는 것은 납득키 어렵다.
    언론사 노조들이 중대한 언론계의 이슈를 놓고 연대파업에 나선 적은 있지만 각각의 언론사에서 왜곡보도, 어용보도, 어용낙하산 인사 등 각각의 문제로 인해 동시에 파업이 벌어진 건 처음 있는 사태이다. 괜찮은 봉급 받으며 적당히 방송하라면 할 수도 있다. 몸 편하고 윗사람 칭찬 듣고 얼마나 좋은가, 원더풀 라이프다. 그러면 자유민주언론, 국민의 방송은 누가 언제 만들겠나. 그리되면 언론도 아니고 언론인도 아니다. 이런 자신들 안의 모순과 불의함을 알아차리고 이를 극복하고자 어려움 속으로 뛰어들었다면 그들은 이미 자신과의 싸움에서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깃발은 빛난다.
    10 min
  • [06/06 수요일]현충일에 생각하는 조국, 국가, 국가권력
    오늘은 현충일이다. 굳이 국립현충원만을 찾아 참배해야 할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 조국의 자주독립과 국가수호를 위해 희생한 선열들을 기리는 시설은 많다. 국가보훈처 홈페이지로 들어가 아래쪽 ‘현충시설 통합정보’를 클릭하면 전국의 현충시설에 대한 안내를 찾아 볼 수 있다. 현충시설 정보서비스로 들어가면 자기 사는 마을 주변에 있는 현충시설이 일목요연하게 뜬다. 교육정보를 클릭하면 지역별로 관련된 역사자료들도 준비돼 있다.
    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아
    그리스의 세계적인 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터키에 정복당한 크레타 섬의 그리스인으로 태어났다. 카잔차키스의 할아버지는 톡립투사였고 아버지도 독립운동가였다. 카잔차키스의 아버지는 독립운동에 나섰다 붙잡혀 처형당한 마을 사람들의 시신 앞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가 그들의 발에 입을 맞추게 하면서 조국과 자유의 숭고함을 가르쳤다고 한다. 카잔차키스의 작품은 거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조국, 한번을 부르면 가슴이 뛰고
    두 번을 부르면 코 끝이 뜨거워지는 이름 ..... “
    우리의 조국을 노래한 시도 읽어보자.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너라고 불러보는 조국아
    너는 지금 어드메 있나 ......
    긴긴 밤 가야고 소리마냥 가슴을 파고드는 네 이름아 .....”
    - 이은상, ‘너라고 불러 보는 조국아’ -
    노산 이은상 선생은 국립현충원 현충탑 제단에 새겨진 헌시를 짓기도 했다.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제단 앞의 향로는 1968년 국군 창설 20주년을 맞아 만들었다. 6·25 전쟁에서 전사한 국군과 베트남 참전 전사자들의 인식표를 녹여서 ..... 현충일, 나라와 민족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나누자.
    조국, 국가, 국가권력, 정부 ........
    국가 - 일정한 영토를 보유하며, 거기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을 가진 집단.
    조국 - 조상 때부터 살아 온 나라, 자기가 태어난 나라.
    민족이나 국토의 일부가 분리되어 다른 나라에 합쳐졌을 때
    그 본디의 나라.
    국가와 조국이 분리되는 대표적인 예는 독일이다. 독일 사람들이 20세기 독일을 대표한다고 여기는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히틀러, 또 한 사람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고 정치적 논설로도 유명한 토마스 만이다.
    토마스 만은 히틀러 나치스의 박해로 조국 독일을 떠나 프랑스·스위스 등을 거쳐 미국에 망명해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을 외치며 독일 나치스에 맞서 싸웠다. 토마스 만은 “내가 있는 곳이 독일”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히틀러가 민족감정을 교묘히 이용해 우월감에 입각한 민족제국주의로 변질시킨데 대해 진정한 독일은 지금의 국가가 아니라 깨어 있는 독일국민의 영혼과 문명 속에 존재한다고 주창했던 것.
    조국, 국가, 국가 권력, 정부 ...... 이것들 사이에서 혼동과 혼란을 일으키지 않아야 조국과 민족을 바로 대할 수 있다. 최근에도 국가관 논쟁이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다. 국가관이란 정치적 의미로 “국가의 목적, 의의, 성립, 형태 등에 대한 체계적인 견해나 입장”을 의미한다. 엄청나게 광범위한 물음이다. 이 시대 올바른 국가관이 무엇인지 따져보자는 사상 토론과 논쟁은 받아들일 여지가 있지만 당신의 국가관이 잘못됐으니 국회의원직을 내놓고 나가라는 요구는 사상검증에 가깝다.
    강요에 의한 자아비판과 사상검증은 민주주의 사회에 합당하지 않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사회적 이슈를 정략에 의해 불을 지피는 것은 정치적으로 옳지 못하다.
    9 min
  • [06/05 화요일]자살과 폭력, 문제는 해결하려는 정치적 의지이다
    학교 폭력으로 고민하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이어지고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등 학교가 신음하고 있다. 자살은 개인의 정신적 문제이고 폭력은 개인의 윤리적 결함 때문이다.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우리 모두는 그것만은 아니라고 여길 것이다. 비슷한 형태의 사건이 반복되며 전염병처럼 번진다면 그것은 사회구조적 원인이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감기 야 언제고 존재하지만 유행성 독감이 번지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과 같다. 그러니 사회적.환경적 원인이나 위험요인을 찾아 차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1등만 챙기는 세상이 수치심을 부른다
    학교에서의 폭력과 자살은 교육제도와 사회 환경, 가족 등이 얽혀 있는 구조적 문제이다. 심성이 나쁜 아이들이 일탈행동으로 폭력을 행하고 약한 아이들이 숨지는 구조는 분명 아니다. 그렇다면 학교생활과 학교교육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어린 나이부터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고, 교실에서 승자와 낙오자로 나뉘고, 학습을 즐기는 게 아니라 학습결과에 의해 서열이 정해진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아이들이 가장 오래 공부하고 가장 공부를 싫어하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이런 교육현장은 폭력을 유발할 수 밖에 없다.
    자살과 폭력의 여러 요인 중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수치심을 주목하기도 한다. 모욕이나 굴욕으로 인해 생기는 수치심은 누구나 겪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의외로 수치심을 간파하지 못하고 놓친다. 그 이유는 수치심을 느낀 사람은 자신이 수치스럽다는 걸 어떻게든 숨기려 하기 때문이다. 수치를 느낀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우니 그렇다.
    그리고 수치심 때문에 고통스러우면 그 수치심을 남에게 떠넘기고 대신 자신은 빠져나가고 싶어 한다. 나보다 더 약하고 못난 존재가 있다는 걸 보여서 자존감을 회복하려는 변칙적인 일탈행위이다. 일본에서는 에타와 히닌이라는 신분이 있었다 한다. 에타는 더럽다는 뜻이고 히닌은 사람도 아니라는 뜻이다. 이것은 농민 사회에서 번졌던 풍습이다. 농민보다 아래인 천민집단이 에타와 히닌이 된다. 무사 계급에게 착취와 핍박을 받던 농민들이 자기들보다 더 아래 계급인 에타와 히닌이란 천민계급을 두고 그들을 괴롭히면서 대리만족했던 것이다.
    자살 중에는 죄의식으로 자기가 자기를 꾸짖고 수치심을 못 이겨 저지르는 자살이 있다. 수치심을 남에게 떠넘기고 싶지만 자신의 죄의식은 그런 공격을 강하게 차단하고 끝내 자신에게 터뜨리는 것이다. 더 헝클어지면 남을 죽이고 자신도 목숨을 끊는 경우도 발생한다. 폭력해결의 방법 중 수치심을 증폭시키는 방법은 그래서 하수 중 하수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벌을 줄 때 수치심을 가하는 방법도 그래서 초기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교사는 교무실로 데려가 훈육하려 하고 학생은 교무실만큼은 가지 않으려는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하지만 수치심이 과하게 가해지면 폭력을 유발하니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자살과 폭력, 문제는 해결하려는 정치적 의지
    원인과 이유가 파악이 되는데 해결이 진척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구조적으로 너무 복잡하게 얽혀 풀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한편으로는 폭력을 막을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폭력을 발생시키는 제도와 문화를 바꿔야 겠다는 정치적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술은 폐해가 대단하지만 합법이고 많이들 사 마시라고 텔레비전 광고도 한다. 약물 중에서도 가장 중독성이 높은 것 중 하나여서 끊기 어렵고 몸에 해로운 것이 담배지만 합법이다. 미국은 총으로 학교에서조차 사람을 마구 죽이고 자살도 하지만 총을 만들어 팔도록 허가한다. 약한 사람이 강도나 폭력배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이다. 뒤로는 미국총기협회가 정치권을 후원하고 정치권이 총기협회를 옹호한다는 정치적 이유가 있는 건 물론이다.
    우리사회도 최근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자는 데 대해 학생이 교사를 팰 것이다로 시작해 좌파교육감 우파교육감 논란이 일었다. 심지어 학생 동성애까지 거론되며 어른들이 정치적으로 법석을 피우지 않았던가.
    미국의 제임스 길리건 이라는 정신의학자는 하버드 의대 법정신의학연구소장으로 교도소 정신건강 서비스를 감독하며 연구한 결과를 내놓았다. 교도소 수감자들이 자살하거나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출소해 사회에 100% 적응하는 엄청난 효과를 보인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교도소에서 공부해 학위를 따는 것이었다. 지역의 대학 교수들이 25년~30년간 교도소에 자원봉사로 수감자들을 가르치고 학사.석사 과정을 이수하도록 했더니 메사추세츠 주 교도소에서 25년간 300여명이 학위를 따고 나가 재범율 0를 기록했다고 한다. 30년으로 늘려 잡았더니 2명이 다시 잡혀 들어왔다. 재범율이 30년에 0.75%이다. 미국 재소자들의 재범율은 3년에 65%이니 30년에 0.75%면 1000분의 일에 육박하는 성공적인 수치이다. 물론 교도소 안에서 공부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면 이미 교육수준이나 정신적으로 다른 수감자와 다른 수준에 있기 때문에 이것을 감안하고 따져야 하지만 대단한 효과였던 것은 분명하다. 인디애나주, 캘리포니아주 등 곳곳에서 비슷한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사실 보스턴 대학 교수들이 25~30년 간 교도소를 드나들며 자원봉사로 재소자를 가르친다는 사회 시스템만으로도 경이롭다. 우리나라 서울의 명문대학이나 지역 국립대학들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미국은 교도소에 교수들을 보내는데 우리나라는 중고등학교에 경찰을 보내 해결하겠다고....? 이 나라는 도대체 뭐냐?)
    그러나 다음에 벌어진 일도 흥미롭다. 연구 결과를 받아 든 정치권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대학 가기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죄 지은 사람은 교도소에서 공짜밥 먹으며 일류대학 교수들에게 편히 배워 학사.석사 따는 게 말이 되느냐, 다들 교도소로 몰리면 어찌 되겠냐 논란이 일더니 확대는커녕 하던 것도 없어졌다고 한다. 어느 것이 옳을까?
    미국의 통계분석을 보면 1900년부터 2007년까지 살인율과 자살율은 함께 늘거나 함께 줄었다고 한다. 정신적.심리적 문제로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것과 범죄적 동기로 남을 죽게 만드는 것이 어떻게 함께 진행이 될까?
    그것은 사회정책과 사회풍토가 자살과 폭력의 원인임을 보여주는 통계분석이다. 사람들을 강한 수치심과 모욕감에 노출시키는 제도와 정책들은 열패감과 열등감을 조장하며 타인을 무시하고 경멸하도록 부추긴다. 어떤 제도가 필요하고 어떤 제도가 고쳐져야 하는지는 누구나 생각해 보면 알 일이다. 문제는 그래서 정치적 의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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