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By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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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episodes

  • [05/21 월요일]난징 학살에서 드러난 일본의 잔혹 유전자
    가와무라 다카시 일본 나고야 시장, 지난 2월 중국 난징시 공산당 간부들이 나고야를 방문해 만났을 때 난징대학살(일본식 명칭은 ‘난징 사건’)을 부정하는 발언으로 중국인의 공공의 적이 되어있는 인물이다. 이번에는 중일 두 나라가 자유토론으로 난징 대학살의 진상을 밝혀보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시끌벅적하다. ‘중일전쟁 중인 1937년 난징에서 통상적인 전투행위를 하다 보니 군인도 민간인도 희생되었을 뿐 일방적인 학살은 없었다’고 본다는 것이 가와무라 다카시 시장의 주장이다.
    20세기 최악의 사건, 난징 대학살의 실체
    난징 (南京)은 송나라, 오나라, 명나라의 수도였던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4곳 중 하나이다. 산둥성(山東省)과 상하이(上海) 사이에 위치한 요충지.
    난징학살 사건은 일본군이 중국 만주에서 난징으로 진격하면서 저지른 만행으로 난징에 도착하기까지 약 30만 명을 살해했고, 난징 점령 뒤에 약 4만 2,000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숫자는 추산이다.
    전쟁 후 극동군사재판에 제출된 구호단체 자료에 따르면, 난징에서 버려진 시체를 모아 매장한 것이 15만 5337구(어린이가 859구, 부녀자가 2,127구 포함)로 기록돼 있다. 문제는 양쯔강에 내다버린 시체가 상당한 규모인데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 당시 일본군 총사령관인 마쓰이와 6사단장 하세 히사오 등 여러 명이 재판에서 책임자로 지목돼 사형에 처해졌다.
    판결문에 따르면, 비전투원 1만 2,000명, 패잔병 2만 명, 포로 3만 명이 시내에서 살해되었고, 근교에 피해 있던 있던 시민 5만 7,000명 등 총 12만 9,000명이 살해되었다. 이것은 최소한의 숫자이며 실제로는 3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는 것.
    살해 방식은 저항 못하는 양민을 무차별 사격, 생매장, 가두고 불을 질러 살해하는 방법 등이 동원되었다. 강간과 약탈이 행해졌고 난징 시내의 3분의1정도가 불에 타 없어졌다. 중국인뿐만 아니라 미국·영국·독일 등의 외교관 저택과 중국인 피난민을 보살핀 외국인의 병원·학교·교회 등도 약탈되었다. 또한 종군위안부를 조직해 여성들을 강제로 성노예로 삼아 괴롭히다 기념촬영 후 모두 살해하기도 했다. 중국인 목 베기 시합까지 벌였다고 하니 독일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와 더불어 20세기 최악의 잔혹행위이다.
    일본인은 왜 그리 잔혹한가?
    중국계 미국인 아이리스 장이 쓴 [역사는 힘 있는 자가 쓰는가](원제, The Rape of Nanking 난징의 강간)가 가장 생생한 난징 대학살의 기록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책 출간 후 아이리스 장은 일본 우익세력으로부터 끊임없는 협박을 받으며 공포 속에서 살았다. 일본 일부 우익파들은 ‘난징의 강간’을 반일위서(反日僞書)로 규정하고 비판에 열을 올렸다. ‘난징의 강간’ 일본어판을 펴내고자 했던 출판사는 결국 강압에 못 이겨 출판계약을 파기했고 ‘난징의 강간’은 출판되지도 않았는데 ‘난징의 강간’ 비판서들이 숱하게 등장했다. 아이리스 장은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정신과 진료를 받다 이기지 못하고 결국 2004년 36살의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때 ‘난징의 강간’ 비판운동에 참가한 일본 우익들을 ‘난징사건 부정파’라고 부르는데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도 이 부류에 속하는 듯.
    미국의 인류학자이자 [국화와 칼]의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인들에게 도덕적 규율이란 지역적이고 제한적이어서 해당되는 영역을 벗어나면 정상을 벗어나 돌변한다고 분석한다. 천황을 제외하고는 자신을 비롯한 모든 사람의 목숨을 한순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던 전통, 오랜 기간에 걸친 막부와 지역 군벌 통치 아래서 영주나 오야붕에게 목숨을 맡기고 살던 풍토가 바탕이 돼 일정 영역을 벗어나면 거리낌 없이 생명을 하찮게 여길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 예는 일본인 자기들끼리의 관계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은 엔도 슈샤쿠의 소설 ‘침묵’의 배경이 된 16, 17세기 일본.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직전에 전국의 외국인 선교사 추방령을 내린다. 당시 일본 인구는 2천만 정도. 기독교인이 80만 명 쯤 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집권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기독교 금지령을 내렸다. 이때 기독교신자라는 이유로 처형된 사람이 20만 명에서 30 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이후 250년 간 일본에서 기독교가 박해를 받았다.
    기독교를 박해한 방법은 잔혹하고도 절묘하다.
    테라우케 - 모든 사람은 절에 등록해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절의 증명서를 받고 여행, 혼인, 이사, 취직 때는 절에 가 허가를 받아 제출할 것.
    후미에 - 1년에 1번 이상 예수의 초상화를 땅에 깔고 침을 뱉은 뒤 발로 밟아 기독교인이 아님을 증명할 것. 이를 어기는 사람은 기독교인으로 간주하고 처형. 처형 방법은 난징 대학살보다 훨씬 잔인하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이 죽음을 순교로 받아들이자 최대한 오랫동안 최대한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도록 온갖 고문방법을 고안해 냈기 때문.
    5호 감시제 - 5가정을 하나로 묶어 서로 감시하고 고발하도록 하되 고발없이 기독교인이 적발되면 5가정 모두 연대책임을 지는 제도. 일본인이 혼내(속마음)을 끝내 숨기고 다테마에(외양)만으로 남을 대한다는 혼내/다테마에 풍조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북한의 5호 감시제도 이를 흉내낸 것.
    기리시단류족 개명제 - 기리시단은 크리스천을 의미. 기독교인이 발각되면 그 친족들도 모두 집에서 나오지 못하고 격리수용되어 마을 전체의 감시를 받는 벌칙. 농사일 외엔 집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단 집에 불이 났거나 사람이 죽어 산에 묻으러 갈 때는 외출이 하가됐다. 일본의 이지메 전통이 여기서 시작됐다.
    우리에게 일제강점의 상처와 독도 문제가 한일관계에서 중요하듯 중일관계에서도 난징대학살이 가장 중요한 역사청산 과제이다.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징병 피해, 중국의 난징대학살, 일본의 원폭피해 ..... 불행한 역사 속에서 세 나라 민중이 겪은 아픔을 서로 나누고 이해하고 용서를 빌고 용서하는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동북아시아의 공존과 번영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국가 간의 증오를 넘어서지 못한 채 일본의 망언이 계속되고 그렇게 당하면서도 중국마저 대대적인 역사 왜곡에 나서고 있으니 동북아시아의 공존 번영은 갈 길이 멀기만 하다.
    10 min
  • [05/18 금요일]5.18의 언론, 전선줄 위의 참새
    5.18 광주 민주화 항쟁과 관련된 언론의 초기 보도는 그저 ‘침묵’뿐이었다.
    군부는 1980년 5월 18일부터 광주에서 벌어진 일에 대하여는 일체의 보도를 통제하였다. 광주의 지방 일간지들은 20일부터 휴간에 들어갔다. 정부가 광주 항쟁에 대해 처음 언급한 것은 5월 20일 오전 10시 발표이고, 계엄사령부 발표는 20일 오후였다. 그러나 이 발표들은 광주 지역에만 해당되었고 중앙 언론들은 받아 보지 못했다. 20일 저녁 7시 광주 지방 텔레비전 뉴스에만 보도되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광주의 이름은 ‘.....’ 이었다.
    “18일, 19일 학생 등의 소요로 경미한 피해가 있었고 연행한 176명은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다”
    18일, 19일 공수부대의 무차별 유혈진압과 학살을 경험한 광주시민들은 이 보도를 접하고 분노했고 KBS와 MBC로 몰려가 항의했던 것.
    최초로 언론을 통해 전국에 알려진 내용은 21일 오전 계엄사 발표이다. 오전 10시 30분에 발표돼 방송과 그날 저녁 신문, 다음날 아침 신문에 발표된 내용은 “민간인 1명, 군경 5명이 사망했고 당국은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이런 사태가 빚어진 것은 서울에서 시위를 벌이던 학원 소요사태의 주동 학생 및 깡패 등 현실 불만 세력이 대거 광주로 내려가 사실무근한 유언비어를 날조해 퍼뜨렸기 때문이다”
    이때 당국의 대책이 뭔지는 모르지만 도청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증언으로는 그날 아침 도청을 포위한 공수부대원들에게 실탄이 지급된 이후였다. 아마 이것이 당국의 대책인 듯하다. 실탄을 지급한 마당에 다른 대책이 뭐가 있겠는가. 깡패, 날조된 유언비어 때문에 광주 시민이 흥분했다는 발표 내용은 당연히 유혈 진압을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21일 오후에는 계엄사령관의 담화가 발표돼 언론에 보도됐다. 21일 방송과 22일 신문에 실린 담화문에서 ‘광주 사태’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그리고 “광주사태는 타 지역 불순인물과 고정간첩들이 사태를 극한적인 상태로 유도하기 위해 지역감정과 관련된 악성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공공시설을 파괴하고 불을 지른 데서 기인한다”고 원인을 설명했다.
    오전 발표에서 등장한 ‘시위학생과 깡패’ 등 현실불만세력이 사라지고 ‘불순인물과 고정간첩’이 주범으로 등장한 것이 다르다. 앞의 발표와 뒤의 발표가 몇 시간 만에 달라졌다는 걸 알았다 해도 그걸 보도할 언론은 물론 없었다.
    이때부터 전국의 언론은 파괴된 시가지와 불타는 차량 사진을 보여주며 선량한 시민들이 수습복구 노력에 나섰다는 보도를 사진과 함께 계속했다. 또 시간 경과에 따른 사건일지를 보도했는데 공수부대 진압 일정은 빠지고, 시위 폭동과 관련된 일정들만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24일에는 서울역에서 간첩을 잡았는데 그 임무가 광주에 침입해 시민을 선동하는 것이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광주의 이름은 ‘사태’이었다.
    이때만 해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보도에서 격이 달랐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당장은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다. 국가 안위를 위해 빨리 해결하자’고 하고 동아일보는 24일 자 사설에서 ‘통분할 일이고 통한의 사건인데 미봉책은 금물’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뭐가 잘못이고 뭐가 통분이고 통한인지는 전혀 설명이 없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행간을 통해서라도 광주에 무언가 엄청난 일이 벌어졌음을 알리려고 했던 것이다.
    동아일보 24일자 사설을 이야기하는 까닭은 19일부터 23일까지 5일간 동아일보는 사설 없이 신문이 발행되었다. 당시 군부의 언론검열단이 서울시청에 설치돼 신문 기사를 통제하고 있었는데 동아일보 사설을 이리저리 잘라내고 되돌려 보내 글이 이어지지 않았던 것. 동아일보는 항의와 저항의 표현으로 사설 없이 신문을 찍어냈다. 4컷 짜리 시사만화 ‘고바우영감’도 8일간 지면에서 사라졌다. 이것만으로도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동아일보에 대한 신뢰가 대단했다. 그 당시 어디 기자냐 물으면 동아일보라고들 대답해 광주 전남에서 나다니는 기자는 죄다 동아일보 기자였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남아 있다.
    광주민주화 항쟁의 맨 처음 명칭은 ‘광주에서의 폭도들의 무력 난동’이었다. 그리고 5공화국 내내 ‘광주사태’로 불리다가 6공화국 초에 이르러 ‘광주민주화 노력’이라고 제 모습을 찾기 시작해 결국 10년 세월이 흐른 뒤에 ‘광주 민주화 항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1987년 ‘6월 항쟁’이 있기까지 대부분의 언론은 ‘광주사태’로 적고 매년 5월에만 잠깐 보도했다. 그것도 광주학살의 책임원흉을 처벌하라고 시위에서 구호가 나오면 그대로 받아쓰는 정도였다. 학생들이 시위에서 주장했다는 사회면 시위기사일 뿐 광주에서의 진실이 뭔지를 밝히는 기사는 물론 없었다. 역시 가장 각광 받은 신문은 동아일보. 다른 언론사에 비해 시위 기사도 크게 다뤘고 추모 시위, 가톨릭 광주 교구의 미사와 미사 뒤 거리행진, 대학가 기념식 등이 비교적 두루 다뤄졌다는 평가이다.
    광주의 이름, ‘항쟁’이 되다
    1985년 전두환 정권을 여소야대로 몰아갈 뻔한 ‘2·12총선’이후가 광주민주화항쟁 보도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한 시점이다. 김대중-김영삼 두 야권 지도자의 성명이 발표되면서 ‘광주사태에 대한 진상요구 기사’들이 사회면 시위 기사가 아닌 정치면에 실리기 시작했다. 또 시위 현장의 사진들이 간간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방송은 전혀 변하지 않고 광주 폭동 내지는 광주사태로 다루다가 1987년 민주항쟁 이후인 1988년부터 돌변했다. ‘광주의거’라고 부르고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얼굴 두꺼운 보도들이 쏟아져 나왔다. 5.18이 광주민중항쟁이라고 가장 먼저 주창한 언론은 놀랍게도 조선일보였다. 그때만 해도 정부는 ‘민주화를 위한 노력’이라고 불렀는데 조선일보가 앞서 나간 것이다. 역시 대단한 조선일보.
    오늘날의 언론 상황을 보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학의 가설은 언론학에 더 타당한 듯하다. 동아일보는 멘탈붕괴에 놓여 있고, 방송은 변함없고, 조선일보는 더욱 괴물이 되었다.
    “언론이란 모두 전선 위에 앉아 있는 한 무리의 참새들이다. 어느 한 마리가 다른 전선줄 위로 날아가 감전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면 모두 그곳으로 날아간다” (워싱턴 포스트의 월터 핀커스)
    7 min
  • [05/16 수요일]한국에 일본인 집단 이주? 실체없는 소문만 무성
    일본인들이 한국으로 집단 이주하기 위해 마을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다시 번지고 있다. 지진과 원전 사고 이후 불안한 일본인들이 외국으로의 이주를 구상하고 있고 가까운 우리나라가 그 대상지역으로 거론되는 것. 결론적으로 한국이나 동남아시아로 거주지나 업무용 사무실 또는 기업 전체를 옮기고 싶어 하는 움직임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을 새로운 사업 종목으로 보고 중개업자나 컨설팅 회사들이 여기저기 찔러보긴 하지만 실제로 진척되는 것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재패니스 타운? 아직은 피싱일 뿐
    물망에 떠오르는 곳은 일본을 오가기 좋은 인천공항 주변과 남해안 지역. 경기도에서는 파주 탄현 통일동산 쪽에서 물색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남해안 지역에서 일찍부터 ‘재패니스타운’ 이야기가 나온 곳은 부산 해운대 지역. 최근 일본인의 해외 체류를 지원하는 일본 공익재단 한국 지부가 해운대에 처음 설립되면서 소문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막상 부산지역 일본인 부동산 취득 건수는 분기당 한 자릿수로 변화가 없다. 2011년 일본인이 신규 취득한 부동산 건수는 총 25건, 2010년 18건과 큰 차이가 없다. 누적 취득 건수도 2008년 165건, 2009년 153, 2010년에는 154건, 2011년 173건으로 미국(925건), 중국(343건)보다 일본이 훨씬 못하다고 지역언론인 국제신문이 보도하고 있다.
    기타 남해안 지역으로는 경남 산청군, 남해군이 일본인 집단이주를 위해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고 소문이 나돌았다.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정부지원을 받아 2004년부터 도시민의 농촌이주를 끌어들이기 위해 농촌전원마을을 짓고 있으나 오는 사람이 없어 실패작이 되었다. 이를 만회하려고 외국인 마을을 꾸미자는 아이디어가 제시됐고 경남 남해군이 독일인 마을과 미국인 마을을 만들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이어 추진되는 것이 일본인 마을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독일에 광부나 간호사로 이민 갔던 교포들이 돌아와 ‘독일인 교포 마을’이 됐고, ‘미국인 교포 마을’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인 마을 역시 일본 교포들을 대상으로 추진 중이다. 산청군은 주민들의 반일감정 섞인 반대가 일자 주춤하고 발을 뺀 상태.
    경기도 지역이나 부산 해운대 지역의 아파트나 빌라 등도 대부분은 일본 교포들이 매입한 것이어서 일본인 집단거주지는 아직은 사실무근인 상태이다. 일본 언론들이 교포 등 일본인 집단이주라고 오보를 낸 탓도 있고, 고급 아파트를 판매하기 위해 건설사나 분양사들이 분위기를 조성하는 탓으로 파악된다. 일본인들이 사기 시작하면 값이 뛰니 미리 사두라고 고객들을 끌어들이려는 마케팅인 것이다. 앞으로 혹시 원전 사태를 겪은 어린 세대나 새로 태어나는 세대에서 방사선 감염에 따른 이상 징후가 발생해 사회적 충격이 커진다면 모를까 아직은 아니다.
    일본인 노동자 해외 이주의 역사
    일본인들은 외국에 나가 사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일본인들은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에서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집단주의를 특징으로 하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 곳곳에 일본인들이 많이 산다. 이는 19세기에 이뤄진 아시아 노동자들의 대대적인 해외 이주 붐에 의한 것이다. 일본 농민들은 짬짬이 도시로 나가 노동을 해 빈곤한 살림을 보충하며 살아왔다. 이 습성이 해외 이주노동자로 확대된 셈이다. 1860년대 경부터 아시아 노동자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는데 시작은 중국인들의 하와이 이주이다. 이어서 일본 노동자들이 하와이로 갔고 다음은 조선 노동자, 필리핀 노동자 등이었다.
    미국 농장주들과 기업주들은 아시아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민족 간 경쟁을 붙이는 방법을 썼다. 중국인 노동자들의 입김이 세지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인 노동자들을 불러들였고 일본인 노동자가 파업 등으로 권익 강화에 나서자 조선인 노동자를 불러 들였다. 결국 일본은 총감부, 총독부를 통해 하와이로 가려는 조선인 노동자들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대신 조선 노동자들을 하와이 대신 멕시코로 보내는 방법을 썼다. 몰려드는 한국인 노동자 탓에 일본인 노동자의 임금이 깎이거나 자리를 잃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결국 일본인 노동자들은 중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개발 붐으로 대규모 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임금도 높은 싼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로 옮겨갔다.
    연일 전쟁을 치르는 유럽으로는 이주가 많지 않았다. 일본 노동자들은 대신 안전하고 유럽의 전쟁 덕분에 최대 호황을 누리는 남아메리카로 향했다. 브라질과 페루 등이 일본 노동자가 진출한 대표적인 지역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남미 북미에 일본인 거주지역이 생기고 이곳들이 일본의 전자 제품, 스시문화가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발판이 된다.
    9 min
  • [05/15 화요일]정치를 혐오하면 정치가 우리 목을 조른다
    어제(14일) 저녁 서울 대방동 통합진보당사 앞에서 통합진보당 당원 한 사람이 분신을 시도했다. 당권파냐 비당권파냐부터 가리려고 하는 세상의 비정함이 비애를 느끼게 한다. 더 이상의 불행한 선택이 없기를 빈다.
    진보 진영 한 쪽에선 통합진보당을 이대로 무너지게 놔둘 수는 없다며 당원가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당원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재발되지 않도록 또 당의 복원을 위해서 당 내부 책임 있는 사람들의 자중 자애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토록 빈틈을 보이고 국민의 지지가 떨어지면 새로운 공안정국이 등장해 진보 진영의 기반을 얼마든지 흔들 수 있다. 굳이 진보진영의 복원을 강조하는 것은 정파적 관심에서가 아니다. 봉건왕조와 식민지배, 종속적인 우익보수정권의 장기지배에 따른 이 나라 근대사의 왜곡을 시정하고 균형을 맞추려면 진보의 목소리는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침묵의 형벌은 유용한가?
    이정희 전 대표가 스스로에게 지운 침묵의 형벌에 대해 잠시 논란이 벌어졌다. 침묵이 공인된 형벌로 존재한 최초의 기록은 탈무드의 가르침이다.
    “자녀에 대한 최고의 형벌은 침묵이다.”
    이스라엘 부모들은 좀체 아이들에게 매를 들지 않는다. 대신 벌을 주고자 할 때 즐기던 놀이나 텔레비전 시청을 차단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일절 말을 걸지 않는다. 격리와 침묵 속에서 스스로 잘못을 찾으라는 요구이다. 그러나 훈계 후에는 반드시 아이를 껴안아준다. 꾸짖는 것도 사랑의 한 노력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이다.
    구약성서 욥기 36장은 너무 억울하고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욥에게 엘리후가 침묵하라고 충고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대의 부르짖음이 그대를 유익하게 하지 못하고 있다. 감히 주님이 불의를 행하셨다 하지 말라. 그대는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조심하라.”
    화가 나서 침묵을 택했으나 후회하는 장면도 있다. 시편 39편, 다윗 왕이 침묵을 선언한 뒤 후회하는 장면이다.
    “나는 ‘행동을 조심하고 내 혀로 죄를 짓지 않겠다. 못된 사람들이 내 주위에 있는 한 나는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침묵하고 지냈습니다. 심지어 좋은 말이라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점점 괴로워졌습니다.”
    침묵과 격리를 형벌로 삼은 다른 예는 미국 필라델피아 이스턴 스테이트 감옥이다. 1829년에 건립돼 1971년까지 감옥으로 사용됐고 지금은 전시장이나 영화촬영장으로 쓰인다. 19세기 초반이면 백악관에도 상수도 시설이 제대로 안 돼 있던 시절이건만 상수도와 중앙난방 시스템을 갖춘 호텔급 교도소였다. 그 지역이 퀘이커교의 영향력이 강해 죄수일지언정 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참회의 감옥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모두 가기를 꺼려 했다고 한다. 이유는 모든 죄수는 독방이 주어지고 식사도 독방으로 배달되고 간수들도 복도를 걸을 때 덧신을 신어 걸음 소리를 내지 않을 만큼 침묵이 강요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죄수의 얼굴이나 목소리도 들을 수 없고 완벽한 침묵과 고요 속에서 형기를 마쳐야 했다. 그러나 지역에 범죄와 죄인이 줄지 않고 비용만 커져 뉴욕 식으로 바꿨다 한다. 한 감방에 여럿을 넣고 단체로 줄 서서 배식 받고 식사와 노동 운동을 함께 즐기는 보통의 감옥으로 돌아간 것이다.
    우리가 외면한 그 정치가 우리를 목 조른다
    가까운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정치적 침묵 속으로 밀어 넣은 예는 20세기 독일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나치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록을 보면 희생된 사람은 1,100만 명이다. 그런데 당시 히틀러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독일국민의 10%였다. 국민 10%의 지지로 어떻게 1,100만 명을 학살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도록 90% 독일국민은 뭘 했을까? 방관하고 침묵했다. 유태인을 실은 기차가 자기 마을을 지날 때 그 소리에서 도망치려고 교회에 모여 찬송을 부르기도 했다 한다. 그걸로 일말의 양심을 표현한 것인지는 몰라도 침묵이 답은 아니었다.
    다수 국민 뿐 아니라 독일의 관료들도 마찬가지. 묵묵히 하라는 일만 하는 것이 정권에 대한 충성인지는 몰라도 국가를 전쟁과 광기로 떠밀어 넣는 결과를 낳았다. 공무원이 양심과 직무 사이에서 아무런 갈등 없이 묵묵히 일할 때가 그 나라가 가장 위험한 때임을 이르는 대표적인 예이다.
    자기 자신을 침묵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 해답은 아닌 것이다.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며 선택하는 혐오와 기피도 해답은 아니다. “정치를 혐오하면 그 정치가 우리를 목 조른다.” 정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의 겪는 형벌이 잘못된 자들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것이다.
    침묵을 다른 힘이나 권위가 강제한다면 형벌이 되는 것이지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침묵하겠다고 뒤로 물러서면 그건 묵비권의 행사로 봐야하지 않을까? 당의 화합과 복원을 위해 침묵을 풀고 백의종군해야 할 시기를 살펴주었으면 한다.
    9 min
  • [05/14 월요일]스승은 마음의 어버이, 큰 절을 올리자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날이 되면 휴가를 내는 교사들이 있다‘는 언론 보도가 올해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일부 교사들이 스승의 날 선물과 촌지 문제로 눈치 보이고 속만 상하느니 아예 휴가를 낸다는 것.
    스승의 날을 앞두고 교육계에서 벌어지는 답답한 일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교사들의 울며 겨자먹기 휴가도 있고, 아무리 사소한 선물이라도 보내지 말라고 당부하는 ‘찬조금 사절’ 가정통신문이 있다. 스승의 날 교육청에서 나오는 ‘암행감사’ - 일반인으로 가장한 사복감사반이 있다고 한다. 교문 앞에 감사반이 지키고 서서 학부모들이 쇼핑백을 들고 오면 사복 감사반이 뒤를 쫓는다는 내용이다. 정성이 깃든 선물이지만 후유증을 고려해 매몰차게 돌려보내고 겪는 교사와 학부모간의 민망함도 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신세계백화점이 인터넷쇼핑몰을 통해 30, 40대 고객 59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전체 응답자의 40%가 스승의 날 가장 선물을 하고 싶은 대상으로 학원 강사를 꼽았다고 한다. 학교 담임교사라는 응답은 학원 강사의 23%로 학원강사의 절반에 그쳤다. 그 뒤를 이어 직장이나 학교에서 만난 ‘인생 선배’가 16%, 어린이집 교사가 12%였다. ‘선물하고 싶은 대상자가 없다’는 응답자도 6%나 된다. 왜 학원강사가 학교 선생님보다 스승의 날 선물 대상에서 우위를 차지할까? 당연히 아이들이 학원 수업을 많이 받고 학원수업의 가치를 높게 치니 그렇다. 또 촌지,선물 문제로 학교에서 탈이 나고 선생님도 학교 측도 부담스러워 하니 신경을 끄게 되는 것도 큰 이유이다.
    대학의 고민도 마찬가지. 대학생 10명 중 4명은 '존경하는 교수가 없다'고 여긴다는 설문 조사 결과도 있다. 대전대 교양학부대학 교수학습센터가 재학생 250명을 조사한 결과 40.2%가 이같이 답했다 한다. 또 56.2%는 '상담하고 싶은 교수가 없다'고 했고, '수업 시간 외에 교수와 10분 이상 대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답한 비율도 64.5%나 된다. '스승의 날에 개인적으로 감사 표현을 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엔 82.5%가 '없다'고 답했다.
    스승의 날은 1958년 충남 논산시 강경여고(현 강경고) 청소년적십자사 단원들이 병환 중인 선생님을 위문하고 퇴직 은사들을 찾아 인사하는 행사를 진행한 것에서 유래한다. 1963년 적십자사중앙학생협의회에서 5월 24일을 ‘은사의 날’로 하자고 권장 사항으로 결정했고, 1964년 4월 전주 회의에서 5월26일로 조정하고 이름을 ‘스승의 날’로 바꿨다가 1965년 부산에서 열린 협의회에서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15일로 수정했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교육헌장을 선포한 교육헌장선포기념일로 모든 교육관계 기념일을 묶으라 지시하면서 12월 5일에 통폐합되었으나 1982년에 다시 채택 되어 오늘에 이른다.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새롭게 태어나는 스승의 날도 물론 있다. 교사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시간에 쫓겨 아침밥을 거르고 오는 제자들을 먹이기로 한 중학교가 있고, 교사들이 학생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점심시간을 함께하는 초등학교도 있다. 프리허그(free hug) 이벤트로 스승과 제자가 서로를 안아주는 학교들도 있고 ‘선생님 구두 닦아드리기’, ‘카네이션달기’ ‘스승제자 체육대회’ 행사들도 많이들 하고 있다.
    중요한 건 스승의 날을 그냥 넘기지 않는 것이다. 모두 찾아 가자. 그저 빈손으로 가자. 다들 몰려가자. 그 대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나 아이들의 손을 잡고 선생님께 나아가 큰 절을 하자. 무릎을 꿇기 뭐하면 90도 경례라도 공손히 아이와 함께 올리자.
    10 min
  • [05/11 금요일]나는 고발한다, 나는 살고 싶다 .. 21세기 한국의 지식인
    오늘은 언론계와 대학가의 화제를 소개한다.
    나는 고발한다, 도청 의혹의 진실을?
    방송,통신,신문사 노조의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국회에서도 언론 파업에 대해 곧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야 간에 입장 차이가 분명해 당장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는 못할 듯.
    KBS는 새노조 파업 과정에서 11개월 전에 벌어진 국회 도청 사건의 전모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어 여의도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민주당 비공개 회의를 도청했다는 의혹을 받아 온 당사자인 KBS 장 모 기자가 "나도 억울하다"며 심경을 고백했다고 한다.
    KBS 새 노조에 따르면, 장 기자는 “나는 (녹취록을) 건네주지 않았다. 그런데 모든 것이 내가 한 것처럼 알려져 나도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한다. 특히 도청 사건 당시 정치부장으로 사건의 핵심에 놓인 이 모 부장이 7월 1일부로 워싱턴 지국장 발령을 받아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노조는 그 이전에 진실을 밝혀내겠다고 조사팀을 꾸렸다는 소식이다.
    국민일보의 경우는 조금씩 노사 간의 접근이 이뤄져 가는 분위기이다. 사회적 공기인 언론으로서 조용기 목사 일가의 사유물로 전락할 수는 없다며 파업이 시작된 국민일보는 새로운 노조집행부가 꾸려져 사측과의 만남이 조심스레 진행되고 있다. 방송사 파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은 파업이지만 노조원들은 한우 직거래로 파업기금을 마련하며 버티어 왔다. 어제(10일) 오전 교회개혁실천연대와 교회개혁지원센터,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평화누리 등 기독교계 단체와 개인 1,540명이 서명한 노조파업 지지선언이 발표되기도 했다.
    MBC 노조 파업에서는 남녀 두 명의 아나운서가 신앙 상의 이유로 파업에 더 이상 참여할 수 없다며 노조를 탈퇴하고 업무에 복귀해 눈길을 끌었다. 그 중 한 명은 탈퇴해 복귀하면서 주말 9시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아 구설수에 올랐다.
    정글의 법칙, 교수 임용 서바이벌
    이번에는 대학가로 이야기의 무대를 옮겨 보자. 조직 속에서 험난한 파도를 만나고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눈치를 살피는 건 대학 교수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신규임용, 재임용, 정년보장 심사 때마다 교수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호소한다. “Q. 가장 자살률이 높은 집단은? A. 정년보장심사를 앞둔 조교수.”라는 넌센스퀴즈 같은 이야기에 모두들 공감할 정도. 그 스트레스 강도를 짐작케 하는 기사가 최근 미국 고등교육 전문지 더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에 실렸다. ‘당신이 해고되는 10가지 방법’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온라인에 올라간 지 2일 만에 조회 수ㆍ댓글 1순위에 동시에 랭크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이하 ‘교수신문’ 참조)
    해고당하려면 무슨 짓을 못해 ..... 다음의 10가지를 두루 실천하면 해고당하기 십상.
    △교수 모임에 나가지 않기 △추천서 요청하기 △교직원 신뢰하기 △학교기관에 밉보이기 △학생들 화나게 하기 △교수 평가 웹사이트 및 기타 미디어 무시하기 △출판에 매진하기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기 △민주주의를 당연히 여기기 △선배교수 논문 비판하기
    일단 비정년 교수들은 모든 교수 모임에 참석해야 한다. 결석하면 공동체 의식이 없다고 여겨질 수 있다. 수업이 있더라도 취소하고 참석하고, 기관지염이 있어도 항생제를 입에 털어 넣고라도 가야 한다.
    윗사람에게 추천서를 요청하는 것도 금물. 떠날 사람이라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교직원도 믿으면 안 된다. 교직원의 상사는 학교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오로지 계약 연장이야말로 유일한 칭찬으로 여겨야 한다.
    학생도 두려운 존재. 평소 불평불만 많았던 학생을 글쓰기 지도 센터 같은 교내 기관에 보내지 말자. 무슨 말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말을 접한 기관 관계자의 한 마디가 재임용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미디어 평가도 중요하다. 신뢰성이 없는 익명의 리뷰라 하더라도 교수 평가에 자주 인용된다.
    학자로서의 자존심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 연구 결과를 출판하는 것은 출세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수평가도 학문 성취보다는 교육에 더 기반을 둔다. 출판이 연구의 가치를 향상시킬 수는 있지만 “동료 교수들의 질시를 받는” 등 교수 지위 연장과는 관련이 없다.
    학내에서 민주주의가 기능하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금물이다. 아무리 임용위원회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높은 사람’이 재임용과 정년보장심사에 권력을 갖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임용심사에서 탈락한 이유도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항의해도 소용없다.
    교수협회는 이에 대해 비판하지만 대부분 정년트랙 교수들이고 자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약간만 도움 될 뿐이다. 정작 비정년 교수들은 약자기 때문에 큰 소리를 낼 수가 없다. 같은 비정년 교수 동료들은 제각기 살 길 찾아 바쁘다.
    9 min
  • [05/10 목요일]신토불이야말로 공정무역의 기초
    5월 12일은 세계 공정무역의 날이다. 세계 70개국 300여 단체에서 매년 5월의 둘째 주 토요일을 공정무역의 날로 정해 지킨다. 올해는 5월 7일부터 14일까지가 공정무역 주간이다.
    FTA(Fair Trade for All)이다. FTA(Free Trade Agreement)와 정반대 개념인 공정무역은 올바른 무역과 소비를 통해 지구촌의 빈곤 문제를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다.
    FTA 라고 다 같은 FTA가 아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강대국의 침략에 피폐해진 약소국과 난민들을 돕기 위해 개별적인 공정무역이 시작됐다. 1946년 미국의 시민단체인 텐사우전드 빌리지에서 푸에르토리코의 바느질제품을 구매한 것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영국에서는 1950년대 후반 옥스팜 상점에서 중국 피난민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구입해 판매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저개발 국가들을 돕기 위해 국제기구인 유엔개발계획(UNDP), 세계은행(IBRD),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여러 프로젝트를 추진했지만 강대국들의 이익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실패로 끝났다. 그러자 선진국의 원조와 개발이라는 지원 방식에 실망한 민간 기구들이 가난한 나라를 돕고자 공정무역 단체들을 조직해 활동을 시작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가난한 나라를 찾아가 농민과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합을 만들어 인권존중과 환경친화적으로 작업하도록 설득했다. 대신 선진국 공정무역 기구들은 자금과 필요한 기술등을 지원하고 생산품을 사들인 것이다.
    커피를 시작으로 차, 카카오, 설탕, 포도주, 과일주스, 쌀, 향신료, 견과류 등으로 품목이 확대되고 1987년에 유럽공정무역연합(EFTA)이 설립되었다. 1989년에는 70개국 300여 개 조직이 회원으로 가입한 세계공정무역연합(IFAT)이 설립되었고, 1997년에는 공정무역 제품의 표준, 규격설정, 생산자단체 지원, 검열 등의 활동을 하기 위한 세계공정무역상표기구(FLO)가 발족되었다. 공정무역인증상품은 현재 3,000여 종이며 판매량도 2004년 8억 유로, 2005년 11억 유로, 2006년 16억 유로, 2007년 23억 8,000유로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 2003년 9월 '아름다운가게'에서 아시아 지역 수공예품을 수입해 판매한 것이 최초의 활동으로 기록돼 있다. 현재 한국에서 공정무역을 지원, 참여하는 단체로는 아름다운가게, 한국YMCA, ㈜페어트레이드코리아, 공정무역가게 울림, 두레생활협동조합, 아이코프, 한국공정무역카페, 공정무역학생네트워크 등이 있다.
    달랑 공정 커피 5%로 공정기업?
    공정무역 제품 중 우리에게 친숙한 커피 이야기를 해보자. 커피는 대부분 숲을 베어내고 대규모의 농장을 만든 뒤 농약과 화학 비료를 대량으로 뿌려 재배한다. 하지만 공정무역 커피는 먼저 공정커피를 생산해 팔기로 계약을 하고 소규모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재배한다.
    다국적 대기업은 커피 농장에서 원두 1킬로그램을 300원에 사들여 세계 곳곳의 매장에서는 25만원에 판다. 물론 물류비용과 로스팅, 매장 설치, 인건비 등이 들어가겠지만 재료구입 원가에서 830배로 튀기는 품목이 또 뭐가 있을까? 이디오피아 통계를 보자. 1,500만 명이 커피 노동자이다. 하루에 1달러도 벌지 못한다. 커피 농가가 챙기는 수익은 45킬로그램을 팔아도 3달러이다. 그런데 다국적 대기업 커피 매장에서는 1킬로그램에 25만원 이다.
    이런 점에서 개발도상국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착취라고 비난을 샀던 것이다.
    아프리카 커피농장 착취로 대표적인 불매 대상 기업이 되어버린 스타벅스와 네슬레를 비롯해 다국적 기업들이 이미지 개선을 위해 공정커피 원두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스타벅스의 경우 사용하는 커피원두의 5퍼센트 미만에 불과하지만 마치 ‘공정한 기업’처럼 이미지가 바뀌고 있다. 올해 공정무역의 날에도 신문에는 온통 스타벅스 기념행사 이야기로 가득하다. 5% 미만이지만 워낙 대기업이다 보니 공정커피 시장에 대한 지배력은 막강하다. 스타벅스 네슬레 등 돈벌이에 뛰어난 감각을 지닌 다국적 대기업들이 공정무역 시장에 끼어들고 직접 유기농 제품을 생산하며 공정유기농 시장의 수익까지 챙겨간다. 이것도 공정무역 운동이 될까?
    그건 그렇고 커피를 사먹는 소비자도 봉이다. 커피체인점 경쟁이 치열해지면 값이 내리고 서비스가 나아져야지 카페의 커피 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비싸다고 항의하면 동티모르 커피 생산농가를 지원한다는 변명부터 내놓는다. 공정하게 무역하는 기업은 소비자 지갑을 마구 털어도 되는 것일까? 스타벅스가 돈을 벌고 네슬레가 돈을 버는 건 수익의 일부를 내놓는다 해도 공정무역의 취지가 아니다. 가난한 나라의 농민이 저임금에서 벗어나고 그 나라의 산업과 상업이 고루 개선돼 모두가 이익을 얻는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이다.
    신토불이, 기본은 처음이자 끝이다
    바람직한 대안은 역시 지역 농산물 직거래가 자리를 잡는 것이다. 내 나라 내 고장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바로 사다 먹는 것이 수입된 유기농 제품보다 신선하다. 농민과 직거래하니 대기업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외국에서 수입해 오느라 방부제를 뿌릴 일도 없고 비행기, 배로 실어 나르느라 석유를 소비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나는 유기농만 사먹었으니 지구환경을 지키는데 할 만큼 했다’, ‘나는 공정무역 제품만 사서 쓰니 지구문제 해결에 내 몫은 했다’고 여기는 것이 함정이다. 기후 온난화 방지나 FTA 확대와 불공정한 무역질서 반대에도 실천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주의와 올바른 정치가 자리 잡도록 정치와 정권에 관심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런던시 정부는 2009년 런던을 세계공정무역도시의 수도로 선포했다. 7월에 열리는 런던올림픽에 쓰이는 차와 음료, 음식은 공정무역 인증마크를 획득한 제품으로 한정된다. 호텔 침구류와 커튼까지 공정무역 면화로 생산된 것만 사용하게 된다. 이것이 정치의 힘이다.
    박원순 시장도 서울시를 공정무역 도시로 바꾸겠다고 선언할 예정이다. 많은 것이 바뀌게 된다. 커피 뿐 아니라 정치도 공정하게 바꾸면 효과가 커진다.
    9 min
  • [05/09 수요일]여수 엑스포, 언론이 이야기 하지 않는 것들.
    여수 엑스포가 개막된다. 성공적인 엑스포를 위해 막바지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교통난이다. 그 다음은 숙박난. 가능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가까운 순천 등에 묵으면서 여수와 주변지역을 묶어 돌아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다음은 바가지 요금, 청결·질서, 친절한 분위기 등을 걱정거리로 꼽고 있다. 엑스포가 열려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면 세계 어느 도시든 바가지 요금과 질서 유지는 늘 고민거리였다. 여수 시민의식과 단합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여수 엑스포의 성공개최를 기원하며 따져 볼 것은 따져 보자.
    국제 박람회 기구(BIE, Bureau International des Expositions)가 주관하는 엑스포는 크게 2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등록박람회(Registered Expositions)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모든 주제를 다루는 대규모 박람회.
    둘째는 인정박람회(Recognized Expositions)로 과학, 바다처럼 한정된 주제를 다루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박람회.
    국제 박람회도 적자와 서자가 있어
    1. 등록박람회는 5년마다 열린다. 주제가 광범위한 만큼 행사기간도 길다. 보통 6주에서 길면 6개월까지 소요된다. 회원국들은 의무적으로 참가해 전시관을 설치해야 한다.
    이에 비해 인정박람회는 5년 마다 열리는 등록박람회의 중간에 박람회 유치희망 도시를 경쟁에 의해 선정해 개최한다. 기간은 등록 박람회의 절반 정도로 3주~3개월 쯤 된다.
    2. 당연히 등록박람회와 인정박람회는 격이 다르다. 등록박람회는 경쟁이 치열해 교통과 유통, 상업, 산업, 무역의 중심지로 국제적 명성이 없으면 개최가 어렵다. 2000년 독일 하노버, 2005년 일본 아이치(나고야를 중심으로 철도, 도로 교통의 요지이고 강과 항만을 갖춘 섬유.도자기산업 중심지), 2010년 중국 상하이, 2015년 이탈리아 밀란(밀라노)이다. 우리나라로는 서울, 부산, 인천 정도만 유치가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유치한 2개의 박람회, 1993년 대전 세계 박람회나 2012년 여수 세계 박람회는 등록박람회가 아닌 인정박람회이다. (개최년도가 5로 나누어 떨어지면 등록박람회이고 떨어지지 않는 2008 사라보라, 2012 여수 등은 인정 박람회이다.)
    2012 박람회를 놓고 여수와 경쟁했던 도시들을 살피면 인정박람회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여수), 모로코(탕헤르), 폴란드(브로츠와프)
    3. 한국에서 등록박람회를 가져 오는 건 애당초 어려웠다. 2010년 상하이에서 등록박람회가 열렸는데 동북아시아에 또 등록박람회를 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인정박람회를 가져왔지만 문제는 특정 국가가 박람회를 독점할 수 없도록 15년 경과 규정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 우리나라가 국제박람회를 유치하는 것은 20년에 한 번 꼴이라고 보면 된다. 여수 박람회를 치렀으니 이제 2030년 등록박람회를 유치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처지이다. 세계 강국으로의 발돋움을 위한 좋은 기회인데 20년을 기다려야 하다니 아쉽다.
    4. 등록박람회와 인정박람회는 비용에서 차이가 크다. 등록박람회에 세워지는 전시관은 참가하는 나라들이 부담한다. 하지만 인정박람회는 주최하는 나라에서 지어 참가하는 나라에게 무상으로 빌려준다.
    역대 세계 엑스포가 이름을 날리고 주최 도시들을 세계적인 도시로 부각시킨 까닭은 세계 각국이 위세를 떨치기 위해 경쟁적으로 국가관을 크고 멋지게 지어 뽐냈기 때문이다. 질과 양에서 경쟁이 치열하니 세계적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각국은 인정박람회에는 수준을 달리하여 참가하기 때문에 위상의 차이를 어쩔 수 없다.
    5. 주최 측에서는 여수엑스포 개최로 10조300억 원의 생산과 4조원 이상의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9만여 명의 고용이 유발될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등록박람회를 가져 오지 못하고 인정박람회를 가져 온 만큼 수익을 남기기란 만만치 않다. 소망 사항일 뿐이다.
    가장 큰 효과라면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 남해안을 세계에 알려 관광 뿐 아니라 해상물류의 거점기지로 만드는 것이라 본다. 광양항을 세계적인 컨테이너 부두로 개발하기 위해 20년 넘게 애썼지만 아직 미흡하다. 국제적인 인지도도 낮고 물동량도 적다. 여수 엑스포를 기회로 부산항과 연계해 우리의 남해를 세계 물류시장의 한가운데로 진출시켜야 한다.
    무늬만 국제는 이제 그만
    대전의 경우 엑스포 후 1년간 개편공사를 하고 1994년 8월에 엑스포 과학공원을 개장했지만 수익을 못내 운영주체를 몇 차례 바꾸고 행정안전부 법인청산명령까지 받아가며 결국 대전시가 떠맡았다. 지난해 대전마케팅공사라는 기구를 만들어 살 길을 찾고 있는 중이다. 롯데월드, 롯데쇼핑 등이 들어서는 걸로 가닥을 잡고 있다. 과학엑스포 유치만이 살길이다, 엑스포 과학공원이 살길이다, 이제는 일부는 과학파크, 일부는 공연, 일부는 롯데파크쇼핑 등 상업시설로 가려 한다. 시행착오 때마다 혈세가 쓰여진다. 대전시의 고충을 여수가 되밟지 않으려면 지금보다 더 치밀하고 과감해야 한다. 우선 행사라도 제대로 치르고 보자는 식은 곤란하다. 중앙 정부도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 국제행사의 사전 타당성조사를 강화하지 않으면 지방자치단체마다 이렇게 실패를 거듭할 것이다.
    전라남도가 추진한 포뮬러1(F1) 대회 건설비용은 당초 계획은 2300억 원이었으나 결국 2배가 넘는 5073억 원이 들었다. 수익으로는 7년간 1,112억 원 벌 거라 하더니 벌기는커녕 4,855억 원 손실로 예상된다고 한다.
    인천광역시는 국제박람회 협약을 지키지 않고 공식 승인도 받지 않은 채 ‘2009 인천세계도시엑스포 사업’을 추진하다 협약 위반 통보를 받았다. 설계ㆍ용역으로 120억원의 예산을 낭비했다.
     지난해 감사원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10억 원 이상의 국비를 지원받아 개최한 28개 국제행사를 점검한 결과 수입금은 계획대비 61% 였다. 외국인 관람객도 당초 목표의 66%에 머물렀다. 특히 14개 행사는 외국인 관람객 비울이 국제행사 기준인 5%에도 미치지 못했다. 무늬만 국제행사였던 것이다. 뻔히 알면서도 정치적으로 떠밀려 지원하고 나중에 가서 감사지적 정도로 면피해서는 안 된다.
    개막을 여수 엑스포의 해외 관광객 유치는 일단 어느 정도 수준에는 이른 듯하다. 주어진 6개월을 최대한 활용하고 이후 수익구조에 대한 철저히 준비도 지금부터 시작해 경과를 지켜보며 다듬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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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5/08 화요일]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놓고 돈만 챙겨서 . 밀항의 역사.
    미래저축은행의 김찬경 회장, 지난 3일 회사 공금 200억 원을 인출해 그날 밤 경기 화성 궁평항을 통해 중국으로 밀항하려다 해양경찰에 붙잡혔다. 저축은행 대주주의 횡령이 있긴 했지만 직접 공금을 주머니에 넣고 도망치려 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빼 돌린 돈이 270 억 원 더 있는 걸로 보고 수사 중이라는 소식이다. 김찬경 회장을 따로 부르는 별칭이 ‘막장회장’.
    가련다, 떠나련다 .... 돈만 챙겨서
    최근 밀항 사례들을 보면 일본으로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사람들은 주로 부산항을 이용한다. 죄 짓고 도망치는 사람들은 서해를 통해 중국으로 간다. 일본보다는 중국이 치안이 허술해 몸을 피신하기 좋고 여차하면 동남아시아 다른 나라로 튈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밀항을 돕는 범죄조직들은 이름 있는 항구보다는 작은 포구들을 이용해 밀항자들을 빼돌리는데 이번 사건의 현장인 궁평항도 그래서 선택된 듯.
    2009년 4조원대의 다단계 사기를 치고 중국으로 도망친 사기꾼 조희팔도 서해 태안 앞바다를 통해 빠져 나갔다. 단군 이래 최대 사기범이라 칭해지는 조희팔은 서민들을 상대로 전국에 5만 여 명의 피해자를 남기고 튀었다. 자살과 화병으로 숨진 피해자만 10명에 이른다. 조희팔이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었던 과정에 비리 경찰의 비호가 있었다고 진정이 제기되었지만 진상이 다 밝혀지진 못했다. 중국 공민권을 갖고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다는 소문이 전해진다. 현재 인터폴 적색지명 수배자 신분이다.
    토착비리 혐의로 구속기소된 민 모 전 당진군수도 중국 밀항을 시도하려다 포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일본인들이 대지진과 원전 폭발로 일본을 빠져 나올 때 일본으로 밀항하다 붙잡힌 사람들도 있었다. 3,40대 청년과 여성들로 후쿠오카 등지의 공장이나 유흥업소에 일자리를 찾으로 가려던 사람들이었다. 지진과 원전 사태로 일본의 해상 치안이 느슨해진 틈을 노렸던 것이다.
    한반도 밀항의 역사는 1,500년 전으로 ....?
    밀항의 역사는 1,500년 전 신라 진평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가 지리산을 넘어 신라를 침범하고 신라가 백성들을 병사로 징발해 겨우 버틸 때 신라 사람들이 병역을 피해 일본으로 밀항한 기록이 ‘일본 서기’에 남아 있다. 이처럼 한반도 역사에서 1945년 이전의 밀항은 주로 일본을 목적지로 하고 있다. 그 유형은 다음과 같다.
    1. 일자리와 생계 해결
    2. 밀항해 자리 잡은 가족과의 합류
    3. 유학
    4. 뚜렷한 목적 없는 낭만적 방황
    일본으로의 밀항이 늘어나자 일본은 1919년부터 여행증명서 제도 등을 도입해 도일과 밀항을 통제하고 막았다. 그래서 부산 등지에는 고향을 떠나 온 가난한 농민.노동자들이 일본 가는 배를 구하기 위해 떼를 지어 헤매기 일쑤였다고 당시 신문들이 전하고 있다. 농사지을 땅을 빼앗기고, 천재지변으로 수확은 어렵고, 고리채는 커지면서 고향을 도망치듯 떠난 사람들이었고, 밀항브로커들이 기승을 부렸다. 그래서 밀항은 당시 부산을 상징하는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일제 강점기의 밀항은 불법이 아니라 부정 밀항이었다. 식민지이니 자기네 영토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밀항이 불법이 된 것은 1945년 연합군 사령부가 일본인의 조선 입국을 강력히 통제하고 일본으로 가려는 한국인도 강력 통제하면서부터이다. 일본도 해안에 감시초소를 두고 한국인 수용소도 만들었다. 대표적인 수용소가 오무라 수용소. 이곳은 한국인 밀항자를 전담해 수용했다. 이곳에 수용된 한국인은 밀항자, 일본서 형기를 마친 한국인 범법자, 강제송환 대상자 등이었다. 이때부터 밀항은 국가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해방 이후 6.25 전쟁 때까지는 가난, 좌우 이데올로기 충돌에 의한 폭력, 전쟁에 대한 공포, 병역기피, 공산당 체포 회피 등이 밀항의 요인이었다. 6.25 전쟁 때는 밀항을 ‘위험에 처한 국가를 배신하는 비겁한 행동’으로 간주해 부산으로 피난 내려간 국회가 ‘밀항으로 국내를 탈출.도피하는 자는 총살할 것’이라고 선포하기도 했다.
    1950년 12월부터 1970년 9월까지 오무라 수용소에서 남한으로 송환된 숫자는 1만6천4백 명. 6.25 한국 전쟁과 60년대 들어 국가 체제가 자리를 잡으며 밀항 규모는 크게 줄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0 ~ 1970 년대에는 일자리와 가족 찾기, 학업, 뚜렷한 동기 없는 방황 등이 밀항의 이유가 됐고 밀수와 간첩도 등장했다.
    슬픔과 상처뿐인 조국을 두고 .....
    현해탄 넘어 일본은 가치와 이념으로는 물론 가까운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했다. 8.15 광복 후에도 “원수의 왜놈 땅이 그리워 현해탄을 넘는단 말이냐”는 비난도 있었지만 불안한 시국과 가난, 이산가족, 생존의 절박함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하는 사회 분위기였다.
    요즘의 밀항은 구직과 도피가 대부분이지만 과거의 밀항은 앞에서 보면 조국에 대한 배신이고 뒤에서 보면 슬픔과 상처뿐인 국가 체제를 벗어나려는 절박하고 위험한 선택인 경우도 많았다. 조국의 현실에 대해 좌절하고 분노할 때 인내하며 참다가 혁명의 때를 맞아 공감하고 연대해 분출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밀항처럼 개별적으로 사라져 버리는 소극적 저항도 있다는 해석인 듯싶다.
    요즘도 이민 가버리고 싶다는 말들을 하는데 그건 왜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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