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일은 세계 공정무역의 날이다. 세계 70개국 300여 단체에서 매년 5월의 둘째 주 토요일을 공정무역의 날로 정해 지킨다. 올해는 5월 7일부터 14일까지가 공정무역 주간이다.
FTA(Fair Trade for All)이다. FTA(Free Trade Agreement)와 정반대 개념인 공정무역은 올바른 무역과 소비를 통해 지구촌의 빈곤 문제를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다.
FTA 라고 다 같은 FTA가 아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강대국의 침략에 피폐해진 약소국과 난민들을 돕기 위해 개별적인 공정무역이 시작됐다. 1946년 미국의 시민단체인 텐사우전드 빌리지에서 푸에르토리코의 바느질제품을 구매한 것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영국에서는 1950년대 후반 옥스팜 상점에서 중국 피난민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구입해 판매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저개발 국가들을 돕기 위해 국제기구인 유엔개발계획(UNDP), 세계은행(IBRD),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여러 프로젝트를 추진했지만 강대국들의 이익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실패로 끝났다. 그러자 선진국의 원조와 개발이라는 지원 방식에 실망한 민간 기구들이 가난한 나라를 돕고자 공정무역 단체들을 조직해 활동을 시작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가난한 나라를 찾아가 농민과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합을 만들어 인권존중과 환경친화적으로 작업하도록 설득했다. 대신 선진국 공정무역 기구들은 자금과 필요한 기술등을 지원하고 생산품을 사들인 것이다.
커피를 시작으로 차, 카카오, 설탕, 포도주, 과일주스, 쌀, 향신료, 견과류 등으로 품목이 확대되고 1987년에 유럽공정무역연합(EFTA)이 설립되었다. 1989년에는 70개국 300여 개 조직이 회원으로 가입한 세계공정무역연합(IFAT)이 설립되었고, 1997년에는 공정무역 제품의 표준, 규격설정, 생산자단체 지원, 검열 등의 활동을 하기 위한 세계공정무역상표기구(FLO)가 발족되었다. 공정무역인증상품은 현재 3,000여 종이며 판매량도 2004년 8억 유로, 2005년 11억 유로, 2006년 16억 유로, 2007년 23억 8,000유로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 2003년 9월 '아름다운가게'에서 아시아 지역 수공예품을 수입해 판매한 것이 최초의 활동으로 기록돼 있다. 현재 한국에서 공정무역을 지원, 참여하는 단체로는 아름다운가게, 한국YMCA, ㈜페어트레이드코리아, 공정무역가게 울림, 두레생활협동조합, 아이코프, 한국공정무역카페, 공정무역학생네트워크 등이 있다.
달랑 공정 커피 5%로 공정기업?
공정무역 제품 중 우리에게 친숙한 커피 이야기를 해보자. 커피는 대부분 숲을 베어내고 대규모의 농장을 만든 뒤 농약과 화학 비료를 대량으로 뿌려 재배한다. 하지만 공정무역 커피는 먼저 공정커피를 생산해 팔기로 계약을 하고 소규모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재배한다.
다국적 대기업은 커피 농장에서 원두 1킬로그램을 300원에 사들여 세계 곳곳의 매장에서는 25만원에 판다. 물론 물류비용과 로스팅, 매장 설치, 인건비 등이 들어가겠지만 재료구입 원가에서 830배로 튀기는 품목이 또 뭐가 있을까? 이디오피아 통계를 보자. 1,500만 명이 커피 노동자이다. 하루에 1달러도 벌지 못한다. 커피 농가가 챙기는 수익은 45킬로그램을 팔아도 3달러이다. 그런데 다국적 대기업 커피 매장에서는 1킬로그램에 25만원 이다.
이런 점에서 개발도상국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착취라고 비난을 샀던 것이다.
아프리카 커피농장 착취로 대표적인 불매 대상 기업이 되어버린 스타벅스와 네슬레를 비롯해 다국적 기업들이 이미지 개선을 위해 공정커피 원두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스타벅스의 경우 사용하는 커피원두의 5퍼센트 미만에 불과하지만 마치 ‘공정한 기업’처럼 이미지가 바뀌고 있다. 올해 공정무역의 날에도 신문에는 온통 스타벅스 기념행사 이야기로 가득하다. 5% 미만이지만 워낙 대기업이다 보니 공정커피 시장에 대한 지배력은 막강하다. 스타벅스 네슬레 등 돈벌이에 뛰어난 감각을 지닌 다국적 대기업들이 공정무역 시장에 끼어들고 직접 유기농 제품을 생산하며 공정유기농 시장의 수익까지 챙겨간다. 이것도 공정무역 운동이 될까?
그건 그렇고 커피를 사먹는 소비자도 봉이다. 커피체인점 경쟁이 치열해지면 값이 내리고 서비스가 나아져야지 카페의 커피 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비싸다고 항의하면 동티모르 커피 생산농가를 지원한다는 변명부터 내놓는다. 공정하게 무역하는 기업은 소비자 지갑을 마구 털어도 되는 것일까? 스타벅스가 돈을 벌고 네슬레가 돈을 버는 건 수익의 일부를 내놓는다 해도 공정무역의 취지가 아니다. 가난한 나라의 농민이 저임금에서 벗어나고 그 나라의 산업과 상업이 고루 개선돼 모두가 이익을 얻는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이다.
신토불이, 기본은 처음이자 끝이다
바람직한 대안은 역시 지역 농산물 직거래가 자리를 잡는 것이다. 내 나라 내 고장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바로 사다 먹는 것이 수입된 유기농 제품보다 신선하다. 농민과 직거래하니 대기업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외국에서 수입해 오느라 방부제를 뿌릴 일도 없고 비행기, 배로 실어 나르느라 석유를 소비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나는 유기농만 사먹었으니 지구환경을 지키는데 할 만큼 했다’, ‘나는 공정무역 제품만 사서 쓰니 지구문제 해결에 내 몫은 했다’고 여기는 것이 함정이다. 기후 온난화 방지나 FTA 확대와 불공정한 무역질서 반대에도 실천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주의와 올바른 정치가 자리 잡도록 정치와 정권에 관심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런던시 정부는 2009년 런던을 세계공정무역도시의 수도로 선포했다. 7월에 열리는 런던올림픽에 쓰이는 차와 음료, 음식은 공정무역 인증마크를 획득한 제품으로 한정된다. 호텔 침구류와 커튼까지 공정무역 면화로 생산된 것만 사용하게 된다. 이것이 정치의 힘이다.
박원순 시장도 서울시를 공정무역 도시로 바꾸겠다고 선언할 예정이다. 많은 것이 바뀌게 된다. 커피 뿐 아니라 정치도 공정하게 바꾸면 효과가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