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살롱(roomsalon)은 사전적으로는 칸막이가 있는 방에서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술집, 폐쇄적인 구조의 방 안에서 비싼 술을 마시고 주로 여성 접대부들이 손님 접대를 하는 곳.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일대에 마련돼 있다는 고급 룸살롱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정치인, 재벌가 인물 등 최고급 손님만 회원제로 예약을 통해서만 가려 받는다고 한다. 마시면 일단 기본이 천만원은 넘는다고.
텐프로 오브 텐프로?
고급 룸살롱을 흔히 텐프로라고 부른다. 어원이 뭔지는 불확실하다. 술집에 돈을 댄 물주는 따로 있고 매니저 노릇하는 마담이 있는데 마담이 매출의 10퍼센트를 떼어간다고 해서 텐프로라는 설.
룸살롱 중 상위 10퍼센트 안에 드는 고급 룸살롱이라 해서 텐프로라는 설.
그런데 그 텐프로 중에서도 상위 10퍼센트 안에 들면 텐프로 오브 텐프로, 줄여서 ‘일프로’라고 불린대나 뭐라나.
최근 북한 룸살롱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평양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 북한 -일본전을 응원하고 평양 룸살롱에가 뒷풀이를 한 일본 남자의 체험기가 소개되었다. 일본의 인터넷 잡지 슈푸레(週プレ)뉴스에 실렸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룸살롱이고 가격이 3만 엔 정도였다고 전하고 있다. 물론 접대하는 여성도 있고 노래와 사교댄스 정도의 서비스가 있다고 한다.
룸살롱에 왜 갈까?
강준만 교수 룸살롱 공화국, 아이폰과 룸살롱의 유사점. 아이폰은 지금까지 다른 기기가 보여주지 못한 소통에 대한 스마트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룸살롱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그 능력을 얻어 쓰기 위해 드나들 것이다.
일부는 호기심, 일부는 자존심?
요정(料亭)은 고급 음식점을 일컫는 말로 요릿집이라고 부르던 곳이다.
요정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료테이’라는 요릿집이 바다를 건너와 자리 잡은 식품접객업소이다. 일본의 료테이는 귀한 손님을 귀한 요리로 접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요정은 남자들이 여자들의 접대를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잠자리까지 서비스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1907년 조선시대에 이어져 온 관기 제도가 폐지됐고 이 때 정리해고된 기생들이 관청에서 풀려 나와 요릿집에서 일했다. 기생 조합인 ‘권번’이 있어 요정이 연락하면 필요한 기생을 불러 흥을 돋우게 하는 형태였고 이후 요릿집에 전속계약으로 소속되어 일하는 기생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이 형태는 오늘날에도 비슷하다. 보도방이 있어 접대여성들을 룸살롱에 공급하는 인력용역송출 영업을 맡거나 룸살롱에 전속되어 있거나 하는 형태가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것.
1950년대 말 서울의 북악산에 '요정 3각'이라 불리는 3대 요정이 유명하다. 청운각, 대원각, 삼청각이었다. 청운각에서는 1956년 한일 회담이 성사되었고, 성북동 삼청각은 1972년 남북조절위원회와 남북적십자회담에 사용되었다. 정치 권력이 은밀히 애용했다해서 그라마에도 흔히 등장하곤 한다. .
서울시 최초의 음식점인 오진암은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 박성철 제2부수상이 이곳에서 만나 7.4 남북공동성명을 논의한 곳으로 유명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요정 애호가여서 철저한 보안과 경호 속에 업무를 보라고 만든 안가를 요정화해 연예인 등을 불러들여 술접대를 시킨 건 다들 아시는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아예 관광요정이라는 것을 제도로 만들었다.
군사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의 고민은 자금이었다.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징병, 위안부 피해자에게 돌아갈 보상금도 빼돌려 썼고 그 일부가 포항제철, 포스코에 쓰였다는 것은 설명드린 바 있다.
그래도 돈이 모자라 대규모 투자없이도 달러를 쉽게 벌 수 있는 방법이 관광, 거시기한 관광임을 간파하고 기생관광을 부분적으로 추진했다. 특정 지역과 특수 관광호텔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성매매 영업을 하는 여성에게는 윤락행위 방지법의 적용을 보류한다는 것, 1962년부터 시행된 제도이다.
1970년 대 들어서는 국가부채가 늘고 무역적자가 커지자 짧은 기간에 많은 외화를 벌 수 있는 방법으로 기생관광을 전면에 내세웠다. 무엇보다 현금 회전이 좋고 영업 성격이 은밀한 만큼 비자금으로의 전환과 비축이 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광진흥법에 근거를 두고 있는 국제관광협회에 ‘요정과’가 설치되었다. 관광협회 요정과는 관광기생들에게 증명서를 발부해 호텔 출입을 자유롭게 하고 통행금지령의 저촉을 받지 않도록 했다. 사실 상의 24시간 성매매 허가증을 공기관이 발행한 것이다.
1970년대 후반 들어서 기생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1백만 명 돌파가 이뤄졌고 관광요정들이 성업을 이뤘다. 이 요정들은 1980년대로 넘어와서는 내국인들까지 영업에 끌어들여 호황을 이어갔다. 박정희 정권 시절 관광요정이 10개로 시작했는데 최전성기에는 200여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때가 바로 ‘호스티스’ 전성기이기도 하다. 이른바 영자의 전성시대. 오죽하면 서점가에는 호스티스관련 책들이 즐비하고 영화도 호스티스 영화에 관객이 몰려들고 했을까.
이러한 기생관광의 성장이 이후 룸살롱, 단란주점과 같은 술과 성접대를 연계시킨 유흥산업의 대규모 확산이라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단란주점 룸살롱은 이후 농촌에까지 파고들었고, 10대 이런 소녀들을 서비스걸로 끌어들였다.
처음의 요정은 요리와 공연관람 위주이고 관광요정은 여기에 성접대를 연계시키고 룸살롱은 요리보다는 술, 관람하는 가무보다는 직접 즐기는 가무와 성적 접촉을 위주로 해 영업형태를 변형시켜 나간 것이다. 룸살롱이 진하고 ‘은밀한 접대’라는 사업부문을 떼어가자 요정은 결국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한정식집으로 바뀌었다.
조금 더 정치적인 흐름으로 보자면 일제 강점기에 친일파가 총독부 등 일본 측 ‘갑’을 접대한 곳이 요정이고 해방 후엔 군정을 맡은 미군을 불러 접대하던 곳이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엔 군사정권이 즐기고 접대받고 국가적 돈벌이와 비자금 통로로 이용하던 곳이 요정이었다. 이것이 비즈니스 호화 룸살롱으로 발전해 대통령 측근과 재벌 총수가 만나 즐기며 우애를 돈독히 했다는 의혹이 터지기에 이른 것.
또한 한국 사회의 특징 중 하나가 밀실 문화이다. 중앙 정치권력, 자본권력, 언론 권력, 지방자치단체와 토호세력 등이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 공공 제도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별도의 꿍꿍이 내막들에 의해 움직인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은밀히 만나야 하고 갑을 관계에서 접대도 해야 한다. 은밀한 접대는 밀실이 필요하고 보안과 방음이 잘 된 밀실을 룸살롱이 제공한다. 룸살롱의 가장 큰 장점은 그런 밀실을 음습하지 않게 화려하고 우아하게 꾸몄다는 점이다. 또 도우미의 성접대를 함께 받으면서 공범의식을 통해 서로를 더 친밀한 관계로 이끌어 주는 장점(?)도 있다. 거기에다 룸살롱에서의 접대는 조직과 사회에서 업무 수행으로 관행으로 인정을 해 준다. 룸살롱에 가면 통한다는 비즈니스 관행과 룸살롱이야 이제는 우리의 일상이 아니냐는 허술한 우리의 도덕의식이 이제는 전국 도시농어촌 어디에나 룸살롱을 퍼뜨리고 여성들을 접객부로 손님으로 끌어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