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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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 기자수첩[김현정의 뉴스쇼 2부] episodes

  • [03/26 월요일]안중근 의사 서거 102주기.... 우국을 생각하다
    오늘은 안중근 의사 서거 102주기를 맞는 날이다.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날이 1909년 10월 26일, 순국한 날이 1910년 3월 26일이다. 안중근 의사와 관련해 이토 저격사살을 주로 이야기하다 보니 그의 일생에 관해서는 소홀히 전해지는 느낌이다.
    안중근 의사는 교육운동가이자 의병장
    안중근 의사는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만인계 등 서민금융 사업 등을 하다 1905년 을사 늑약 체결 소식을 듣고 여비를 마련해 상하이로 가 국권 회복 운동을 시도했다. 뜻대로 되지 않고 부친상까지 당해 귀국해서는 평안도에서 석탄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구국의 뜻을 펴기 위해 다시 회사를 정리하고 교육사업으로 전향했다. 평안도에 삼흥학교(三興學校)를 설립하고 황해도 돈의학교를 인수했으며 스스로도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1907년에 전국적으로 전개되던 국채보상운동에 뛰어들어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장을 맡기도 했다. 일본의 방해로 국채보상운동도 실패로 끝나자 안중근 의사는 남은 방법은 독립전쟁 뿐이라고 생각하고 강원도에서 의병을 일으키는데 가담했다. 이곳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계동청년회(啓東靑年會)에 가입해 본격적인 의병활동을 시작했다.
    이 때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당당하게 남자답게 용감히 싸워라’ 당부하고 아들을 떠나보냈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는 주로 함경도 쪽 국경을 넘어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는 게릴라전을 담당했다. 이 때 남긴 유명한 일화로 기습작전으로 일본군을 제압한 뒤 포로를 잡으면 국제공법 전쟁포로에 관한 규약을 엄수해 잘 돌보다 풀어주곤 해 그냥 처치해 버리자는 강경파들과 충돌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 어쩌구 하는 망발들이 이어지지만 이런 일화나 법정에서의 최후 진술 등을 살피자면 테러리스트가 되기엔 애당초 어울리지 않는 성품이다.
    그러던 1909년 초, 안중근은 뜻이 맞는 동지들과 함께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결성했는데 이때 왼손 넷째 손가락 한 마디를 끊어 결의를 다졌다. 안중근 의사의 수인(手印)은 이때부터 찍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제국의 재무장관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온다고 하자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자원하고 나섰던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가 있으면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게 하고 한일 간이 멀어지기 때문에 한국의 의병 중장의 자격으로 죄인을 처단한 것이라 웅변했다. 이 같은 뜻을 바로 해석하자면 안중근 의사가 일본의 강제합병 이후 독립투쟁이 아니고 조선이 독립국이던 시점에서 의병투쟁을 벌였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토 히로부미 같은 자들이 국왕을 속이고 여론을 호도하면서 전쟁을 획책하고 있다는 관점이다. 또한 그런 악적을 사살한 대한제국 의병 참모중장인 자신은 전쟁 포로이고 이 행위가 법정에서 유죄라면 그것은 일본국 전체가 이토 히로부미처럼 침략의 간계를 꾸미고 있는 증거라고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관이 감동하고 간수가 존경하고 .....
    1910년 2월 13일, 안중근 의사의 두 동생과의 면회가 성사됐다. 동생들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깨끗이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어머니의 뜻을 전했다. ‘두 동생이 울면서 어머니의 말을 전하자 검찰관마저 눈물이 그렁해 목이 메었다’고 만주일일신문 1910년 2월 13일자가 보도했다.
    안 의사는 두 동생에게 나이 드신 어머니의 안부를 묻고, 불효를 용서해 달라고 청했다. 큰 아들은 신부가 되었으면 좋겠으니 잘 키워 달라고 부탁했고, 동생에게는 조국의 발전을 위해 공업 또는 식림(나무심기)같은 사업을 하라고 당부했다. 이런 것이 우국(憂國- 나라를 근심하고 염려함)의 모습이리라.
    또 ‘지바 도시치’라는 일본인 간수가 안중근 의사를 흠모해 기일이 되면 제사를 올렸고 자식들에게까지 안중근 의사의 제사를 거르지 말도록 당부하고 세상을 떠난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유언은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르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그러나 일제는 안 의사의 시신을 유가족에게 인계하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감춰버렸다. 사형이 집행된 여순 감옥의 동남쪽 야산인 동산파(東山坡) 지역에 묻혔을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정확한 매장지를 알려 주지 않아 그의 매장지를 찾을 수 없었고, 현재까지도 공식적으로는 유해가 묻힌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1945년 11월 중국에서 돌아온 백범 김구 선생이 순국한 독립운동가의 유골을 찾고자 노력해 이듬해 6월,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세 독립운동가의 유골을 일본에서 찾아와 효창공원에 안장했다. 하지만 유해를 찾을 길 없는 안중근 의사를 위해서는 '허묘'를 만든다. 2008년 3월 남북한이 함께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 뤼순(旅順) 감옥 뒤편 야산 일대 등지에서 유해 발굴작업을 벌였지만 실패하였다.
    9 min
  • [03/23 금요일]오바마 선배들과 한반도의 치욕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온다. 한미 FTA 관련해 두 나라의 협조 방안을 논의하고 휴전선 부근 미군부대도 방문하겠다 한다.
    미국 대통령에 얽힌 동북아시아의 옛날 이야기를 들춰 보자.
    친절한 척 뒤통수 친 루스벨트 대통령.
    미국이 필리핀을 삼키고 일본이 조선을 삼키는 걸로 미일 가쓰라 태프트 밀약의 판을 짰던 대통령. 여기서 일본은 자신을 얻어 영국으로부터도 한반도 침략과 지배를 인정받고 강력한 경쟁자인 러시아로부터도 한반도 지배를 인정 받는다.(포츠머스 조약). 이 때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친일성향이 강했다. 그래서 일본의 로비를 받아 미국에서 러시아.일본이 만나도록 주선했던 것. 이미 이 때 조선과 미국 사이에는 조미수호조약이 맺어져 있었으니 결국 미국은 조선을 배신한 셈이다.
    가쓰라 태프트 밀약과 포츠머스 회담이 미국에 의해 준비되고 있을 때 미국 교민 대표로 위촉된 이승만, 윤병구 두 사람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해 만났다.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돼 조선의 독립을 위해 힘을 모아 대통령 접견을 추진했는데 나이 30살의 이승만이 마침 기독교인에 젊고 똑똑하고 영어도 잘하니 일을 맡긴 것.
    사저에서 만난 루스벨트는 ‘어 그래 조선 독립보장 탄원서? 접수시키세요!’라고 친절하게 답한다. 이승만은 당시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정치적 업적이라고 내세웠지만 사실은 루스벨트의 정치적 언변에 농락당한 것. 이미 친일파들로 가득 들어찬 조선 왕실과 워싱턴 정가 분위기로 인해 그 탄원서는 접수조차 안 됐다. 그러나 이때부터 이승만의 정치적 지위가 엄청나게 격상되면서 미국 교민사회를 장악하고 훗날 대통령에 오르게 된다.
    일본에 뒤통수 맞은 미국
    미국이 애초에 노린 것은 만주였다. 미국은 러시아가 만주로 남진해 만주를 집어 삼키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러일 전쟁 때 일본을 도왔다. 그런데 러시아를 물리친 일본이 만주를 독차지하려는 낌새가 보이자 미국은 만주를 나누어 통치하자고 밀어 붙였다.
    그러자 일본은 전쟁 상대였던 러시아를 설득해 협상을 맺고 미국을 견제한다. 러시아에게 북만주와 외몽고를 떼어주는 대신 활용도가 높은 알짜 남만주를 일본이 챙기기로 한 것이다.
    이 때 미국 대통령이 친일 루스벨트에서 반일 태프트로 바뀌었다. 태프트는 일본의 만주 독차지를 강력히 규탄하며 일본을 압박하는 한편 러시아를 설득했다. 일본은 미국과 러시아가 한편이 되는 것을 걱정해 러시아를 설득하러 특사를 보내는데 이토 히로부미,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해 사망한 그 인물이다.
    이런 소동 속에 미국.러시아가 한 편이 되는 것은 불발에 그친다. 그러자 미국은 아예 영.미.일.러.불.독 6 나라가 만주를 갈라 먹자고 ‘만주철도 중립화 방안’이라는 걸 내놓는다. 그러나 러시아.일본은 왜 6 조각으로 나누나, 러시아와 반반 차지하겠다고 2차 러일협약을 맺으며 버틴다. 이것이 1910년 7월의 일이다. 이후 일본은 영국.프랑스에게 독일을 포위해 저지하는 걸 도와주겠다며 한 편으로 끌어들여 미국을 뿌리친다. 그렇게 주변 상황을 정리한 일본은 자신 있게 대한제국 강제합병 작업에 나서 다음 달인 8월 22일 우리는 경술국치를 당하게 된다.
    봄은 봄이되 봄 같지 않아라
    그보다 앞서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시작할 무렵 일본을 직접 방문한 미국 대통령도 있었다. 율리시즈 그랜트가 주인공. 그는 일본 왕을 만나 서양 제국주의의 돈을 절대로 빌려 쓰지 마라. (특히 영국). 보호주의 정책으로 버티면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뒤 자유무역으로 나가라고 충고한다. (그랜트 대통령은 앞으로 200년 간 미국은 보호주의 정책으로 나아갈 테니 자유무역은 그 후에나 이야기하자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의 말대로 미국은 아직도 남에게 개방을 강요할 뿐 스스로는 보호무역체제이다)
    그래서였을까?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보호주의 정책을 강하게 쓰는 대신 조선.중국에 대한 문호개방에 나선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과 맺은 강화도 조약. 지금으로 치면 FTA와 흡사하다. 이 강화도 조약이 빌미가 돼 청나라도 조선과 협약을 맺고(청나라는 조선이 자기네 속국이나 마찬가지라며 조약으로 하지 않고 장정으로 격하시켜 체결), 영국.미국 등이 통상수호조약을 체결하며 조선을 침탈하기 시작한다.
    근대화에 눈 뜨지 못한 채 개방과 쇄국의 이념 대결로 혼란스럽던 조선은 이렇게 강대국의 먹이가 되어갔다.
    일본도 강대국에 침탈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양 제국함대들이 일본 항구에 밀려들어 오자 힘에 밀린 일본도 치욕적인 불평등조약들을 받아 들였다. 그리고 근대화 작업에 나섰다.
    그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 대학이었다. 근대적인 사상과 철학을 정리해 일본에 맞추어 내고, 야심에 찬 인재들을 키워냈다. 대표적인 인물이 후쿠자와 유키치. (일본 1만엔 권에 그의 초상이 들어갈 정도로 일본의 우상이다). 그는 일본이 아시아를 넘어서야 하며 그러자면 길목에 있는 조선과 중국을 접수해야 한다고 부르짖은 인물이다. 그리고 세계 모든 나라가 일본의 적이 되더라도 모든 간섭에 대항해 우리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주창했다. 이런 사상들을 기반으로 일본은 서구 열강과의 불평등 조약을 파기하고 침략전쟁도 벌이고 전쟁 벌였던 적을 끌어들여 한편이 되기도 하며 제국주의로 나아갔다.
    100년이 훌쩍 지난 옛날 이야기이이다. 하지만 100년 후인 오늘 미국 대통령을 맞아 한미 FTA, 중국.일본.러시아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정세를 하소연해야 하는 우리의 상황은 그 때와 비교해 다르되 또한 다르지 않다.
    9 min
  • [03/22 목요일]세빛둥둥섬 너를 어쩌리, 세금은 떠내려가고 .....
    세계 최대의 인공섬이자 세계 최초의 수상 컨벤션 센터라 부르던 ‘세빛둥둥섬’. 1년 넘게 방치된 채 흉물로 변해가는 중이다. 플로섬 측은 빨라도 9월 이후 개장이라고 한다. 지난 가을엔 올 4월 개장이 목표라고 했다. 올해 안에 문을 여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세빛둥둥 세금둥둥 ..... 너를 어쩌랴
    섬이니 오가려면 다리를 연결해야 하는데 부교는 홍수 때면 철거해야 한다. 연결 다리가 없으면 1년 중 2 달은 쉬어야한다. 그래서 다리를 강물 속에 박아 넣어야 하나 서울 국토청은 한강물이 흐르는데 거기에 다리를 고정 설치해 물길을 방해하면 안전이나 홍수 유발 문제가 생긴다고 부정적이다.
    세빛둥둥섬의 운영사 선정도 아직 해결이 안 되었다. 당초 운영사로 선정됐던 업체 대표가 투자자들을 속여 돈을(35억원) 가로 챈 혐의로 구속 기소돼 새 투자자들을 모으기도 쉽지 않은 상태이다.
    처리 방법은 네 가지이다.
    1. 다리를 허가해 설치한다.
    2. 둔치에 가져다 붙인다. 안정성도 좋고 접근성도 좋아진다. 하지만 섬은 아니다.
    3. 둔치에 붙이느니 둔치 위로 옮긴다.
    4. 그래 봤자 돈 먹는 하마일 테니 해체해 버리자.
    서울시 SH 공사가 29.9%의 투자지분을 갖고 있으니 어찌 되든 서울시민 혈세로 처리를 해야 한다. 서울시 투자비용은 1,390억 원 중 128억원이다.
    세계 최대의 인공섬? 말은 정확히 하자.
    섬인가? 떠 있는 수상시설인가? 물 위에 고정시킨 수상시설인가?
    두바이는 해안에서 4 킬로미터 떨어진 앞바다에 돌과 흙으로 ‘주메이라 팜 아일랜드’라는 인공섬을 만들었다. 이 안에 500개의 아파트, 2000개의 별장, 25개 호텔, 200개의 소매상점들이 들어 차 있다. 세빛둥둥섬을 인공 섬으로 인정해 비교한다면 주메이라 팜 아일랜드의 발톱 크기이다. 강 위에 떠다니는 섬으로는 세계 최대인지 모르지만 인공섬으로는 두바이의 발톱 크기 밖에 안 된다. 물론 두바이는 그러다 쫄딱 망하고 파산 상태에 들어갔다.
    오세훈 전 시장 때 역점을 둔 한강 르네상스 사업들이 모두 난항에 빠져 있다.
    서해뱃길 사업 1,757 억 사업 - 45억 투입.
    노들섬 오페라 하우스 (한강 예술섬 사업) 6,725억 사업 - 551억 투입.
    이 밖에 한강 수상호텔 사업, 여의도 종합여객터미널 사업, 아라호(112억 원 들여 제작한 300인승 규모 유람선, 매각하기로 결정) .....
    모두 서울시가 손을 뗀 채 중단시켜 놓았다. 서울시 부채는 현재 25조이다. 경기 침체가 길어지고 양극화가 심화될 것은 분명하니 전시성 토건사업은 중단하고 일자리 창출과 관련되어 산업 구조조정에 재정을 쏟아야 한다. 박원순 시장이 오세훈 전 시장이 추진한 사업 중 동대문상권을 살리려고 계획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사업을 계속 추진하기로 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서울 시장이 한강으로 달려 간 까닭은?
    오세훈 시장이 한강 르네상스를 구상한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서울의 거리를 걸어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유럽 유명 도시들은 옛 유적이나 유명한 명소들이 시야에 들어오도록 도시가 설계되어 있다. 길을 만들거나 건물을 지을 때 이런 곳들을 피해서 설계한다. 유적 앞에 큰 건물을 지어야한다면 1층을 통로로 만든다. 거리를 걷는 사람의 눈에 건물 뒤의 유적이나 명소가 보이도록 하고 바로 다가갈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다. 1층을 보행과 휴식공간으로 만들어 시민과 관광객의 발길을 유도하고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은 휴식과 문화공간으로 활용한다.
    서울의 대형 건물은 1층이 모두 사무 공간이고 회장님 드나드시는 현관 로비이다. 경비가 지키며 드나들지 못하게 한다. 1층에 아케이드 상점가를 두는 경우조차 드물다. 빌딩 뒤에 목적지가 있어 건물 1층으로 가로질러 가거나 건물과 건물 사이 길로 가면 편리하지만 건물들끼리 담과 담으로 붙어 있어 대형건물들을 빙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유적이나 명소가 있으면 주변 거리와 건물의 모습도 어울리게 설계해야 한다. 건물 디자인, 외벽의 재료나 색깔을 유적과 맞춰야 한다. 대형 고층 빌딩을 짓는다 해도 문화유적 바로 옆은 낮은 저층으로 뒤로 멀어지면서 고층으로 해 ‘ㄴ’이나 ‘삼각형’ 모양을 응용하면 해결책이 나온다.
    거리나 건물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존재하며 살아간다. 도시나 건축을 인문과 삶 속에서 보아야 하는데 경제적 관점에서 써먹을 생각만 하고 설계한 것이 문제이다. 크게 짓고 빨리 짓고 이익만을 따졌으니 거리와 건축에서 사람은 소외되고 공동체는 깨어져 나간 것이다.
    그 결과 서울은 시민들의 삶의 질과 관계없는 소비의 도시로 변했다.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과 문화가 뒤쳐지면 도시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국가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서울은 삶의 질 평가에서 세계 89위의 도시이다.
    그러니 오세훈 시장이 거리를 포기하고 강으로 달려간 게 아닐까? 한강에다 시원하게 오페라 하우스, 둥둥섬 레스토랑/전시장 짓고 유람선 오갈 테니 답답한 거리에 있지 말고 한강으로 오라고 ......
    도시는 삶이고 문화이다
    도시, 거리, 건축, 강 ...... 이것들의 관리는 역사와 문화의 관점에서 철학을 갖고 관리해야 한다. 그 철학이 돈이나 정치적 치적이 되어선 물론 곤란하다.
    법과 제도가 그걸 뒷받침해야 한다. 내 땅에 내가 내 건물 짓는 데 뭐 그리 참견이 많냐라고 항의해도 규제를 해야 한다. 재벌의 마구잡이 사업을 규제하는 거나 같은 이유이다. 그것이 도시의 균형 발전과 경쟁력을 키운다.
    대한민국 건축법 제 1조(목적)는 “이 법은 건축물의 대지, 구조 및 설비의 기준과 건축물의 용도 등을 정하여 건축물의 안전.기능.환경 및 미관을 향상시킴으로써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힌다. 그러나 프랑스 공공건축법은 “건축은 문화의 표현이다”라고 선언하며 시작한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철학에 대한 성찰이 너무나 부족했음을 함께 반성해야 한다. 서울은 평면 위에 세워진 인공도시가 아니라 산과 강을 낀 수려한 곳에 사람들이 모인 도시이다. 강은 자연 그대로 흐르게 하고 땅은 숨 쉬게 하는 것이 기본 이치가 아닐까 싶다. 그 다음이 땅을 딛고 건축이 들어서고 그 건축이 사람과 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 도시가 사람 살 만한 곳이 된다.
    9 min
  • [03/21 수요일]연합뉴스, 한 순간도 권력에 사로 잡혀선 안 된다
    뉴스를 전하는 언론사에서 쟁의가 벌어져 노조가 파업을 하고 제작거부를 해도 사측은 간부들을 동원해 뉴스제작을 이어간다. 뉴스통신사에서 보내오는 소식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최대의 뉴스통신사이자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 노조원들까지 파업에 들어갔다. 그래서 노조 파업사태를 겪고 있는 언론사들이 몹시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베껴 낼 뉴스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면서 부실하던 뉴스가 급격히 더 부실해 진 것.
    뉴스통신 - 말 달리고 비둘기 날고
    뉴스통신사는 외국 소식을 국내에, 국내 소식을 외국에, 지역 소식을 중앙에, 중앙 소식을 지역에 배급해 돌리는 뉴스의 도매상 역할을 해오고 있다. 통신사는 International News Agency 국제통신사와 국내통신사로 나뉜다. 국제통신사는 세계 곳곳에 지사나 지국, 특파원을 두고 뉴스를 수집해 세계 각국의 신문방송통신사나 주요 기관에 배급한다. 국내통신사는 나라 안 소식을 취재하고 국제통신사로부터 외국 소식을 넘겨 받아 국내 신문방송기관에 배급한다. 분류 방식을 달리하면 모든 소식과 자료를 총망라해 공급하는 종합통신사, 사진이나 경제뉴스 등으로 특화된 특수통신사로 분류할 수도 있다.
    뉴스통신사는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19세기 프랑스 국내 신문사들은 영국 등 주요 주변 국가들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해당 국가의 신문을 우편으로 받아 번역해 실어야 했다.
    1830년대 뉴스 번역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던 샤를 루이 아바스가 파리에 외국신문 번역 사무실 겸 서점 겸 광고 회사를 차렸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통신사인 ‘아바스’ 통신이다. 이웃 나라 신문을 신속히 구입해 서둘러 번역한 뒤 신문사 마감 시간에 맞추어 전달하려면 속도가 생명이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말을 타고 달리고, 전령 비둘기를 이용해 뉴스를 날려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 1845년 모르스의 무선전신이 발명되고 전신망을 이용한 뉴스 송신이 가능해져 사업이 확장되어 갔다. 이 때 아바스 통신에서 일하던 사람 중에 줄리어스 로이터라는 인물이 독립해 영국에 통신사를 차렸는데 이것이 영국의 기간통신사인 ‘로이터’ 통신. 역시 동료이던 베른하르트 볼프는 독일 ‘볼프’ 통신의 설립자가 됐다.
    아바스의 뉴스통신 사업을 지켜보던 프랑스 정부는 눈독을 들이다가 이 사업을 인수했고 훗날 공영통신으로 발전시키는데 이것이 오늘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AFP’ 통신이다.
    미국은 유럽보다 뉴스통신 사업이 늦게 시작됐지만 형식도 다르다. 1848년 뉴욕 6개 신문사 대표들이 모여 너무 비싼 전신 비용을 줄이는 방법으로 뉴스공급 협동조합을 결성했다. 이것이 AP통신 (Associated Press).
    상업통신사로 UPI도 명성을 날렸지만 재정난으로 주인이 여러 번 바뀌다 통일교에 인수됐다.
    한 순간도 누구의 손에 사로 잡혀선 안 된다
    뉴스통신사는 이렇게 뉴스 도매상, 뉴스공급 협동조합으로 시작됐지만 유럽에서건 미국에서건 각 국 정부들이 탐낼만 한 사업이었다. 국내외 뉴스를 모으고 배급하는 유통센터이기 때문에 뉴스통신을 장악하면 여론과 정보 전략에서 언제나 주도권을 쥘 수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그래서 각국 정부들은 직접 운영하거나 각종 법률로 통제하고,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통신시설 사용료를 면제해주면서 뉴스통신사에 접근했다.
    1차 세계대전 때 영국 로이터 통신은 연합군 발표 내용을 중립국과 연합국에 전송하는 대가로 전송료를 영국 정부에서 지원받았고, 미국 AP통신은 정부가 국익을 위한 선전에 통신을 사용하도록 내주는 대신 UPI가 지배하던 남아메리카 진출을 지원 받았다.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은 정부의 재정부 내무부 외무부가 모여 뉴스 통신사를 세웠고 북한도 조선중앙통신사를 운영하고 있다.
    뉴스통신사는 상당수의 뉴스를 최초로 전하는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만큼 저널리스트로서의 자부심도 크고 또한 책임도 크다. 국가기간통신이라 할지라도 그 의미는 국가의 비전과 국민을 위해 종사한다는 것이지 ‘국가기간’이 정권에게 종속된다는 것이 아니다. 국가기간 교통망인 고속도로, 국도가 정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럼 점에서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 노조원들이 공정보도를 외치며 총파업 거리투쟁에 나선 것은 심각히 받아들일 사태이다.
    유네스코의 가이드라인 중에는 “정보의 자유를 존중하는 정부 시스템 하에서 뉴스통신사의 의무는 가장 엄격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는 지키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지구촌 각국의 소식과 정보가 온통 왜곡되고 조작되는 심각한 혼란에 빠지기 때문에 유네스코가 당부하는 것이다.
    뒤집어 표현하면 정부가 권위적이고 압제하는 나라야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뉴스통신사는 엄격히 객관성 공정성을 지키라는 의미이다. 결국 국가기간 뉴스통신사가 총파업을 할 정도로 객관성과 공정성을 지키지 못했다면 그 나라의 정부 시스템은 정보의 자유를 존중하는 정부 시스템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로이터 통신의 운영 원칙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어떤 하나의 이익, 하나의 집단, 혹은 하나의 파벌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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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3/20 화요일]시선의 자유, 선글라스는 권력이다
    어제(19일) 국회 취재기자들 앞에 나타난 선글라스녀가 하루 종일 화제가 되었다. 국회 기자회견장인 정론관에 짙은 검은색의 선그라스를 쓰고 나타난 이 여성은 자신이 새누리당 유 모 의원과 불륜관계였던 바로 그 당사자라고 주장했다.
    유 의원 측은 ‘2008년 총선 때부터 조작되어 나온 이야기’라고 주장하며 삭발과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그 녀는 왜 선글라스를 쓰고 나왔을까? 얼굴을 가려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을 덜고자 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불안한 시선을 감추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자유로운 시선은 권력!
    선글라스의 원조는 15세기, 1430년 경 중국으로 알려져 있다. 연수정을 이용한 색안경에 연기로 그을려 검은 색깔을 냈다고 전해진다. 권위와 체통을 내세운 재판관이 죄인을 심문할 때 자신의 표정을 감추기 위해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상대를 위압하는 효과와 함께 재판관의 심리변화를 심문받는 피의자가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이점을 활용하려 한 것이다.
    이렇게 이곳 저곳 여기 저기 마음대로 둘러 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선의 자유는 곧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의할 때 사장 자리는 한 가운데이다. 모두를 한 눈에 담기 좋게 배치한다. 왕은 아예 높은 데 앉아서 내려다 볼 권력을 갖는다. 아파트도 높아서 전경이 잘 보이면 값이 올라가고, 죽어서도 권세가 있으면 시야가 탁 트인 높은 곳으로 가 묻힌다. 가난한 서민은 등산화 신고 산에 오르면 시선의 권력을 잠시나마 누릴 수 있다. 그래서 요즘 등산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일까?
    시선이 얼마나 대단한 권력인가는 시험 볼 때 시험 치르는 학생과 감독관과의 시선의 마주침을 떠올리면 쉽게 느낄 수 있다. 수험생과 감독관의 시선이 마주치면 수험생이 꼬리를 내려야 한다. 그런데 수험생은 감독관의 시선을 놓치고 어디를 보는지 확인하지 못하면 불안하기만 하다. 그래서 감독관은 수험생들을 불안케 하기 위해 교실 뒤편으로 몸을 숨긴다. 수험생은 노출돼 감시를 받고 상대인 감독관은 철저히 자신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감춰 버림으로써 수험생을 지배하는 것이다. 교실 안에 있는 모든 학생에게 위압을 주면서 수험생들의 심리와 의식을 묶어서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점령군과 독재자, 비밀경찰은 선글라스 족
    선글라스는 뒤에서가 아니라 앞에서 마주한 채 시선을 감추고 상대의 의식을 지배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미국의 맥아더 장군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긴 뒤 선글라스를 쓰고 점령군 사령관으로서 일본인들 앞에 등장해 기선을 제압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국민 앞에 선글라스를 쓰고 등장한 박정희 대통령, 그 툭 불거진 광대뼈 위에 얹힌 선글라스의 강렬한 지배 효과는 아직도 생생하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선글라스 애용자였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밤 새워 일하느라 늘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아버지 김일성 국가주석이 걱정할까봐 효심에서 선글라스를 쓰게 됐다고 선전한다. 아버지 앞에서 선글라스를 쓰나? 뼈대 있는 가문에선 상상 못할 일이다.
    범죄자에게 폐쇄회로 TV의 시커먼 렌즈는 불편하고 두려운 존재이다.
    남성들이 여성의 벗은 몸에 관심이 많고 자꾸 흘깃거리고 야한 사진이나 동영상에 집착하고 사고팔고 하는 것은 음흉해서 만은 아니다. 그 시선 뒤에 은폐된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권력이 동등하면 남녀 둘 모두 그런 행동을 삼가거나 남녀 모두 동등하게 즐길 것이다. 남자들이 유독 심한 건 사회에서 남녀가 평등한 권력관계가 아님을 드러내는 것이다. 요즘 아이돌 남성 스타가 자기 알몸을 자꾸 드러내며 식스팩 복근을 내보이는 것은 힘 자랑 같아 보이지만 문화 분야에서 강력한 소비자로 자리 잡은 여성의 권력에 남성의 몸이 벗겨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너를 보지만 너는 나를 볼 수 없다는 시선의 독점은 이렇게 권력이자 힘이다.
    정치 권력, 다시 선글라스를 꺼내 쓰다
    비밀경찰, 중앙정보부 ..... 이것도 정치 권력이 감시자 몇 명을 국민의 등 뒤, 교실 뒤로 보내는 지배 행위이다. 눈앞에 있는 경찰과 검찰보다 몇 명 되진 않지만 어디 있는지 모르는 비밀스런 감시조직이 더 두렵고 공포의 대상이 된다. 국민은 그 보이지 않는 시선에 구속당하며 굴종하게 된다.
    민주화 이후 비밀경찰, 비밀스런 정보부의 국민 감시는 없을 거라 여겨 왔다. 그런데 터져 나온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청와대 개입과 은폐 조작의 의혹 ..... 얼마나 경악스럽고 부끄러운 민주주의의 퇴보인가?
    더욱 답답한 건 갈팡질팡 방향을 못 잡는 야권이다. 특히 제 1 야당인 민주통합당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속셈도 정체도 모르겠다. 권력의 반민주적 행태와 국민에 대한 감시통제의 부활을 눈 앞에 보면서도 별 말이 없다.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오히려 불길을 지피기도 좋겠는데 나서질 않는다. 정권 교체를 입에다 퍼 넣어줘도 목으로 넘기질 못한다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지지율 조금 올라갔다고 벌써부터 선글라스 꺼내 쓰고 어깨에 힘주는 것인가?
    가당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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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3/19 월요일]권력의 은폐, 껍데기 언론으론 대책 없다
    장진수 국무총리실 전 주무관이 민간인 사찰 증거 인멸에 대해 양심선언을 하면서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감추기 위해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논란이 커지고, 검찰이 등 떠밀려 수사에 나섰다.
    이번 주부터 관련자들에 대한 재소환 수사가 시작돼 민간인 불법사찰의 지휘부서가 어디며 어떻게 은폐조작을 했는지 밝혀내게 된다.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은 민간인 사찰 배후에는 권력의 실세들이 존재한다는 의혹이 짙다고 보도하고 있다.
    권력 은폐의 3위 1체
    권력을 쥔 사람들이 저지르는 은폐에는 3가지 차원이 있다.
    1. 실권을 쥔 인물들이 누구고 어떻게 모여 어떤 방법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지, 권력의 정체 자체를 감추는 은폐가 있다. 국가 권력을 실제로 장악해 좌지우지하는 핵심세력은 누구인가? 당연히 대통령이 포함되겠지만 대통령의 주변을 둘러싸고 정보를 거르고 차단하고, 자기들의 분석과 판단을 대통령에게 주입하는 세력이 있을 때 그들은 당연히 자신들을 감춘다. 이것이 권력의 첫 번 째 은폐.
    2. 그 다음은 권력을 휘두르는 과정에서 벌어진 권력 남용과 불법적 비위 사실에 대한 은폐. 국가 공권력의 민간인 사찰, 대포폰 사용 등의 비리를 감추는 것도 권력은폐 작업의 중요한 대목이다. 흔히 권력의 은폐하면 이런 비리의 은폐를 가리킨다.
    3. 권력은 자기들을 감추기도 하지만 국민을 감추기도 한다. 국민이 모이고 뭉쳐서 힘이 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사찰기관과 언론을 동원해 모일 장소를 묻어 버린다. 국민이 어디에 가면 자신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널리 알려야 하지만 그럴만한 곳을 없애고 감추어 모이지 못하게 한다.
    서울광장을 못 쓰게 하는 것도 방법이고 집회시위법을 남용하기도 한다. 트위터 등 소통의 도구를 규제하고 묶는다. 노동자가 뭉치려 하면 좌파용공이라고 차단막을 친다. 노동자들을 돕겠다고 나서는 희망버스도 구속수감 대상이다.
    권력의 이 3 가지 은폐를 모두 꺼내 밝은 곳으로 끌어내야 민주공화 정치의 진정한 발전이 가능하다.
    듣자하니 삼성전자도 은폐 엄폐에 능하다고 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 행위를 조사하려는데 정문에서 붙잡아 시간 끌고, 자료 폐기하고, 출장 중이라며 따돌리는 등 치밀하고 담대하게 국가의 공무를 방해했다고 보도되고 있다.
    이는 삼성의 권력이 정부 조사쯤은 우습게 여길 만큼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한 삼성이 총수의 1인 지배에 세습체제로 되어 있어 삼성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면 사회의 공정성과 국가의 법이라 할지라도 아무 소용없음을 보여준다.
    정치권력은 민간인을 사찰하다 들통 나니 은폐로 국민의 눈을 피한다. 최대 재벌이라는 삼성전자는 불공정 행위를 벌이다 들통 나니 은폐엄폐로 국가 조사를 피한다. 둘이 아주 세트로 놀지 않는가 말이다.
    껍데기 언론은 가라!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언론이다. 지난 12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이명박 대통령을 초청해 마주 앉았다. 언론사 보도책임자들이 수십 명이다. 그러나 거기서 민간인 사찰과 배후, 은폐조작에 대한 질문은 등장하지 않았다. 그 시점 최대의 이슈에 대해 아무도 묻지 않았다.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알 수 없는 모임이다. 이러니 권력은 솔직히 토해 낼 거냐 감출 수 있는 데까지 감출 것이냐의 선택에서 감추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협조적인 언론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뭐가 아쉬워 먼저 실토한단 말인가.
    권력으로 둘러 친 차단막 뒤에 숨어 국정을 농단하는 은밀한 권력이 있다면 밝은 곳으로 끌어내야 한다. 따져 묻고 캐내고 분석해내야 한다. 구래야만 국민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된다. 그것은 지식인들의 책임이고 사명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인 교수들, 전문가의 분석과 통찰을 들고 현장으로 가 확인하고 캐낼 언론들, 대안을 마련하고 실천할 기회를 만들어 낼 시민운동 세력들의 과제이다.
    그렇게 권력을 흔들고 틈을 만들어 벌리고 깨고 들어가 파헤칠 때 체제 내부에서 변동이 이뤄지고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다. 이를 이루지 못하면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의 민주공화국 조항은 사문화된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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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3/16 금요일]원전, 가장 안전한 건 투명함이다
    지난달 9일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에서 정전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란 나려면 난다’고 이야기한다. 머피의 법칙대로 “일이 잘못되려고 하면 분명히 그렇게 된다”는 의미로 아무리 여러 단계의 확인과 예방조치를 취해도 우연과 실수가 겹치고 겹치고 이어지면서 사고로 절묘하게 이어진다고 흔히 이야기 한다. 그러나 뒤집어 이야기하면 그 여럿 중에 하나만 제대로 작동되어도 사고는 막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위기는 징조가 있다, 수력원자력 내리막길은 아닌가?
    그래서 조직의 사고와 위기엔 전조(前兆)라는 게 반드시 있다. 예를 들어보자.
    * 시설.장비 수리비가 점점 늘어난다 ..... 낡고 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 시설 장비를 새 걸로 바꿔주지도 않았는데 사고 보고가 줄어든다 ..... 사고를 감추고들 있다는 반증.
    * 내부 고발이나 할 말 하는 사람이 줄어든다 ..... 회사에서 침묵하고 않고 음식점 가서 떠들다 들킨 것 처럼
    * 끼리 끼리 뭉친다 ..... 파벌과 암투가 있다
    * 외부 인사나 전문가의 접근이 자꾸 힘들어진다 ..... 조직의 무사안일과 이기주의 팽배
    * 낙하산 인사가 많아지며 직원들이 냉소적으로 변한다 ..... 내부 불만과 자긍심 붕괴
    * 지각이 늘어나거나 퇴근이 늦어지면 기강 해이 아니면 과부하이다
    * 점심시간이 길어지거나 너무 짧아져도 역사 마찬가지 문제.
    * 전화 받는 태도들이 점점 나빠진다면 불만이 폭발 직전으로 가는 것이다.
    이런 징후들이 보이면 위기로 빠져들기 전에 고쳐야 한다. (혹시 이 사고의 사전 징조를 따질 게 아니라 이 사고와 은폐가 수력원자력의 총체적 위기의 징조는 아닌가도 살펴보자.)
    그렇다면 어떤 대응책이 가능할까?
    *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는 부하에게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
    조직의 위기를 맨 처음 전하면 역적, 두 번째 전하면 충신? 이거 안 된다.
    * 과거의 위기나 문제점들을 꺼내서 개선되었는지 점검하는 방법도 효과가 있다.
    * 외부 전문가나 협력 관계자들에게 자기의 조직이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보라.
    * 밖에 나가 자기 조직에 대한 소문을 모아 보라.
    그런데 기어코 사고가 터졌다. 자 이제 어쩔 것인가?
    일단 실무자는 보고를 할 것이고 그 다음 간부들이 모일 것이다. 조직에 위기가 닥쳐 머리를 맞대면 회의는 늘 비둘기파와 매파로 나뉘기 마련이다.
    사고가 나면 늘 비둘기 날고 매도 난다
    비둘기파는 ‘있는 그대로 털어놓고 책임 질 거 있으면 지고 용서를 구하자’고 한다. 매파는 ‘고장 난 건 수리했고 정상적으로 잘 돌아가니 버티자, 보고하고 징계 받거나, 나중에 들켜서 징계 받거나 마찬가지이고 안 들키면 넘어갈 수 있는 것 아니냐’...... 이렇게 위기관리 대책이 옥신각신 논의된다.
    그러다 발전소에서 비둘기파 의견대로 보고를 했다고 치자. 그러면 그 다음에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차원에서 또 위기관리 회의가 열려 비둘기파 매파가 다시 충돌한다.
    이번에는 사태 논의의 주제 폭이 넓어진다.
    --- 세계 핵안보 정상회의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지금 한국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히면 정치적 파장이 큽니다.
    --- 남들은 일본 원전 사고 때문에 핵발전을 줄이자 했지만 우리 대통령은 원전 건설을 확대해 가자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사고 터졌다고 소문내면 국제적 망신입니다
    --- 이 상황에서 사실대로 보고했다간 우리 모두 살아남지 못합니다.
    비둘기파는 어떻게 말할까?
    --- 윗선에 보고 해야 합니다. 우리 선에서 묻어 버릴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 전문가들이 현장 조사에 나서 왜 불이 났는지, 결함이 뭔지, 다른 원전에도 같은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 내용을 파악해 조치를 취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국무회의 아니라 청와대까지 보고가 올라간다고 해도 회의 내용은 대동소이 할 것이다.
    ‘정치적으로 국제적으로 망신이고 타격이 크다, 숨기자’ vs ‘어차피 들통난다, 알릴 것 알리고 고칠 것 고치자’. 과연 이번 원전 사고는 어디까지 보고가 올라가고 대책회의가 열렸을까?
    오늘까지의 언론 보도로는 사고 직후 발전소장 등 현장 간부들이 회의를 열어 사고 사실을 은폐하기로 모의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발전소장이었던 한국수력원자력 위기관리실장이 어제 (15일) 보직해임됐다.
     “현장의 간부들과 논의를 한 뒤 발전소장이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소장 선에서 묻어버리기로 결정했다. 운영일지에도 사고 내용을 기록하지 않고 원자력안전위원회 파견 감독관도 모르게 하기로 했다”
    누구냐? 최후 최고의 책임자는?
    사고가 난 것을 알았을 근무자가 수십 명이고 협력업체 근무자도 잔뜩 섞여 있을 것인데 과연 비밀 유지가 가능하다고 판단했을까? 여러 의혹이 남는다.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과연 사고 보고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발전소장 선에서 묻기로 한 것일까?
    2. 사고 보고를 올렸더니 위에서 결정이 내려 와 발전소장 선에서 묻은 걸로 하라고 했다면?
    3. 만약 그렇다면 어디까지 올라가 어느 선에서 결정돼 내려왔을까?
    수력원자력이란 회사를 훨씬 넘어 그 위에 위까지 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 민간인 사찰 사태만 해도 배후 윗선에 금품 회유의혹이 뒤늦게 드디어 터져 나왔다. 이런 구태를 보면 권력 핵심부까지 의심의 대상에서 빼 놓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라 보고를 안 하고 묻어버리기는 정말 어려운 사고이다.
    4. 노무현 정부 때 원전 사고.고장 기록과 이명박 정부 때 원전 사고 기록을 전체적으로 비교 분석해 볼 필요도 있다. 현 정부 들어서 대통령이 원전 수출을 강조했기 때문에 문책이 두려워 여러 사고를 숨겼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 늘 고장 날만큼 나던 원전들에서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 갑자기 고장사고가 급감했다면 보고기피, 은폐의 의혹이 짙은 것이다.
    모두 꺼내 놓기 바란다. 가장 안전하고 신뢰를 받는 것은 투명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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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3/15 목요일]엄친아, 아는 형 ... 우리 시대 가공의 인물들
    실존하지 않은 인물을 성공사례로 내세워 창업 희망자를 모집한 업체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4일 무점포창업 지사를 모집하면서 허위ㆍ과장광고를 한 태성을 검찰에 고발했다. 미용용품 도매업체 큐큐에프엔씨에는 과징금 1천700만원을 부과했다.
    태성은 도넛 등 제과류 도매업체로 창업자를 모집한다는 신문광고로 점포창업자들을 끌어 모았다. 사람들은 890만원의 자본으로 20여개 도넛 매장을 운영하게 된 50대 여성 이 모씨의 사례를 소개받고 의욕적으로 도전했다. 그러나 이 씨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큐큐에프앤씨는 천만 원 투자로 매달 순이익만 700만 원 이상은 거뜬하다는 대전의 이 모씨를 내세워 광고했으나 이 모씨 역시 가공인물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창업자가 본사에 일정금액을 내면 본사가 위탁판매점을 섭외해주고 물건을 판매하게 하는 샵인샵(shop-in-shop) 형태의 무점포창업을 조심하라고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엄마 친구 아들, 아는 형 ..... 모두 홍길동
    엄마 친구 아들(엄친아)도 가공의 인물인 경우 많다. 부모들이 자기 자녀 흉을 보기 보다는 허물을 덮어주려고 이것 저것 알아서 잘한다고 자랑하다보면 점점 가공의 인물로 바뀐다. 때로는 자식 자랑에서 자존심 싸움이 벌어지며 마구 과대포장해 이야기 한 것이 빙 돌다보면 엄청난 엄친아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아는 형’도 가공의 인물인 경우가 많다. 나쁜 짓 하다 잡힌 아이들에게 왜 이런 짓을 했냐고 물으면 상당수는 ‘아는 형’이 시켰다고 한다. ‘아는 형’이 누구냐 물으면 게임방에서 우연히 만났다 어쨌다 하는데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 때부터 ‘아는 형’은 ‘사라진 형’이 된다.
    ‘아는 형’은 어른들에게도 나타난다.
    국회 야당 대표실 도청 사건과 관련되어 한선교 의원에게 회의 속기록을 전해줬다는 사람, 누구인지 모르지만 한선교 의원의 ‘아는 형’인 셈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고 보고 검찰은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했지만 나중에라도 나타날지는 모르겠다. 과연 ‘아는 형’이냐, ‘사라진 형’이냐‘, ’김비서(KBS) 형’이냐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이다.
    가공의 인물을 쫓아 콩고로 가보자. 5년 전인 2007년 사건이다.
    장관들을 새로 임명하는데 국민연합이라는 정당의 총재인 ‘호노리우스 키심바 엔고이’라는 정계 거물이 무역장관 후보로 추천서를 접수했다. 그리고 ‘앙드레 카손고 일룽가’라는 인물도 장관직 추천서를 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키심바가 가공의 인물을 자기 경쟁자로 만들어 함께 추천서를 만들어 냈던 것. 있지도 않은 인물과 장관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니 당연히 키심바가 장관이 될 줄 알았겠지만 총리가 일룽가라는 가공의 인물을 장관으로 임명해 버리면서 문제가 커졌다.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키심바는 당 총재직을 내놓고 물러났다. 그런데 며칠 뒤 총리 앞으로 일룽가 장관의 사직서가 도착했다. 그리고는 ‘사라진 형’이 되어 버렸다. 키심바는 ‘그것 봐라, 있지도 않은 인간이 사직서에 어떻게 싸인을 하느냐’며 지금도 우기고 있다고 ......
    영국의 한 방송사가 어른 3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놀랍게도 23%가 처칠 수상이 가공의 인물인 줄 알았다고 대답했다. 나이팅게일이 가공의 인물이라고 대답한 사람도 23%, 반면에 셜록 홈즈를 실존 인물로 알고 있는 사람이 59%나 됐다. 클레오파트라를 가공의 인물로 아는 사람은 4%, 마하트마 간디가 허구의 인물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3% 였다.
    삼총사가 실존인물이라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17%, 로빈슨크루소를 실존인물로 아는 사람이 5% ...... 소설과 영화의 영향인 듯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 시대 명의 허준의 스승 유이태? 가공의 인물이다. 비슷한 이름의 조선시대 명의가 있긴 했지만 허준과는 관련이 없다. 허준보다 뒤에 태어난 명의로 홍역 치료에 탁월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도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허준의 스승이라며 동상을 만들어 놓고 고사를 지내며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재정적자를 줄이자며 부자증세를 이야기하면서 “백만장자 워렌 버핏의 비서가 버핏보다 더 높은 세금을 내서야 되겠냐”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곳곳에서 ‘내가 버핏의 비서다. 애 키우고 세금 내느라 죽을 지경이다, 빨리 세법을 고쳐라’ ...... 자칭 버핏 비서들의 촉구가 이어졌다. 버핏의 비서가 누군지는 모른다. 다만 버핏은 버핏 비서보다 1,000 배 정도 더 번다. 소득세율은 비서가 15%~25%, 버핏은 15%이다. 장기 자본소득, 쉽게 말해 돈 놓고 돈 버는 데 대한 소득세율이 15%에 묶여 있으니 그리 된다. 죽도록 일하는데 부자들과 같거나 높은 세율로 세금을 내는 서민의 별칭이 ‘버핏 비서’이다. ‘너도 버핏 비서구나, 나도 버핏 비서야’
    행동은 크게 반응은 작게
    다들 자신만큼은 속지 않을 거라 자신하지만 이미 속고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당장 금강산댐으로 서울이 물바다 된다고 해서 평화의 댐에 성금 내신 분들도 있을 거고, 제주도에 세계7대 자연경관의 명예를 안겨줘야 한다고 국제브로커에게 속아 미친 듯이 전화버튼을 눌러 댄 분들도 계실 거고, 대통령이 약속한 747 공약과 주가지수 3천 돌파를 믿고 기다렸던 분들도 계실 것이다.
    나치 정권에서 히틀러의 오른팔 역할 을 맡았던 괴벨스가 남긴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엔 부정하고 그 다음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믿는다”는 그리 틀린 통찰은 아닌 모양이다.
    나는 속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면 속는다. 속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속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의심이 많아지면 자기 자신에게 속아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니 우선은 이런 말 저런 소식에 깜짝 화들짝 놀라며 흥분하고 반응을 크게 하는 것부터 조심해야 하겠다. 신념에 의한 행동은 크고 묵직하게, 주변 자극에 따른 반응은 작게 가져가면 그나마 손해를 덜 본다.
    행동은 크게, 반응은 작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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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3/14 수요일]F 세대 ,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올해 들어서 종종 F 세대에 대한 담론들이 펼쳐지고 있다. 흔히 베이비 부머 세대(1955년 ~ 1963년 출생)를 이야기 하는데 F 세대는 그 다음 베이비 붐 즉 2차 베이비 부머 세대 (1966년 ~ 1974년)에 속하는 40대들을 일컫는다.
    F 세대 그들이 온다
    우리 사회 분류로는 386 세대의 끝물 쯤 부터 시작되는 세대이다. 이 세대는 군부정권에 대항한 민주화 운동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대학생이나 청년으로서 사회에 눈 뜨기 시작했다. 이어 직장 잡고 결혼할 무렵에 IMF 환란위기를 만났다. 겨우 결혼해 아이 낳고 잘살아 보려 했으나 사교육 열풍이 불면서 아이들 유치원 보내는 일부터 벅차기도 했다. 부동산 거품이 계속 커지는 것을 보면서 빚을 얻더라도 더 늦기 전에 집을 장만하고자 무리를 했다가 상투를 잡고 허망해진 세대이기도 하다. IMF를 겪은 뒤 한숨 돌릴 만 한 장년기에 다시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맞이한 ‘하우스푸어’가 F 세대에 몰려 있다.
    그런데 체질이나 문화적으로 50대 하고는 확실히 이질감이 있다. 우선 박정희 정권 시절에 대한 우울한 기억이 없다. 민주화운동의 막바지여서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의 386 세대 고참들과 동질감이 강하지도 않다. 그래서 소녀 시대도 좋아하고 아이유에게도 열광하는 삼촌들이다.
    F 세대의 ‘F’ 는 ‘Forgotten’, ‘Fire’, ‘Facebook’, ‘Formidable members’를 두루 의미한다.
    한동안 정치 사회적으로 잊혀졌던 세대,
    50대인 베이비 부머 세대, 20대 88만원 세대, 10대 살인경쟁세대에 의해 가려져 있었지만 한쪽에서 분노를 키워 온 세대,
    50대 60대와는 다르게 페이스 북 등 SNS로 무장되어 있고,
    머리 수가 많아 뭉치면 엄청난 유권자 층이 되는 세대가 F 세대이다.
    F 세대의 정치적 의미
    베이비붐 세대는 어느덧 하나 둘 세상을 뜨기 시작했기 때문에 실제로 F 세대가 인구로는 베이비붐 세대보다 50만 명 정도 더 많은 750만 명이 된다고 한다. 40대인 이들이 2030세대하고 합쳐지면 전체 유권자의 51%나 된다.
    그리고 베이비 붐 세대는 이제 은퇴가 시작됐지만 F 세대는 앞으로 10년 간 우리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세력이 된다는 것도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정치사회적 주제이다.
    복지라는 가치와 이슈에 눈을 뜬 것도 F 세대이다. 386의 선배 주류 세력과 정치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이 부분이다. 386 주류세대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해 민주화 운동에 치중했다면 F 세대는 선배들이 미처 손대지 못한 생활 민주주의의 영역을 정치의 중심에 가져다 놓았다는 분석이다. 역사적 사명, 사회의식에서 붙잡혀 있던 운동권 선배들과 달리 행복이란 가치를 중요시하는 만큼 성취욕은 강하다고 평가들 한다. 사회 초년병 시절 IMF를 겪으면서 이념 투쟁이라는 추상적 가치보다는 경제적 실용적 가치, 개인의 행복과 개성, 자유를 더 심각히 생각하게 된 게 당연하기도 하다.
    386 세대는 민주화운동에 열심이었지만 마침 3저 호황으로 경기가 좋아 취직은 잘 됐다. 하지만 F 세대는 사회 진출을 맞아 가장 먼저 들은 이야기가 노동의 유연성, 상시적 구조조정, 비정규직 전환 ...... 이런 것들이다. 88만원 세대와 이어질 수 있는 공감대가 그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난 18대 총선거에서 뉴타운 공약이 먹혔던 것이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CEO 출신 대통령 후보 이명박 후보의 747 공약이 노년층 뿐 아니라 중장년층에도 광범위하게 먹혔던 것이다. 그러나 747 공약, 뉴타운 공약이 실패로 끝나면서 복지에 대한 강한 요구와 보궐선거에서의 여당의 참패가 이어진 것이라고 본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
    그러면 과연 F 세대가 이 나라를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길을 열 것인가?
    역사의식이나 사회참여에서 386보다 못하다, 이미 사회의 중진이 되어 신자유주의 경쟁 구도 속에 들어가 실적에 쫓기고 있다, 기득권에도 다가섰는데 사회 개혁과 쇄신에 자신들을 내던지겠는가 ...... 라는 의구심들이 제기되기도 한다. 간단히 말해 투쟁에는 익숙하지 않은데 민주주의에는 익숙한 F 세대를 두고 가져볼만한 의문이긴 하다. 반대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과 헌법적 자유, 시민의 권리가 침해됐다고 생각되면 뛰쳐나올 세대라고 볼 수도 잇다. 거기에 SNS로 무장되어 있다. 문제는 어떻게 불을 붙이느냐 하는 것.
    2002년 노사모 돌풍 때 30대 청장년들이 F 세대이고, 2004년 탄핵반대 때 한 번 더 뭉쳤고, 2008년 촛불시위와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 뭉쳤던 경험들이 F 세대에 축적되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F 세대가 스스로의 역사적 위치를 인식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 총선 대선에 맞물려 있다는 점도 주의 깊게 살펴 볼 일이다.
    正義론의 유명한 석학,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는 이렇게 충고한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답하려면
    그 전에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9 min
  • [03/13 화요일]정복되지 않는 사람들, 아프가니스탄
    지난 11일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 총기를 난사해 17명의 민간인이 숨졌다. 아프가니스탄에 10년 동안 주둔해 애매한 전쟁을 계속해 온 미군에 대한 철수 여론이 국제적으로 번지고 있는 중이다.
    아프간 주둔 미군이 저지른 사건 중 큼지막한 사건들을 돌이켜 보자.
    아프간 주둔 미군 잔혹사
    2002년 7월의 결혼 피로연 오폭 사건.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읽어보자.
    “미군은 1일 새벽 2시쯤 아프간 중부 우루즈간주 데라우드의 카카라크 마을의 결혼 축하행사장을 폭격했다.
    아프간 관리들은 40여명이 숨졌다고 밝혔으며 파키스탄에 있는 [아프간이슬람통신] 은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100여명이 숨졌을 것이라고 전했다.
    사망자 가운데는 여성과 어린이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1월, 시신 훼손 집단방뇨 사건.
    “12일(한국시각) 유튜브 등에는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숨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아프간 현지인 시신 3구에 미 해병대원 4명이 바지춤을 벌려 집단방뇨하는 동영상이 게재됐다. 총 39초 분량의 동영상에서 미군들은 "잘 가라, 친구야" "소나기 같은 오줌"이라며 시신을 희롱했으며 일부 병사는 "동영상 찍었느냐"며 촬영사실을 확인을 하기도 했다 ...... 리언 페네타 미 국방장관은 미 해병대원의 행동을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규탄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2년 2월 말에는 미군 병사의 코란 소각으로 몇 주일 동안 격렬한 반미시위에 무력충돌까지 일어나 약 30명의 아프가니스탄 국민들과 6명의 미군이 죽었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그것은 학살이다. 무고한 시민들을 의도적으로 죽인 것으로 용서할 수 없다"고 절규했다.”
    어느 국가의 대통령이 ‘우리 국민을 학살하지 말라고 주둔군에게 절규했다’ .....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프가니스탄의 참담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아프가니스탄은 30년 째 전쟁에 시달리고 있다. 실업률이 40%를 넘는다고 한다. 왜 아프간은 침략과 내전 속에서 헤어 나오질 못할까?
    점령되어도 정복되지 않는 아프간
    아프가니스탄에는 천연자원이 거의 없다. 유목에 아편 농사가 전부이다. 그런데 제국주의가 인도로 가는 길목이 아프가니스탄이었다. 중앙아시아와 서남아시아를 잇는 대륙의 인터체인지 격인 요충지이다. 미국이 러시아 중국을 견제하기 좋고 주변 국가들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가스와 석유의 수송로는 아프가니스탄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가혹한 기후, 거친 산악지형, 강인한 투쟁정신이 아프가니스탄의 특징이다. 결과적으로 강대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정권을 장악하는 건 쉽다. 그러나 완전정복은 극히 어렵다.
    2,400년 전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도 동방정책에 따라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길목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반군들의 투쟁에 시달린 알렉산더는 견디다 못해 아프간 지도자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이며 화해에 나서야 했다.
    그 뒤로 백인 훈 족이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했고, 그 다음 페르시아가 침략해 이후 이슬람 문명이 자리 잡았다. 그러다 13세기 징기스칸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이 때 수로가 파괴되면서 비옥한 토지가 사막으로 변할 만큼 가혹한 정벌이 이뤄졌다고 한다.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의 경작 가능면적은 국토의 10% 미만이다.
    그 다음 19세기 러시아와 영국이 서로 아프가니스탄을 차지하겠다고 다투다가 러시아를 밀어낸 영국이 꼭두각시 왕을 내세워 통치했다. 그러나 무장항쟁이 계속돼 끝내 영국이 굴복했고 재차 점령을 시도했다 다시 실패하면서 영국은 세계 최강의 자리에서 미끄러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후 아프가니스탄 왕정은 영국보다는 러시아가 믿을 만 하다고 보고 친러 쪽으로 기울었다. 그렇게 50~60년 간 평화가 유지됐으나 미국이 아프간에 눈독을 들이고 미국과 아프간 두 나라 관계가 좋아지자 소련이 견제에 나섰다. 소련은 친소련 공산정권을 내세우다 곳곳에서 반란군이 저항하자 드디어 직접 아프간 정복에 나섰다. 그리고 미국,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는 아프간에 군사지원을 퍼부으며 소련에 저항하도록 했다. 아프가니스탄 저항세력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10년 간 소련에 맞서 싸워 1989년 소련군을 아프간에서 완전히 몰아냈다.
    그러나 미군의 지원을 받은 세력들 간에 친탈레반 - 반탈레반 연합으로 내전이 이어졌다. 그러다 9.11 테러로 미국이 개입해 탈레반 집권 세력을 몰아내고 반탈레반 연합세력이 정권을 장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30년 동안 전쟁의 공포가 이어지며 사회와 사람들 모두 상처입고 병들었다. 필요한 건 군사적 안정 뿐 아니라 치유가 필요하다. 그러나 점령군이 되어버린 미군이 양민학살과 코란 모독 등으로 민중의 자존심을 훼손하며 민심이 악화되고 있는 중이다. 미군 역시 2002년 아프간 전쟁 이후 1,000 명의 희생자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는 명분을 찾아 철수해야 할 시점이나 과연 테러를 핑계로 점령한 군사적 전략적 요충지를 포기할 지 의문이다.
    영화 ‘칸다하르’ - 다리 하나만 줘요!
    가장 전쟁의 피해가 큰 칸다하르 지역은 탈레반 세력의 최후 거점이었던 지역으로 미군이 집중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마흐말바프 감독의 영화, ‘칸다하르’에는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아픔을 여실히 드러내는 장면이다.
    (한 쪽 팔을 지뢰로 잃은 사내와 국제적십자 캠프의 여 간호사가 다툰다)
    내 팔 하나만 줘요
    ......여기는 팔 없어요, 다리만 있어요.
    난 다리는 둘 다 있어요, 팔이 필요해요
    ......팔은 없다니까요, 다리 없는 것보다 훨씬 낫잖아요.
    그럼 다리라도 하나 줘요.
    ...... 아니 자기 다리 둘 다 있는데 다리를 달라면 되요?
    언제 지뢰 밟아 날라 갈지 모르니 하나 가지고 있을래요
    ..... 안돼요, 여기 있는 이 사람들 다리 얻으려고 모두 1년 넘게 기다려 왔단 말이예요
    그럼 내 친구 다리라도 하나 줘요, 그 애는 두 다리 모두 없는데 돌볼 가족도 없이 산단 말이예요
    ....... 믿을 수 없어요 다들 자기 다리 얻으려고 1년 전부터 기다렸는데 친구 다리가 다 뭐예요
    그럼 우리 어머니 다리라도 하나 줘요
    ....... 왜 말이 자꾸 바뀌어요, 이번엔 어머니라네.
    우리 어머니 아프고 힘들어요, 다리 하나 갖다 줄래요.
    이 때 적십자 헬기가 날아오고 의족 몇 개가 낙하산에 매달려 공수되어 내려온다. 캠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낙하산을 쫓아 뛰기 시작한다. 대부분 젊은 사내들이다. 그런데 두 다리로 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다리가 셋이다. 목발 둘, 자신의 다리 하나.
    10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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