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By 경향신문Society & CultureHistory
Download on the App Store

[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pisodes

  • 225회 조선시대 성범죄 가해자들의 그 후
    1438년(세종 20년) 8월1일 <세종실록>에 기록된 성범죄 사건의 요지는 ‘성균관 유생 둘이 옷을 홀랑 벗고 목욕하다가 지나던 여인을 덮치려 했지만 여인이 도망가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사헌부 수사 결과 문제의 유생 둘 중 실제 여인을 덮친 유생에게 <대명률>에 따라 장 80대의 형을 내렸다. 당시 조선은 모든 범죄의 판결에 1367년 제정된 명나라 형법(<대명률>)을 따랐다.
    36 min
  • 224회 ‘신궁’ 정조가 정약용에게 ‘지옥 훈련 캠프 입소’를 명한 이유
    50발 중 49발 명중이 모두 10차례. 한번은 100발 쏘아 98발 명중….
     이것은 이순신 장군이나 태조 이성계의 활 솜씨가 아니다. 문체반정을 주창한 문예 군주라는 정조 임금의 활쏘기 솜씨이다.
     정조의 활쏘기 점수가 다름 아닌 〈정조실록〉에 아주 자세히 기록됐으니 거짓은 아닐 것이다.
     〈정조실록〉을 보면 정조는 1792년(정조 16년) 10~12월 사이 춘당대에 출근하다시피 해서 활쏘기 행사를 벌인다. 왜 유달리 이 무렵에 집중된 것일까. 정조는 “과인이 활쏘기를 원체 좋아했고 그것이 가문의 법도여서 젊은 시절에는 즐겼지만 최근 10~20년 사이에는 거의 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1792년 10월12일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밝혔다.
    43 min
  • 223회 ‘철의 왕국’이 가야가 아니라 신라라면…
    이번주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223회의 주제는 ‘철의 왕국은 어디었나’입니다. 이미 새해 초에 지면 기사로는 소개했는데요. 이번에 팟캐스트 용으로 재정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는 ‘가야=철의 왕국’의 지위가 확고했는데요. 그 근거는 3세기 역사서인 〈삼국지〉 ‘동이전·한조’의 ‘나라(國)에서 철(鐵)이 생산된다(出)’는 기사였습니다.
    “그렇게 생산된 철을 한(韓·마한)과 ‘예(濊)’, 왜(倭)가 수입해갔고, 또 2군(낙랑·대방군)에도 공급했다”는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특히 “시장에서 중국의 돈을 사용하듯 모두 철을 거래수단으로 삼는다”는 내용은 ‘철의 왕국’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기록으로 여겨졌죠.
    그런데 〈삼국지〉에서 철생산국으로 지목된 곳은 변진(훗날 가야)이 맞을까요. 지금까지의 정설은 변진이 맞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니라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최근 한국전통문화대의 이도학 교수가 발표한 논문이 있는데요. 〈삼국지〉에 기록된 철생산국은 변진(훗날 가야)이 아니라 진한(훗날 신라)이라는 내용의 논문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삼국지〉 ‘동이전·한전조’의 기술은 헷갈립니다.
    진한과 변진을 ‘섞어찌개’ 식으로 기술해버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철이 생산되는 나라가 진한인지 변진(한)인지 구별하기 어렵다는 거죠. 그럼에도 왜 ‘가야(변진의 후예)=철의 왕국’으로 굳어졌을까요.
    31 min
  • 222회 이승만이 노발대발한 ‘미인 석탑’의 파란만장 곡절
    “대체 저게 어찌 된 것이요.” 1957년 9월 한국을 방문한 월남(베트남)의 고 딘 디엠 대통령과 경복궁 내 경회루 산책에 나선 이승만대통령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 산산이 조각난 채 방치된 흉물스러운 탑 한 기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외국정상과 함께 보았으니 얼마나 큰 망신인가. 이승만 대통령의 노기가 하늘을 찌르자 부랴부랴 방치된 탑의 복원에 나섰다.
     문제의 탑은 바로 원주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이었다. 원주 부론면을 떠나 서울-일본 오사카를 거쳐 원래의 자리인 원주로 가지 못한 채 서울 경복궁 한편에 서 있다가 한국전쟁 때인 1950년 어느 날 폭격을 맞아 무려 1만2000조각으로 산산이 조각난 바로 그 탑이었다. 경복궁 내 다른 유물들은 그대로 인데 하필이면 이 탑에만 포탄이 떨어졌으니 재수가 억세게 없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나저나 폭격을 맞은 지 7년이나 지났지만 그대로 방치된 탓에 부서진 부재들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당시 복원 팀은 강화도·익산 등지에서 모자란 돌을 조달해서 겨우 복원에 성공했다.
    34 min
  • 221회 국왕 비서실장 황희의 인사농단…“못참겠다” 익명서 올린 재상들
    “이조를 담당하는 지신사(도승지) 황희는…자기와 친한 인물을 임금(태종)께 여러번 칭찬해서 벼슬에 임명하니 재상들이 매우 싫어했다. 좌·우의정이 천거한 인물들을 배척하고 자기 사람을 임명한 것이다.”
    1408년(태종 8년) 2월4일 <태종실록> 기사이다. 요약하자면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격인 지신사(이하 도승지) 황희(1363~1452)가 인사전횡을 휘둘러 재상들마저 ‘패싱’했다는 것이다. 기사내용을 뜯어보면 매우 흥미롭다.
    36 min
  • 220회 조선시대 감찰반과 청와대 감찰반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공직기강이 도마 위에 오르자 청와대는 지난달 대책을 내놨습니다.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실 산하 특별감찰반 이름을 공직감찰반으로 바꾸고 감찰반의 인적구성을 다양화하는 등의 개선책을 마련했습니다.
    청와대가 민정수석실에 특별감찰반을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자가 ‘대통령 비서실 직제령’ 제7조(감찰반)를 찾아보니 “1)대통령이 임명하는 행정부 소속 고위 공직자, 2)대통령이 임명하는 공공기관·단체 등의 장 및 임원, 3)대통령의 친족 및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자에 대한 감찰업무를 수행한다”고 했습니다. 임명 한 뒤에도 감찰할 필요가 있지만 새로운 인재를 임명하기 전에도 흠결 있는 인물인지 아닌지 대통령이 판단할 자료를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는군요.
    이제 기자가 호기심을 살려 조선시대에는 이와같은 감찰조직이 없는지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37 min
  • 219회 가야인들은 왜 무덤에 봄철 밤하늘의 남두육성을 새겨 넣었을까
    5~6세기 아라가야인들은 왜 남두육성을 무덤방 덮개돌에 새겨 넣었을까. 지난해 12월 18일 아라가야 왕릉급 고분인 함안 말이산 13호분(사적 제515호)에서는 전갈자리와 궁수(사수)자리 등의 별자리 125개가 새겨진 덮개돌이 확인됐다. 더욱 특이한 것은 별자리가 새겨진 구덩식 돌덧널 무덤방의 벽면이 붉게 채색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31 min
  • 218회 44년째 ‘이중국적’ 국보 백자, 조선이냐 원나라냐
    국보와 보물이 무엇입니까. 보물은 ‘형태가 있는 문화재(유형문화재)’ 중에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것 중 국가가 법적으로 지정한 문화재’를 의미합니다. 국보는 그 보물 중에서 인류문화의 관점에서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 중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하는 문화재를 뜻합니다.
     그런데 현재까지 지정된 국보 336건 중 국적이 모호한 문화재가 보이는 것은 어쩐 일일까요. 쉽게말하면 ‘이중국적’ 문화재라 할까요.
     바로 국보 제168호 백자가 그렇습니다. 문화재청은 ‘백자 동화매국문 병(白磁 銅畵梅菊文 甁), 조선시대, 국보 제168호…’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국보 168호인데 국립중앙박물관은 전연 다르게 소개했습니다. ‘백자 유리홍 매화 국화무늬 병(白磁釉裏紅梅菊文甁), 중국 원나라 시대, 국보 제168호….’라 했습니다. 이상하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 기관인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이 서로 다른 설명을 해놓았으니 말입니다. 문화재청은 이 유물의 국적을 ‘조선’이라 했고 이름도 ‘백자 동화 매국문병’이라는 한국이름으로 표기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은 유물의 국적을 ‘중국-원나라’라 했고, ‘백자 유리홍 매국 무늬병’이라는 중국이름으로 표현했습니다.
    36 min
  • 217회 노비, 재소자, 장애인…세종의 ‘소외계층’ 인권정책
    (가)=“출산 휴가 100일로는 부족하다. 산전 휴가 1개월을 더 보태라.” (나)=“산모만 휴가를 주었더니 안되겠다. 그 남편에게도 30일간 출산 휴가를 주어라.” 꼭 요즘 시대 복지정책을 일컫는 것 같지만 놀라지 마라. 이것은 다름아닌 만고의 성군이고, 해동의 요순이라는 세종대왕 복지정책의 일단이다. 그것도 조선시대에 사람 취급도 받지못한 것으로 알려진 ‘노비의 출산정책’이다.
    31 min
  • 216회 ‘에밀레종, 천상의 소리’ 수수께끼는 비대칭 불균일
    성덕대왕 신종(국보 제29호), 일명 ‘에밀레종’을 둘러싼 설화는 해괴하고 끔찍하다.
    같은 주제인데 여러 버전으로 전해진다. 즉 성덕대왕 신종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해서 스님들이 시주를 받으러 다녀야 했다. 그런데 어느 가난한 집 부인이 시주를 받으러 문을 두드린 스님에게 “마음 같아서는 시주 하고 싶지만 있는 것은 갓난아이 뿐이니 이 아이라도 시주 받겠냐”고 했다. 스님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면서 그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열심히 시주받아 종의 제작에 보탰다. 그러나 이상스럽게도 종은 완성되지 않았다. 스님이 이상하게 여겨 점을 쳐보니 ‘받을 시주를 받지 않아서 종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궤가 나왔다. 스님이 문득 갓난 아이를 시주하겠다던 부인을 떠올렸다. 스님은 그 집을 찾아가 아이를 데려와 쇳물에 던져버렸다. 그제서야 종은 완성됐다. 이후 종은 어미를 원망하는 아이 소리처럼 ‘에미 탓’ ‘에미 탓’이라 했고, 그것이 ‘에밀레’로 바뀌었다.
    다른 버전도 있다. 봉덕사에서 성덕대왕 신종을 제작하기로 했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봉덕사 종장인 일전 스님은 비난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일전 스님에게는 과부의 몸으로 얹혀살던 여동생이 있었는데 이 여동생은 오빠의 실패를 자신의 탓으로 여겨 자기 아이를 바치기로 한다. 결국 아이가 쇳물이 펄펄 끓던 도가니 속에 투입된다. 그제서야 종이 완성되고, 어미를 원망하는 ‘에밀레’ 종소리가 들렸다.
    34 min

About [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From the publisher's feed

역사는 중고교시절 암기과목? 대중의 눈높이에서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