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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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pisodes

  • 215회 숙종·영조 부자는 왜 노인대접 받으려 생떼를 썼을까
    “주상(숙종)께서 기로신 10명을 초대하시어 종일토록 즐겼는데 5차례에 걸쳐 5잔씩 술을 마시도록 했다. 5번째 잔은 '사기로소(賜耆老所·기로소에 하사한다)' 네 글자가 새겨진 큰 은술잔으로 마시게 했다. 기로신들은 주상의 명을 사양하지 못해 만취했다.”
     1719년(숙종 45년) 4월18일 59세가 된 숙종 임금(1661~1720·재위 1674~1720)이 기로소에 입소한 기념으로 기로신(70세 이상의 정 2품 이상의 문신) 10명을 초청하여 잔치를 벌였다. 눈병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았던 숙종은 “병든 몸이 궁전에 오르니…여러 관리 모여있고…이 연회는 본시 높이려는 뜻에서 나왔으니 가득한 술잔에 자주 손이 간들 어떠리”라는 시를 지었다. 이날의 연회 내용을 첩자로 만든 것이 바로 ‘기사계첩’이다.
    37 min
  • 214회 크리스마스 선물, 7000년 전 고래사냥의 기원을 일러준 반구대 암각화
    “저기 무슨 그림일까.”
    지금으로부터 48년 전인 1970년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24일, 문명대 교수가 이끄는 동국대 박물관 조사단이 울산 울주군 언양읍 일대의 불교유적을 조사하고 있었다. 조사단은 특히 천전리와 대곡리 일대의 계곡에서 원효대사가 양지의 도움을 받아 〈초장관심론〉과 〈안신사심론〉 등을 저술했다는 반고사터를 찾고 있었다.
    반고사터로 추정되는 반구대 마을에는 절터는 물론 정몽주의 유배를 기념하는 사당터도 있었다.
    1965년 건설된 사연댐 때문에 마을 대부분은 물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강가의 절벽엔 조선의 선비들이 시회(詩會)를 열고 그 기념으로 새긴 한시와, ‘나 여기 다녀갔소’를 알린 사람의 낙서, 그리고 학과 같은 그림들이 남아있었다.
    33 min
  • 213회 ‘해동의 요순’ 세종은 왜 짜증과 불통의 대마왕이 되었나
    (가)“너희는 설총은 옳다 하면서 내가 한 일은 그르다 하는 이유가 뭐냐.” “이 따위가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저속한 선비다.” “내가 너희에게 처음부터 죄주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보자보자 하니 안되겠다. 죄를 벗기 힘들겠구나.”
    사뭇 감정적인 언사로 일관하고 있는 발언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그러나 이것은 새발의 피다.
     (나)“대소신료들이 떼지어 날 겁박하는 것이냐” “난 어진 임금이 아니다. 부덕한 임금이라 마음대로 한다” “내가 세 살 먹은 아이들을 달래는 것 같구나.” “너희가 정승이냐” “친형제 같은 원로대신도 날 친견하지 않는다. 너희가 무슨 물건이기에 날 보려고 하는가.” “정승 1000명이 나와 말해봐라. 그래도 난 굽히지 않는다.” “분명한 일은 임금 독단으로 한다.”
    중략
    39 min
  • 212회 비격진천뢰, 일본군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신무기 개발자 이장손을 아시나요
    이번에 전북 고창 무장현 관아의 무기고 구덩이에서 확인된 11발의 비격진천뢰가 임진왜란 때 쓰인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동학농민운동 때 관군이 사용하려다 그냥 두고 도주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이장손이라는 군기시 화포장이 1591년(선조 24년) 제작한 이 비격진천뢰가 1년 뒤에 발발한 임진왜란 때 그렇게 요긴하게 쓰일 지 몰랐을 것이다.
    비격진천뢰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당대 조선의 최첨단 무기이자 비밀병기였다.
    오늘날과 같은 신관(발화) 장치가 있어서 목표물까지 날아가 폭발하면서 천둥 번개와 같은 굉음과 섬광, 그리고 수많은 파편(마름쇠·삼각형 형태의 쇠조각)을 쏟아내는 작렬탄이었다. 시간을 조절해서 폭발한다는 면에서 일종의 시한폭탄이라 할 수 있다.
    30 min
  • 211회 〈택리지〉를 쓴 이중환의 허무한 결론, ‘18세기는 헬조선이었다’
    “택리(擇里), 즉 사는 곳을 택하는 책은 이중환이 썼는데 사람들이 그 책에 엄청 현혹되어 그 폐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擇里之書李重煥創著 人多被惑 其弊無窮)”(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택리변증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1788~?)은 이중환(1690~1756)의 <택지리>가 끼친 부정적인 영향을 염려하는 평론을 남겼다. 그도 그럴 것이 〈택지리〉는 사대부가 조선 팔도에서 살만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요즘으로 치면 어느 지역에 아파트와 땅을 사놓으면 돈을 번다는 식의 이야기를 역사와 경제, 유통, 명승의 관점에서 ‘족집게’처럼 콕 찍어 정리했으니 ‘혹’할 만 했다.
    40 min
  • 210회 고구려 각저총에 새긴 ‘씨름’ 유네스코 유산의 향기
    “(조선 씨름은) 힘이 세야 이긴다하되 꾀가 있으면 더욱 용하다.”
     17~18세기 한·일 교류의 상징인물인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1668~1755)의 조선어 학습지인 〈교린수지〉(交隣須知)가 설명한 조선씨름의 특징이다. 일본의 스모(相撲)과 달리 힘보다는 기술을 강조하는 한국씨름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지고보면 한국의 씨름과 비슷한 무예이자 놀이는 세계 어느 곳이나 다 존재한다. 각 대륙과 지역에 160여종의 씨름이 분포하고 있다니 말이다.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신체활동이니, 씨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놀이이자 스포츠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전 세계 각 나라와 종족은 주어진 자연환경과 역사적인 조건 속에서 저마다 개성있는 씨름을 발전시켜왔다.
     예컨대 일본의 스모는 물론이고, 몽골의 부흐와 우즈베키스탄의 크라쉬, 터키의 그레스, 스페인의 루차 카나리아, 스위스의 쉬빙겐, 아일랜드의 팽은 물론이고 세네갈의 람브 등이 ‘유사 씨름’의 형태이다.
    29 min
  • 209회 광해군의 논술문제, ‘섣달그믐밤, 그 쓸쓸함에 대해 논하라’
    ‘광해군의 센치한 시험문제’
    광해군은 1616년(광해군 8년) 치러진 증광회시에서 낸 책문, 시험문제가 걸작이다. ‘섣달 그믐밤이 되면 서글퍼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에 대해 논하라’는 것이었다. 광해문의 책문과 그 책문에 무엇이라고 대책을 내놓았을까?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광해군의 논술문제, ‘섣달그믐밤, 그 쓸쓸함에 대해 논하라’와 함께 하세요
    41 min
  • 208회 감쪽같이 사라진 국보 보물의 파란만장 열전
    1990년대말~2000년대초 전국의 사당·향교·서원·사찰에 걸려있거나 모셔놓았던 영정, 초상화, 탱화 등이 수난을 당한 적이 있었다.
    “1990년대 말 시작된 TV 프로그램(‘진품명품’)에서 어느 사대부의 영정이 1억원이 훨씬 넘는 감정가로 추산되었어요. 이때부터 전국의 사당에 비상이 걸릴 정도로 영정을 노리는 문화재사범이 늘어났어요.”(강신태 전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
    ‘TV쇼 진품명품’은 문화재의 가치를 쉽게 알려주기 위해 감정가를 재미삼아 붙인 이름 그대로 ‘문화재 쇼’ 프로그램이었다. 대중을 위한 문화재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신선한 접근이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역기능도 나타났다.
    41 min
  • 207회 ‘짝퉁’ 판결에 퇴출된 ‘국보’ 상원사 종의 재심을 청구한다
    상원사 동종이라고 하면 강원 평창 오대산의 상원사에 있는 국보(제 36호)를 쉽게 연상하게 된다.
     하지만 경기 양평 용문산(해발 1069m)에도 또다른 상원사가 있으며, 그 용문산 상원사에도 한 때는 ‘국보(제367호)였던’ 동종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이름하여 양평 용문산 상원사 동종(이하 상원사 동종)이다. 1929년 1월1일 경성방송국이 개최한 최초의 제야행사에서 타종한 유서깊은 동종이었다. 그랬던 ‘국보 종’에게 ‘국보였던’이라고 과거형을 쓴 이유가 있다. 지금은 국보는커녕 가짜 취급을 받고 56년 동안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종은 아담한 사찰의 마당 한 편에 덩그러니 서 있다. 보호각은 있었지만 보호틀은 없었고, 누구나 접근해서 만질 수 있는 동종이었다. 비전문가인 기자가 보기에도 고색창연한 동종이었다.
    37 min
  • 206회 ‘암행어사 출도야!’ 19세기 암행어사의 좌충우돌 잠행기
    1822년 4월21일 평안도 지방을 돌던 박래겸이 어느 마을을 지날 때였다. 길가 집에서 “젖 달라”고 우는 갓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박래겸은 귀를 쫑긋 세웠다. 아이를 달래던 할머니가 “울지 마라. 암행어사 오신다.”고 하지 않은가. 넌지시 할머니에게 물었다.
     “아이가 어찌 암행어사가 무서운 줄 안단 말이오?”
     “말도 마시오, 요즘, 이 고을에 암행어사가 출두한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그 소문 때문에 관리들과 토호들이 벌벌 떨고 있다오.”
     할머니가 내친김에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암행어사가 평생 두루 다녔으면 얼마나 좋겠소. 그래야 가난한 마을의 힘없는 백성이 그 덕택으로 살게 아니겠소.”
     그랬다. 바로 할머니의 토로가 바로 순조 임금의 밀명으로 125일간 4915리(2064~2654㎞)의 발품을 팔며 평안남도 암행어사의 직분을 감당한 이유이다.
     박래겸이 암행어사의 체험담을 꼼꼼히 기록한 〈서수일기〉에는 19세기 초 백성들의 생생한 생활상과, 당대의 모순을 바로잡으려 했던 ‘어느 암행어사의 분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37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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