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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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pisodes

  • 235회 성류굴 500원 동전같은 한줄기 빛에서 찾아낸 신라인의 낙서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자신의 자취를 남기고 싶어 하는 본능은 어찌 할 수 없는 모양이다.
     고생대인 2억5000만 년 전에 생성되어 온갖 기기묘묘한 종유석과 석순, 석주, 베이컨시트와 동굴진주. 석화, 동굴산호, 동굴방패 등을 자랑함으로써 ‘지하 금강’이라는 별명을 얻은 경북 울진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호)에도 ‘다 다녀가오!’하는 낙서가 한 둘이 아니다. 역사·고고학적인 가치를 지닌 낙서, 즉 옥석을 가리기도 힘들 정도다.
    37 min
  • 234회 ‘안동 모스크바’ 출신 사회주의 독립투사는 왜 ‘밀봉 철제관’에 묻혔나
    독립운동가 권오설 선생의 이름은 낯설다. 1919년 3·1운동을 계승한 1926년 6·10만세운동의 기획자이자 주도자인 선생인데도 그렇다. 왜일까. 바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이다.
     권오설 선생은 1897년 퇴계 이황(1501~1570)의 학맥을 잇은 경북 안동의 가일마을에서 태어났다. 대구고등보통학교(경북고 전신)과 중앙고보, 경성부기학교 등을 차례로 중퇴한 선생은 1919년 고향으로 내려와 교육·청년·농민운동을 펼친다. 원흥학술강습소(원흥의숙)과 일직서숙을 열어 청소년들의 신식교육을 도맡았고, 가곡농민조합을 조직하고 풍산청년회를 창립했다. 1923년부터는 풍산소작인회 집행위원이 되어 소작운동까지 벌였다.
     이것이 권오설 선생에게는 새로운 도약이었다. 소작운동을 벌이려면 인재가 필요했다. 선생은 바로 풍산학술강습회를 개설했는데, 안동지역에서 약 200명 정도가 수강했다. 권오설의 지도를 받고 서울로 유학한 권오운과 권태성 등은 훗날 6·10만세운동의 주역이 되었다.
    36 min
  • 233회 1000년 고도 경주 월성의 연못터에서는 무엇이 쏟아져나왔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4년 경주 월성에 들러 했다는 언급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월성발굴을 체계적으로 철저히 하라”고 해놓고는 “집중해서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해달라”는 당부도 곁들였거든요. 이 말이 헷갈린 해석을 낳았지요. 빨리 발굴하고 개발하라는 얘기인지,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중하게 하라는 건지…. 그래서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발굴을 서둘러 빨리 복원한 뒤 관광자원화 하자는 측은 후자의 언급을, 시간이 걸리더라도 후회없는 학술조사로 제대로 된 역사를 복원하자는 측은 전자의 언급을 강조했습니다.
    대체 박근혜 전 대통령 발언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요. 알 수는 없지만 저는 이렇게 믿고 싶습니다. 아무렴 대통령이라는 분이 대충대충 발굴하라고 말씀하셨겠어요.
    33 min
  • 232회 어느 선비의 임진왜란 ‘헬조선’ 경험기
    “우수사는 이달초(7월8일) 전라 좌·우 수군과 함께 나가서 적선 80척을 나포해서 700여명의 수급을 베었다. 초 10일에도 또 적선을 만나 80여척을 사로잡았다…”
     1592년(선조 25년) 7월26일 오희문(1539~1613)의 일기인 〈쇄미록〉에 기록된 한산대첩 승전보이다. 당연히 이순신의 승전기록일 것 같지만 다 그렇지는 않다. 일기에서 전투를 주도했다는 우수사는 바로 경상 우수사인 원균을 지칭한다. 원균의 주도 아래 전장에 나서 대승을 도운 전라 좌·우 수군의 지휘관은 바로 이순신(전라 좌수사)과 이억기(전라 우수사)이다. 〈쇄미록〉에 따르면 주인공은 원균이고, 조연이 이순신과 이억기 같은 느낌이 난다.
    37 min
  • 231회 ‘가락국 신화의 대가야 버전’ 방울, 사실일까 억측일까
    지난주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사적 제79호)에서 발굴된 어린아이 무덤에서 아주 희한한 유물이 나왔는데요. 이를 두고 학게에서 거센 논쟁이 벌어질 것 같네요.
     어떤 유물이냐면요. 지난 3월8일 고분군 내 탐방로를 정비하거 무인카메라를 설치하기에 앞서 진행한 발굴조사에서 여러 기의 무덤이 확인됐는데요. 그중 5세기 무렵의 석곽묘에서 다른 유물과 함께 어린아이의 두개골편과 치아가 나왔고, 무엇보다 흙으로 만든 방울을 하나 수습했는데요. 직경이 약 5㎝ 정도되는 아주 작은 방울이어서 심드렁 하고 넘길 수 있는 그저 그런 유물이겠지 했다네요. 대가야 왕릉급 고분이 즐비한 지산동에서 뭐 이 정도의 유물이라면 아무 것도 아닐테니까….
     그런데 유물을 세척하는 과정에서 눈썰미가 아주 좋은 조사원이 방울에 새겨진 그림을 발견했다네요. 워낙 작은 그림이어서 현미경을 들이댔더니 아 글쎄 그림은 한 둘이 아니었답니다.
     총 6개의 독립적인 그림이 방울 표면에 새겨져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림 중에 유독 눈에 띄는 문양이 있었는데요. 바로 거북이 문양이었답니다.
    29 min
  • 230회 이누노코(犬の子)와 향산광랑(이광수)···창씨개명의 두 얼굴
    1940년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지었다는 ‘역대급’ 풍자 이름 중에 ‘견분식위(犬糞食衛·이누노코 구라에)’가 있다. ‘개똥이나 처먹으라’는 뜻이다.
    ‘설마’ 하겠지만 일제강점기 고등법원 감사국 자료에 비슷한 이름이 존재한다. 즉 부산 동래의 ‘○석두’가 ‘개자식석두(犬の子錫斗·이누노코 스즈토)라 창씨개명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조선인은 성을 바꾸면 개자식이라는 욕을 먹는데 내가 성을 바꿨으니 이누노코라 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징역 6개월에 처해졌다.
    반면 악질 친일파조차도 ‘무릎 꿇어!’ 할만큼 지독한 창씨개명자가 있었으니 바로 춘원 이광수(1892~1950)다.
    평생을 친일문제연구에 바친 임종국 선생(1929~1989)은 1966년 출간된 〈친일문학론〉에서 ‘이광수의 창씨개명인 향산광랑(香山光郞·가야마 미쓰로)과 관련해서 깜빡 속을 뻔 한’ 일화를 소개했다.
    35 min
  • 229회 맹사성·황희를 죽을 때까지 부려먹은 세종의 용인술
    ‘황희·맹사성’ 투톱체제는 무려 8년간이나 지속됐다. 그러고보면 세종도 대단한 분이다. 맹사성의 나이 76세까지, 황희의 나이 87살까지 ‘부려먹었으니’ 말이다. 세종은 맹사성과 황희가 은퇴한 뒤에도 중요한 국사를 처리할 때 자문을 요청했다.
    맹사성과 황희는 은퇴한 지 불과 3년 만에 세상을 떠났으니 세종은 그야말로 ‘황희·맹사성 투톱’의 재능을 그들이 죽는 그 순간까지 활용했던 셈이다. 그래도 두 분이 79세(맹사성), 90세(황희)로 천수를 누렸으니 그 또한 세종대왕의 홍복이 아닐까 싶다.
    41 min
  • 228회 ‘광대 얼굴의 보물 부처님’, 어찌 하오리까
    ‘광대 불상’. 전북 익산 삼기면 연동리에 있는 석불사 법당엔 아주 희한하게 생긴 불상이 턱하니 자리잡고 있다.
    신성한 법당 안에 모셨으니 꼬집어 말하기는 좀 ‘거시기’ 하지만 솔직하게 표현하면 전혀 불상 답지않은 얼굴생김새를 갖고 있다. 까놓고 말하면 우스꽝스러운 광대 분장을 한 불상 같은 첫느낌이다. 인자하거나 아니면 엄숙한 부처나 보살의 얼굴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이전 이 절의 주지스님 얼굴을 새긴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다.
    그렇다. 이 불상의 본래 얼굴은 언제부터인지 떨어져 나갔고 그후 새로운 얼굴, 즉 불두를 만들어 올려놓았다.
    그렇다면 이왕 새로운 얼굴을 올려놓을 거, 좀 그럴싸한 부처님 얼굴을 제작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37 min
  • 227회 “턱도 없는 연봉에 중국 간섭 심하지만…”, 월남 이상재의 비장한 각오
    사실 구한말 조선 내에서의 철도부설권은 열강의 먹잇감이었다. 서구는 주로 경제적인 이유로, 일본은 대륙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철도부설권을 따려고 이전투구를 벌였다.
    지금까지는 미국인 제임스 모스가 1896년 조선정부로부터 부설허가권을 취득했지만 자금난에 빠져 일본 측에 170만원에 허가권을 팔아넘긴 것으로 알려져 왔다.
    경인선 철도 부설 계획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 1896년 무렵이 아니라 그보다 8년 전인 1888년부터 세워졌다는 사실을 적시한 외교문서가 131년 만에 공개됐다. 이 문서는 월남 이상재 선생(1850~1927)의 종손인 이상구씨(74)가 130년 넘게 소장해온 문중 자료이다.
    31 min
  • 226회 생뚱맞은 대한민국 보물, 그리스 청동투구는 왜 박물관에 서있을까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2층 기증유물전시관을 가보면 왠지 생뚱맞은 유물 1점이 전시돼있다. 이름하여 ‘그리스 청동투구’(보물 제904호)이다. 언필칭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보(336건)와 보물(2150건) 중에서 외국에서 발굴된 서양 유물이다.
    그리스땅에서 발굴된 2600년 전 유물이 왜 이역만리인 대한민국의 보물이 되었으며, 어떻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영구 전시되고 있을까. 문화재위원회는 ‘그리스제 청동투구’의 유래와 그것을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한 으뜸 사유를 밝혀놓았다.
    32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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