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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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pisodes

  • 255회 260년 왕희지 그늘에 묻힌 ‘김생, 김육진, 황룡사 스님’
    “신라 무장사에 김생의 글씨를 쓴 비석이 있는데 어디인지는 모릅니다.”
    1760년(영조 36년) 무렵 경주부윤이 된 이계(耳溪) 홍양호(1724~1802)는 ‘전설의 명필’인 김생의 비석이 무장사에 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무장사는 원성왕(재위 785~798)의 아버지(대아간 효양)가 숙부인 파진찬을 추모하려고 지은 절이다. 이 절에는 승하한 소성왕(799~800)을 위해 부인인 계화왕후가 세운 아미타불상의 이력을 적은 비석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무장사비이다.
    무장사비문은 왕희지의 필체를 빼닮아 ‘왕희지 집자비’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최근 이계 홍양호와 추사 김정희의 ‘김육진설’이 다시 거론되고, ‘황룡사 승려설’도 부각 되고 있다. 이번에는 김생설까지 제시됐다.
    38 min
  • 254회 새롭게 밝혀진 내시의 별장, 문화재 가치가 있는가
    ‘새롭게 밝혀진 내시의 별장, 문화재 가치가 있는가.’
    최근들어 조선조 철종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자 의친왕의 별궁으로 ‘200년 조선의 비밀정원’이라는 이유를 들어 명승(제35호)으로 지정된(1992년) 성락원(서울 성북동)의 문화재적 가치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그 결과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이 1983년과 92년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는 전문가 의견을 무시하고 문화재로 지정한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김영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사편찬위원회를 통해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은 사료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성락원의 문화재적 가치는 애초부터 없었는데, 문화재관리국이 성락원 소유자의 근거없는 주장을 검증없이 받아들였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33 min
  • 253회 죽고 살아남은 조선의 사대문, 그 아픈 역사
    얼마 전 돈의문, 즉 서대문을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로 복원한 모습을 공개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서울의 4대문은 숭례문(남대문)과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숙정문(북대문) 등이다. 이중 철거된 지 104년이 지나도록 복원되지 않은 유일한 문이 바로 돈의문이다. 원래는 원상회복 방침이었지만 주변 토지 보상과 교통난 해소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에 증강 및 가상현실로나마 아쉬운 대로 ‘상상 속의 돈의문’이라도 감상할 수밖에 없다.
    돈의문의 해체와 가상 복원 소식을 단순하게 넘길 것이 아니다. 이번을 계기로 돈의문터나 숭례문, 흥인지문을 지날 때 불과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사이에 겪어야 했던 파란만장한 역사를 한번쯤 반추하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
    31 min
  • 252회 ‘가짜동요 퍼뜨린’ 일본 낭인 신문 ‘한성신보’ 불매운동
    1896년(고종 33년) 4월19일 서울에서 발행되던 일본계 신문 한성신보는 망측한 동요를 소개한다. ‘신문사 직원이 어떤 아린아이에게 들은 동요였다’는 것이다.
    동요의 내용은 망측했다. 요컨대 “백수 노릇하는 무능한 군주(고종)가 외세를 끌어들이고도 담배(여송연)만 찾고 있으니 창피하다. 이제 그만 죽어라”는 것이었다. 조선을 한껏 조롱하는 이 기사는 조선 조정과 민중의 저항을 불러모았다. 4일 뒤인 23일 경쟁지인 〈독립신문〉은 재동에 사는 독자의 ‘팩트체크’를 통해 그 동요가 ‘가짜’임을 규명했다.
     “나(독자)도 다른 사람도 이런 동요를 들은 바 없으니 심히 아혹(괴이하고 의심스럽다)한 일이다. 이런 동요 지을 조선사람 없을 듯하다.”
    34 min
  • 251회 충남 당진 주거지, 한성백제군의 내무반?
    한성백제군의 내무반인가. 최근 충남 당진 성산리 산성 내에서 확인된 주거지 6기는 4세기 후반~5세기 전반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남침을 막기위한 한성백제군의 전방사령부 막사로 추정된다.
    지난 4월부터 산성을 정밀조사해온 발굴조사기관(금강문화유산연구원)은 “성 내부에서 총 6기의 주거지가 성벽과 가까이 밀집해 있었다”면서 “유구의 형태로 보아 군사들의 거주용 막사인 군막일 가능성이 짙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 건물지들은 암반 위에 조성됐고, 성벽에 매우 가깝게 붙여 열을 지어 있었다. 또한 구들시설을 구축해서 계절에 관계없이 취사와 난방도 할 수 있는 구조였다. 연구원측은 “축조하기 어려운 암반 위에 사철 난방과 취사가 가능한 건물을 열을 지어 축조했다”면서 “성벽에 붙여 조성한 것 등을 미루어 볼 때 이 건물들은 군막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라고 해석했다.
    31 min
  • 250회 정조는 왜 이산에서 이성으로 개명했을까
    ‘이산이 아닌 이셩(성)이라고?’ 최근 수원시가 설립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 개최한 기획전의 제목이 ‘셩: 판타스틱 시티’이다. 수원이라는 도시를 상징하는 두 개의 성을 주제로 한다는 것인데, 하나는 ‘수원 화성’이고 다른 하나는 ‘이셩(성)’이란다. 그런데 ‘이셩(성)’이 뭔가하면 조선의 제22대 임금인 정조(재위 1776~1800)란다.
     혼란스럽지 않은가. 잘 알려진 정조의 이름은 이산(李示+示)이 아닌가. 그러기에 ‘이산’이라는 사극까지 나오지 않았던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조대왕의 이름은 이산도 맞고, 이셩(성)도 맞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33 min
  • 249회 19세기 조선재벌들의 돈 버는 법 베푸는 법
    “이진욱의 장례를 치르는 날… 멀거나 가까운 사이를 따질 것 없이 다들 부의금을 보내고 찾아와 조문하여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빈털터리 고아로 태어나 큰돈을 번 18세기 부자 이진욱의 장례식 풍경입니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작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을 보기 어렵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진욱의 장례식을 보면 그 어떤 재상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추구한 조선 사회의 도덕 기준으로 본다면 이진욱의 ‘비루한 인생’을 좋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집안의 살림살이는 어찌되는지 살피지 않았다”든가, “생업에 힘쓰지 않았다”든가 하는 것은 당대 조선사회의 미덕이었으니까요. 이것을 그럴듯한 말로 안빈낙도(安貧樂道)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시대에 오히려 ‘가난이 악덕이고, 부는 미덕’이라고 주장한 이진욱 같은 사람을 ‘존경받아야 할 인물’로 평가한 이가 있었습니다. 18세기 문인 이재운(1721~1782)입니다. 이재운은 “군자는 상인이 세 곱절의 이익을 남기며 장사하는 것을 안다네”라는 〈시경〉의 구절을 들어 양반도 상인처럼 상행위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30 min
  • 248회 ‘세금 거둘 땅 빼앗다니…’ 1500년 전 신라인의 판결문 뜯어보니
    “응? 이거 뭔가 글씨 같은데?”
    1988년 3월 20일 경북 울진 죽변면 봉평 2리 마을 이장 권대선씨는 길옆 개울에 처박혀있던 돌을 유심히 바라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돌에 새겨진 문양은 글씨 같았다. 이 돌은 두 달 전인 1월 20일 주두원씨 소유 논에 거꾸로 박혀있다가 포크레인 작업으로 뽑아내어 길옆 개울로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돌의 문양이 글씨라는 것을 확신한 권대선 이장은 즉시 죽변면사무소와 울진군청에 신고했다. 이것이 유명한 울진 봉평비(국보 제 242호)의 발견 이력이다.
    봉평비는 앞면에만 모두 10행 397자(혹은 398자)이며, 비의 중간부분 일부를 빼면 대부분 판독할 수 있었다. 이 비석은 한마디로 판결문이다.
    1500년 전의 역사를 찾아낸 이들이 고고학자도, 역사학자도 아닌 평범한 농부들이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생생한 신라인들의 ‘삶의 현장’은 쓸모없는 돌로 버려졌거나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33 min
  • 247회 만취승마로 죽은 조선의 개국원로공신
    “남양백 홍영통이 임금의 탄일에 만취해서 집으로 돌아가다가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1395년(태조 4년) 10월11일 〈태조실록〉의 기사다. 기사의 주인공 홍영통(?~1395)은 감찰대부와 밀직부사를 지낸 여말선초의 문신이다. 요즘으로 치면 검찰총장 및 감사원장(감찰대부)나 대통령비서실장(밀직부사) 쯤 되는 요직 중 요직이었다.
    갑작스러운 홍영통의 부음을 들은 태조는 사람을 보내 치제(임금이 제물과 제문을 보내어 죽은 신하를 제사 지내던 일)하고 담당관청에게 “성심을 다해 장례를 치르라”는 명을 내렸다.
    홍영통은 지금으로 치면 ‘만취운전’에 해당되는 ‘음주승마’로 죽었으며, 그 당시의 나이가 75살 전후였을 가능성이 짙다. 그렇다면 홍영통은 요즘의 음주에 고령운전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얘기가 된다.
    28 min
  • 246회 중국의 짝퉁이 아닌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왜 서원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중국의 서원이 아닌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을까. 물론 한국의 서원이 중국의 서원을 벤치마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서원은 중국과 다르다. 즉 중국의 서원은 기본적으로 관료양성을 위한 준비기구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한국의 서원은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닦고,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 곳이었다. 이런 기능은 학업과 과거 합격이 주목적이었던 성균관이나 학당, 향교와도 달랐다.
    29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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