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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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pisodes

  • 295회 김홍도의 맞수가 그린 '8m 넘는 대작’
    단원 김홍도는 18~19세기 조선의 ‘문화 아이콘’이자 ‘시대정신’이었다. “그림 한 장을 낼 때마다 곧 임금(정조)의 눈에 들었고”, “속화를 그리면 사람들 모두 손뼉을 치며 신기하다고 외쳤다”고 했다.
    김홍도만큼 ‘만찢남’은 아니지만 이인문도 ‘도인’ 혹은 ‘신필(神筆)’ 소리를 들은 천재였다. 단원 김홍도와 ‘1745년 소띠 동갑내기’이자 ‘평생지기’였던 이인문. 일찍이 도화서에 들어간 동갑내기는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같은 모임에 참여하여 같은 주제의 그림을 그린 뒤 서로의 작품에 글을 쓰기도 했다. 요즘 말로 ‘콜라보’다.
    32 min
  • 294회 '청와대 미남석불' 닮은 경주 남산 불상 머리
    예로부터 부처님이 하강해 머무는 영산으로 추앙받던 경주 남산(해발 468m) 계곡에서 불상의 머리가 발견됐다. 머리를 되찾은 불상은 ‘청와대 미남석불’로 알려진 통일신라시대 석조여래좌상과 같은 사각형 모양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경주 내남면 용장리의 남산 약수곡(석조여래좌상 절터) 제4사지를 조사 중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에서 분리된 불상의 머리, 즉 불두(佛頭)를 찾았다고 밝혔다.
    26 min
  • 293회 숙종이 지배한 조선, 과연 ‘호시절’이었을까
    ‘숙종대왕 호시절에…’. 국립고궁박물관이 조선조 숙종의 서거 30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테마 특별전의 제목이다. ‘호시절(好時節)’은 말 그대로 ‘좋은 때’이므로 숙종의 치세가 그만큼 편안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대동법 확대 실시와 백두산정계비 등과 같은 숙종의 업적은 당연히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각종 문헌자료와 〈숙종실록〉에서 정리되지 않은 당대의 생생한 이야기들도 있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숙종은 조선의 중흥군주인가, 숙종의 치세는 호시절이었는가.
    30 min
  • 292회 경매로 보물 내놓은 간송미술관에 무슨 일이?!
    최근 문화유산 분야에서 핫뉴스가 터졌는데요. 간송미술관이 자기들이 소장 중인 보물 불상 2건을 경매에 내놨다는 소식인데요. 국보 보물을 그렇게 시장에 내놔도 되는 건지도 궁금하고, 한 미술관이 소장한 유물을 내다 파는 것이 그렇게 뉴스가 되는 것지도 궁금합니다. 오늘은 보물을 매물로 내놓은 간송미술관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봅니다.
    30 min
  • 291회 임금과의 술자리, ‘취중실수’의 결말
    “지난날의 성현들은 모두 사라지고 술 잘 하던 사람만이 이름을 남겼네…그대와 함께 마시면서 만고의 시름을 녹여 버리리라.”
    당나라 시인 이백(701~762)의 ‘장진주(將進酒)’ 중 한 대목이다. ‘인생이란 뜻을 얻었을 때 즐겨야 하므로…마셨다 하면 300잔은 마셔야 한다’면서 풍류남아의 호방한 기백을 토해냈다.
    임금과 신하들의 술자리라면 어떨까. 심심찮게 죽음의 향연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술자리에서 ‘역린’을 건드려 군주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분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변해서 평소에도 파악하기 어려운 ‘군주의 역린’을 어떻게 취중에 구별할 수 있단 말인가.
    38 min
  • 290회 전염병의 참상에 맞선 조선의 분투
    “아, 슬프다. 너는 지금 나를 버려두고 돌아갔는가. 오장(五臟)을 칼로 쪼개는 것만 같구나…”.
    1625년(인조 3년) 3월 조선의 예학자 정경세(1563~1633)가 두창(천연두)으로 죽은 맏아들 정심(1597~1625)을 기리며 쓴 제문의 첫머리다.
    더욱 심금을 울린 것이 있다. 아들(정심)이 죽기 하루 전에 정심의 아내가 고향집에서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정경세는 “자식을 낳아 기뻐했을 며느리가 5일 후 남편의 부고를 듣게 되었으니 얼마나 애통하겠느냐”고 가슴을 쳤다.
    정경세는 “자식 잃은 난 세상에 아무런 미련이 없다”면서 “관직을 벗어 던지고 너의 관을 싣고 돌아가 네 무덤을 만들고 네 어린 자식을 기르며 남은 삶을 보내고 싶을 뿐”이라고 울부짖었다. 정경세는 자식을 전염병으로 잃은 아비의 마음을 “오장(五臟)을 칼로 쪼개는 것만 같다”고 표현했다.
    31 min
  • 289회 고려 금속활자, 구텐베르크 이후 뒤처진 5가지 이유
    ‘구텐베르크보다 빠르다고 하지만…’. 필자는 얼마 전 〈직지〉(1377년 간행)보다 138년 빠른(1239년) 금속활자본(보물 제758-2호 공인박물관 소장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이 국내에 존재하고 있다는 연구성과를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고려가 금속활자를 발명했지만 구텐베르크가 이룬 것 같은 혁명은 없었다’는 독자반응이 만만치 않았다. ‘발명은 있었지만 혁명은 없었다’는 뼈아픈 지적이 아닌가. 그렇다면 고려·조선은 왜 애써 금속활자를 만들어놓고 서양처럼 역사를 뒤바꾼 혁신을 이루지 못했을까.
    29 min
  • 288회 세종의 ‘슬기로운 후계 양성법’
    “세종 계해년(1443년) 문종이 동궁에 있을 때 계조당을 세웠고, 문종이 곧 대리청정했다. 세종 시대에 모든 제도와 문물, 법식을 다 갖췄고 가장 융성했다.”
    ‘계조(繼照)’는 ‘사방에 비치는 광명을 계승하여 비춰준다(以繼明照于四方)’는 〈주역〉 ‘이괘·삼전’의 구절에서 따왔다. 따라서 ‘계조’는 왕위계승을 뜻한다.
    만고의 성군이라는 세종은 바로 ‘슬기로운 왕위계승’을 위해 계조당을 만들어 세자(문종)에게 정사를 대신 돌보도록 했다. 이것이 바로 세종의 후계자 양성법인 ‘대리청정’이다.
    29 min
  • 287회 ‘직지’보다 138년 앞선 금속활자
    현전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 1377년 찍어낸 〈직지심체요절〉 이라는 걸 모르는 이가 없다. 그렇다면 문헌상 최초의 금속활자본은 무엇일까. 〈고금상정예문〉 혹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남명증도가) 등 2건으로 알려졌다.
    만약 문헌상으로만 남아있다는 가장 오래된, 그것도 〈직지심체요절〉보다 138년 앞선 금속활자본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떨까. 그것도 지금 이 순간 국내에 남아있고, 무엇보다 이미 보물로 지정되어있는, 다 알려진 책이라면 어떨까. 바로 2012년 보물(제758-2호)로 지정된 ‘공인출판사 소장 〈남명증도가〉’이다.
    28 min
  • 286회 “갓 쓴 여자 재수없어” 덕수궁 ‘대안문’이 ‘대한문’ 된 사연
    “원래 대안문(大安門)이었는데, 안(安)자가 계집 녀(女) 자에 갓쓴 글자이고 양장하고 모자 쓴 여자인 배정자의 대궐 출입이 빈번해서 ‘상서롭지 못하다’는 말쟁이의 말로 인해 대한문으로 고쳤다.”
     일제강점기 대중잡지인 〈별건곤〉 제33집(1933년 7월 1일자)에 실린 덕수궁의 정문 ‘대한문’ 관련 일화이다. ‘문외한’이란 가명의 필자는 ‘팔자 고친 경성시내 육대문 신세타령’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한문이야말로 여러 대궐문 중에서 제일 나이 어리고 팔자 사나온 문”이라고 지칭하면서 이름을 ‘대안문’에서 ‘대한문’으로 바꾼 이력을 소개했다.
    27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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