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의 12시에 만납시다

이수영의 12시에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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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의 12시에 만납시다 episodes

  • 2017/3/8 그녀가 불렀던 분홍 립스틱
    점심을 먹으러 대학가 앞으로 갔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청춘들의 표정과 웃음소리가
    주변을 꽃처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꽃샘추위 때문에 볼이 발그레한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돈가스 전문점에 들어가서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는데,
    옆 테이블에 두 학생이 마주 앉았다.
    (남학생) "(허세 가득) 뭐 먹고 싶어?
    오늘 내가 사는 거니까 마음껏 골라봐.
    메뉴판에 있는 거 다 먹어봐도 돼 하하하"
    (여학생) "(수줍게) 아 정말요? 선배님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남학생은 뭔가 본심을 감추고 있는 남자 특유의
    과장과 허세가 있었고,
    여학생은 수줍게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예쁘던지..
    그래.. 나도 너희들처럼
    눈부신 청춘의 한 때가 있었다..
    아내를 만난 건,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소개팅을 하러 나갔는데
    유독 분홍분홍한 입술이 눈에 확 들어왔다.
    몇 번 만나고 나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리에 같이 갔다가 노래방에 가게 됐다.
    (나) "노래 한 곡 불러 볼래요? 노래 잘 할 거 같은데.."
    (아내) "아.. 저.. 노래.. 잘 못하는데 어떡하지..?"
    (나) "아.. 불편하면 안 해도 돼요."
    (아내) "아뇨 아뇨 한 곡 정돈 뭐.. 괜찮아요. 음.. 그럼 전 이 노래를.."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신중하게 꼭꼭 번호를 눌렀고,
    상큼 발랄한 멜로디 맞춰
    어깨를 오른쪽으로 두 번, 왼쪽으로 두 번씩
    살짝 살짝 튕기면서 그녀가 부른 노래는
    바로 ´분홍립스틱´
    분홍 립스틱을 바르고 분홍 립스틱을 부르던 아내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벚꽃 날리던 봄날의 거리를
    설레며 함께 걷던 청춘의 한 때..
    모처럼 그 시절 기분에 빠져본다.
    그때처럼 분홍 립스틱을 자주 바르지도 않고,
    설거지 할 때마다
    이젠 어깨가 아니라 온 몸으로 노래하는 아내지만
    그런 아내가 내 눈엔 여전히 귀엽기만 하다.
    올봄엔 아내에게 분홍 립스틱 하나 선물해서
    모처럼 연애시절 기분 내며
    벚꽃 길 걸어봐야겠다.
    3 min
  • 2017/3/7 공부의 왕도? 지인에게 알려라!
    아직 날씨는 쌀쌀하지만
    도서관에서 보는 창밖은 영락없는 봄이다.
    이 좋은 날, 참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속에 있다 보면
    마음이 게을러질 수가 없다.
    노력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랄까?
    결혼하고 두 아이의 엄마로만 살다보니
    내 나이 어느 새 삼십대 후반..
    새 학기 시작되고 아이들 학교에 보내놓고 나니,
    전과는 다르게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나도 뭔가 해보고 싶다는 느낌!
    뭘 해볼까,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예전부터 생각만 했던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아이들 등교시켜놓고 가까운 도서관으로 가는데,
    이른 아침부터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참 열심히 공부한다.
    특히 열심히 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같이 공부하고 있는 게 좀 쑥스럽기도 하면서,
    ´나는 저 나이에 저렇게 열심히, 열정적으로 공부했었나..´
    반성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몰랐다.
    무기력하고 우울했던 기운을
    공부로 해소시킬 수 있다는 걸..
    열심히 몰두한다는 게
    삶의 활력이 된다는 걸 말이다.
    인터넷 강의를 듣는데
    강사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공부하는 걸 주위에 널리 알리라고..
    그래야 꼭 합격해야겠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
    의욕이 생기는 거란다.
    지금 목표는, 1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해서
    연말엔 합격 자랑하는 문자를
    여기저기 보내는 것!
    그러려면 한 눈 팔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이제 곧 꽃피고 햇살 좋은 봄날이 유혹하면
    잘 이겨낼 수 있을지 그게 제일 걱정이긴 하다.
    그래도 열심히 하고, 틈틈이 봄 햇살로 비타민 충전해주는 건
    괜찮지 않을까?
    3 min
  • 2017/3/6 그날, 나는 남편에게 등을 내줬다
    오랜만에 욕조에 따뜻하게 물을 받아서
    두 돌 된 딸이랑 목욕 겸 물놀이를 했다.
    정말 오랜만에 뜨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까
    온몸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처럼
    편안한 게 기분이 좋았다.
    아이를 먼저 다 씻겨놓고
    대충 마무리해서 나가려고 했는데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이왕 욕조에 물 가득 받아 놓은 거
    제대로 한 번 씻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부리나케 남편을 불렀다.
    (나) "여보~ 여기 정리할 게 좀 남아서 그런데
    보름이 머리 좀 말려줘"
    그렇게 아이를 먼저 내 보내놓고는
    혼자 욕조를 차지하고 몸을 푹 담그고 있으니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는 거다.
    내친 김에 때수건까지 꺼내서는
    신나게 몸을 밀기 시작했다.
    식은 물을 빼고 따뜻한 물을 다시 채우고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씻고 있다 보니
    꽤 오래 있었나 보다.
    남편이 욕실 문을 두드리는 거다.
    (남편) "당신 아직도 정리하고 있어?
    아니, 욕실 정리를 뭐 그렇게 오래 해?
    청소할 거 많으면 도와줄까?"
    괜찮다고, 금방 나갈 거라고 말하려는 순간
    남편이 욕실 문을 벌컥 열었고,
    마침 그 때 나는 팔이 닫지 않는 등을 미느라
    불편한 자세로 끙끙 거리고 있다가
    남편과 딱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나) "아 뭐야 왜 맘대로 문을 벌컥벌컥 열고 난리야~
    나가 빨리!!"
    청소하는 줄 알고 들어온 남편은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잠시 당황한 듯하더니,
    피식 웃으면서 다가왔다.
    (남편) "아니, 씻으면 씻는다고 얘길 하지 사람 참
    이리 내봐! 내가 등 밀어줄게."
    할 수 없이 남편에게 때수건을 주긴 했는데
    아~ 갑자기 허탈해지는 기분이라니!
    결혼하면 남편 앞에서는
    그 어떤 생리현상도 조심하리라.. 다짐했었는데..
    때밀이가 웬 말이야?
    이제 우리 부부.. 호형호제 할 일만 남은 건가?
    다음부터 때는 꼭 목욕탕에 가서 밀어야겠다.
    3 min
  • 2017/3/4 더듬이 앞머리, 블랙 립스틱.. 그땐 그랬지
    얼마 전 대학교 때 친구가 숨넘어갈 듯 웃으며 전화를 했다.
    우연히 학교 다닐 때 사진들을 보게 됐다면서
    도무지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거다.
    (친구) “나 사진 보다가 웃겨 죽는 줄 알았어.
    야!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 왜 이렇게 촌스럽니?”
    그리고는 전화를 끊자마자
    휴대폰으로 사진을 한 장 찍어서 보냈는데,
    나도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달덩이 같은 얼굴,
    굵고 진한 눈썹,
    입술은 마치 팥죽 먹다가 입가에 다 묻힌 거 같고
    한껏 힘줘서 세운 앞머리에
    바지통은 어찌나 넓은지..
    흑역사도 이런 흑역사가 없는 거다.
    바로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나) “야! 이거 그때 한창 유행하던 립스틱 니가 사와서
    애들 다 한 번씩 발라본 거잖아.
    그땐 우리 엄청 세련된 대학생들이었는데..
    웃기긴 하지만.. 그래도 젊었을 때가 좋다. 그지?”
    한참 친구랑 깔깔거리며 통화를 하고는
    전화를 끊고 다시 한 번 사진을 들여다봤다.
    처음엔 이게 뭐야 싶었는데
    다시 보니, 그때 생각이 새록새록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았다.
    편하게 추억을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진짜 행복한 일이라는 걸!
    전화 통화하고 나서부터 내내
    친구가 참 많이 보고 싶다.
    다음에 만나면 꼭 얘기해줘야겠다.
    평생 내 옆에 꼭 붙어서
    종종 이런 사진들 보내달라고,
    그때 생각하면서 같이 웃자고,
    니가 내 친구라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안 그래도 뭐 색다른 일 좀 없나.. 하고 있었는데
    생각난 김에 날 좋은 날, 친구랑 캠퍼스 나들이 한 번 갈까?
    마음만은 이십대 여대생이 돼서
    다시 한 번 그때처럼 사진 한 장 남겨야겠다.
    2 min
  • 2017/3/3 8등한 우리딸! 괜찮아 김밥이야
    딸아이가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봤는데
    8등을 했다며 시무룩해선 들어왔다.
    내가 보기엔 충분히 잘했는데..
    기왕에 큰 결심하고 재수를 시작한 딸아이에겐
    조금 맥 빠지는 성적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 어렸을 때랑 비교 해보면
    사실 너무도 대단하고 고마울 뿐이다.
    그땐 왜 그렇게 공부하는 게 싫었을까?
    언니는 늘 일등, 언니는 늘 최고, 언니는 늘 착했던 반면에
    난 거의 꼴등, 언제나 최하, 늘 못된 딸이었다.
    학창시절 보내면서
    엄마에게 못된 말도 많이 했고 투정도 많이 부렸다.
    그러고 보면 나는 철도 참 늦게 들었던 거 같다.
    시집갈 때까지도 철딱서니 없는 말만 해댔으니까.
    딸에게 잘하고 있다고,
    힘내라는 편지를 쓸까 했는데,
    글을 쓰려면 일단 겁부터 나고
    도대체 무슨 말로 시작을 해야 할지 몰라서
    편지를 대신한 게
    딸아이가 좋아하는 돈가스 김밥!
    돈가스를 넣고 꾹꾹 눌러 김밥을 말면서
    그 안에 딸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응원하는 마음,
    고마워하는 마음까지 꾹꾹 눌러 담았다.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이게 전부!
    맛있는 거 먹고 기분 좋게
    다시 힘내는 아이의 얼굴을 보는 일 아닐까?
    밤에 학원에서 돌아온 딸아이에게
    김밥을 짠 하고 내밀었다.
    (엄마) "딸! 공부하느라 힘들지?
    엄마가 너 주려고 특별히 김밥 말았다"
    (딸) "아 진짜 엄마는 너무 도움이 안 돼~!
    안 그래도 만날 앉아 있어서 살찌는데
    밤에 자꾸 이렇게 맛있는 거 주면 어떡해?
    내가 못 살아 정말~"
    그러면서도 좋은지
    냉큼 김밥 하나를 입에 넣고는 배시시 웃는다.
    (엄마) "너 8등 진짜 잘한 거야.
    앞으로 더 쭉쭉 올라갈 건데 뭐
    처음부터 너무 올라가 있으면 심심하고 불안하잖아"
    (딸) "치.. 자기 성적 아니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거 아니셔?"
    그래.. 이렇게 먹고 웃으면서 스트레스 풀면 되는 거지
    서로의 입에 김밥 하나씩 넣어주면서
    야밤에 우리 모녀, 파이팅을 외쳐본다.
    3 min
  • 2017/3/2 도깨비 시장에는 칼국수 도깨비가 있다?
    우리 동네에는 도깨비 시장이 있다.
    왜 도깨비 시장이라 불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전국 어디에나 하나씩은 있을 법한 흔한 시장이다.
    평소에는 주로 집근처 마트를 이용하지만
    가끔씩 대화가 오갈 수 있는 시장에 가는 재미가 있어
    가끔은 일부러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간다.
    오늘도 시장에 가서 천천히 물건을 구경하다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쌀쌀한 날씨에 따끈한 칼국수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칼국수집으로 홀리듯 들어갔다.
    가격은 2900원.
    가격이 싼 대신 계산이며, 겉절이, 물은 셀프다.
    내 옆자리에는 중년의 부부가 앉아있고
    그 옆자리에는 할머니 한 분이 앉아계셨다.
    금세 국수가 나오고 매콤한 겉절이를 얹어 먹으니 정말 꿀맛이다.
    후루룩~ 국수를 한 젓가락 드시던 옆자리 아저씨가
    갑자기 일어나시더니 할머니께 겉절이와 앞 접시를 가져다 드린다.
    할머니 다리가 불편하신걸 알고 얼른 챙겨다 드린 거다.
    할머니께서는 연신 고맙다 하시며 칼국수를 맛나게 드신다.
    아저씨가 또 일어나신다.
    ´어, 또 어디 가시지?´
    내 눈은 어느새 아저씨를 쫒고 있다.
    아저씨는 정수기로 가시더니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을 섞어
    할머니께 가져다 드린다.
    갑자기 가슴이 뜨끈해진다.
    뜨거운 칼국수 국물을 들이켰기 때문인지
    아니면 할머니를 챙겨드리는
    따뜻한 아저씨의 마음 때문이었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가슴은 따뜻함으로 가득 차올랐다.
    공유처럼 키가 크고 긴 코트 자락을 휘날리진 않지만
    이 곳 도깨비시장에는 분명 도깨비가 있는 것 같다.
    3 min
  • 2017/3/1 새 교과서 표지를 싸며 추억에 빠지다
    개학을 앞두고
    아이들 학용품에 이름붙이기 작업이 한창이다.
    요즘은 예쁜 네임라벨들을 따로 팔고 있어서
    사서 붙이면 편하긴 한데,
    나는 견출지에 하나하나 이름을 써서
    일일이 투명테이프로 고정을 시킨다.
    아이들도 새 학년, 새 학기가 올라가면서
    새로운 마음가짐이 생기듯이
    나도 왠지 그런 기분이랄까?
    내 아이 이름을 정성스럽게 적으면서
    건강하고 즐겁게 학교생활 잘하길,
    바르게 자라길,
    공부 열심히 하길.. 바라는 마음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도
    엄마랑 같이 새 교과서를 달력으로 싸고
    학용품에 하나하나 이름을 써넣느라 참 바빴다.
    해가 지난 달력의 하얀 면이 밖으로 보이도록
    정성스럽게 책 표지를 싸고는,
    조심스럽게 과목명과 이름을 적었다.
    표지를 다 싼 교과서가
    마치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밭 같아서
    보기만 해도 어찌나 설렜던지..
    새 학기엔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도
    스스로 하곤 했었지.
    나에겐 아직까지도
    그때의 기억들이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아이도 이렇게 배워가는 거겠지?
    새로운 무언가를 맞이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는 법을,
    그리고 나이가 들어 행복하게 추억할 거리들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방법을 말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수고가
    아이의 기억 속에 되돌리고픈 시간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성스럽게 적어 놓은 아이의 이름 위로
    조심조심 투명 테이프를 고정시키면서,
    아이를 사랑하는 내 마음도
    함께 붙여놓는다.
    내일, 새 마음으로 집을 나서는
    세상 모든 아이들의 발걸음이
    일 년 내내 가볍고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3 min
  • 2017/2/28 이 남자를 믿고 살아야 돼?
    (남편) "여보! 무슨 소리 못 들었어? 문 여는 소리 들린 거 같은데?"
    (아내) "(자다 깨서) 왜 그래 나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남편) "아니야! 분명히 들렸어. 두 번이나 들었어."
    며칠 전, 잠을 자다 남편이 벌떡 일어나서는
    난데없이 밖에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난린 거다.
    아무 소리도 듣진 못했지만,
    남편이 하도 심각하게 얘기해서
    나도 덩달아 한껏 긴장을 하고는
    남편 옆에 바짝 붙어 앉아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내) "내가 보기엔 그냥 당신이 잠결에 잘못 들은 거 같아.
    봐 지금까지 아무 소리도 안 들리잖아."
    (남편) "아냐! 내가 들었어. 두 번이나 들었어."
    두 번이나 들었다는 걸 강조하던 남편,
    갑자기 어이없는 말을 하는 거다.
    (남편) "자기야! 자기가 나가봐! 먼저 현관 쪽으로 가보고
    베란다까지 한 번 쭉 둘러보고 와."
    나참.. 어이가 없어서.. 이거 뭐하자는 거지?
    진짜 도둑이라도 들었으면
    나보고 나가서 때려잡으란 얘긴가?
    남편이 대놓고 옆구리까지 쿡쿡 찔러대는 게 하도 어이가 없어서
    홧김에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긴 했는데
    사실 나도 너무 무서운 거다.
    그 무서운 와중에도 물걸레 봉 하나 들고는
    현관, 베란다, 작은 방 옷장까지 둘러보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아내) "도대체 무슨 소릴 들은 거야? 있긴 뭐가 있어?
    아우 정말! 빨리 자!"
    그래도 남편은 계속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며 중얼거리더니
    얼마 안 있어 코까지 골면서 잠에 빠졌다.
    결국 나만 밤을 꼬박 새고 말았다.
    밤새 생각했다. ´이 남자를 믿고 살아야 하나?´
    ´내가 진짜 호신술이라도 배워야 되나?´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애가 된다더니,
    요즘 우리 남편을 보면 그 말이 맞다 싶다.
    "여보! 여보세요~ 내가 당신 보디가드니?
    힘든 일, 무서운 일, 하기 싫은 일만 생기면
    나부터 앞장세우는 당신!
    도대체 철은 언제쯤 들 거유?"
    3 min
  • 2017/2/27 다육이 키우기, 육아보다 어렵네
    사무실 내 책상엔
    지난 봄, 남편이 손수 캐서 작은 화분에 심어준 난 하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위 동료들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잘 자란 난은
    여름내 은은한 향기로 즐거움을 줬다.
    그런데 꽃이 지자 금방 무관심해졌고
    급기야는 구석으로 밀려나
    모양도 무늬도 똑같은 화분들 사이에서 시들시들 말라갔다.
    모두가 꽃과 향기에 감탄을 할 때는
    매일매일 눈 맞추고 향기를 맡곤 했는데,
    꽃이 졌다고 이렇게 무관심해지다니..
    내 간사함이 미안하고 애처로워서
    다시 책상 앞에 두고 돌보기 시작했다.
    옆 사무실에서 키우는 다육 한 촉을 따서
    난 화분 돌 사이에 꽂아 뒀다.
    그리고 옆 사무실에서 키우는 다육 한 촉을 따서
    난 화분 돌 사이에 꽂아 두었다.
    추울까봐 밤에는 24시간 불이 커져 있는 사무실로 옮겨 놓고
    낮에는 틈틈이 햇볕을 쐐 주면서
    속으로 빌었다.
    그러다 며칠 전에 실수로 화분이 쏟아졌는데,
    그때 놀라운 걸 발견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였던 작은 다육이가
    옆에 보일 듯 말 듯 한 작은 촉 하나를 더 달고는,
    자신의 키보다 몇 배나 길고 많은 잔뿌리로
    화분의 주인인 난 뿌리를 휘감고 있는 거다.
    신기했다. 흙 하나 없는 돌 틈 사이에서 살아남았고
    또 다른 분신을 만들어 내고 있다니!
    새 화분에 난과 다육이를 옮겨 심었더니
    시들시들 말라 가던 난도
    조금씩 생기를 되찾아 가기 시작했다.
    예전에 부모님이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관심과 애정을 쏟으면
    사람도 화사하게 피어나는 법!
    식물들도 사람 마음과 다를 게 없었다.
    찬바람이 시샘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봄이 천천히 오고 있는 요즘..
    이제 머지않아 예쁜 꽃들이 지천에 피어나겠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세상의 꽃들에게
    눈길도, 애정도, 관심도
    듬뿍듬뿍 줘야겠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 행복해진다.
    오늘 일기 보내주신 김성신님께 선물 보내드릴게요.
    좋은 말과 무관심이 식물에게 미치는 영향..
    우리 이거 여러 실험을 통해
    충분히 잘 알고 있죠.
    예쁘다, 잘 자란다, 고맙다 해주면
    거짓말처럼 잘 자라고,
    밉다, 안 예쁘다.. 하면서 자주 봐주지도 않으면
    시들시들 말라간다고 하잖아요.
    사람마음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관심 받고 애정 받는 기쁨, 그 기운을 잘 알죠.
    봄이 우리에게 가까워지기 위해
    열심히 힘을 키워가고 있으니까..
    우리도 기다리는 마음 잘 키워서
    최선을 다해 봄이 키워낸 것들을 봐줘야겠어요.
    애정과 고마움과 반가움을 듬뿍 담아서!
    3 min
  • 2017/2/25 나에게 주는 선물, ´참 잘했어요´
    며칠 전에 정말 엉망진창인 날이 있었다.
    자전거를 타다가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고,
    회사의 중요한 서류를 아무 생각 없이
    분쇄기에 넣어버렸는가 하면,
    생전 연락도 없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결혼한다고 연락을 해온 동창에게
    무심코 결혼식에 가겠다고 말해버린 거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데..
    그러고 보니 가만, 우리 같은 반인 적은 있었나?
    어제는 또 회사에 지각까지 했다.
    우울하게 오전을 보내고 있었는데,
    회사 동료가 지나가면서
    책상 위에 뭔가를 툭 하나 던져놓고 간다.
    딸기맛 사탕이었다.
    부스럭 부스럭 사탕을 까서
    입에 넣고 오물거리고 있으니
    단순하게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거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포도주스까지 마시고 나서는
    언제 우울했냐 싶게 잊어버렸다.
    별 거 아닌 일로
    기분이 한없이 바닥을 치는 날이 있는가 하면
    아주 사소한 무엇 덕분에
    금방 기분이 다시 좋아지기도 하니까,
    그래서 당장은 좀 힘들어도 버틸 수 있나 보다.
    어느 날, 시무룩해 있는 나에게
    친구가 도장 하나를 준 게 문득 생각났다.
    초등학교 때 숙제 검사 맡고 나면
    선생님이 ´참 잘했어요!´ 찍어주시던 도장이었는데,
    친구가 준 노란색 메모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린 하루하루를 참 잘 살고 있는데,
    가끔 모든 게 엉망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그럴 땐 이 도장을 찍어봐! 꼭 팔뚝에 찍어야 돼.´
    팔뚝에 찍는 도장은
    운동회 달리기 때 1,2,3등 찍어주던 거 아니었나?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가,
    뭐 아무렴 어때? 하면서
    팔뚝에 도장을 꽝 찍었다.
    ´참 잘했어요!´ 라는 글씨를 보니까
    정말 칭찬 받아서 힘이 나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무조건 응원해주는 말이 필요한 때니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맘껏 도장 찍을 수 있는 여름까진
    나 자신을 위한 칭찬, 아끼지 말고 부지런히 써야겠다.
    3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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