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의 12시에 만납시다

이수영의 12시에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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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의 12시에 만납시다 episodes

  • 2017/2/24 20대 장정을 무장해제하는 달콤한 그 맛
    지난 2월 18일에
    막내아들이 육군3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식 날, 아들을 만나자마자
    우리가 제일 먼저 나눈 대화는 이거였다.
    (엄마) "아들! 기초훈련 마지막 주에 올라온 사진 있지?
    그날 무슨 좋은 일 있었어?"
    (아들) "아 그 사진? 그럼 완전 신나고 좋았죠"
    아들이 5주간 기초훈련을 받는 동안
    군사훈련 하는 모습,
    집중해서 강의 듣는 모습들을 찍은 사진이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오곤 했다.
    아들 보낸 허전함을
    그렇게나마 사진으로라도 달래고 있었는데,
    훈련 마지막 주에
    그전과는 분위기가 180도 다른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사진 속엔, 스마일 얼굴을 하고 있는 노란 풍선이
    벽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고,
    열 명 남짓한 생도들이
    팔을 번쩍 들고는 환호성을 지르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다 일어나 있는 거다.
    (아들) "그때, 두 팀으로 나눠서 게임을 했거든요.
    그 사진 찍었을 때가,
    우리 팀이 게임에 이겨서 간식을 받게 됐다고
    교관님이 발표하는 순간이었어요.
    그래서 다들 좋아서 환호성을 지른 거였지"
    아이고참 그랬구나! 그래서 다들 신이 났구나!
    몸은 건장한 청년들인데
    딱 유치원생 같은 표정들이라니..
    이유도 정말 유치원에서나 있을 법한 거였다.
    (아들) "내가 사실 집에 있을 땐, 냉장고에 뭐 있어도 잘 안 먹었잖아요.
    그런데 여기 오니까 초코파이가 그렇게 맛있는 거 있죠?
    그 맛을 엄마는 모르실 거예요."
    집에 돌아와 다시 한 번 사진을 봤다.
    조금은 낯선 듯, 눈에 익은 아들의 모습이
    사진 속에 있었다.
    흔하게 먹던 초코파이의 맛을
    아들이 새삼 감동적으로 느끼게 된 것처럼,
    평범하게 함께 있어주던 것들이
    얼마나 고마운 것이었는지..
    떨어져 있는 동안 아들도 나도
    소중하게 배워가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3 min
  • 2017/2/23 내 나이가 어때서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분양 때부터니까,
    어느 덧 여기서 산지도 40년이 다 됐다.
    오래 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동네 대소사 하나도 안 빠지게 다 챙기시는
    오지랖 넓은 아빠의 성격 때문에,
    젊으셨을 때는 아파트 자치회 회장도 하시고
    동네 새마을회회장도 역임하셨다.
    연세가 드셔서 지금은 건강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고문으로 조언 정도 해주고 계신다.
    그러다 한 달 전쯤 아파트 게시판에
    자치회장 선거 벽보가 붙었다.
    자치회장이 관리비 관리를 잘못해서
    구청에 조사받으러 다닌다는 얘기가 있던 터라,
    잘리고 새로 뽑나보네..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넘겼다.
    그런데, 어제 반상회에 다녀오셔선 상기된 얼굴로
    아빠가 그러시는 거다.
    (아빠) "여보 딸 나 우리 아파트 자치회장에 선출 됐다"
    아빠의 말이 끝나자마자
    엄마의 속사포 같은 잔소리가 쏟아졌다.
    (엄마) "아 정말! 그 골치 아픈 걸 왜 해? 몸도 안 좋은 사람이..
    주기적으로 병원에도 가야하고, 약도 꼬박꼬박 먹어야 되는데
    어떻게 하려고 그래?
    얼른 가서 도로 안하겠다고 물러요. 응?"
    그렇다고 물러설 아빠가 아니었다.
    (아빠) "병원은 가면 되고, 약은 먹으면 되지,
    몸 안 좋으면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사나?
    그리고 당신 생각하는 것보다 나 엄청 건강해요.
    팔팔 날아다닌다고. 내 나이가 어때서?
    관리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한테 아파트 살림 맡길 바에야,
    내가 링거 맞으면서라도 우리 아파트 지켜 낼껴!"
    (엄마) "아이고 참나 안중근 의사 나셨네
    당장에 그 자리 내려놓고 와요.. 얼른!"
    그렇게 엄마가 그렇게 매일 같이 잔소리를 하는 와중에도
    아빠는 한술 더 떠서,
    벌써 자치회 임원들 다 만나
    봄에 아파트 꽃 심고, 페인트 도색도 새로 하기로 하셨단다.
    (아빠) "딸! 아빠가 말이야 요새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너무 신나.
    요즘은 아빠가 약을 안 먹어도 기운이 막 펄펄 나는 거 같다."
    기분이 연일 고공행진 중이신 우리 아빠..
    못 말리는 건 짱구만이 아니었다.
    더 이상 우리 아빠도 도저히 말릴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은 엄마도 나도
    이왕하시는 거 그냥 응원이나 열심히 해드리면서 지켜보기로 했다.
    아빠에겐 지금 할 일이 있다는 게
    최고의 영양제고 힘인 거 같다.
    ´내 나이가 어때서´를 흥얼거리며
    오늘도 활기차고 즐겁게 일하시는 우리 아빠..
    지금이 바로 아빠의 청춘이 아닐까?
    3 min
  • 2017/2/22 마음이 예뻐야 진정한 부자지
    (아들) "엄마! 나 오늘 친구 집에서 완전 맛있는 거 먹었어.
    소고기도 먹고, 돼지고기도 먹고
    걔네 집 완전 부잔가 봐."
    며칠 전에 8살 아들이 친구 집에서 놀다가
    저녁까지 얻어먹고 와서는 한 말이다.
    (엄마) "그래? 우리 아들 맛있는 것도 먹고 좋았겠네"
    그땐 아이의 말을 별 생각 없이 받아들였는데,
    무심코 한 마디씩 던지는 아이의 말을 듣다보니
    요즘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된다.
    물건을 사러 가서는,
    (아들) "엄마! 이건 너무 비싸지? 딴 데 가볼까?" 하질 않나,
    큰 맘 먹고 장난감 사준다고 했더니,
    (아들) "아줌마! 이게 싸요, 저게 더 싸요?
    둘 중에 싼 걸로 주세요."
    이러면서 내 눈치를 슬쩍 슬쩍 살피곤 하는 거다.
    어떨 땐 내가 민망해질 만큼 아이가 돈돈 하니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애 앞에서 돈 없다는 소릴 많이 했나?´
    ´애를 너무 쪼잔하게 키웠나?´
    나 나름으론 ´세상에는 공짜란 없다!´ 라는 신념을 가지고
    그걸 몸소 실천하는 걸로
    아이에게 살아있는 경제교육을 시키려고 노력했다.
    돈이란 건 정말 필요할 때 잘 써야한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낭비하지 않고 절약하는 법을 가르치려고 노력했건만..
    내 노력이 부족했던 걸까?
    너무 내 아들 기를 죽인 걸까?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어느 날 저녁,
    고기를 사서 구워주며 아들에게 말했다.
    (엄마) "아들! 돈이 많고, 매일 고기 구워 먹고
    그런다고 다 부자가 아니야.
    주변 사람들 많이 사랑하면서
    어려운 사람 도와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도 부자인 거야. 알겠지?"
    내 말에 아들은 ´그게 뭔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눈만 껌뻑 껌뻑
    그래도 언젠가는 이 엄마의 말을
    이해해줄 날이 오겠지?
    우리 아들, 아끼는 건 좋은데
    물건 고를 때 제발 무조건 싼 것만 찾진 말자.
    그리고 마음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부자인 사람으로 자랄 수 있게..
    엄마도 노력할게. 알았지?
    3 min
  • 2017/2/21 백세시대를 맞이하는 남편의 고민
    요즘 밤마다 남편이 잠을 설치는 눈치다.
    새벽에 깨서는 뒤척뒤척,
    일어나서는 한참을 앉아 있다가 자곤 하니까
    나도 신경이 쓰여서는
    덩달아 잠을 설칠 때가 많다.
    안자고 뭐하냐고 물어볼까 하다가
    그냥 자는 척을 해버리곤 한다.
    남편의 고민이 뭔지
    대충 짐작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남편이 친구들을 만나고 들어왔는데
    표정이 썩 밝지가 않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이런 말을 꺼냈다.
    (남편) "백세시댄데.. 앞으로 뭘 더 준비해야 될까?
    우리 앞으로 어떻게 살지?"
    이번에 창업했다는 친구 얘기며
    다른 친구들 사는 얘기 두루두루 듣다보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많아지고 답답했던 모양이다.
    나 역시 뭐라고 딱히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뭐라도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아내) "당신 말대로 백세시댄데.. 아직 많이 남았잖아.
    너무 급하게 하지 말고, 당신이 좋아하는 것부터
    천천히 한 번 생각해보자.
    배워 보고 싶은 게 있으면 시작해 봐도 좋고."
    아직 40대 초반이긴 하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남편이 조급해하는 것도 당연하다.
    특히나 세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남편이 느끼는 중압감이 오죽할까?
    뭘 해도 더해주고 싶은 게
    남편 마음이고 아빠 마음일 텐데..
    남편은 자꾸 자신이 부족해서
    가족들에게 더 못해준다며 자책하는 거 같다.
    나 또한 남편에게만 짐을 지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뭘 하든 같이 하고 나누면서
    평생을 함께 해야 할 부부고 가족이니까..
    혼자 짊어지지만 말고
    함께 천천히, 행복하게 가자고 남편에게 말해줘야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져서
    밤마다 깨지 않고 잘 잤으면 좋겠다.
    3 min
  • 2017/2/20 층간소음도 잊게하는 윗층청년
    저희 집 바로 위층에 살고 있는 집에는
    피아노를 치는 예술가 학생이 살고 있답니다.
    아침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틀리는 부분만 수백번씩 다시 치고 다시 치는 덕분에
    그 음을 외울 정도죠.
    항상 소음에 시달리다보니 잠을 설치는 것은 예삿일이지요.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에 비친 다크서클을 보면서도
    견뎌야된다는 속엣말을 외치며 살고 있답니다.
    하지만, 소음 때문에 민원을 낸다거나 화를 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제는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이 학생이 어디 아픈가? 왜 연습을 안하지? 무슨 일이 있나?’
    하며 걱정을 할 정도로 적막한 침묵이 오히려 낯설 정도가 되었답니다.
    그렇다고 제가 마냥 덕이 넘치고 인내심이 엄청난 건
    결단코 아닙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소음에 민감하지 않고 관용적이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답니다.
    한 달 전, 그러니까 이 집에 이사 온 첫날 밤,
    혼자 용달 하나를 불러 이사를 하는 바람에
    대충 끝내지도 못한 채 시킨 퉁퉁 뿌른 짜장면을
    젓가락으로 뒤적거리며 한 입 넣으려던 순간,
    그러니까 정확히 시계가 밤 11시를 가리킬 때
    벽을 타고 내려오는 진동과 함께 피아노소리가 땡똥거리더군요.
    옆집은 아닌 것 같고 바로 윗집에서 치는 피아노소리가 분명했습니다.
    평소 제 성질 같아서는 바로 경비실에 인터폰을 해서,
    지금 시간이 몇신데 피아노를 띵똥대냐며
    당장 피아노 치는 것 그만두라고 소리를 질러댔겠지만,
    그날은 이사 온 첫날이고 해서
    심호흡을 길게 두 번하고,
    엄마가 이웃에 돌리라며 싸주셨던 시루떡 한 접시를
    야무지게 접시에 담아 위층 집으로 올라갔습니다.
    “띵똥”
    벨을 누르니 피아노 소리가 멈추고
    안에서 누가 쪼르륵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며
    현관문이 삐죽이 열리더군요.
    그리고는 얼굴이 하얗고 키가 큰 아직은 미소년 티를 못 벗은
    이십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꽃미남이
    수줍게 저를 멀뚱멀뚱 쳐다보더군요.
    남학생이 얼마나 잘생겼던지
    그 순간 제 앞에 송중기가 서있는 줄 알았답니다.
    순간, 아까까지 밀려들며 참지 못하던 화는 온데 간데 사라지고,
    “아, 아 저는 오늘 아래층에 이사 온 사람인데요. 이거 좀 드셔보시라고요.”
    하며 요조숙녀처럼 얌전히 눈을 내리깔며
    떡을 다소곳이 앞으로 내밀었답니다.
    그랬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저를 이상한 사람처럼 쳐다보더니
    고개만 끄덕이고 냉큼 접시만 받고는 개미소리처럼 작게
    “네.” 하고 현관문을 쾅 닫고 쪼르륵 도로 들어가버리더군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하고 현관문을 닫아버리는 소리가
    기분이 나쁠 만도 했지만 그 남학생의 얼굴이 너무도 잘생겨
    그런 행동들은 모두 다 씻은 듯 용서가 되었답니다.
    그날 후부터 그 남학생의 하얀 미소가 제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고
    둥둥 떠다니고 있답니다.
    그 후로 아직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지만
    어떻게 하면 마주칠 수 있을까, 말을 건낼 수 있을까, 여자친구는 있을까,
    고민만 하며 하루하루 전전긍긍하며 지내고 있답니다.
    3 min
  • 2017/2/18 열만 일기장
    며칠 전, 내가 근무하고 있는 중학교에서
    뜻 깊은 만남의 시간이 있었다.
    방학동안 교장선생님께 도착한 편지가
    무려 칠백 여 통..
    그걸 다 학생들이 손 편지로 직접 써서 보냈는데,
    방학 동안 그 편지들을 일일이 다 읽어보고
    감동을 받으신 교장선생님께서
    직접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이 얘길 하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와 요즘 중학생들이 선생님한테 손 편지를 써?" 하며
    의아해 하거나 놀랄 거다.
    여기엔 우리 학교만의 특별한 이유가 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중학교에는
    대부분 아줌마 학생들이 다니고 계신다.
    여러 가지 말 못할 사연들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다가
    이제야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신 분들이다.
    그 분들이 학교를 다니시면서
    그동안 몰랐던 공부의 재미도 알게 되고
    마음에 쌓였던 공부의 한을 풀 수 있게 됐다며,
    방학동안 교장선생님께 감사의 편지를 쓰기로
    마음을 모으셨다는 거다.
    편지를 직접 받아 한 통 한 통 다 읽으신
    교장선생님의 감동은 말할 것도 없었고,
    그 자리에 오신 모든 학생 분들에게
    일일이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행복해하셨다.
    내가 학교 다닐 때도
    한 학년이 마무리 되는 이때쯤이면
    친구들이랑 손 편지 참 많이 주고받았었는데..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함께 행복해지는 따뜻한 시간 속에 있으니까
    나도 문득, 그동안 소원했던 친구들에게
    편지 한 통 써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촌스러워 보인다고 해도,
    시간이 좀 많이 걸려도 괜찮지 않을까?
    진심이란 원래 있는 그대로, 천천히 전해지는 거니까.
    짐 정리하다가
    무심코 발견한 오래된 편지들, 사진들처럼
    살다보면 문득문득
    좋았던 어떤 시절이 떠오를 때가 있다.
    우리 학교 학생 분들에게
    이번에 함께한 이 자리가,
    오래 시간이 지난 뒤에도 떠올리면 행복해질
    학창시절의 좋은 추억이 되길 바라본다.
    3 min
  • 2017/2/17 소방사 시험, 4전 5기까지 간다
    2주 전에, 소방간부후보생 시험에서 떨어졌다.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시험인데
    이번에 커트라인이 무려 95점!
    점수를 확인하고 나니 더 힘이 빠졌다.
    내 점수는 평균 80점을 겨우 넘겼기 때문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험은
    합격점과 0.4점 차로 떨어졌고,
    세 번째 시험은 3문제 차,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준비한 이번 시험에선
    커트라인과 무려 15점 차이로 떨어지고 나니까
    이건 내 길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현직 소방관인 나는,
    일반 9급 소방사 시험에 합격해서
    7급에 준하는 간부후보생이 되기 위해 시험을 본 건데,
    쉽게 말하자면
    군대를 갈 때 장교로 가느냐, 일반 사병으로 가느냐..
    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험을 보기 위해서
    야간 근무를 하고 난 뒤에도 쏟아지는 잠을 쫓으며
    하루에 서너 시간 겨우 자며 공부에 매달렸었다.
    그런데 이번엔 생각보다 크게 아쉽지가 않다.
    세 번째까진 계속 아쉽게 떨어지니까 충격이 컸는데,
    이번엔 그저, ´어? 합격자 명단에 내 수험번호가 없네?´
    그러고 나선, 한 숨 한 번 길게 쉬고는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한 탄 한 번 더 하고 그걸로 끝!
    실패도 자꾸 거듭하다보면
    적응이 돼버리는 걸까?
    무엇보다, 그동안 시험 공부할 때
    뒷바라지 해준 아내에게 제일 미안했다.
    이번엔 꼭 합격해서 기쁘게 해주고 싶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지금까지 공부에 매달렸던 시간들을
    가족들을 위해 쓰기로 마음 먹었다.
    먼저, 아이들과 1박 2일 여행을 다녀온 다음,
    아내에게 특별휴가도 줘야지
    그러고 나서 운동이든 공부든,
    내가 하고 싶은 게 뭐가 있나..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다.
    무엇을 하든, 내 인생의 가장 큰 목표는
    친구 같은 아빠, 자상한 남편, 멋진 소방관이니까!
    언제나 이 커다란 뿌리를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나 자신에게 다짐해본다.
    3 min
  • 2017/2/16 남편의 마음도 때론 여리답니다
    (아내) "여보! 다음 주 내 생일에 점심 같이 먹을 수 있어요?"
    안 그래도 나는 아내 생일을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초등학교 6학년, 5학년 2학년 우리 삼남매..
    겨울방학 동안 어디 제대로 데리고 가지도 못했고 해서
    나름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미리 아내 생일에 맞춰 회사에 휴가를 내놓고는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말이다.
    말하면 얼마나 좋아할지..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아내에게 말을 꺼냈다.
    (남편) "나 사실.. 다음 주 당신 생일날이랑 전날 휴가 냈어요~
    우리 애들이랑 같이 어디 여행이라도 가요."
    엄청 좋아할 거란 기대와는 달리,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아내가 하는 말..
    (아내) "근데 여보.. 휴가까진 필요 없는데.."
    알고 보니 아내는,
    새해 들어 설이며 장인어른 생신까지 치르고 나니,
    재정적으로 빠듯하다 싶어서
    그냥 생일에 대충 점심이나 같이 먹으려고 했다는 거다.
    아내의 설명에도 내가 아무 말 없이 가만있으니까
    눈치를 살피던 아내가 한톤 높아진 목소리로 다시 말을 꺼냈다.
    (아내) "당신이 그렇게까지 생각한 줄도 모르고.. 미안하네~
    그래요.. 애들 데리고 1박 2일 정도 계획해 봐요.
    당신도 그동안 너무 바빴으니까 좀 쉬고"
    아내의 생일도 생일이지만
    사실은 내가 쉬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회사에서 일은 많고, 사람들 때문에도 힘들어서
    이틀만이라도 다 잊어버리고는
    아이들과 신나게 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내 나름으론 미리 휴가까지 내면서
    이벤트라고 준비를 한 거였는데,
    아내의 반응이 못내 서운하면서도
    한편으론 이것저것 생각할 게 많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결혼 14년 동안, 생일 선물은 말도 꺼내지 않는 사람이라
    그저 딱히 필요한 게 없나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내가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라고 왜 받고 싶은 선물이 없었을까?
    비록, 내가 상상했던 폭발적인 반응은 얻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벤트 한 김에 끝까지 제대로
    준비 한 번 해봐야겠다.
    "여보! 나도 당신 말 한 마디, 반응 하나하나에 상처 받는
    여린 남자라는 거.. 알아주세요
    우리 여행 가서 아이들이랑 신나게, 재밌게 놀고 옵시다.
    생일 축하합니다!"
    3 min
  • 2017/2/15 큰딸만 자식이 아니라구요
    나와 4살 차이인 언니는
    냉정하고 잔정도 없는 성격이라
    부모님이나 나한테 그리 살가운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언니는 늘,
    누구보다 부모님의 기대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언제나 언니니까, 언니가 먼저, 언니는 맏이니까..
    그래서 나는 언니가 그런 대접을 받는 게
    늘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다 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점점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결혼 하고 부모님 생신날,
    내 딴엔 정성을 다해서 이것저것 생신 상을 차렸는데도
    부모님은 형부가 사온 회가 맛있다며
    역시 큰딸이 최고라는 칭찬만 거듭하셨다.
    섭섭했지만, 내 음식이 부족했나.. 싶어
    그냥 잊어버리자 했었다.
    그리고 친정 부모님과 언니 부부 사이에 오해가 생겨
    거의 2년간 서로 연락도 안 하고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 사이, 부모님이 편찮으시거나
    친정에 챙겨야 할 일들이 있으면
    내가 나서서 다 하곤 했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언니와 연락을 하게 되셨다며
    그 어느 때보다 좋아하시는 두 분을 보니까,
    잘됐다.. 싶으면서도
    부모님껜 내가 또 안중에도 없는 자식이 돼 버린 기분이다.
    아이 둘 데리고 기차타고 버스타고
    서너 시간 걸려 매달 찾아뵙곤 했는데..
    지금에 와서 생색내고 싶은 건 아니지만
    왜 이렇게 부모님께 서운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나도 자식을 키우고 있으니까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을까.. 싶으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한 이 기분은
    어떻게도 설명이 되질 않는다.
    서운할 땐 솔직하게 서운하다고 얘길 해야 되나?
    아니면.. 언니랑 상관없이
    그냥 나 할 것만 잘하면 되는 걸까?
    내가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 건지..
    나이를 먹고 부모가 됐는데도
    아직도 어렵고 모르는 것들이 참 많구나.. 싶은 요즘이다.
    3 min
  • 2017/2/14 이겨내자, 볼빨간갱년기
    며칠 전, 적금 해약할 일이 있어서
    점심시간 쯤 은행에 갔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는데,
    저만치 떨어진 창구 쪽에서
    나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남자 직원 분이
    내 번호를 호출하고는 상냥하게 안내를 해주셨다.
    적금을 해지하겠다는 얘기를 하고 나서
    직원 분이 요즘 나온 새로운 상품들을 소개해주시는데,
    갑자기 느낌이 왔다.
    요즘 들어 부쩍 심해진 갱년기 증상이 시작된 거다.
    속에서는 뭔가 후끈한 것이 자꾸 올라오고
    그 열기가 얼굴까지 전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까,
    직원분이 얘기를 멈추더니
    "차 한 잔 드릴까요?" 하고 묻는다.
    홍당무가 된 얼굴로 "괜찮다" 하고는
    눈도 못 마주치고 통장만 뒤적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정황상, 남들이 보기엔
    내가 마치 이 직원을 몰래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지금 내 모습이 꼭, 짝사랑하는 사람 앞에 앉아
    수줍어 어쩔 줄 몰라 하는 딱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갈수록 얼굴은 더 화끈거렸고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눈치 없는 직원은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
    뭐라고 뭐라고 말을 거는데,
    땀까지 몽글몽글 나기 시작하자 결국,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하고는
    도망치듯 은행을 나왔다.
    집에 와서 숨 좀 돌리고 생각하니까
    그때서야 내가 왜 그랬나 싶었다.
    그냥 내 몸이 반응하는 갱년기 증상일 뿐인데
    괜히 다른 사람들 오해할까봐
    도망치듯 은행을 빠져나온 게 참 어이가 없었다.
    걱정하던 직원에게
    그냥 갱년기 증상이라 그렇다고 얘기라도 할 걸 그랬나?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나 갱년기라 그래요.’ 하는 것도 우스웠을 것 같다.
    어쩜 나이가 들수록 더 소심해지고 생각만 많아지는지..
    늙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갱년기 증상에, 다른 사람들 눈치까지 보느라 더 힘들다.
    나이가 들면 사는 일이 조금은 만만해지고 편해질 줄 알았더니
    나이 넘어가는 고개마다 고비구나..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오늘 일기 보내주신 김지우님께 선물 보내드릴게요.
    요즘 갱년기라며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인생에서 또 한 번의 사춘기 같은 시기를 겪는 느낌이라고..
    내 기분을 나도 어쩌지 못하겠고,
    갑자기 확확 열이 오르는 내 몸의 변화가 당황스럽다며 말이죠.
    아이들 사춘기 보면서
    ´그래.. 지금은 그럴 때다. 힘들지 않게 얼른 지나가라.´
    그러잖아요.
    갱년기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저 지금 내 나이가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지금은 그럴 때다.. 너무 힘들지 않게 지나갔으면..
    그러는 수밖에요.
    나한테 더 잘해주고 더 신경써주면서!
    가족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인생에서 넘어야 할 수많은 고개들이 있지만
    그 고비도 함께 넘으면
    훨씬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3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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