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의 12시에 만납시다

이수영의 12시에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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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의 12시에 만납시다 episodes

  • 2017/3/31 이상은 제철 꽃게탕, 현실은 맹탕?
    남편과 함께 늦은 시간에 마트에 장을 보러갔다.
    마감시간이 임박해서인지 여기저기서 마감세일에 들어갔고
    평소에 해물을 좋아하는 남편,
    세 팩에 2만 원이라는 말에 단박에 동태, 새우, 꽃게를 집어 들었다.
    (남편) "여보 대박이야. 이거 다 해서 2만 원이래"
    (아내) "오 그래? 대박이다. 얼른 카트에 담아!"
    장을 다보고 집에 와서 정리를 하는데
    그제야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아내) "근데 이거.. 어떻게 요리하는 거지?"
    (남편) "음.. 뭐 그냥 검색해보면 되지 않을까?"
    신혼 1년차, 우린 거의 외식과 배달음식으로 해결하는 맞벌이 부부다.
    생전 꽃게를 다듬어 본 적도,
    해산물로 요리라는 걸 해본 적도 없었지만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댄가!
    남편한테 아무 걱정 말라고 큰소리를 치고는
    인터넷에서 해물탕 레시피를 찾아 꽃게다듬기에 들어갔다.
    뾰족한 부분들을 가위로 잘라내고 등껍질을 뜯고..
    휴우~ 꽃게 다듬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그다음, 무와 호박을 썰고 미나리, 콩나물 다듬고
    파랑 청양고추를 써는데 그것만 했는데도 30분.
    안 그대로 허둥지둥하느라 두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인데,
    남편은 아직 멀었냐며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거다.
    (아내) "아 진짜! 신경 쓰이니까 거실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어!"
    남편에게 버럭 소리 한 번 지르고는
    차례차례 재료를 넣고 팔팔 끓이다가 중간 중간 간을 보는데,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맛에 화들짝 놀랐다.
    (아내) ´이거 뭐지? 왜 이런 맛이 나는 거지?´
    그래도 들어갈 거 다 들어갔으니 무슨 맛이라도 나겠지 싶어서
    2시간 만에 드디어 해물탕을 식탁에 올렸다.
    (아내) "나 처음 해보는 거 알지? 맛없어도 잔소리 하지 마!"
    그런데 남편의 반응이 신기했다.. 아니, 이상했다.
    생각보다 너무나 맛있게 먹는 거다.
    (남편) "와 완전 맛있다. 자기 요리 잘하네 내가 재료 잘 골랐지?
    우리 앞으로 종종 이렇게 집에서 해먹자, 응?"
    뭐지 이거? 왠지.. 앞으로 집에서 요리 좀 하라는
    고도의 전략 같은데?
    사실 가격으로 치면 외식을 하나 집에서 해먹나 그게 그거다.
    재료비에, 산더미 같은 설거지에, 음식쓰레기까지..
    둘 다 힘들게 일하니까 차라리 사먹는 게 남는 거다 싶지만,
    그래도 남편이 이렇게 잘먹어주니
    다른 메뉴에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 그리고 다음번엔 남편에게도
    이런 좋은 기회를 꼭 만들어주고 싶다.
    "자기야! 나도 다음에 장보러 가면
    싸고 좋은 재료들 듬뿍 골라줄 테니까
    자기 요리솜씨도 꼭 한 번 뽐내주길 기대할게"
    4 min
  • 2017/3/30 경비원 아저씨, 가지 말아요
    우리 딸, 다른 건 몰라도 인사성 하나만큼은 정말 최고다.
    엘리베이터에서 어른들을 보면
    바로 배꼽 손 올리고, “안녕하세요”
    지나가다 언니오빠들을 봐도,
    “언니 안녕? 오빠 안녕?”
    그래서 우리 딸, 특히 아파트 경비아저씨 분들께 인기가 참 많다.
    한달음에 달려가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니까
    할아버지뻘 되시는 경비아저씨들 눈엔
    예쁘고 기특해 보일 수밖에.
    아이들은 칭찬을 먹고 자라는 새싹들이라더니,
    어른들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진 딸아이는
    더 열심히 인사를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치원에서 딸아이를 데리고 오는데
    유난히 우리 아이를 예뻐해 주시던 경비아저씨께서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계신 거다.
    역시나 쪼르르 달려간 딸아이가 인사를 하니까
    경비아저씨께서 딸아이의 손을 꼭 잡으며 반가워하셨다.
    (경비아저씨) “아이고 혹시나 못 보고 갈까봐 걱정했네
    우리 착한 어린이 유치원 잘 갔다 왔어요?
    오늘이 할아버지 마지막으로 일하는 날이라서
    인사하려고 기다렸지
    엄마 말씀 잘 듣고 건강하게 잘 커요”
    그리고는 딸아이가 좋아할만한 간식거리들을
    한보따리 가득 손에 쥐어 주셨다.
    퇴직하고 경비 일을 하시면서 힘들 때마다
    우리 아이의 인사가 큰 힘이 됐다며,
    몇 번이나 아이에게 고맙다고 하셨다.
    헤어짐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가
    “할아버지 가지마세요! 내일도 만나요!”
    하며 아저씨의 손을 꼭 잡는데,
    나도 코끝이 찡해졌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건강이 안 좋으셔서 당분간 좀 쉬기로 하셨단다.
    부디 건강이 빨리 회복되셔서
    꼭 다시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웃들과 인연을 맺는 게
    인생에서 참 아름다운 시간이라는 걸..
    어린 딸아이 덕분에 배워가고 있다.
    앞으로는 나도 아이를 따라
    반갑게, 기분 좋게.. 먼저 인사를 건네 봐야겠다.
    3 min
  • 2017/3/29 다진 마늘은 왜 돈까스가 될 수 없었나?
    퇴근하면 바로 굽기 좋게 해동되라고
    냉동실에서 돈가스를 꺼내 싱크대 위에 올려두고 출근을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회의가 길어지는 바람에
    부랴부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 "여보! 당신 바로 퇴근할 수 있지?
    싱크대 위에 돈가스 있으니까 그거 튀기고 밑반찬 꺼내서
    애들이랑 같이 저녁 먹어. 나도 끝나는 대로 바로 갈게."
    한시름 놓고 다시 회의를 하고 있는데
    잠시 뒤..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다.
    (남편) ´싱크대 위에 돈가스 없는데? 냉동실에도 없어´
    (아내) ´잘 찾아봐. 아침에 싱크대 위에 올려놨어.´
    그런데 또 다시 온 남편의 문자..
    (남편) ´당신이 착각한 거 같은데? 돈가스 없어.´
    아니 이 양반이 장난하나
    바로 나가서 전화를 걸었다.
    (아내) "아침에 내가 분명히 싱크대 꺼내 놓고 나왔는데 그걸 못 찾아?
    눈에 보이는데 놔둬도 어쩜 그렇게 한결같이 못 찾니?
    그럼 지금 싱크대 위에 있는 건 뭔데? 확인은 해봤어?"
    (남편) "다 찾아봤다고! 암만 찾아도 돈가스는 없고
    다진 마늘만 있는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순간, 갑자기 번뜩 든 생각..
    며칠 전에 돈가스 다 먹었다고
    시간 나면 또 만들어놔야지.. 했던 게 떠올랐다.
    그렇다면 내가, 아침에 급하게 나오느라
    납작하게 얼려놓은 다진 마늘을 돈가스로 착각했다는 얘기?
    잠시 당황스러운 침묵이 흐른 뒤,
    나는 실수를 깨닫고 재빨리 남편에게 사과를 했다.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허, 참, 나´ 를 반복하더니 전화를 끊어버렸고,
    저녁은 결국 돈가스를 배달시켜 먹기로 했단다.
    퇴근하고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아내) "아우 우리 남편 잘해쪄요 고생해쪄요"
    폭풍칭찬을 쏟아냈더니,
    남편도 슬쩍 기분이 풀렸는지 말투가 누그러졌다.
    (남편) "아~ 몰라! 돈가스 찾느라 냉장실, 냉동실 다 뒤졌더니
    머리에 열나는 거 같아.
    앞으론 내가 안 보인다, 없다.. 하면 그런 거야. 알겠지?"
    만날 잔소리 듣다가
    간만에 기세등등해진 남편의 표정에 웃음이 났다.
    미안하다고, 잘했다고 우쭈쭈 조금 더 해주면서
    다음에 돈가스 만드는 거,
    돈가스랑 다진 마늘에 이름표 붙이는 거
    같이 하자고 살살 꼬셔봐야겠다.
    3 min
  • 2017/3/28 민간 외교관이 뭐 별건가?
    지난 3월 19일부터 25일까지
    내가 살고 있는 대구에서
    <2017 대구 세계 마스터즈 실내육상경기대회> 라는
    국제 행사를 개최했다.
    우리 고향에서 하는 큰 행사니만큼,
    나도 뭔가 하자.. 싶어서 자원봉사자에 지원을 했다.
    내가 봉사를 맡은 곳은 선수들이 묵는 호텔이어서
    덕분에 많은 외국인 선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물어올 때마다,
    열심히 찾아보고 공부해서
    대구의 유명한 전통시장이나
    문화재가 있는 곳 등을 안내해 주는 것 또한
    내 일이고 보람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바빴던 대회 일정이 지나
    어느 덧 폐막식을 앞둔 25일, 점심시간이었다.
    식사를 하러 나가던 중에
    그동안 친해진 외국인 선수 두 명을 만났는데,
    나를 따라가서 한국음식을 먹고 싶다는 거다.
    순간, 선뜻 같이 가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사실 봉사 기간 동안 내가 점심을 해결한 곳은
    호텔 근처의 기사식당이었다.
    한 끼 4,000원 정도라 값도 싸고,
    무엇보다 반찬, 밥, 국이 무한 리필인데다가 커피까지 서비스!
    나로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좋은 곳이었지만,
    과연 외국인 선수들 입맛엔 어떨까 싶어 망설여졌는데,
    하도 같이 가고 싶다 하니까 거절하기도 그래서
    결국, 같이 가자 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내가 걱정하고 고민했던 게 무색해질 만큼
    이 외국인들, 한국식 스타일에 푹~ 빠져버린 거다.
    맛에 한 번 놀라더니,
    얼마든지 더 먹어도 된다는 말에 두 번 더 놀라고,
    이렇게 먹어도 4달러도 안 된다는 말에
    ´오 마이 갓!´, ´언빌리버블´ 온갖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외국인들이 감탄을 하며 맛있게 먹으니까
    식당 사장님도 기분이 좋으셨는지,
    구수한 숭늉을 내놓으시며
    한국의 전통 음료라는 소개까지 해주셨다.
    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그들이 좋아하고 만족해했다는 걸
    표정과 말투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나도, 나름 ‘민간 외교관’ 역할
    톡톡히 해낸 거 아닐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게 참 뿌듯한 일이라는 걸
    이번 자원봉사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이제 그 뿌듯함을 다시 일상으로 가져와서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의 자원봉사자가 되어주고 싶다.
    작은 힘이나마 이 세상이, 내 인생이
    조금은 더 아름다워질 수 있길 바라면서!
    3 min
  • 2017/3/27 내 두 발과 산이 하나되는 이 시간
    오늘은 점심 먹고 사무실에서 커피나 마시면서 쉴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건강에 이상이 오면서 회사 근처 야산에 오르기 시작한 게
    벌써 몇 개월째..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산을 오를 땐 숨이 턱턱 차오른다.
    ´아~ 그냥 커피 한 잔 하고 쉴 걸.. 왜 사서 이 고생이지?
    다시 돌아갈까?´
    산에 오르는 동안 하루도 이 생각을 안 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어느 덧 능선에 오르면
    평평한 길을 따라 발걸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하고,
    기분 좋게 땀이 맺히면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산에 오르다보면
    그 어디보다 봄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입고 갔던 옷을 벗어서
    허리에 두르고 걸을 만큼 따뜻해졌고,
    눈과 얼음 때문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걷던 길엔 노란 개나리가 피어났다.
    오며가며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 나누고 안부를 묻는 일도
    어느 새 자연스러워졌다.
    운동을 하면서 기분 좋은 변화들도 몇 가지 생겼는데,
    무엇보다 꽉 끼던 옷이 조금씩 헐렁해졌다는 거..
    이제 제일 기분이 좋다.
    보는 사람들마다 피부도 좋아졌다고 하고,
    마음을 자연스럽게 열기 시작한 것도
    긍정적인 변화 중의 하나다.
    산 좋아하는 사람들, 왜 그렇게 산에 못가 안달일까.. 했었는데,
    이젠 그 매력을 나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목표가 있다면,
    바쁘게 사느라 왔는지 갔는지도 몰랐던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산을 걸으며 오롯이 느껴보고 싶다는 것!
    사는 즐거움이 별 건가?
    좋은 거 보면서 좋다고 느끼고
    무엇보다 건강하게 사는 게 최고지!
    겨울부터 시작된 이 운동이
    한 바퀴 잘 돌아 다음 겨울로 이어질 수 있게..
    내 두 발로 힘차게 버티며 한 걸음 한 걸음씩
    내일도 모레도, 열심히 걷고 또 걷고 싶다.
    3 min
  • 2017/3/25 나는 오늘도 희망의 좌판을 엽니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오일마다 서는 장날인데도
    좌판을 펼쳐 놓은 상인들은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가게 앞에서 옷가게를 하는 동생이
    심심했는지 말을 걸며 들어왔다.
    (동생) “언니야 시장에 사람이 왜 이래 없노?
    장날인데도 사람이 이래 없으면 우짜노.
    사람들 다 꽃구경, 바다 구경 갔는 갑다.
    내가 지난 장에 영덕에 갔는데, 거는 사람이 넘쳐나드라”
    한창 수다를 떨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자 파는 아주머니셨다.
    “아이고~ 야들아~ 장사가 안 되도 느무 안 된다.
    손님도 없고.. 차 한 잔 마시까?”
    지난겨울엔 날씨만 따뜻해지면 괜찮겠지.. 라는 희망으로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는데,
    막상 날씨가 따뜻해졌는데도 장사가 안 되니까
    무슨 희망을 또 가져야 하나..
    괜히 힘이 빠졌다.
    사실, 장사를 접을까도 싶을 때도 있었지만,
    어머님 때부터 해온 가게라
    쉽게 문을 닫을 수가 없었다.
    아버님 일찍 돌아가시고, 혼자 이 가게 꾸리시면서
    어머님은 아들 삼형제를 키우셨고,
    쓰러지셔서 병원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가게를 지키셨다.
    서울에 있는 형님 대신,
    둘째인 나에게 이 가게를 물려주시면서
    “우리 둘째.. 돈 많이 벌어가 꼭 부자 되그래이” 하셨는데..
    아쉽게도 아직 부자는 못 됐고
    그럭저럭 먹고 살 정도만 되는 형편이다.
    어디 나만 그럴까?
    장사하시는 모든 상인들에게 가게는
    자신들의 삶의 굳은살이 박여 있는 곳이다.
    때로는 아프고 없애고 싶어도
    그게 내 인생이지 싶어서 쉽게 떼어낼 수 없는 굳은살!
    여자 셋이 모여 한바탕 수다를 떨고 나니
    어느 새 주변이 어둑어둑해졌다.
    펼쳐져 있던 좌판들도 다 걷히고
    우리도 슬슬 가게문 닫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빈주머니지만 내일은 두둑해지겠지?
    때론 못 미더워도 그런 희망으로 하루하루 사는 거니까,
    나는 오늘도 내일도.. 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다.
    꽃구경, 바다구경만큼 볼 것 많은 시장 구경도
    많은 분들이 와주셨으면 좋겠다. 진짜 참 좋겠다!
    3 min
  • 2017/3/24 정우성만 얼굴이냐, 내 얼굴도 봐줘
    며칠 전 점심시간..
    여직원들이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다들 어디 갔나? 단체로 맛있는 거 먹으러 갔나?´ 하고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동료가 그러는 거다.
    (동료) "오늘 정우성이 오는 거 알제?
    여직원들 몽땅 다 정우성이 보러 갔다 아이가
    며칠 전부터 그래 난리를 치디만, 밥도 안 묵고 다 가삣네
    그동안 보고 싶어가 우예 참았는고?"
    그러고 보니 보름 전쯤,
    회사가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근처에서 영화 촬영을 하는데
    주인공인 배우 정우성이 온다는 거였다.
    유명세답게 며칠 전부터 현수막이 걸릴 정도였으니
    다들 아주 호들갑을 떨고 난리를 쳤었는데
    그게 바로 그날이었던 거다.
    "정우성이 머라꼬 밥도 안 먹고" 코웃음을 치면서도
    남자 직원들의 표정이 씁쓸해 보였다.
    하긴.. 남자인 내가 봐도 정우성! 괜찮지!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음.. 뭐랄까..
    훨씬 더 이상이니 뭐라 설명할 말이 없다.
    점심시간이 끝나자
    여직원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여기저기서 아주 신이 난 이야기꽃들이
    활짝 활짝 피기 시작했다.
    (여직원1) "봤나? 사람이 막 빛이 나더라 번쩍번쩍~"
    (여직원2) "맞제 인증샷이라도 찍고 싶었는데,
    보고 있으니까 사진 찍을 생각도 안 나대"
    (여직원3) "나는 우리랑 같은 사람 맞나 싶드라.
    우째 그래 잘 생겼겠노 그런 얼굴이면 모든 게 용서된다."
    듣고 있다 보니 헛웃음이 났다.
    나는 여직원들을 향해 항의하듯 말했다.
    (나) "저기요~ 내가 한마디만 합시다.
    내가 결혼상대로 예쁜 여자 좋다카니까
    내한테 뭐라 했는지 기억들 납니까?
    ´얼굴 뜯어 먹고 살 거냐, 예쁜 거 금방 질린다, 정신 차려라´
    오만 잔소리 하면서 내 속물 취급 하드만,
    지금 뭐라꼬요? 그 얼굴이면 모든 게 용서가 된다꼬요?
    이 사람들이!"
    내 말에 여직원들이 슬쩍 무안한 듯 웃었다.
    남자들이 여자 외모 얘기하면 속물이라고 몰아세우면서
    남자들 외모 얘기는 당당하게 하는 여자들!
    같은 마음이면서 왜 남자만 욕하는지 모르겠다.
    외모가 다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누구나 외모에 먼저 마음이 가는 게 사실!
    보이는 것보다 숨어 있는 내 매력 먼저 찾아줄 그녀는
    도대체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우리.. 이제 좀 만나면 안 될까요? 네?"
    3 min
  • 2017/3/23 아버지와 문패
    초인종 소리가 나서 인터폰 화면을 보니
    남편이었다.
    (아내) "번호 누르고 들어오면 되지 벨은 왜 눌러? 심심해?"
    (남편) "그게 아니고.. 빨리 나와 봐 이 사람아!"
    장난기가 살짝 섞인 남편의 흥분된 목소리가 수상했다.
    이 남자가 왜 이렇게 신이 났나 싶어
    얼른 밖으로 나갔다.
    빌라 현관 앞에 서 있던 남편이
    나를 발견하고는 활짝 웃었다.
    (남편) "짜잔! 여기를 보세요"
    남편이 가리킨 현관 옆에는
    남편과 내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예쁜 문패가 달려 있었다.
    (아내) "이게 뭐야 창피하게. 요즘 문패 다는 집이" 어디 있어?"
    (남편) "뭐 어때? 내 집에 우리가 산다는 표신데."
    문패는 예뻤지만,
    괜히 쑥스럽고 불편했다.
    단독주택이면 몰라도,
    여러 가구가 사는 빌라에 문패를 달아 놓은 집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싱글벙글 웃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으니
    문득 초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내가 어렸을 때 기억으로는
    우리 집은 해마다 이삿짐을 쌌던 거 같다.
    짐 풀고 이제 좀 정리가 됐다 싶으면
    또 이삿짐을 싸고, 풀고, 또 싸고..
    그땐 포장이사라는 게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얼마나 고되던지,
    어린 나이에도 ´우리 집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참 간절했었다.
    그러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하던 해..
    드디어 우리 집이 생겼다.
    크고 좋은 집은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평생의 꿈이라도 이루신 듯
    환하게 웃으며 대문 옆에 문패를 다셨다.
    그때의 아버지처럼, 문패를 보며 웃는 남편을 보니까
    마음이 울컥했다.
    (아내) "그래~ 계속 보니까 좋네. 우리 집 맞네."
    슬며시 남편의 팔짱을 끼고
    문패를 보면서 나도 슬쩍 따라 웃었다.
    매일매일 현관을 드나들 때마다
    우리 부부의 이름을 보면서 다짐해야겠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복하게 잘 살자고,
    이렇게 달아 놓은 이름값 하면서 살자고 말이다.
    3 min
  • 2017/3/22 이얍! 태권소녀도 여자랍니다
    태권도를 시작한지 어느 새 6년 째..
    4단을 땄다고 하면
    주위에서 다들 놀라고 신기해하는 눈치다.
    어떤 선배는
    "너 기합소리는 낼 줄 아냐?" 하며 웃었고,
    친구 하나는
    "태권도를 왜해? 뭐가 재밌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소개팅에 나가서 취미가 뭐냐는 말에
    ´태권도´라고 했더니
    상대편 남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태권도 싸움 잘 하시겠네"
    사실 나도 왜 태권도를 배우냐고 물으면
    이런 이유라고 딱 꼬집어서 말하긴 어렵다.
    지난달엔 학부모님들 앞에서 보여드리는
    학예회식 심사를 했다.
    그런데 늘 지적 받는 문제점 중에 하나가,
    오래 태권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기합소리가 어이없을 만큼 수줍고 짧다는 거다.
    여자 아이들 장난칠 때 내는 소리처럼
    "야! 야!" 이렇게 기합소리를 내니까,
    보다 못한 관장님이 한 소리 하셨다.
    (관장님) "아이고 이렇게 쑥스러워서 어떡하나?
    운동하는데 예쁜 척 해서 뭐하게?
    자신감 있게! 배에 힘 딱 주고! 다시 한 번!"
    그런데 심사 당일이 되자, 이게 웬일?
    어디서 갑자기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나도 깜짝 놀랄 만큼
    우렁찬 기합소리가 나오는 거다.
    내 기합소리에 구경 오신 학부모님들이
    여기저기서 "아이고 놀래라" 하며 웅성거릴 정도로 말이다.
    그날 심사가 끝나자마자
    동료들과 관장님이 다들 한마디씩 했다.
    (동료) "저거 저거 다 내숭이었구만?"
    (관장님) "그러게저 큰 목소리를 어떻게 숨기고 있었대?
    오늘 니 기합소리 덕분에 어린 친구들도 덩달아 목소리 커지더라
    진짜 잘했어."
    내숭은 아니었는데..
    그날 심사장의 분위기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거 같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는 걸까?
    혹시 나.. 무대 체질인가?
    앞으로는 누가, ´왜 태권도를 하느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 해야겠다.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재미´ 때문이라고.
    숨어 있던 내 기합소리를 찾아냈으니
    앞으로 또 뭘 찾아낼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나는 오늘도 태권도장에 간다.
    3 min
  • 2017/3/21 할머니와 나는 최고의 케미
    (엄마) "너는 너는 이걸 옷이라고 샀어?
    아이고 참.. 돈이 아주 썩어나지?
    넉넉하게 편한 걸로 사야 오래오래 입지"
    우리 엄마 또 시작이다.
    내가 쇼핑만 했다 하면
    엄마는 뭐가 그렇게 맘에 안 드는지 잔소리가 늘어진다.
    그럴 때마다 나의 구세주는 우리 할머니!
    (할머니) "뭘 그러냐 이쁜 거 잘 샀구만.
    아이고 이쁜 것! 우리 손녀딸은 뭘 입어도 이쁘다."
    할머니는 젊으셨을 때 미용실을 하셨다고 한다.
    그래선지 아주 멋쟁이시고 세련되셨다.
    할머니 말로는
    엄마는 어렸을 때 늘 ´선머슴아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멋 부리는 거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난 할머니를 닮은 거 같다.
    안목도 있고 센스도 있고
    무엇보다 찰떡처럼 잘 맞으니까!
    며칠 전에 할머니랑 같이 쇼핑을 갔다.
    할머니는 요즘 트렌드도 기가 막히게 잘 아셔서
    같이 가면 척척 골라내시는 게
    어쩜~ 딱 내 스타일이다.
    내가 긴 바지를 보고 있으면,
    (할머니) "너는 다리가 이쁘니까 좀 짧은 바지도 잘 어울려"
    너무 화려한가.. 망설이고 있으면,
    (할머니) "아이고 이쁘다 이뻐! 안 그래도 이쁜 얼굴이 더 사네"
    이런 할머니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 할머니에겐 비밀로 했지만
    적금을 들어 놓은 게 있다.
    우리 할머니 백만 원 용돈 드리려고
    아르바이트 월급에서 매달 3만원씩 넣어둔 게
    조금 있으면 만기가 된다.
    마음 같아선 더 잘 해드리고 싶은데
    아직은 내가 돈을 많이 벌지 못해서 많이 아쉽다.
    그래도 우리 할머니는
    "어이구 요 이쁜 것!" 하며 좋아하시겠지?
    얼른 적금 타서
    빳빳한 돈으로 봉투 채워 할머니께 드리고 싶다.
    아끼지 말고 맛있는 거 많이 사드시라고.
    그리고 이렇게 생색도 내야지.
    (나) "할머니! 이런 손녀 봤어? 나 같은 손녀 없지?
    할머니 손녀가 최고지?"
    그럼 할머니는 분명 이렇게 말씀하실 거다.
    (할머니) "그럼 그럼~ 우리 손녀가 최고지. 세상에서 제일 이쁜 것!
    어디서 요런 게 나왔을고~"
    3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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