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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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episodes

  • 185회 마오쩌둥·밴플리트·이회영 가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난달 22일 북한에서 중국인 관광객 32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사망자 시신과 부상자를 후송하는 전용 열차에 올라 침통한 표정으로 전송하며 “속죄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사망자 중에 뭔가 중요한 인물이 포함된게 아니냐는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의 행적이 관심을 끌었다. 교통사고가 한국전쟁에서 숨진 마오쩌둥(毛澤東)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이 묻혀있는 평안남도 회창군의 ‘중국 인민지원군 참전 사망자 묘역’을 참배하고 돌아오던 길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화교권 매체는 “사망자 가운데 마오쩌둥 주석의 차남인 마오안칭(毛岸靑)의 외아들, 즉 마오쩌둥의 손자인 마오신위(毛新宇)가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마오 주석의 유일한 적손인 마오신위는 2010년 40세의 나이에 중국 최연소 군 장성으로 승진해 중국 군사과학원 전략연구부 부부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졌지만 곧 가짜뉴스로 판명됐다. 당사자인 마오신위가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도 궁금증은 남는다. 마오 주석이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장남 마오안잉은 왜 한반도 북한 땅에 묻혔을까.
    33 min
  • 184회 '투사가 되라!' 윤봉길 의사가 젖먹이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
    “선생님, 제가 채소바구니를 짊어지고 날마다 홍구(虹口·훙커우) 방면으로 다니는 이유가 있습니다. 큰 뜻을 품고 천신만고 끝에 상해(上海·상하이)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입니다.…아무리 생각해도 죽을 자리를 구할 수 없으니 선생님께서….”
     1932년 4월 1일 상하이 임시정부를 이끌던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에게 한 청년이 찾아왔다. 충남 예산에 아내와 세 자녀(1녀2남)를 남겨둔채 혈혈단신 1931년 5월 상하이로 건너온 24살 청년 윤봉길(1908~1932)이었다. 청년은 피혁공장과 세탁소 등에서 일하다가 훙커우 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고 있었다. 백범을 찾아온 용건은 “(이봉창 의사처럼) 나를 독립운동 자원으로 써달라”는 것이었다. 김구 선생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청년의 이모저모를 살펴본 끝에 ‘의로운 대장부’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요. 뜻을 품으면 마침내 일을 이룬다(有志者 事竟成)는 말이 있지…. 사실 내가 요사이 연구하는 바가 있는데 마땅히 사람을 구하지 못해 번민하던 참이었소.”
    35 min
  • 183회 판문점의 어제와 오늘
    1951년 7월8일과 10일 유엔군과 공산군이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1년을 훌쩍 넘긴 한국전쟁을 끝내기 위한 휴전회담을 시작된 것이다.
    7월8일 열린 예비회담(광문동 민가)과 10일 본회담(내봉장)은 모두 개성에서 열렸다.
    개성이 한국전쟁 전의 분단선인 38도선상의 도시라는 점이 감안됐다. 즉 1951년 6월30일과 7월1일 유엔군측이 “휴전을 위한 예비회담을 원산비행장이나 개성~임진강 사이의 국도상에서 개최하고 싶다”고 제의하자 공산군측은 “그럼 회담장소를 38도선 상의 개성으로 하자”고 회답했다.
    개성이 한국전쟁 이전에는 38도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회담장소로 낙점된 것이었다.
    그러나 개성지역이 그 당시 공산군측의 치하에 속했다는 게 두고두고 발목을 잡았다.
    〈이기환 경향신문 논설위원〉
    32 min
  • 182회 ‘낀세대 화가’ 김득신의 ‘조선 최고의 캡처영상’
    조선 후기 풍속도의 계보는 김홍도(1745~)-신윤복(1758~?)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민들의 일상과 애환을 진솔하면서도 해학적으로 표현한 김홍도와, 양반과 기녀들의 사랑과 일탈을 때로는 에로틱하게, 때로는 풍자적으로 그려낸 신윤복의 풍속도가 워낙 빼어났다. 하지만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 사이에 또 한사람의 풍속화가가 있다. 김홍도보다는 9살 아래, 신윤복 보다는 4살 위인 긍재 김득신(1754~1822)이다.
    김득신이 누구인가. 얼마전 끝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화제를 뿌린 여자 컬링팀의 별명이 ‘팀 킴’이었다. 멤버 5명 전원이 공교롭게도 김씨였고, 그것도 영미와 영미 친구, 영미 동생, 영미 동생의 친구 등으로 이뤄진 팀이라 붙은 별명이었다. 18~19세기를 풍미한 풍속 화가 김득신은 조선시대 ‘팀 킴’의 일원이었다.
    32 min
  • 181회 15살 신라 백제 가야인은 나라를 구했다
    “온조왕 41년(기원후 23년) 한수 동북쪽의 여러 부락 사람으로 나이 15세 이상을 징발하여 위례성(慰禮城)을 수리했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등장하는 기사다.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은 아마도 15살을 노동력의 기준 나이로 여겼음이 틀림없다. 후대의 임금들은 바로 이 온조왕의 유훈을 이어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신라의 경우엔 한술 더 뜬다. 신라의 화랑도 조직을 보자. 〈화랑세기〉에는 “13~14살이 되면 낭도가 될 수 있었다”고 기록됐다.
     이 가운데 15살에 풍월주(화랑의 우두머리)가 된 사다함은 걸출한 화랑이었다. 사람들이 풍채가 미끈하고 뜻과 기개가 곧은 그를 화랑으로 받들었다.
     1000명이 그의 밑에 들었다. 561년 진흥왕(재위 540~576)이 가야를 정벌하려 하자 사다함은 출전하겠다고 나섰다. 임금이 ‘너무 나이가 어리다’고 불허했지만, 사다함의 고집을 끝내 꺾지 못했다. 결국 예하 장수가 되어 출전한 사다함은 기습작전의 선봉을 자처했다. 사다함의 전공으로 가야는 마침내 멸망했다.
     진흥왕이 가야 정복의 1등공신이 된 사다함에게 가야 노예 300명과 전지(田地)를 하사했다. 하지만 사다함은 가야 노예들을 모두 풀어주고 논밭과 토지도 사양했다. 왕이 “그래도 받아야 한다”고 강권하자 사다함은 조건을 달면서 받았다.
     “그러시다면 알천(閼川·경주시 북천)의 땅만 주옵소서.”
     사다함은 진흥왕의 명령을 끝내 어기지 못했지만, 그 조차도 쓸모 없는 땅을 ‘콕 찝어’ 받았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15살에 있었다.(〈삼국사기〉 ‘열전·사다함전’)
    28 min
  • 180회 조조의 ‘가짜무덤설’, 1800년 논쟁을 부추기다
    2009년 중국 허난성(河南省) 안양현(安陽縣) 시가오쉐촌(西高穴村)의 가마터 일꾼들이 벽돌을 만들려고 진흙을 파다가 깜짝 놀랄만한 고분과 유물을 찾아냈다.
     2009년에 이어 2016·2017년 세차례 발굴결과를 종합한 중국 허난성 문화재고고연구원은 “이 고분은 조조의 무덤”이라고 확정했다.
     왜 그런 결론에 도달했을까. 우선 고분에는 금은 공예품과 토기, 칼과 칼집, 명문 돌판 등 250여점의 공예품이 들어 있었다.
     또 무덤에서는 60~70대 남성과 여성 두 명의 유해가 발견됐다. 남성은 조조가 분명하고, 여성 둘은 위나라 초대 황제인 조비와 조식의 어머니인 변씨와, 맏아들 조앙의 어머니이자 일찍 죽은 류씨인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삼국시대 위나라 건국의 기틀을 쌓은 조조(155~220)의 무덤임을 알리는 ‘위무왕(魏武王)’이라는 명패가 보였다.
     조조의 무덤 바로 곁에 옷만 있고 시신은 보이지 않은 무덤이 하나 더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이 무덤은 197년 토벌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맏아들 조앙(?~197)의 빈묘일 것으로 추정했다. 유물이 250여점이라 하지만 천하를 호령한 조조의 고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도 소박하다.
    36 min
  • 179회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그들은 정말 사랑했을까
    최근 들어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사이에 또하나의 수수께끼가 등장했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 등 국제공동연구진은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약 4만7000년~3만9000년 전부터 유럽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 유골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결과 상당한 양의 유전자가 여러 집단의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현생인류에게 흘러들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동안의 연구를 뒷받침해주는 자료일 뿐이다. 이번에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은 네안데르탈인에서는 현생인류의 유전자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앞서 밝혔듯이 현생인류 유전자의 1~4% 정도가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물려받았다(아프리카인은 제외)는 게 지금까지 연구결과였다. 그러나 독일 등 국제공동연구진은 “이상하게도 네안데르탈인에서는 현생인류의 유전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이들이 사랑을 나눴다면 유전자가 교환되었을 텐데 왜 현생인류의 몸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검출되고, 왜 네안데르탈인의 몸에서는 현생인류의 유전자가 검출되지 않을까.
     연구가 거듭될수록 흥미진진한 수수께끼가 이어지고 있다.
    32 min
  • 178회 선조는 왜 마부에게 공신작위를 내렸을까
    “…너는 낮은 신분으로서 임금의 어가와 세자의 출정에 말고삐를 짊어지는 공을 이뤘고…. 험한 일을 두루 겪으면서도 시종일관 마부의 역할을 다했으니….”
     최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해외한국학자료센터가 일본 교토대(京都大) 부속도서관에서 찾아낸 이른바 ‘오연의 호성공신교서’ 중 한 대목이다.
     호성공신교서는 1604년(선조 37년) 선조가 임진왜란 중에 임금(聖)을 의주까지 호종(扈)하는데 공을 세운 86명에게 내린 교서이다. 선조는 이때 무공(武)을 떨친(宣) 선무공신 18명과 1595년 이몽학의 난(亂)을 진압(淸)한 청난공신 5명에게도 작위를 내렸다. 그런데 86명의 호성공신 중에는 내시(24명)와 이마(마부·어가 담당) 6명, 의관(어의 허준 등) 2명, 별좌 및 사알(왕명 전달) 2명도 포함되었다. 이 가운데는 말을 치료하는 마의(馬醫)까지 있었다.
     이번에 찾아낸 교서는 선조의 말(어가)을 끌고 관리한 이마(理馬·마부) 오연에게 내린 호성공신교서이다.
     교서에서는 “동쪽 오랑캐(일본)가 유린하자 어가가 허둥지둥 피신했을 때… 조정 안팎의 신하와 백성들이 대부분 짐승과 새가 달아나듯 했는데 너는 낮은 신분에도…”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 무슨 말인가. 선조는 왜 명공대신도 아닌 오연과 같은 마부와 내시, 어의 등에게 공신작위를 내렸을까. 이 내막을 살펴보자.
    35 min
  • 177회 일제가 낙랑, 가야 발굴에 혈안이 됐던 이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는 1500~5000점 가량의 낙랑유물이 소장돼있다. 분단국가의 남쪽에 소장된 유물 치고는 제법 많은 수량이다.
    문제는 이 대량의 낙랑유물이 일제시대 때 집중 발굴됐다는 것이다. 왜 일제는 낙랑유물에 집착했던 것일까.
    일제가 낙랑 유적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1909년부터였다. 평양 대동강변에서 아주 흥미로운 발굴이 시작됐다.
    통감부 고건축 촉탁인 세키노 다다시(關野貞)가 석암동 고분(전실분)를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33 min
  • 176회 ‘기생들의 오빠’ 신윤복이 사랑한 ‘미인’은 누구였을까
    근자에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가 보물 1973호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가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미인도’는 과연 신윤복이 붙인 제목인가. 독자의 입장에서 각종 자료를 들춰보니 그게 아니었다. 후대에 붙여진 제목이었다. 가만보면 배경없이 그려진 여성의 전신 그림을 ‘미인도’라 했다. 그러나 이것은 공정하지 못한 제목이다. 생각해보라. 고려·조선시대의 남자상을 ‘미남도’라 하는가. 누구인지 모르면 그림의 주인공을 애써 찾아 ‘○○의 초상화’라 굳이 이름 붙인다. 그러나 여성의 그림은 어떤 경우 ‘특정한 인물의 초상화’ 인 것 같은데 주인공을 찾거나 적당한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냥 ‘미인도’라 쉽게 명명한다. 이 경우 어떤 현상이 빚어지는가. 여성 그림은 그저 ‘미인을 감상하는’ 남성의 눈요깃감에 그친다. 개별 작품의 독자적인 지위나 성격을 잃어버리고 그냥 ‘미인’이라는 ‘아름다운 여성의 일반적 범주’에 갇히고 만다. 다시 말하면 여성을 그린 그림은 그저 ‘남성의 완상용’이 되고 만 것이다.
     신윤복의 ‘미인도’는 어떨까. 다른 구체적인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 일단 신윤복이 그린 ‘이른바 미인도’의 모델을 상상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혹시 신윤복이 가슴 속에 묻어둔 사랑하는 이가 아니었을까. 혹자는 아예 신윤복을 기생의 ‘기둥서방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38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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